서적소개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벤자민 프랭클린 / 원앤원북스 / 2015.9.16
–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인생 경영을 배우다
이 책은 총 1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가족사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2장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즐겼던 그가 형의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일하게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과, 어떻게 뉴욕으로 가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3장에는 고초 끝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벤저민이 키머의 인쇄소에서 일하기까지의 과정을, 4장에는 키드 지사의 제안으로 인쇄소를 설립하기 위해 보스턴에 다녀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5장에서는 하나같이 독서광이었던 친구들과의 교우를 들려준다. 6장에서는 영국의 인쇄소에서 일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의 일화를, 7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인쇄소를 설립하고 경영하면서 ‘전토(Junto)’ 클럽을 만들게 된 계기와 그 구성원에 대해 말한다. 8장에서는 승승장구하는 사업과 미국 최초의 회원제 도서관 설립에 관한 내용을, 9장에서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정한 13가지 덕목과 하루 일과표에 대해 이야기한다. 10장 에서는 다양한 금언을 담은 획기적인 달력을 만든 것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공직생활에 대해 다룬다.
11장과 12장에서는 소방대와 방위군을 조직하고 난로를 발명한 일화를 들려준다. 13장에서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를 설립하고, 의원이 되어 공익을 위해 활동한 일들을, 14장에서는 식민지 내에서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려 했지만 무산된 일을 다루었다. 15장에서는 주지사와 주 의회의 끊임없는 갈등을, 16장에서는 브래드독 장군의 모험과 패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17장에서는 방위군을 직접 이끌며 요새를 구축하고, 점점 더 커지는 영향력으로 영주의 반감을 산 사건을, 18장에서는 자연 과학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외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19장에서는 의회의 대표가 되어 영국 런던에 입성해 주 의회의 법안을 통과시킨 이야기를 들려준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삶은 끊임없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만약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다거나 곤경에 빠져 있다면, 혹은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 목차

옮긴이의 말 _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의 감동적인 이야기
1장 보스턴에서의 유년기
아들에게 들려주는 내 인생의 발자취 | 17명의 자식을 낳았던 아버지 | 어릴 때부터 공적인 일에 관심이 많았다
2장 인쇄공 일을 배우다
낮에는 일하고, 밤을 새우며 책을 읽다 | 글을 쓸 때마다 주의를 기울이다 | 겸손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습관을 들이다 | 무일푼인 17세 소년, 뉴욕에 도착하다
3장 필라델피아에 도착하다
집을 떠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다 | 필라델피아 시장 근처의 부두에 도착하다 | 인쇄소 일자리를 노인에게 소개받다 | 뜻밖의 일이 생겨 보스턴으로 돌아가다
4장 첫 번째 보스턴 방문
윌리엄 키드 지사가 인쇄소 개업을 권하다 | 인쇄소를 하던 형과의 오해가 시작되다 | 부모님의 승낙을 받아 다시 뉴욕으로 가다 | 질 나쁜 여자들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다 |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오랜 친구 콜린스 | 영국에 다녀오라는 키드 지사의 제안 | 합리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
5장 필라델피아에서 사귄 친구들
토론을 자주 벌였던 열정적인 키머 | 하나같이 독서광이었던 이들과 교우하다
6장 영국으로의 첫 번째 항해
영국으로 가는 길을 마음껏 즐기다 | 죽어라 하루를 벌어 근근이 하루를 연명하다 | 재능 있는 청년으로 평가받기 시작하다 | 랠프와의 오랜 우정이 허무하게 깨지다 | 인쇄 작업이 아닌 식자 작업을 맡게 되다 | 리틀브리튼의 하숙집에서 만난 사람들 | 사람과 정보를 얻었던 런던에서의 18개월
7장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시작하다
데넘 씨가 죽고 세상에 다시 홀로 남다 |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인쇄소 일 | 메레디스의 동업 제안을 받아들이다 | 당시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과 생활신조 | 유능한 친구들을 모아 비밀 클럽을 만들다 | 인쇄소에서 밤낮으로 부지런히 일하다 | 메레디스와의 동업 계약을 마침내 청산하다
8장 인쇄업의 성공과 도서관 설립
상인으로서 좋은 평판을 쌓기 시작하다 | 사업은 순풍을 달고, 리드 양을 아내로 맞다 | 회원제 도서관을 미국 최초로 설립하다 | 내가 받은 몇 통의 편지와 그에 대한 답변 | 도서관이 생긴 덕분에 나도 계속 발전하다 | 나만의 기도서를 사용하기로 결심하다
9장 인격체가 되기 위한 계획을 세우다
내가 정한 덕목들과 그에 따른 규율 | 일주일에 한 가지 덕목씩 실천하기로 마음먹다 | 하루 24시간에 대한 계획을 세우다 | 규율을 지키려 시도하며 더 나은 인간이 되다 |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방법밖에는 없다 | 내게는 거창하고 위대한 계획이 있다
10장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을 만들다
다양한 금언들을 담은 획기적인 달력 | 당시에 기억나는 몇몇 사람들 | 여러 외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다 | 더욱 발전적으로 전토 클럽을 변화시키다 | 주 의회의 서기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다
11장 공적인 업무를 시작하다
협력 체제를 갖춘 소방대를 조직하다 | 화이트필드 목사와의 특별했던 관계 | 누구와 동업을 해도 언제나 원만히 경영되다
12장 방위군을 조직하다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방위 단체 대표가 되다 | 퀘이커교도들의 의견이 어떤지 깨닫다 | 퀘이커교도들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 | 방 안을 덥혀주는 난로를 발명하다
13장 공익을 위한 여러 가지 계획들
기부금을 모금해 대학을 설립하다 | 의회 의원이 되어 공익을 위해 활동하다 | 자선적인 성격이 강한 병원을 설립하다 | 도로를 포장하고 가로등을 세우다 | 도로를 청결하게 유지할 방법을 제안하다 | 소소한 편리함에서 행복이 찾아온다 | 대학에 다니지 않고도 학위를 2개나 받다
14장 식민지 연합을 제안하다
식민지들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하다 | 영국과 식민지 의회에서 내 제안을 반대하다
15장 주지사와 의회의 갈등
논쟁을 즐겼던 주지사 모리스 | 주 의회에 먹칠을 하려고 안간힘을 쓴 주지사 | 지사의 동의 없이도 일을 성사시키다
16장 브래드독 장군의 모험과 패전
체신 장관의 자격으로 브래드독 장군을 만나다 | 장군의 요청으로 물품 구입에 나서다 | 미국군과 인디언군을 너무 얕본 장군의 패착 | 던바 대령의 약속 불이행으로 고초를 겪다 | 영주들의 특별 면세 조항에 집착했던 모리스 지사
17장 방위군을 직접 이끌다
적군이 자주 출몰하는 지방의 방위를 맡다 | 인디언들을 막기 위해 요새를 구축하다 | 전쟁터에서 우연히 발견한 발명품 하나 | 모라비아 교인들의 생활에 대해 알아보다 | 나를 향한 영주의 반감이 더욱 커지다
18장 자연 과학 분야에서 명성을 얻다
독창적인 실험 결과를 책으로 발표하다 | 유럽의 학자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다
19장 의회 대표로 런던에 입성하다
영주들을 고발하는 탄원서를 준비하다 | 우유부단함 그 자체였던 중재자 로던 경 | 예상치 못하게 뉴욕에서 오래 지체하다 | 런던으로 가는 뱃길에서 관찰한 것들 | 런던에 입성해 영주들과 회담을 가지다 | 만장일치로 보고서에 서명을 받다
벤저민 프랭클린 연표
○ 저자소개 : 벤자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 1706 ~ 1790)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 1706년 1월 17일 ~ 1790년 4월 17일)은 1706년 1월 17일 뉴잉글랜드 보스턴에서 17남매 중 15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 때문에 열 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양초와 비누공장을 하던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열두 살에 형이 운영하는 인쇄소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열여덟의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인쇄 기술을 배워온 뒤, 1728년부터 인쇄업을 시작하였다. 1729년에는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지를 인수하여 발행하였다. 1732년 12월, 1733년도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을 처음으로 발행하여 1758년도 달력까지 발행하였다. 그는 회원제 도서관과 병원을 만들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전신인 필라델피아 아카데미 창설, 미국철학협회 창립 등 폭넓은 교육문화 활동을 벌였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토 (Junto)’라는 독서토론 클럽을 결성하여 바람이나 일식, 월식, 지진 등 자연과학에 대해서 토론하고 연구하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742년에 개방형 난로인 ‘프랭클린 난로’를 개발하였다.
1752년 6월에는 연을 이용하여 번개가 전기라는 사실을 증명하였고, 피뢰침을 발명하였다. 영국 왕립협회는 그 공로를 인정하여 프랭클린을 왕립협회 회원으로 임명하고, 코플리 상을 수여하였다.
1748년 인쇄업에서 은퇴한 뒤, 필라델피아의 시의회 의원, 펜실베이니아 식민지의회의 의원을 역임하였다.
1755년에 영국에 대한 미국의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이듬해에 프랭클린은 토마스 제퍼슨 등과 함께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다. 또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미국과 프랑스의 동맹 관계를 이끌어내었다.
1788년에 모든 공직에서 은퇴하고, 1789년에는 자서전을 정리하여 영국의 지인들한테 보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 실험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다가 1790년 4월 17일 8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평생을 통하여 자유를 사랑하고 과학을 존중하였으며 공리주의 (功利主義)에 투철한 그를 일컬어 사람들은 ‘가장 지혜로운 미국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저서로는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과 《자서전》이 있다. 뛰어난 기지와 경구가 넘치는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는데, 프랭클린은 “나의 출판업 중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낸 작품”이라고 밝혔다. 사후에 출판된 《자서전》은 18세기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산문으로 손꼽힌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그를 가리켜 ‘신대륙에 있어서 자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문필가’라고 하였다.
– 역자 : 정윤희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번역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부산국제영화제 · 부천영화제 · 서울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 참여했다. 소니 픽쳐스 · 디즈니 픽처스 · 워너 브러더스와 CJ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50여 편의 개봉관 영화를 번역했으며, 그 외에도 KBS · EBS · 온스타일 · MGM 등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을 통해 2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번역했다. 동국대학교 · 세종대학교 · 중앙대학교 · 숭실사이버대학교 · EBS · IMBC에서 영미문학과 번역, 그리고 통역을 강의했다. 하노이 국립 인문사회대학교에서 일했었고, 현재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번역 강의를 하면서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여러 작가의 좋은 작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번역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러브 스틸러』, 『고아 이야기』, 『비밀의 정원』(1~2권),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거울 나라의 앨리스: 앨리스의 끝나지 않은 모험』, 『월든』, 『정글북』, 『지킬박사와 하이드』, 『렛 잇 스노우』, 『오즈의 마법사』,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악어와 레슬링하기』, 『힐 하우스의 수상한 여자들』, 『제로의 기적』, 『앨리스와 앨리스』, 『메리 포핀스』, 『펄 벅을 좋아하나요?』, 『여신』, 『그리고 파티는 끝났다』, 『1분 경영』, 『엘레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가디언의 전설』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우리 가문은 평범했으나 일찍부터 종교개혁에 참여했다. 그리고 메리 여왕(1516~1558)이 집권하는 동안 개신교로 활동했다. 로마 가톨릭에 지나치게 반기를 드는 바람에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집에는 영어로 된 성경책이 있었는데 보통 때는 조립식 의자 덮개 아래 성경책을 펴서 끈으로 묶어두었다.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성경책을 읽어주실 때면 의자를 뒤집어서 무릎에 대고 끈 아래로 책장을 넘겼다. 그러면 아이들 중 하나가 현관 앞에 서서 종교 재판소의 집행관이 오지는 않나 망을 보았다. 혹여 집행관이 들이닥치면 의자를 다시 뒤집어 원래대로 세워서 성경책이 있는지 눈치채지 못하도록 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벤저민 삼촌을 통해 들은 것이다. 찰스 2세(1660~1685)의 집권이 끝날 즈음 우리 가족은 영국 국교회에 속해 있었다. 때마침 영국 국교회로 개종하기를 거부해서 파면을 당한 목사 몇 명이 노샘프턴셔에 와서 비밀 예배를 열었고, 벤저민 삼촌과 나의 아버지 조사이어는 그때부터 비국교회(국교회 이외의 교회-옮긴이)를 신봉하게 되었다. 나머지 가족들은 끝까지 영국 국교회에 대한 믿음을 고수했다.— p.22~23

한창 어문학 공부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그린우드의 영문법 책을 만나게 되었다. 마지막 부분에 수사학과 논리학의 기술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었고, 소크라테스식 논쟁법의 예시도 등장한 것으로 기억한다.얼마 후에는 크세노폰Xenophon의 『소크라테스의 회고록』을 구해서 논쟁법의 다양한 예를 확인했다. 덕분에 상대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싸우듯이 논쟁하기보다는 겸손한 태도로 질문을 던지고 상대의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기술을 익혔다. 또한 섀프츠베리Shaftesbury와 콜린스가 쓴 글을 읽었는데 평소 기독교의 여러 가지 교리에 대해 많은 회의를 품고 있던 나에게 소크라테스식 논쟁법이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방식대로 논쟁을 하면 내 입장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상대를 꼼짝 없이 곤경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꾸준히 연습해서 나보다 훨씬 학식이 높은 사람들까지 나의 의견에 동조하게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논쟁 상대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그들을 몰아쳐서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 더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p.39~40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키머는 인쇄를 맡기러 온 손님인 줄 알고 곧장 뛰어나갔지만, 키드 지사는 예상외로 나를 찾았다. 그는 작업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와서 난생 처음 받아보는 정중한 인사를 건네더니 온갖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것을 책망하면서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키드 지사는 프렌치 대령과 고급 마데이라주를 맛보러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고 권했다. 키머는 많이 놀란 눈치였다. 어쨌거나 나는 두 신사를 따라서 3번가에 있는 한 술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함께 마데이라주를 음미했다. 지사는 인쇄소 개업을 권하며 내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를 댔다. 그리고 프렌치 대령이 정부에서 하는 문서 작업들을 전부 수주해줄 것이라고 확언했다. 나는 아버지의 허락을 구하기 힘들 거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지사는 직접 추천서를 써주겠다며 이를 가지고 보스턴으로 가면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독려했다.— p.64
그 후부터는 인쇄 작업이 순탄히 흘러갔고 어느새 상당한 영향력까지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예배당(당시 인쇄소를 예배당이라 불렀다)의 불합리한 규칙을 현실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실천했다. 또한 나를 본보기 삼아 변해가는 동료들도 생겼다. 빵과 치즈, 그리고 맥주를 퍼마시는 대신 나처럼 빵과 버터를 섞고 후추를 뿌린 수프를 이웃에 주문해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 맥주 1파인트를 사먹을 수 있는 1페니의 절반 정도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속도 편했으며, 맑은 정신으로 버틸 수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맥주를 마시던 동료들은 외상값이 쌓여 더는 술집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자를 줄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나를 찾아왔다. 소위 “불이 꺼졌다.”며 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주급이 나오는 토요일이면, 나는 경리 책상을 지키고 있다가 빌려준 돈을 받아냈다. 어떤 날에는 30실링 가까이 돈을 받은 적도 있었다. 거기다 말도 재미있게 하고 풍자를 잘하는 친구로 소문이 나서 인쇄소에서 나름대로 입지도 굳어졌다.— p.100
우리의 첫 신문인 [펜실베이니아 가제트]는 예전의 신문들과는 많이 달랐다. 활자 형태 자체도 눈에 띄었고, 인쇄 상태도 깨끗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당시 버넷 지사와 매사추세츠 의회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에 대한 의견을 함께 게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나의 용기 있는 발언이 유명 인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신문과 그 발행인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졌고, 몇 주가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신문을 구독했다. 저명한 인사들이 우리 신문을 구독하자 일반인들도 대세에 동참했다. 그렇게 신문 발행 부수가 계속 늘어났다. 이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글쓰기 기술을 연마한 덕분이었다. 또한 글 꽤나 읽었다는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논조를 구사하는 사람이 발행하는 신문을 돕다 보면 훗날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브래드퍼드는 투표용지와 법률 문서, 그 밖에 공무와 연관된 서류를 인쇄하고 있었다. 한 번은 주 의회가 지사에게 보내는 청원서를 인쇄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그 결과물이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내용을 정확하고 품위 있게 다시 인쇄해서 주 의원들에게 한 부씩 돌렸다. 그러자 확연한 차이를 느낀 의원들이 하나 둘 나서서 인쇄소를 바꾸자고 건의했고, 이듬해부터 우리 인쇄소에서 의회 업무와 연관된 작업을 전담하게 되었다.— p.127
그즈음 전토 클럽은 술집 대신 그레이스 씨의 집에 있는 조그만 방에서 모임을 가졌다. 회원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방이었다.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안건을 제의했다. 회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책들을 한데 모아서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매주 토론 주제가 바뀔 때마다 서로 필요한 책을 빌려보곤 했는데 한곳에 책을 모아두면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개개인이 소유한 책을 한데 모으면 회원들이 함께 소유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 다들 내 제안에 찬성했고, 방 한쪽에 우리가 모을 수 있을 정도로 책을 쌓아두었다. 기대보다 적은 양이었지만 매우 편리했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하기가 힘들었고 불편한 점도 많아져서 일 년 만에 공동 서재는 무산되었다. 이를 통해 나는 공적인 업무를 위해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바로 회원제 도서관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내가 초안을 작성하고 나서 유명한 공증인 브록덴이 형식에 맞추어 문서의 내용을 다듬었다. 그리고 전토 클럽의 도움으로 50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처음에는 1인당 40실링을내고, 회원제 도서관을 지속할 예정 기간인 50년 동안 1년에 10실링씩 회비를 내야 했다. 회원수가 100명으로 늘어나자 우리는 법인체로 인가를 받아 도서관을 열었다. 요즘 북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원제 도서관의 모태가 바로 우리가 설립한 도서관이다.— p.140~141
먼저 ‘절제’라는 덕목을 통해 냉철한 이성과 경각심을 익히고, 묵은 습관을 반복하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주변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첫 번째 순서로 두었다. 이를 완벽히 습득하고 나면 ‘침묵’의 단계는 한결 쉬워진다. 나는 덕을 쌓음과 동시에 지식도 얻고 싶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장난을 하거나 농담을 하는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런 습관을 가지면 시시껄렁한 친구들만 꼬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침묵’을 두 번째 순서로 두었다. 그다음 덕목인 ‘규율’을 통해 일과 공부에 열중할 수 있는 시간을 더욱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단’의 덕목을 익히고 나면 나머지 덕목들을 체득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절약’과 ‘근면’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빚을 갚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독립적이고 윤택한 삶을 보장해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직’과 ‘정의’를 익히는 것은 훨씬 쉬워진다. 이런 식으로 나머지 덕목들도 차근차근 익혀나갈 수 있을 것이다.— p.164~165
1732년, 나는 리처드 손더스라는 이름으로 처음 달력을 발행했다. 그 후로 25년 동안 계속 발행된 이 달력을 사람들은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이라고 불렀다. 나는 재미있고 유용한 달력을 만들려고 애썼고, 덕분에 판매 부수도 엄청나게 늘어 1만 부 정도를 찍어서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이 달력이 없는 집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자 책을 거의 사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달력을 이용해서 교훈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특정한 날을 표시해둔 곳 사이에 다양한 격언들을 집어넣었다. 대부분 근면과 절약이 부에 이르는 길이며 미덕을 얻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가령 “속이 빈 자루는 똑바로 세울 수 없다.”와 같은 금언을 통해 궁핍한 삶을 살다 보면 정직하게 사는 것이 힘들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p.183~184
그즈음 나는 논문 한 편을 썼다. 내용은 주택 화재의 원인이 되는 갖가지 요인과 부주의한 태도, 그리고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고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에 대한 것이었다. 논문은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졌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즉시 화재를 진화하기 위해 출동하고, 위험한 상황에서주택 내부의 물건들을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협력 체제를 갖춘 소방대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소방대원을 모집하는 광고가 나가자 30명에 가까운 지원자들이 모여들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소방대원들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개수의 물통과 튼튼한 자루, 그리고물건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바구니를 항상 상비하도록 했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저녁 모임을 갖고, 화재가 발생할 경우 효과적인 대처법에 대해서 각자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 소방대의 효용성은 곧바로 빛을 발했고 가입을 원하는 수가 점차 불어났다. 소방대 하나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새로운 소방대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소방대가 하나둘 늘어났고, 재산이 꽤나 있는 주민들 대부분이 소방대원으로 가입했다. 가장 먼저 만든 유니언 소방대의 경우 벌써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건재하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p.198~199
나는 시민들을 모아서 자원 방위 단체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먼저 ‘명백한 진실’이라는 논설문을 발표해 우리 주의 방위 체계가 무방비 상태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확실한 방어 체계를 위해서는 모두가 화합하고 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 주를 지키기 위한 방위 단체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고 이를 찬성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기로 했다. 내가 쓴 논문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 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방위 단체의 대표가 되었고 주위 친구들과 초안을 작성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예배당에서 시민 집회를 열기로 했다. 드디어 집회가 열리던 날 건물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곳곳에 인쇄용지들과 펜, 잉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간략하게 연설을 한 뒤 방위 조직에 대한 초안을 발표하고 자세히 설명한 다음 서명 용지를 나누어주었다.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 없이 다들 열심히 서명을 했다. 시민 집회가 끝난 후에 서명 용지를 전부 추려보니 총 1,200장이 넘었다. 남은 용지들은 지방으로 보내서 각자 서명을 받았는데 그것만 해도 1만 명이 넘었다. 시민들은 신속하게 무장을 하고 중대와 연대를 편성했으며 장교를 선출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총기 훈련과 군사 훈련에 열중했다. 여성들도 모금을 벌여서 각 중대를 상징하는 깃발을 비단으로 만들고, 갖가지 도안과 구호를 새겨 넣었다.— p.212~213
나는 대학을 설립하자는 의견을 발의한 것이 개인이 아니라 ‘공공복지를 위해 애쓰는 여러 인사들’로 발표할 것을 제안했다. 나만의 원칙에 따라서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기보다 여러 사람을 표면에 내세우기로 한 것이다. 대학 설립을 위해 기부금을 낸 사람들은 이를 즉시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24명의 재단 이사를 자체적으로 선출했다. 또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프랜시스 씨와 나에게 대학 운영에 관한 법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윽고 대학 운영에 관한 법규가 승인된 후, 여러 학교에 있던 교사들을 모아 교수로 채용했다. 마침내 1749년 대학교가 문을 열었다. 학생 수는 급속도로 불어났고, 마침내 건물이 비좁아지자 우리는 새로운 교사를 설립하기 위해 적당한 부지를 물색했다. 그러다 운 좋게 조금만 손을 보면 당장 강의실로 써도 될 법한 커다란 건물을 찾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화이트필드 목사의 추종자들이 세운 건물이었다. 그 건물이 대학 강의실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경위는 다음과 같다.— p.228
그때부터 우리는 몇 개의 소대로 나뉘어서 인근 지역을 탐색하러 나섰다. 비록 인디언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근처 언덕에서 인디언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쪽 부근에 잠복해서 우리의 동정을 엿본 모양이었다. 거기서 우연히 발견한 발명품 하나가 있는데 여기서 간략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워낙 추운 겨울이라 인디언들에게도 추위를 달래줄 불이 필요했다. 하지만 땅 위에 불을 피우면 먼 곳에서도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되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대신 3피트 정도의 깊은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불에 탄 통나무를 손도끼로 잘라서 숯을 떼어내 구덩이 속에 불을 피운 것이다. 구덩이 주위의 잡초들이 짓이겨진 것으로 보아 구덩이 속에 다리를 넣고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발을 덥혔던 모양이다. 발만이라도 따뜻하게 덥히면 추위를 견디는 데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불빛이 멀리까지 새어나가지도 않고 불꽃이 일거나 연기가 나지도 않아서 적들에게 노출될 염려가 없었다. 게다가 수적으로도 우리 군이 훨씬 우세해서 급습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p.288~289
키너슬리 씨는 이를 위해 훌륭한 기계들을 마련했다. 이전에 내가 멋대로 만들었던 조잡한 기계들을 전문가의 손을 빌려 제작한 것이었다. 키너슬리의 강의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만원이었고 다들 만족해했다. 얼마 후부터는 식민지 곳곳의 주요 도시를 돌면서 실험을 보여주고 돈도 꽤 많이 벌었다. 이 모든 것이 콜린스 씨가 보내준 시험관 덕분이었기 때문에 그 기구들을 이용해서 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실험한 결과를 자세히 적어서 편지로 전했다. 그는 내가 보낸 편지를 로열소사이어티에 제출했지만, 처음에는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협회지에 게재할 만큼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보냈던 실험 결과 중 하나는 번개와 전기의 속성이 동일하다는 내용이었다.— p.300~301
나는 신임 주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저는 영주의 후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형편이 나쁘지도 않고, 주 의회에 몸담고 있는 이상 그들의 호의를 받을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저 역시 영주들에게 반감을 품고 있지 않으며, 만약 지사님께서 제안하는 법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반대를 고수한 것은 영주들이 강요한법안의 내용이 그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주민들 입장에서는 큰 손해를 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좋게 봐주신 점에 대해서는 감사드리며 저 역시 행정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전임 주지사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던 불운의 훈령은 더이상 가지고 나오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 의회에서는 영주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고, 나는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영주가 보낸 훈령을 공개하고 이를 하나하나반박하기도 했다. 당시 의사록을 뒤져보면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뒤에 출간한 『역사적 회고』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하지만 데니 대위와 사적인 감정이 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가끔씩 둘이 어울리기도 했다. 그는 워낙 지식이 풍부했으며 세상사에 밝고 유쾌해 함께 대화를 나누면 즐거웠다.— p.308~309
맨스필드 경이 다시 회의실로 돌아갔고 마침내 법안은 통과되었다. 물론 몇 군데 조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를 받았고, 다음에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의회의 입장은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쪽이었다. 의회는 추밀원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에 법안에 의거해 일 년 치 세금을 부과했다. 더불어 세금 평가원들이 공정하게 세금을 부과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 감사 위원회를 조직했고, 영주와 가까운 지인들도 이에 포함되었다. 마침내 감사 위원회의 조사가 끝났고, 세금이 공평하게 부과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후 만장일치로 보고서에 서명을 받았다. 주 의회는 영주에게 일정 금액의 세금을 부과하는 첫 번째 조항을 체결하는 데 나의 공이 컸음을 인정했다. 덕분에 당시 주에서 전반적으로 유통되던 지폐의 신용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고향에 귀국하자 주 의회는 정식으로 나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해왔다. 반면 영주들은 데니 지사가 훈령을 거스르고 법안을 통과시킨 점에 분노해 그를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국왕께 충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또한 장군의 요청을 받아 진행한 점이었기 때문에 지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궁정에 든든한 후원자들이 있어서 그 정도 협박쯤은 걱정할 것도 없었다. 결국 영주들의 협박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 p.327~328
○ 출판사 서평
– 삶을 바꾸는 최고의 자기계발서!

이 책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자 지금까지도 훌륭한 정치가와 과학자로서 명망을 떨치고 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흔히 그 화살을 자신이 처한 주변 환경으로 돌린다. 그러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우리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 모든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하루 24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쪼개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단 한순간도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담긴 결실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며 즐겨 쓰는 ‘프랭클린 플래너’다. 시간 관리의 효율성을 일찍이 깨달았던 그는 구체적인 하루 일과표를 만들어 계획적인 삶을 살았으며,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13가지 덕목(절제·침묵·규율·결단·절약·근면·정직·정의·중용·청결·평정·순결·겸손)을 정해 이를 엄격히 지켰다.
가난한 집안의 열일곱 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10세 때 학업을 중단해야 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엄격한 규율을 통해 극복하고, 스스로 터득한 삶의 지혜와 성실한 태도를 미국에 널리 전파한 선구자였다. 그는 인쇄소의 견습공으로 시작해 자신의 인쇄소를 성공적으로 경영하면서도 남들에게 성실함을 인정받기 위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도 기꺼이 포기했다. 또한 미국인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음에도 절대로 잘난 척하지 않았으며, 종교부터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편협함을 버리고 공정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렇기에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전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인생 경영을 배우다
이 책은 총 1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가족사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2장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즐겼던 그가 형의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일하게 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과, 어떻게 뉴욕으로 가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3장에는 고초 끝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벤저민이 키머의 인쇄소에서 일하기까지의 과정을, 4장에는 키드 지사의 제안으로 인쇄소를 설립하기 위해 보스턴에 다녀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5장에서는 하나같이 독서광이었던 친구들과의 교우를 들려준다. 6장에서는 영국의 인쇄소에서 일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의 일화를, 7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인쇄소를 설립하고 경영하면서 ‘전토(Junto)’ 클럽을 만들게 된 계기와 그 구성원에 대해 말한다. 8장에서는 승승장구하는 사업과 미국 최초의 회원제 도서관 설립에 관한 내용을, 9장에서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정한 13가지 덕목과 하루 일과표에 대해 이야기한다. 10장 에서는 다양한 금언을 담은 획기적인 달력을 만든 것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공직생활에 대해 다룬다.
11장과 12장에서는 소방대와 방위군을 조직하고 난로를 발명한 일화를 들려준다. 13장에서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를 설립하고, 의원이 되어 공익을 위해 활동한 일들을, 14장에서는 식민지 내에서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려 했지만 무산된 일을 다루었다. 15장에서는 주지사와 주 의회의 끊임없는 갈등을, 16장에서는 브래드독 장군의 모험과 패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17장에서는 방위군을 직접 이끌며 요새를 구축하고, 점점 더 커지는 영향력으로 영주의 반감을 산 사건을, 18장에서는 자연 과학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외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19장에서는 의회의 대표가 되어 영국 런던에 입성해 주 의회의 법안을 통과시킨 이야기를 들려준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삶은 끊임없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만약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다거나 곤경에 빠져 있다면, 혹은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