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칼럼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
당신의 아이는 마음이 건강한가요?
나는 소위 파파걸이다. 다른 친구들이 엄마 엄마 하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주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하였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해외에 다녀오신 아버지와 떨어지기 싫어서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곤 했다고 한다. 사춘기 시절에도 난 꼭 아버지 같은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노래를 하곤 했으니 나에게 아버지는 그만큼 매우 절대적이고 소중한 분이셨다. 물론 어머니께서도 어느 누구보다 훌륭하시고 살림 솜씨 좋은 멋진 분이시지만 나의 아버지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가정적이면서도 강하신 전형적인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내면은 너무나 강하고 믿음직한 분이시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율동을 발표하는 날이면 엄마의 립스틱을 가져다 빨갛게 발라주시는 분께서도 아버지셨고 나와 동생을 데리고 호랑이 이야기며 처녀 귀신이야기며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께서도 아버지셨다. 지금도 늦은 밤 출출하시다는 어머니를 위해 눈 비비고 일어나셔서 누를지를 끓이거나 떡을 데우는 분이시고 가족들이 바닷가에 캠핑이라도 가려면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고기와 김치 반찬 모두 준비하시고 생수는 얼려서 준비하고 보온병에 따뜻하게 커피까지 준비하신 후 공주님들은 몸만 준비하고 차에 타라고 하시는 분이시다. 바람 부는 날이면 가지에서 떨어진 꽃잎이 안쓰러워 소주잔에 꽂아둘 줄 아시는 분이고 무럭 무럭 자라는 뒤뜰의 호박과 오이와 야채들에게 기특하다고 잘 크라고 말을 건네며 대화를 할 줄 아시는 분이다. 이렇게 한없이 다정하신 분이지만 다른 부분에 관련되어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 있다. 때론 매우 냉정하시고 때로는 지나칠 만큼 엄격하시고 때로는 무서울 만큼 강한 모습을 보이신다. 무척이나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셔서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새벽부터 언제나 일어나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시고 자기 관리에 무척 철저하신 분이시기도 하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언제나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완벽한 남성상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진 나에게 거인이셨고 하늘이셨고 언제나 내가 기댈 수 있는 기둥이셨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도 늙으셔간다. 전에는 나와 가족들 앞에서 마음 약해지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으셨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자주 그러한 모습을 엿보게 된다. 전과 달리 TV프로그램에서 본 감동받은 이야기를 목이 메어 하시며 이야기를 하시곤 하고 얼마 전에는 이런저런 마음 고생을 하고 돌아온 딸이 마음 아파 눈물을 글썽이시기도 했다. 내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버지의 어린 시절 고생 이야기……별로 들어보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그 험하고 험한 거친 인생을 이야기하시며 눈시울이 젖어들기도 하신다. 그러한 아버지의 연약해지는 모습을 뵈면서 나는 아버지도……상처가 많으셨구나 그래서 그토록 치열하게 사셨구나……하며 마음 깊이 공감을 하곤 한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웠고 특별히 아픈 경험이 없고 유복하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란 듯 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속을 들여다보고 무의식 안을 관찰해보면 생각지 못했던 상처들이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곤 한다. 아픔을 느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 똑 같은 상황 똑 같은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하더라도 형제 자매마다 받아들이고 해석한 것이 다른 것이며 어떤 이에겐 상처로 어떤 이에겐 단지 추억으로 간직될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들은 성장하면서 내면 깊숙이 숨어 있다가 전혀 다른 괴물이 되어 나타나곤 한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작은 가시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곪아가고 있다가 터져버리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구강기에 충분한 만족을 하지 못하고 결핍을 느낀 아동들이 성인이 되어 중독적인 성향을 많이 보인다고 설명을 한다. 또한 항문기에 문제성이 발견되었던 아동들은 성인이 되어 규칙에 강박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충분한 애착관계가 형성이 되지 못했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성과 관계성에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어린 시절 겪은 사건 하나가 가슴에 남아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는 어떠한 문제를 내가 가슴속 깊이 숨기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매우 큰 사건이나 충격적인 일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일에서 겪은 사소한 일이 평생의 삶을 뒤흔드는 바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너무도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내 아버지의 경우, 어린 시절의 결핍과 상처들이 지금의 아버지의 성격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족을 소중히 하고 책임감이 강한 면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이는 외려 상처나 문제성이 승화된 케이스일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 영향력 역시 적지 않다.
최근 미술심리치료를 하면서 많은 아동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부모님들을 먼저 상담하게 되면 부모님들께서는 대부분 그리 말씀 하신다. 아이는 전혀 큰 문제는 없다고…… 그러나 상담을 시작하고 투사 검사를 하면서 지켜보다 보면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른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던 아픔들이 잠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미술심리치료나 상담을 받으려 하고 아이들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님들의 경우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부모님들이다. 나는 아이들의 문제를 대면하고 상담을 할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아이는 문제가 없습니다. 언제나 문제가 잇는 분은 부모님들이십니다”
공부를 잘하고 학교 생활을 잘하고 쾌활해 보이고 순종적이며 말도 잘 듣는 아이……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시는지……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만큼 들여다보고 계시는지 난……부모님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곤 한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복이다. 마음이 건강한 아이, 행복한 아이로……양육하고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귀한 생명을 자녀로 보낸 이유일 것이다.
김은희(시인, 미술심리치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