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356년 7월 20일, 아르테미스신전이 헤로스트라투스의 방화 (放火)로 소실
터키 남서부 셀축 (Selçuk)에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는 아르테미스 신전 (Temple of Artemis, 또는 Artemision)이 있다. 당대 최대였다는 신전은 무너지고, 127개였던 기둥들 중 하나만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세 번째 지어진 신전이며, BC 356년 7월 20일, 헤로스트라투스 (Herostratus)라는 미치광이의 방화 (放火)에 의해 무너진 아르테미스 신전은 두 번째 지어진 신전이다.
방화범 헤로스트라투스의 신분에 관해 알려진 게 없다. 방화범은 에페수스인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며, 노예였다는 설이 있다. 그는 다만 자신의 이름이 길이 남을 방법을 찾다가 아르테미스 신전을 불태우기로 했다. 신전의 지붕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그는 불을 질러 신전을 태우고 붕괴시켰다. 즉시 에페소스 당국에 체포되어 형틀에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재판관들은 허명심에 불탄 그를 저주하기 위해 아무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라고 명했다.
하지만 테오폼푸스 (Theopompus)라는 역사가가 자신의 역사서에 그의 이름을 기록했고, 그후에도 사가들이 그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페로스트라투스는 자신의 뜻대로 이름을 길이 역사에 남기게 되었다. 이로부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현상을 일컬어 헤로스트라투스 명성 (herostratic fame)이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두 번째 신전에 관해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스 시인 안티파트로스 (Antipatros)는 7대 불가사의를 서술하면서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전차 (戰車)를 위한 길이 있는 바빌론의 높이 치솟은 성벽을 보았고, 알페우스가 세운 제우스 신상 (神像), 공중정원, 태양의 거상과 수많은 노동력으로 지은 높은 피라미드와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봤었다. 그러나 내가 구름 위에 치솟은 아르테미스의 집을 보았을 때, 그들 다른 불가사의들은 그 빛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보라, 올림푸스를 빼면, 어떤 장대한 것에도 태양이 비추지 아니하였구나.’ ”
두 번째 신전이 방화로 붕괴된 날은 BC 356년 7월 21일이었고, 그날은 우연하게도 마케도니아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탄생한 날이었다고 한다.

○ 아르테미스 신전
고대 에페소스에 있었던 아르테미스 신을 모시던 고대 그리스의 거대한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그: Ἀρτεμίσιον, 아르테미시온)은 드물게는 디아나의 신전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소아시아의 에페소스 (오늘날의 터키 셀추크 부근)에 있었다.
이 신전은 2번이나 완전히 새로 세워졌는데, 첫 번째로는 거대한 홍수로, 두 번째로는 방화로 인한 재건이었고, 3번째로 지어진 아르테미스 신전이 바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손꼽혔으나 268년 로마 제국을 침공한 고트족이 파괴하여 사라졌다.
고대 7대 불가사의를 현전하는 문헌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기원전 2세기 사람 시돈의 안티파트로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자신이 본 건축물 중 최고로 꼽았다.
기원후 401년에 최종적으로 파괴되었고, 현재는 신전의 토대와 조각 파편만이 남아있다.

– 역사
.첫 번째 신전
첫 번째 신전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칼리마코스는 그의 아르테미스 찬가 중에서, 그 신전을 오래전에 존재했다가 사멸한 아마존족이 지었다고 믿고 있다. 건립 시기는 언제인 지는 알 수 없고 정황상 히타이트의 구성 국가 중에서 누군가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나, 기원전 7세기에 옛 신전은 홍수에 의해 조각 파편 한점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파괴된다. 이 때문에 이 신전의 생김새는 영원히 알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 신전
그 재건은 1세기가 흐른 기원전 550년에 시작되는데, 리디아 출신의 크로이소스가 자금을 대었고 크레타 출신의 케르시프론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가 건축하였다. 그 계획에 10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후 헤로스트라투스의 방화 (放火)로 파괴되었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목록을 작성한 시돈의 안티파트로스는 당대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전차 (戰車)를 위한 길이 있는 바빌론의 높이 치솟은 성벽을 보았고, 알페우스가 세운 제우스 신상 (神像), 공중정원, 태양의 거상과 수많은 노동력으로 지은 높은 피라미드와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봤었다. 그러나 내가 구름 위에 치솟은 아르테미스의 집을 보았을 때, 그들 다른 불가사의들은 그 빛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보라, 올림푸스를 빼면, 어떤 장대한 것에도 태양이 비추지 아니하였구나.’ “
.세 번째 신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번째로 다시 세워지기로 하였으나, 착공은 알렉산드로스 사후 (死後)인 기원전 323년에 시작되었다. 세 번째 신전은 규모가 더 커졌다. 길이 137m, 너비 69m, 높이 18m에 127개의 기둥을 가지고 있었다.
세 번째 신전은 600여 년을 살아남아, 에페소스의 초기 기독교 시대의 기록에 몇 번이나 등장한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19장 21절에서 41절에는 아르테미스 신전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에페소스에서 사도 바울이 우상숭배를 금하는 설교를 하자, 아르테미스 신상모형장사로 부를 쌓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바울이라는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사람이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설교를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위대한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라고 직공들과 시민들을 선동했다. 덕분에 바울과 같이 선교활동을 하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아리스다고가 연극장에 잡혀갔고 2시간이나 아르테미스를 찬양하며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배척하는 집회가 벌어졌는데, 시의 지도자인 서기장이 시민들에게 “항의할 것이 있으면, 총독들과 민회에 고소하여 시비를 가리십시오. 불법집회를 일으키는 것은 책망받을 것이니 신중하지 못합니다.” 라면서 이성을 되찾아서 진정하도록 설득했다.
또한 2세기 작품인 위경 (僞經) 요한행전 (Acts of John)은 아르테미스 신전의 파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도 요한이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공개적으로 기도하매, 그 악령을 몰아내고 “갑자기 신전의 제단이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고 … 신전의 반이 무너졌다.” 그리하여 비탄에 잠겨 있던 에페소스 사람들이 즉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한다.

– 방화
BC 356년 7월 20일 (알렉산더 대왕의 탄생한 날) 헤로스트라토스(Herostratos)의 방화로 두 번째 재건된 아르테미스 신전은 타버렸다. 그 뒤에 신전이 재건되었는지 수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후의 기록이 불확실하다.
서기 268년, 신전은 고트족의 약탈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고트족의 이러한 행위는 신전에 최후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하기아 소피아의 기둥 몇 주(柱)는 원래 아르테미스 신전의 것이었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서 ‘Parastaseis syntomoi chronikai’는 신전의 몇몇 석상과 재료들이 콘스탄티노플의 여러 건물들에 재활용되었다고 기록한다.
– 재발견
아르테미스 신전은 파괴된 뒤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대영박물관이 후원하고 존 터틀 우드가 이끄는 탐사대가 6년의 탐색 끝에 1869년 재발견하였다.
아르테미스 (Artemis) 개관
아르테미스(고그: Ἄρτεμις)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과 사냥· 야생동물· 처녀성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디아나(라: Diana)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아폴론과는 남매지간이다. 올림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곰과 사슴, 활과 화살, 초승달, 토끼가 대표적 상징물이다.

– 아르테미스 (Artemis)
.영역: 사냥 · 동물 · 숲 · 처녀성 · 달 · 풍요의 여신
.소속 그룹: 여신 올림포스 12신(도데카테온)
.상징: 활 · 화살 · 수사슴 · 사냥개 ·달
.부모: 제우스와 레토
.형제자매: 아폴론
.로마 동등신: 디아나
몸종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사냥을 하며 돌아다니는 야생적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달이 비칠 때 그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때는 산짐승과 초목이 춤을 춘다고 한다.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활을 무기로 들고다니며 그의 화살은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므로 희생물에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성격이 거칠고 복수심이 강해서 그의 진노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허다하다.
– 생애 신화
.탄생
헤라는 레토가 임신한 쌍둥이들이 아버지인 제우스다음가는 권력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큰 뱀 피톤에게 레토를 끊임없이 쫓아다니면서 햇빛이 닿는 곳 어디에서도 그의 해산을 어떻게든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출산이 임박하자 레토는 곤경에 처했다. 헤라의 저주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어느 곳도 레토를 받아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토는 해산할 장소를 찾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오르티기아 섬에 당도하였다. 레토가 발을 디디자마자 포세이돈이 섬 위로 파도를 솟구치게 하여 햇빛을 막아주었다. 헤라의 출산 금지령에 어긋나지 않자 레토는 아르테미스를 낳을 수 있었다.
남매 중 먼저 태어난 아르테미스는 생후 9일째 되던 날 레토가 남동생 아폴론을 낳는 것을 곁에서 도왔다.
.유년기
아르테미스는 3살이 되자 아버지 제우스에게 선물을 달라고 졸랐는데, 그 선물은 다름아닌 영원한 처녀성이었다. 그녀는 제우스에게 평생 자신이 처녀로 남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밖에도 아르테미스는 크레타 섬에서 9살 된 시녀들을 골랐으며, 또 퀴를롭스를 찾아가 활과 화살을 받았다. 아르테미스는 성능을 시험해보고자 화살을 쏘아보았는데,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은 나무에 맞았고, 세 번째 화살은 짐승에 맞았으며, 네 번째 화살은 부정한 자들의 도시에 떨어졌다고 한다.

.니오베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겸손함이 없었던 테베의 왕비 니오베는 레토는 훌륭한 자식을 2명밖에 낳지 못했지만 자신은 훌륭한 자식을 14명이나 낳았다고 뽐내고 다녔다. 이에 진노한 레토는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에게 니오베에게 벌을 내리라고 말했다.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은 각각 그녀의 딸 7명과 아들 7명을 모두 활로 쏘아 죽였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남편 암피온은 자살하였고, 니오베는 계속 한 곳에서 흐느끼다 바위로 변해버렸다.
.칼리스토
그리스 신화에서 칼리스토(그: Καλλιστώ, ‘가장 아름다운’이란 뜻의 καλλιστη에서 왔음)는 아르카디아의 왕 뤼카온의 딸이며, 신화에 따라 요정으로 나오기도 한다.
칼리스토는 아르테미스를 섬겨 처녀로 남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칼리스토는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모든 남신들은 칼리스토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 중 칼리스토에게 눈독을 들인 제우스가 그녀에게 반하여, 아르테미스의 모습으로 변해 접근한 후 사랑을 나누었고, 9달이 지난 후 목욕을 하던 도중 아르테미스에게 아이를 가진 것이 탄로난 칼리스토는, 맹세를 어겼기 때문에 아르테미스의 무리로부터 멀리 쫓겨나, 동굴 안에서 아들 아르카스를 낳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카스가 걸음마를 할 줄 알게 되자, 아르카스가 동굴 밖으로 나간다. 칼리스토는 아르카스를 동굴 안으로 데려오려고 동굴 밖으로 나가다가, 제우스의 부인 헤라를 만난다. 이 사실을 안 헤라는 칼리스토의 변명을 듣지도 않고, 칼리스토를 곰으로 만들었고, 남겨진 아르카스는 어느 농부에게 발견되어 키워졌다.
곰이 된 칼리스토는 숲에서 홀로 지냈는데, 수년 후 훌륭한 사냥꾼이 된 아르카스가, 어느 날 곰이 된 칼리스토와 마주치게 되었다. 한눈에 아들을 알아본 그녀가 아들한테 다가갔지만, 어머니를 몰라본 아들은 겁에 잔뜩 질려 화살을 쏘아 죽이려고 하였다.
곰이 된 어머니를 숲에서 만나 아르카스가 죽이려 하자, 제우스가 둘을 하늘에 올려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로 만들었다. 별자리가 된 후에도 헤라는 이들이 바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없도록, 포세이돈 혹은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와 짜고 계속해서 북극의 하늘만을 맴돌도록 하였다. 그 뒤로 오랜 세월이 흘러 헤라의 질투가 누그러들자, 칼리스토의 꼬리가 바다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아르테미스와 칼리스토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칼리스토에게 눈독을 들인 제우스는 그를 유혹하기 위해 아르테미스로 변신하여 그와 동침하였다. 얼마 후 칼리스토는 임신하여 배가 볼록해졌고, 이를 눈치챈 아르테미스는 처녀성을 지키겠다는 자신과의 서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곰으로 모습을 바꾸는 벌을 내렸다. 곰이 된 칼리스토는 아르카스라는 아들을 낳은 후 숲에서 홀로 지냈는데, 어느 날 장성한 아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한눈에 아들을 알아본 그가 아들한테 다가갔지만, 어머니를 몰라본 아들은 겁에 잔뜩 질려 화살을 쏘아 죽이려고 하였다. 이를 본 제우스는 동정심을 느껴 아들을 곰으로 변하게 한 다음 어머니와 아들을 함께 우주로 올려보내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로 만들어주었다.

.악타이온
악타이온이라는 이름의 사냥꾼이 숲 속에서 한창 사냥을 하고 있다가 우연히 근처의 개울가에서 아르테미스가 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알몸을 본 악타이온에게 물을 뿌려 사슴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자 악타이온이 데리고 온 사냥개들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냥감인 줄 착각하고 달려들었다. 계속 사냥개들을 피해 달아나다 지친 악타이온은 결국 사냥개들에게 붙잡혀 갈기갈기 찢어졌다.
.오리온
아르테미스는 자기 못지않은 뛰어난 사냥꾼인 포세이돈의 아들 오리온과 함께 사냥하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이를 보던 아폴론은 아르테미스가 오리온에게 반하여 처녀로 살겠다는 맹세를 저버릴지 모른다고 우려하였다. 그러던 중 멀리서 오리온이 머리만 내민 채 수영하는 것을 보고, 아르테미스에게 저 멀리 파도에 떠다니는 저것을 한번 쏘아 맞추어 보라고 말했다. 그것이 오리온인지 몰랐던 아르테미스는 활을 겨누어 오리온을 쏘아 죽여버렸다. 뒤늦게 사실을 깨달은 아르테미스는 아폴론의 아들이자 후에 의학의 신으로 숭배받게 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오리온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제우스가 이를 가로막았다. 그래서 아르테미스는 오리온의 시신을 우주로 올려보내 오리온자리로 만들어주었다.
–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르테미스 이야기
고대 에베소 주민들은 아르테미스를 유방이 가득한 여신으로 묘사할 정도로 풍요의 신으로 숭배했다.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가 아르테미스 신앙을 이용하여 아르테미스 신전모형을 만들어 팔았는데, “사람이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라는 성 바울의 설교를 들은 주민들은 더이상 신전모형을 사지 않았다. 데메드리오는 직공들과 은장이들을 선동하여 바울의 제자들을 끌고 극장안에 들어갔으며, 격분하여 이성을 잃은 이들은 모임을 2시간이나 계속하였다. 성 바울은 이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제자들과 소아시아의 고관들이 말려서 극장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시청 서기관은 은장이들에게 “여러분의 모임이 소요죄로 처벌될 수 있으므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법원과 로마제국의 총독들에게 고소하십시오.아데미 여신을 모독한 것도 아니고, 신전 물건을 절도한 것도 아닌데 이 사람들을 끌고온 것은 경솔한 행동입니다.”라고 설득해서 해산시켰다.(사도행전 19장 23절에서 41절, 새번역을 인용함) 한글성서의 새번역성서와 개역개정판 성서에서는 아데미라고 음역했다.
아르테미스 신전터를 발굴한 영국 건축가·엔지니어이자 고고학자, 존 터틀 우드 (John Turtle Wood, 1821 ~ 1890)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유명하지만 이름만 존재하던 아르테미스 신전(에페소스 신전)은 유럽인들에게 관심은 컸지만 발굴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 신전의 발굴에 착수한 사람은 영국의 건축가이자 엔지니어로 이후 고고학자로 명성을 얻게된 존 터틀 우드 (John Turtle Wood, 1821년 2월 13일 ~ 1890년 3월 25일)였다.

– 생애
우드는 런던의 존 우드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태어나 로살 스쿨과 프리트우드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후 캠브리지와 베니스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853년부터 1858년까지 런던에서 건축을 공부했는데 1853년에는 그의 사촌인 헨리에타 엘리자베스 우스 (Henrietta Elizabeth Wood)와 결혼했다.
1858년 우드는 터키의 Smyrna 및 Aidin 철도역을 설계하는 의뢰를 받았다. 이곳에서 그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아르테미스 신전 유물에 관심이 생겼다. 에베소 신전과 관련해 신약성경 에베소서 19:34에 “위대한 에베소의 다이애나”란 기록에 기인했고 그는 신전발굴에 대한 사명감 마져 들었다.
1863년에 그는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영국 박물관으로부터 에베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물에 대한 재산권을 댓가로 발굴에 필요한 허가와 비용을 지급받았다.
1866년 2월 에베소 극장을 발굴하던 중 우드는 정기적으로 사원에서 마그네시아 문을 통해 극장으로 운반되는 다양한 금과 은 조각상을 언급하는 그리스 비문을 발견했다. 그는 마그네시아 문에서 성전으로 이어지는 포장 도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867년에 그는 길을 발견했고 그 길을 따라 성전 벽을 발견했다.
그는 계속해 파나가다 1869년 12월 31일에 20 피트의 모래 아래에 묻힌 신전을 발견했다. 그가 발굴한 지역은 엄청났다. 안타깝게도 신전은 잔해만 남았지만 발굴지 면적은 거의 200미터 각으로 거의 12,000평이나 되며 길이도 6미터에서 9미터나 되었다. 신전의 돌들로 석회를 만들었던 용광로의 자리도 발견되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건축물 조각품들, 조각상들과 동전들은 모두 영국으로 보내졌다.
당시 에베소 신전 발굴지는 세계 각지에서 유명인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문지가 되었다. 우드는 귀빈들의 안내로 발굴을 중단해야 할 정도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1871년 겨울에는 슐리만이 그를 찾았다. 슐리만은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고 있었는데 터키 정부에서 발굴중단 명령을 내리자 철수해야할지, 아니면 터키 정부의 허가장을 청원해야 할지 여부를 우드에게 묻기 위해 찾은 것이다. 이때 우드는 트로이 유적 발굴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고 결국 슐리만은 우드의 조언에 의해 터키 정부로부터 발굴 허가장을 받고 2년 후 1873년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기에 이른다.

슐리만의 방문이 있은지 20일 후 세계7대 불가사의인 마우솔레움을 발굴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영박물관의 뉴턴 경이 방문했다. 뉴턴 경은 우드를 격려하면서 대양박물관 측에서 발굴에 필요한 보조금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고고학계가 우드의 발굴을 인정한 것이다. 대영박물관의 지원은 아르테미스 신전의 발굴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새로운 발굴지를 구입하여 대대적인 불굴에 착수했다. 이때 스코파스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조각이 있는 36개의 기둥 중에 하나가 발견되었다. 이 기둥은 현재 대양박물관의 특별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는데 대양박물관 소장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중 하나다.
우드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질 때인 1874년 공교롭게도 뉴턴 경이 대영박물관의 감독관이 된다. 뉴턴 경은 이때 에베소 발굴작업 지원을 전액 삭감하고 대신에 아이아솔뤼크에 있는 이사베이 모스크를 발굴한다면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통보한다. 우드는 이사베이 모그크의 발굴에 착수하지만 회교도인 촌장이 밝굴 허가를 주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뉴턴경의 시기심에서 비롯된 것을 알아차린 우드는 아르테미스 신전 발굴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생각한다.
우드는 에베소 신전의 발굴자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나 발굴 지역은 방대하고 자금은 부족했다. 이 즈음에 우드의 건강은 신전 부지의 잔해만큼이나 황폐해졌다. 그는 발굴하는 동안 고열, 산적, 지진, 부상을 견디고 여름 더위와 추운 겨울을 견뎌냈다. 그는 런던으로 돌아와 남은 몇 년 동안 왕립 연구소에 강연과 출판활동 등을 하면서 발굴 자금을 모금했다.
그는 1884년 까지 20여년 동안 아르케미스 신전 발굴에 헌신했으며 자신의 발굴을 토대로 아르테미스 신전의 복원도를 작성하고 그림을 그려 때때로 왕립 아카데미에 전시했다.
1874년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의 연구원으로 선출되었고, 1875년에는 고고학 협회의 연구원으로 선출되었다. 영국 정부는 그의 발견을 인정하여 그에게 연간 200파운드의 연금을 지급했다. 1877년에는 ‘대신전의 장소와 유물을 포함한 에페소스의 발견’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우드는 1890년 3월 25일 69세에 심장발작으로 자택 (66 Marine Parade)에서 사망했다.

– 아르테미스 신전과 디디마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의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는 거의 없지만 로마시대의 동전에 신전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단편을 알 수 있다. 또한 지금의 터키 밀레토스 남쪽에 위치한 디디마의 고대 성소이자 아폴론 신전의 유적으로도 아르테미스 신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디디마 신전은 아르테미스 신전과 길이에서 2미터가 작을 정도로 규모가 거의 같은데다 현재도 비교적 온전한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디마 신전은 터키 아나톨리아 이즈미르 (Izmir)에서 에게해 해안을 따라 약 160㎞ 남쪽에 있다. 중요한 점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건설한 많은 건축가들이 디디마 신전의 건설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평면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있지만 두 신전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특히 디디마 신전의 정교하고 세심한 조각은 놀라울 정도로 인간적이다.
디디마 신전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오빠인 아폴론에 봉헌되었으므로 아폴론의 신전이 동생인 아르테미스 신전의 혈통을 이어 받은 셈이 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