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인생의 행복한 동행자(3) 창 5:21-24
동행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장소도 아니고 시간도 아니고 바로 상대방이다. 즉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에게 잘해주는가? 먼 사람들에게 잘 해준다. 직장동료에게…남의 자녀들에게…내가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사람들에게 잘 해준다. 그러나 사실은 나와 동행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행복하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동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무관심하다. 지금 함께 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동행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자주 말한다. 직장은 우리의 삶 전체가 아니다. 직장에 목을 매지 말라고 선포한다. 직장에 여러분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취미생활이 여러분과 동행하지 않는다. 자녀들에게 목매지마라.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젊은 부부들이 이것을 일찍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인생이 여러분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여러분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 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의 인생이 여러분의 인생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사랑과 건강한 삶의 모습이지 여러분의 인생을 그들이 대치해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부모들은 착각을 한다. 나의 자녀들이 나와 영원히 동행할 것이라고….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고, 아이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은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그 이후에는 여러분과 동행하지 않는다.
결국 여러분과 동행해야 할 사람은 바로 여러분의 반려자 즉 남편이든 아내이다. 그러나 남편이든 아내이든 이 사람도 나와 영원히 동행할 수 없다. 어느 순간에는 이 사람도 나의 곁을 떠나간다. 결국은 혼자이다. 이 세상의 마지막에 영원한 동행자는 없다.
어느 날 임금이 사자(使者)를 보내어 어떤 사나이에게 곧 출두 하라고 명령을 했다
그 사람에게는 세 사람의 친구가 있었다
첫 번째 친구는 대단히 우정이 깊은 친구로 이 친구가 있으면 참 행복하고 좋아서 늘 이 친구야 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친구는 친하긴 했지만 늘 곁에 있는 친구이기에 그렇게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세 번째 친구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필요할 때에만 만나는 친구였기에 평소에 별반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이였다
임금의 사자(使者)가 왔을 때 그는 겁도 나고 불안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고 첫째 친구에게 가서 동행을 청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단호히 거절을 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는 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기는 임금에게 결코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두 번째 친구에게 부탁했다. 이 친구는 흔쾌하게 가주겠다고 말을 하였다. 그러나 자기가 가 줄 수는 있는 곳은 대궐 문 앞까지밖에 못 간다고 대답을 하였다.
풀이 죽은 그는 할 수 없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세 번째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세 번째 친구는 뜻밖에도 기쁘게 응하면서 임금에게 잘 말해 주겠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이 땅에서 생명이 끝나 죽음 앞에 설 때 어떤 친구가 마지막까지 동행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교훈적인 우화다.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첫 번째 친구는 “돈” 이다. 서양속담에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고 했다. 돈은 결코 가져 갈 수가 없다. 돈은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는 외면을 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생명을 살릴 수는 없다. 둘째 친구는 가족이다. 사람이 죽으면 가족들은 대궐 문 앞인 무덤 까지만 같이 간다. 그러나 무덤 안으로, 화장장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셋째 친구는 선한 행위이다. 그런데 제가 이것을 신앙으로 바꾸었다. 평소엔 눈에 뛰지 않지만 죽은 뒤에도 늘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이 친구는 우리가 이 땅의 “삶” 을 끝내고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은 물질도 아니고 친구도 가족도 아니라 바로 신앙이다.
오늘 성경은 에녹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에녹이라는 사람이 성경에 나온다. 그런데 이 에녹이라는 사람이 살았던 시절에 사람들의 수명이 평균 7-800년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최고로 969년을 살기도 하였다. 모두들 이렇게 오래 살았는 데 유독 에녹이라는 사람은 365년을 이 땅에서 살다가 갔다. 왜 죽었다고 안하고 갔느냐고 하면 이 에녹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조금 억울하지 않은가? 남들은 다 7-800년을 살았는데 이 사람은 그것의 반밖에 살지 못하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해서 데리고 가셨기 때문에 그는 최고의 행복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방향이고 속도도 같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갔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혼자인가? 왜 혼자인가? 함께 동행해줄 사람이 없는가? 누군가가 여러분과 동행하고 있다.
어느 부부금실이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에게 눈의 질환이 생겨서 실명을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이 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 가고 싶은 곳을 데려다 주었다. 그러기를 몇 년을 하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할멈, 아무래도 안되겠어! 내가 이제는 지쳤어! 당신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너무도 힘이 드니 이제 혼자서 다녀보우..” 할머니는 이해가 되었지만 너무도 할아버지가 섭섭했다. 지금까지 결혼후 50여년 넘게 동행했던 남편이 어느 날 눈을 먼 자신을 내 팽개치듯이 혼자 다니라는 말에 야속하기 까지 했다. 그래서 확 나서 “알았어요. 혼자 다닐거예요”라고 하면서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넘어지기도 하고, 길을 헤매기도 하고… 그렇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져갔고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갈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오는 소리가 들려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웃으면서 한 마디를 던진다. “할머니 할머니는 복도 많소! ”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소리냐고 이야기했더니 기사가 “할머니 한 번 생각해보세요~ 매일 하루도 안 빼놓고 할머니가 버스를 탈 때마다 뒤에서 할아버지가 지켜보고 계시고 내릴 때에도 함께 내려서 할머니 가는 곳까지 따라 가주니 얼마나 복이 많습니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혹여나 죽으면 혼자 다닐 수 없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준비하게 하고 자기는 뒤에서 그 할머니와 늘 동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혼자인가?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한다면 여러분 등 뒤에서 여러분을 지켜보고 안타까워하며 동행하고 계신다.
누가? 바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감사합니다. 이 땅에서 혼자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땅을 살면서도 혼자로 두지 마시고 이 인생을 마감할 때에도 나를 혼자로 두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사랑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마지막 순간 심판대에 설때에 하나님이 나의 손을 잡고 동행하여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