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마리 퀴리 : Radioactive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 주연) 로저먼드 파이크, 샘 라일리 / 2019년
마리 퀴리 (Radioactive)는 2019년 공개된 영국의 전기 영화로,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다루었다. 만화가 출신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의 작품으로, 로런 레드니스가 지은 그래픽노블 ‘방사성’ (Radioactive: Marie & Pierre Curie : A Tale of Love and Fallout)이 영화의 원작이다. 로저먼드 파이크가 주인공 마리 퀴리를, 샘 라일리, 애니아 테일러조이, 어나이린 바너드가 그 주변인물 피에르 퀴리, 이렌 퀴리, 폴 랑주뱅을 연기했다.
– 새로운 세상을 만든 천재 과학자, 그녀의 빛나는 도전과 숨겨진 이야기! 뛰어난 연구 실적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성격 때문에 연구실에서 쫓겨난 과학자 ‘마리’
평소 그녀의 연구를 눈여겨본 ‘피에르’는 공동 연구를 제안하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연구를 거듭하던 ‘마리’는 새로운 원소 라듐을 발견하는데 성공하며 ‘피에르’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다.
그 후 이 발견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피에르’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고 ‘마리’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곧 ‘마리’는 이 위대한 발견 이면의 예상치 못한 힘을 알게 되는데…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마리 퀴리’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 마리 퀴리 (Radioactive)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제작: 팀 베번, 에릭 펠너, 폴 웹스터
.각본: 잭 손
.원작: 로런 레드니스의 그래픽 노블 ‘방사성’
.출연: 로저먼드 파이크, 샘 라일리, 애니아 테일러조이, 어나이린 바너드, 사이먼 러셀 빌
.음악: 갈페린 형제
.촬영: 앤서니 도드 맨틀
.편집: 스테판 로슈
.제작사: 슈박스 필름스, 스튀디오카날, 워킹 타이틀 필름스
.배급사: 아마존 스튜디오
.개봉일: 2019년 9월 14일 (토론토 영화제), 2020년 3월 20일 (영국), 2020년 11월 18일 (대한민국)
○ ABOUT MOVIE
– 여성 최초 노벨상 수상, 세계 최초 노벨상 2회 수상, 새로운 세상을 만든 천재 과학자 `마리 퀴리` :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발견, 숨겨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천재 과학자`마리 퀴리`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다.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발견을 이룬 과학자로서의 성취는 물론 언제나 도전을 멈추지 않고, 그 누구보다 열정과 사랑이 가득했던 인물의 면면을 다뤄 150여 년의 세월에도 바래지 않은 매력으로 현재의 관객들을 단단히 매료시킨다. 영화 <마리 퀴리>는 1898년 새로운 원소 발견, 1903년 여성 최초 노벨상 수상, 1911년 세계 최초 노벨상 2회 수상, 새로운 세상을 만든 천재 과학자`마리 퀴리` (로자먼드 파이크)의 빛나는 도전과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감동 실화다.
‘마리 퀴리`는 투표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던 시기, 남성 중심의 과학계는 물론 노벨상 역사에도 한 획을 그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연구실에서 쫓겨났지만 멈출 수 없었던 지적 호기심과 타고난 재능에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남편`피에르 퀴리`(샘 라일리)와의 공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할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될 뻔한 순간에도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과 주변의 힐난에도 연구를 이어갔으며, 자신의 위대한 발견이 지닌 이면을 외면하지 않고 연구의 긍정적인 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이렇듯 <마리 퀴리>는 지금까지도 과학계를 넘어 현대 인류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학자`마리 퀴리`의 업적뿐만 아니라, 연구실 밖의 고민과 사랑 등 한 인간으로서 걸어온 발자취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내 이목을 집중시킨다.`마리 퀴리`와`피에르 퀴리`의 첫 만남부터 함께한 시간, 두 번의 노벨상 수상의 뒷이야기, 그리고 딸`이렌 퀴리`(안야 테일러 조이)와 함께한 제1차 세계대전 의료봉사 등 드라마와 로맨스를 넘나드는 스토리는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전한다.
– 로자먼드 파이크 X 샘 라일리 X 안야 테일러 조이, 노벨상의 역사를 바꾼`퀴리 패밀리` 트리플 시너지! 캐릭터 완벽 소화로 압도적인 몰입감 선사한다!
‘마리 퀴리`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작품으로 탄생시킨 데에는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을 수 없다. <나를 찾아줘> 로자먼드 파이크, <말레피센트> 샘 라일리, <23 아이덴티티> 안야 테일러 조이까지 현재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노벨상의 역사를 바꾼`퀴리 패밀리`로 뭉쳐 폭발적인 시너지를 펼친다.
여성 최초 노벨상 수상, 세계 최초 노벨상 2회 수상이라는 놀라운 성취를 이뤄낸 천재 과학자`마리 퀴리`로 분한 로자먼드 파이크는 이번 작품에서 대체불가한 매력을 뽐낸다. 과학을 향한 지적 호기심과 끝까지 파고들어 탐구하는 집념으로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고, 방사능을 활용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든 과학자의 위대한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강단 있는 성격과 사랑 앞에서 누구보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까지 지금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마리 퀴리`의 이면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마리 퀴리`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한 동료 과학자이자 남편`피에르 퀴리` 역은 샘 라일리가 맡았다. 그 누구보다`마리 퀴리`를 사랑하고 같은 길을 걷는 과학자로서 그녀를 존경하는 파트너의 면모를 묵직하고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연구를 위해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 모습은 물론,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벨상 후보에서 제외된`마리 퀴리`를 다시 포함시킬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등 다채로운 매력을 펼쳐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숨에 할리우드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신비로운 분위기의 안야 테일러 조이가`마리 퀴리`의 연구를 이어가는 딸`이렌 퀴리` 역을 맡아 신념으로 똘똘 뭉친 당찬 캐릭터를 선보인다. 어린 나이에 전장에 뛰어들어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이동식 야전 병원을 운영하고, 훗날 인공방사능 원소를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이렌 퀴리`가 지닌 당당한 모습을 밀도 있는 감정 표현과 성숙한 연기력으로 소화했다. 이처럼`퀴리 패밀리`로 거듭난 세 사람이 발산하는 강렬한 시너지는 보는 이들에게 완벽한 몰입감을 안겨준다.
– <레미제라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대니쉬 걸> 완성도 높은 실화와 시대극의 명가, 믿고 보는 최고의 제작사 워킹타이틀! 이번엔 천재 과학자의 감동 실화로 찾아왔다!
믿고 보는 제작사로 명성이 높은 워킹타이틀은 실화와 시대극으로도 확고한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2012년 <레미제라블>, 2014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 2016년 <대니쉬 걸> 등 깊이 있는 스토리와 시대의 초상을 섬세하게 그려내 관객들의 신뢰를 받았다. 2020년에는 야심찬 신작 <마리 퀴리>로 다시 한번 그 명성을 재현했다.
워킹타이틀은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로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제7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비롯한 유수 영화제를 휩쓸었다. 웅장한 뮤지컬과 시대극의 결합으로 워킹타이틀의 흥행 불패 신화를 확인시킨 것이다. 이어 천재 물리학자`스티븐 호킹`과 기적 같은 사랑을 펼친`제인 와일드`의 이야기를 담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실화 소재에 강한 제작사의 진가를 발휘한 대표작이다. 배우 에디 레드메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겼고, 관객들에게 짙은 감동과 여운을 전했다. 세계 최초 성전환 수술을 받은`릴리 엘베`의 일대기를 다룬 동명 소설 원작의 <대니쉬 걸>은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진중한 시선과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지닌 수작이다. 1920년대 덴마크에서 격정적인 삶을 산 인물의 내면을 조명해 실화 소재와 시대극에 강한 워킹타이틀의 독보적 입지를 다시금 공고히 했다.
그리고 마침내 믿고 보는 최고의 제작사 워킹타이틀이 다시 한번 실존 인물의 삶을 재조명하는 실화 영화로 돌아온다. <마리 퀴리>는 1900년대 파리, 과학계에서 눈부신 업적을 남긴 천재 과학자`마리 퀴리`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간을 폭넓게 담아냈다. 세상을 변화시킨 새로운 원소의 발견, 사랑과 이별,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았던 도전 등 굵직한 사건을 통해 과학자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여성인`마리 퀴리`의 인생과 인간적인 내면까지 섬세하게 담아냈다. 2020년 스크린을 통해 다시 만나는`마리 퀴리`는 기존에 익히 알았던 과학자로서의 카리스마 외에도 소명과도 같은 연구를 향한 진심과 집념은 물론 열정과 사랑이 넘쳤던 면모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여기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대적 배경도 완벽하게 재현하며 워킹타이틀의 진가를 발휘해 관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 PRODUCTION NOTE
– `마리 퀴리`에 대한 아름답고, 진지하며, 대담한 접근! 그래픽 노블에서 영화로 탄생하기까지!
<마리 퀴리>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이기에, 인물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물론 현대의 관객들이 다각도로 재해석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선이 필요했다. 프로듀서 폴 웹스터는 로렌 레드니스의 그래픽 노블 ‘방사성’에서 영감을 받아 <마리 퀴리>의 제작에 돌입했다. 그는 그래픽 노블 원작에 대해 “과학을 아름답고 시적이며 진지하게 다루고 있고,`마리 퀴리`에 대해 대담하고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책이다. 이 책이 영화의 씨앗이 되었다”며 이번 작품을 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어 “누구나`마리 퀴리`의 이름은 잘 알지만, 그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과 과학의 결합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해 이번 작품에서 그려질`마리 퀴리`의 누구도 알지 못했던 모습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은 세계의 역사를 바꿨다. 천재 과학자의 연구 과정과 이를 통해 발견된 강력한 두 물질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영화의 핵심 중 하나다. 각본 작업을 통해 20세기의 역사 속을 누빌 수 있었다”며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회자되는 인물과 매력적인 스토리를 전한다.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 역시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꼭 연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과학과 러브 스토리의 결합이 인상 깊었다. 퀴리 부부의 과학적 발견과 사랑, 죽음이 한 번에 담겨 있는 유일한 영화이며, 엄청난 드라마를 가진 러브 스토리를 반드시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영화에 참여한 확신을 드러냈다. 감독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면서 캐릭터 구축에도 공을 들였다. “`마리`가 항상 착하지만은 않다는 점이 좋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사회적 규범에 관계없이 직설적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또 “세상에서 그리는 여성 대부분은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딸, 자매다. 항상 누군가의 무엇으로 표현된다. 이번에`마리`가`피에르`의 뮤즈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두 사람은 각각 빛나는 영혼이었다”며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온`마리 퀴리`에 집중했음을 밝혔다. 감독의 확신과 열정은 현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내러티브를 설명하기 위해 미리 애니메틱스(animatics_스토리보드를 실제 시간에 맞게 편집하여 영상화한 것)를 제작해 자신이 의도한 메시지를 전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밑거름이 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더욱 신중하게 접근한 감독과 제작진의 부단한 노력은 <마리 퀴리>를 관객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각인시킨다.
– 캐스팅을 위해 마음을 움직인 선물을 준비한 감독, 물리학 · 화학 기초 공부까지 불사한 배우들! <마리 퀴리>를 향한 진심과 노력이 빛을 발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든 천재 과학자`마리 퀴리`의 스물넷부터 예순일곱의 연령대를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던 제작진은 일찍이 영화 <나를 찾아줘>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로자먼드 파이크를 선택했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어떠한 캐릭터도 소화해내는 그녀만이 천재 과학자의 이야기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배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캐스팅을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었던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은 시나리오, 원작과 함께 진심이 담긴 편지를 선물하며 적극적으로 의지를 표현했다. 이에 로자먼드 파이크는 “원작을 열자마자 기발하고 과학적이면서 아름다운 삽화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각본 역시 감동적이면서 강렬하고 천재적인 이야기였다. 감독이 직접 쓴 편지 또한 유쾌했고, 단번에 마음이 통했다”며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의 진심에 화답했다. 뿐만 아니라 “타협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대범한`마리 퀴리`라는 인물의 매력에 빠져 출연을 결심했다. 인물의 단호한 결의와 힘, 위대한 발견의 과정을 통해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며 캐릭터에 완벽히 동화된 연기를 했다.
완벽한 캐스팅이 완성된 후, 영화에 대한 애정과 인물을 향한 진지한 접근은 제작진에서 배우들에게 이어졌다. 무엇보다 캐릭터 파악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로자먼드 파이크는 직접 과학 수업에 참여해`마리 퀴리`가 어떤 생각으로 관찰하고 실험에 임했는지 이해하려 노력했고, 수 권의 책을 통해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인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하려 애썼다. 촬영 현장에 도착한 그녀는 150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마리 퀴리` 그 자체였고, 이에 프로듀서는 “분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녀는 그냥`마리 퀴리`였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고 밝히며 대체불가한 캐스팅임을 드러냈다.`마리`의 영원한 동료이자 남편`피에르 퀴리`를 연기한 샘 라일리도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화학과 물리학 기초를 공부하며 과학에 대한 지식을 쌓고, 파리 소재의 마리 퀴리 박물관에서 열리는 강연에 참석하는 등 맡은 인물에 오롯이 녹아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배우들의 이러한 끊임없는 캐릭터 연구와 영화에 대한 남다른 노력으로 탄생한 깊이 있는 연기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 최적의 로케이션, 시간과 장소를 넘나드는 48개의 세트 제작 : 시대의 낭만과 인물의 열정까지 담아낸 프로덕션! 1900년대 아름다운 파리의 감성과 과학자들의 삶 완벽 재현!
최고의 작품을 향한 제작진의 노력은 프로덕션 디자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작진은 1900년대 파리의 감성과 당시 과학자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구현하기 위해 부다페스트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19세기 파리의 건축물을 제작한 건축가들의 작품이 남아있는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 파리를 재현하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당시의 분위기와 공기까지 담아낼 수 있었던 최적의 로케이션과 더불어 다양한 시대와 장소를 구현하기 위해 제작된 48개의 세트 또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미술감독 마이클 칼린의 진두지휘 아래 설계된 세트는 각기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내러티브가 진행되는 영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여기에 폴란드, 미국, 체르노빌을 연결하는 120m 규모의 특별한 복도는 기존의 어떤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연출과 더해져 잊지 못할 시퀀스를 탄생시켰다.
인물들의 의상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의상을 담당한 콘솔래터 보일은 먼저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모두 지우고`마리 퀴리`가 살았던 시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조사했다. 덕분에`마리 퀴리`가 실생활뿐만 아니라 연구실에서도 웨딩드레스를 입을 정도의 확고한 패션 철학을 지녔음을 알게 된 그는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유행을 따르지 않는 개성 넘치는 의상을 완성했다. 또한 과학에 대한`마리 퀴리`의 도전과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연구실 특유의 흑연, 금속의 느낌을 전하는 차가운 색들을 사용해 디테일을 더했다. 뿐만 아니라 연구실 장면에서는 실제 과학자들의 의상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의 흔적들을 옷에 묻히고, 물건을 끓이고 들어올리기 편한 활동성 있는 옷을 사용하는 등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노력을 선보였다. 이처럼 과감한 로케이션과 섬세한 세트 제작, 디테일한 의상까지, 완성도 높은 프로덕션은 1900년대 파리의 천재 과학자`마리 퀴리`의 삶 속으로 관객들을 온전히 초대한다.
폴란드 출신 프랑스의 과학자, 마리 퀴리 (Marie Curie, 1867 ~ 1934) 피에르 퀴리의 아내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 (폴: Maria Skłodowska-Curie, 1867년 11월 7일 ~ 1934년 7월 4일)는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과학자이다. 본명은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 (폴: Maria Salomea Skłodowska)이고, 프랑스식 이름은 마리 퀴리 (프: Marie Curie)이다.
– 마리 퀴리 (Marie Curie)
.출생: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당시 러시아령)
.사망: 1934년 7월 4일 (66세)
프랑스 파리
.국적: 폴란드, 프랑스 (결혼 후)
.분야: 물리학, 화학
.소속: 파리 대학교
.출신 대학: 파리 대학교
.지도 교수: 앙리 베크렐
.주요 업적: 방사능
.수상: 노벨 물리학상 (1903), 노벨 화학상 (1911)
.종교: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나 모친의 사망 후 불가지론자로 전향
.배우자: 피에르 퀴리
.자녀: 이렌 졸리오퀴리, 이브 퀴리
방사능 분야의 선구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이다.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로,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라이너스 폴링과 더불어 노벨상 2관왕에 등극한 인물로 유명하다.
○ 생애 및 활동
– 어린 시절
뫄리 퀴리는 1867년 바르샤바에서 가난한 교육자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브로니스와바는 중학교 교사, 아버지 브와디스와프 스크워프도프스키 (Władysław Skłodowski)는 바르샤바 교육청 장학사였다. 형제로는 오빠 유제프 (Józef, 1863년생)와 조피아 (Zofia, 1862년생), 브로니스와바 (Bronisława, 1865년생), 헬레나 (Helena, 1866년생) 언니 셋이 있었다. 10세 때 폐결핵을 앓던 어머니와 사별하였고, 장학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실직하기도 했으며, 큰 언니 조피아가 요절하기도 하여 혼란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힘들었던 청소년시절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폴란드의 전통인 폴란드어, 역사를 공부하는 것조차 억압받았다. 둘째 딸인 이브 퀴리가 쓴 전기가 1990년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서 인용되었는데, 전기에 따르면 마리퀴리는 여학교에서 폴란드어와 역사를 공부하다가 장학사가 오면 실과수업을 받는 것처럼 숨겨야 했다. 러시아 장학사들은 폴란드 학생들이 러시아어 주기도문을 외우도록 함으로써 많은 폴란드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을 민족말살에 악용했다. 심지어는 “너희를 다스리는 분은 누구냐?”라고 물어서 식민지배에 순응하도록 했으니 마리퀴리의 청소년 시절은 억압이었다.
– 유학 생활
여학교를 졸업한 마리는 남학생만 뽑는 바르샤바 대학교와는 달리, 성 차별이 없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어했으나 학비가 없었기 때문에, 3년간 시골의 부유한 농가의 가정교사로 직접고용되어 사용자의 딸과 아들을 가르쳤으며, 나중에는 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받는 폴란드 민족문제를 고민하던 사용자의 허락을 받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했다. 17세 무렵부터 가정교사 등을 할 때, 폴란드와 독일에서는 여자가 대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갈 결심을 하였다.
다행히 아버지가 소년감화원 사감으로 취직하여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마리는 둘째 언니 브로니스와바와 형부 카지미에시 드우스키 (Kazimierz Dłuski) 부부가 의사로 일하고 있던 프랑스 파리에서 언니 부부의 돌봄을 받으며 유학하였다.
브로니스와바와 마리가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폴란드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려는 계몽주의자였다면, 형부 카지미에시는 자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없이는 민중 해방이 없다는 냉철한 현실 이해를 주장한 사회주의자였다.
1891년 파리의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여 J. H. 푸앵카레, G. 리프만 등의 강의를 들었다.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며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 라듐의 발견
소르본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 학위를 취득한 후 1895년 과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였고 피에르 퀴리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피에르 퀴리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도왔던 마리가 뛰어난 과학자의 자질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마리의 학업을 적극 지원해온 지지자였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는 1898년 우라늄 광석인 피치블렌드 (pitchblende, 역청우라늄석) 에서 염화바륨에 소량 섞여있는 형태로 염화라듐을 처음 분리∙발견하였고 1902년 8톤의 폐우라늄 광석을 처리하여 0.1g의 순수한 염화라듐을 얻었다. 1910년에는 마리 퀴리가 염화라듐을 전기분해시켜 금속 라듐을 얻었다.
마리 퀴리가 살던 시대에는 방사능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방사능 물질 라듐은 미용은 물론 정신장애 치료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위험한 선전이 아무런 근거없이 주장되어서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이 죽어갔다. 어느 화장품에 라듐이 들어간다고 쓰여져 있기만 했다면 모두 팔리고 있던 제품이었다.
– 교수 생활
1906년 남편 피에르 퀴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마리 퀴리는 피에르 퀴리가 근무하던 소르본 대학교에서 1906년 11월 5일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마리 퀴리는 미리 강의 내용을 확인하는 준비를 하여 남편이 가르친 내용을 이어서 강의하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 이 일로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에서는 연금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거부했다.
– 핵물질(방사능) 피폭에 따른 사망
라듐의 위험성이 제기된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작 포스터에 페인트칠 (페인트 안에 라듐 성분이 들어가 있음)을 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죽어가면서 였다. 마리 퀴리도 1934년에 스위스에 있는 요양소에 입원하여 그 해 7월 4일 과도한 방사선 노출로 인한 골수암,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이 겹쳐 67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파리 외곽에 있는 남편 묘 옆에 나란히 묻혔다. 라듐을 발견했던 순간의 감동을 기록한 마리 퀴리의 논문을 기록한 연구노트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중이며,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방사선을 방출하고 있어서 함부로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상태다.
– 향후
1903년 남편 피에르 퀴리하고 함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등극한 데 이어 8년 후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등극하여 최초로 노벨상 2관왕에 등극한 그녀는 사후 61년 만인 1995년 4월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 최초로 팡테옹에 안장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팡테옹은 그동안 프랑스 정부가 인정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국가적 위인들만 안장되는 곳이다.
그 해 마리하고 남편 피에르의 유해를 파리의 팡테옹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그녀의 유해에서 상당량의 방사선이 방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발견한 프랑스 당국은 퀴리 부인의 유해를 납으로 만든 방사선 차단 관으로 옮기고 나서 매장하기로 하였다.
또한 그녀가 생전에 사용했던 모든 물품 역시 방사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라듐의 반감기인 1600년 동안 납으로 만든 차폐용기에 넣어서 보관하기로 결정한다.
○ 업적
여성으로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며,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노벨상을 2회 수상한 기록은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인물로서는 최다 기록이다.
결혼 직후 1896년 마리는 박사학위 논문주제를 찾고 있었는데, 당시 베크렐이 발견한 우라늄염에서 일어나는 베크렐선 현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계에 베크렐선 현상을 보이는 물질이 우라늄 외에도 더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그 물질들을 찾아 연구하기로 한다. 마리는 ‘피치블렌드 (역청우라늄광)’라는 광물이 순수한 우라늄보다 강한 방사능을 배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러한 광물을 효과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에 관해 피치블렌드의 성분을 분리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이후 퀴리 부부는 아예 공동으로 연구하기로 하고, 지루하고 긴 실험을 반복하며 피치블렌드의 성분을 분리하여 1898년 마침내 베크렐이 연구했던 우라늄보다 감광작용이 4배나 강한 새로운 물질을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 이 미지의 물질이 두 가지 원소의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그중 하나를 분리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새로운 원소는 우라늄염보다 400배나 감광작용이 강했다.
퀴리 부부는 새로운 원소의 이름을 마리의 조국 폴란드를 기리는 의미에서 ‘폴로늄’이라고 명명했다. 마리는 우라늄이나 폴로늄처럼 자연계에서 감광작용과 전리작용 및 형광작용을 나타내는 물질들에 대해 처음으로 방사능 (또는 방사성물질) 이라고 불렀고, 이들 물질에서 나오는 빛을 방사선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원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감광작용 능력이 우라늄보다 무려 250만 배나 강한 원소를 발견하고, 강력한 빛을 ‘방사’한다는 뜻으로 원소의 이름을 ‘라듐’이라고 지었다.
퀴리 부부가 라듐의 성질을 자세히 조사한 결과, 그 방사능은 어떤 화학작용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라듐의 양에 비례해 방출되는 방사선이 강해지고, 감광작용과 전리작용도 강해진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방사선 방출과정에서 상당한 열이 나온다는 점도 알아냈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계가 그때까지 알고 있던 화학반응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마리는 이러한 현상이 물질의 기본적인 구성단위인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그보다 더 작은 단위인 원자 수준에서 연구해야 하는 현상임을 밝혀냄으로써 과학 연구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제시하였다.
1903년 라듐 연구로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1907년에는 라듐 원자량의 정밀한 측정에 성공하였다. 1910년에는 금속 라듐을 분리하여, 1911년에는 라듐 및 폴로늄의 발견과 라듐의 성질 및 그 화합물 연구로 마리 퀴리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공적을 기려 방사능 단위에 퀴리라는 이름이, 화학 원소 퀴륨에 이름이 사용되었다. 마리 퀴리의 딸 부부인 이렌 졸리오퀴리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이다.
프랑스의 보수성, 가십을 좋아하는 언론의 공세, 폴란드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여성이라는 성차별적 문제로 결국 화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지 못했다.
○ 수상
노벨 물리학상 (1903)
데이비 메달 (1903)
마테우치 메달 (1904)
노벨 화학상 (1911)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