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에 위치한 링컨 기념관 (Lincoln Memorial)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링컨 기념관 (Lincoln Memorial)은 미국의 국가 기념관으로 제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져 1922년 5월에 헌정되었다. 워싱턴 기념탑 건너편, 내셔널 몰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링컨 기념관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중요한 관광지로, 1930년부터는 인권이나 인종 관계의 상징적인 중심이 되어왔다.
건물의 내부에는 대형 에이브러햄 링컨의 좌상 동상과 함께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문과 그의 두번째 취임식 연설문이 새겨져 있다. 또한 이 기념관은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이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톤 인권 궐기 대회의 마지막 날에 연설했던 “나는 꿈이 있습니다” 를 포함한 유명한 연설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도리스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이 기념관은 건축가 헨리 베이컨 (Henry Bacon)에 의해 설계되었다. 또한 기념관의 내부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에이브러햄 링컨 동상은 1920년에 미국인 조각가인 다니엘 체스터 프렌치 (Daniel Chester French)가 디자인하고 피치릴리 형제들에 의해 조각되었으며, 실내벽화를 그린 화가는 쥘 게린 (Jules Guerin)이다.
베트남 참전용사 추모비,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비, 제2차 세계 대전 기념비등을 포함한 링컨 기념관 주위의 다른 기념관들은 내셔널 몰과 미국 연방정부 국립공원관리소 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 기념관은 1966년 10월 15일부터 국가사적에 등록되었고 2007년 미국 건축가 협회가 선정한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 중 7위를 차지했다.

이 링컨 기념관은 매일, 24시간 대중에게 개방되며 연중 7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IN THIS TEMPLE
AS IN THE HEARTS OF THE PEOPLE
FOR WHOM HE SAVED THE UNION
THE MEMORY OF ABRAHAM LINCOLN
IS ENSHRINED FOREVER”
(이 성전에는
그로부터 연방을 구원받은
사람들의 마음에서와 같이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기억이
영원토록 고이 간직될 것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1809 ~ 1865)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1809년 2월 12일 ~ 1865년 4월 15일)은 1861년 3월부터 암살당한 1865년 4월까지 미국의 16번째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그는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내부적 위기로부터 나라를 이끌어 벗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연방을 보존하였고, 노예제를 끝냈다. 그는 당시 미 북서부 변방 개척지에 사는 가난한 가정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는 공부를 학교에서 배우기 보다는 혼자서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어 혼자 공부를했다. 이후 그는 변호사가 되었으며, 일리노이주 의원이 되었고, 미국 하원의원을 한 번 했지만, 상원 의원 선거에서는 두 번 실패하였다. 그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못했지만, 자상한 남편이었고 네 아이의 아버지였다.

–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출생: 1809년 2월 12일, 미국 켄터키주
.사망: 1865년 4월 15일 (56세), 미국 워싱턴 D.C.에서 암살
.정당: 공화당
.부모: 부) 토머스 링컨, 모) 낸시 링컨
.배우자: 메리 토드 링컨
.자녀: 로버트 토드, 에드워드 베이커, 윌리엄 월러스, 토머스 태드
.종교: 침례회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임기: 1861년 3월 4일 ~ 1865년 4월 15일
.부통령: 해니벌 햄린, 앤드류 존슨
.전임: 제임스 뷰캐넌 (제15대) / 후임: 앤드루 존슨 (제17대)
링컨은 노예제도의 확장에 대해서 공개적인 반대자였으며, 선거 기간 중 토론과 연설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 결과 그는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확보하였다. 대통령이 된 후에 그는 임기 중 일어났던 남북 전쟁에서 북부주를 이끌며 연방에서 분리하려 노력했던 남부 연방에 승리를 거뒀다. 1863년에는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고, 미국 헌법 수정 제13조의 통과를 주장하며 노예제의 폐지를 이끌었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군사적, 정치적 양면으로 내전 승리에 집중했으며, 미국 남부 11개의 주의 분리 독립 선언 이후, 그 주들과 통합할 방법을 계속 모색했다. 그는 전례없는 군사 조치를 취했으며, 분리 독립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은 재판 없이 수감하거나 구금 조치를 취했다.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과 같은 최고 지휘관의 선발에 깊이 관여하며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역사가들은 그가 공화당 내 여러 분파의 지도자를 내각에 참여시킴으로써 당의 분파가 협력하도록 잘 조정했다고 말한다. 링컨은 1861년 말 트랜트호 사건에서 영국과 전쟁 위기까지 몰렸던 위기를 잘 해결했다. 링컨의 리더십 아래, 북군은 남북의 경계가 되던 주들을 점령할 수 있었다. 또 링컨은 1864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다시 승리했다. 공화당의 중도파 수장으로서, 링컨은 모든 방향에서 비판을 받았다. 노예제도에 반대하던 공화당 급진파에서는 남부에 대해 더욱 강한 조치를 촉구했으며, 전쟁에 반대하던 민주당에서는 평화와 협상을 촉구했다. 분리독립주의자들은 링컨을 적으로 보았다. 링컨은 반대파에 지원책을 폄으로서 지지를 끌어내고자 했으며, 뛰어난 수사학 이용과 연설을 통해 대중의 의견을 이끌었다. 예를 들어 게티스버그 연설은 미국의 전통인 자유주의 곧 자유, 평등, 민주주의에 대한 상징이 되었으며,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연설로 손꼽힌다. 전쟁이 종료돼 가면서 링컨은 전후 재건에 대해 신중한 시각을 보이며 관대한 화해를 통해 국가를 통합하는 정책을 주장했다. 남부연합을 이끌던 로버트 리 장군의 큰 패배가 있은지 6일 후에 링컨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임기 중에 암살되었다. 링컨은 지속적으로 전문가들에게서 모든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으며 영웅, 성자, 순교자가 된 실제 키 (193cm)만큼 역사의 거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성립 당시의 13주 이외의 지역에서 태어난 대통령이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미국의 5달러 지폐에는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