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뒤마 (Alexandre Dumas, 1802 ~ 1870)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Le Comte de Monte-Cristo)
‘몽테크리스토 백작’ (프: Le Comte de Monte-Cristo) 또는 ‘암굴왕’은 알렉상드르 뒤마 (프: Alexandre Dumas, 1802년 7월 24일 ~ 1870년 12월 5일)가 1844 ~ 1846년에 집필한 대하 소설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최고작이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전 소설 중 하나다.

몬테크리스토란 실제로 이탈리아 근처에 있는 티레니아해의 토스카나 제도 섬의 이름이다. 1842년 초에 뒤마는 나폴레옹 황제의 막내동생의 아들인 나폴레옹 왕자와 동행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두 사람은 엘바 섬 근처의 피아노사 섬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안내인이 몬테크리스토 섬에는 야생 산양이 떼를 지어 다닐 정도로 많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다음날 나폴레옹 왕자와 뒤마는 몬테크리스토 섬으로 갔지만, 섬은 접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바퀴 돌고 그냥 돌아왔다. 그래서 뒤마는 나폴레옹 왕자에게 “제가 전하를 모시고 다닌 이 여행을 기념하여, 제가 언젠가 쓸 소설에 몬테크리스토라는 이름을 붙이겠습니다” 라고 약속하였다.
프랑스어 발음에 가장 가깝게 표현한다면 ‘몽뜨 크히스또,’ 영어식은 ‘몬티 크리스토’가 된다.
– 몽테크리스토 백작 (Le Comte de Monte-Cristo)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Alexandre Dumas, 1802 ~ 1870)
.국가: 프랑스
.형식: 대하소설
.언어: 프랑스어
.장르: 모험, 역사
.연재처: Journal des débats
.연재년도: 1844년 8월 ~ 1846년 1월
.쪽 수: 1,889쪽 (원서 기준)
.권 수: 전 6권(원서 기준)
– 스토리의 모티브
스토리의 모티브는 피에르 피코라는 청년이 친구들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가 나중에 석방되어 복수를 하다가 살해당했다는 실화에서 따왔다. 한 친구와 연적이었기 때문에 누명을 썼고 감옥에서 알게 되어 따르게 된 사람 덕에 보물을 얻었다는 이야기, 그 연적에게 자기 약혼녀를 빼앗긴 이야기, 다이아몬드를 주고 정보를 얻는 이야기는 그대로 따왔지만 나머지는 뒤마의 창작이다.
실제 사건에서 석방된 남자는 에드몽의 절반인 7년형을 살다가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풀려나 신발 장사를 했고, 마지막 복수는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 모티브가 된 피에르 피코를 살해한 사람은 피코의 복수를 도와준 알뤼라는 이름의 조력자로, 다이아몬드를 받고 피코의 복수를 도와주다가, 불화가 생겨서 피코를 살해했다고 한다. 알뤼는 1818년 죽기 전에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사망했다.
에드몽 당테스의 모델이 된 또 한 사람은 뒤마의 아버지인 토마알렉상드르 뒤마이다.
– 줄거리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의 젊은 선원 에드몽 당테스. 이제 겨우 열아홉살이지만, 선주 모렐 씨에게 인정받아 모렐 상회의 주력선 파라옹 호의 선장으로 취임하게 되고, 아름다운 약혼녀 메르세데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약혼식장에서 “역적” 나폴레옹에게 협력한 혐의로 체포돼 14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파라옹 호에서 1등 항해사로 일하던 당시, 나폴레옹과 친분이 있었던 모렐 선주의 부탁으로 엘바 섬에 들른 일을, 당테스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반역죄로 밀고 한 것.
분노와 울화로 점철된 11년 간의 샤토 디프 감옥 수감생활을 마친 당테스는 이송된 이프 성 (城)의 차가운 돌바닥에서 운명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이자 르네상스 시대의 거물 스파다 백작의 상속인인 파리아를 만나게 된 것. 당테스는 파리아 신부를 만난 이후 3년 동안 철학, 정치, 역사, 화학, 외국어 등 다양한 학문을 배우며 지식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던 중 스파다 백작이 음모로 유명한 체자레 보르지아에게 암살되기 전 숨겨놓은 재산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고, 병으로 죽은 파리아 신부의 시신과 자신을 바꿔치기하여 탈옥하는데 성공한다.
수 차례의 시도끝에 보물을 온전히 손에 넣는데 성공한 당테스, 막대한 재화로 몽테크리스토 섬의 소유권을 차지한 후 전부터 구상 (상상)해온 밀무역 기지를 조성해 수수께끼의 인물 “선원 신드밧드 (암굴왕, 暗窟王)”로 명성을 쌓게 되고, 이탈리아에서 백작 작위까지 얻게 된다.
은인에게는 보답을, 원수에게는 파멸을! 당테스의 새로운 행보가 시작된다.

○ 저자소개 :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Alexandre Dumas, 1802 ~ 1870)
알렉상드르 뒤마 (프: Alexandre Dumas, 1802년 7월 24일 ~ 1870년 12월 5일)는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와 구분하기 위해 ‘아버지’라는 뜻을 붙여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 (프: Alexandre Dumas père)라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대중 소설가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작품들의 대부분이 프랑스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교묘한 줄거리와 풍부한 공상으로 엮어져 있다. 대표 작품으로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이 있다.
– 알렉상드르 뒤마 (Alexandre Dumas)
.출생: 1802년 7월 24일, 프랑스 엔주
.사망: 1870년 12월 5일 (68세), 프랑스 센마리팀주 디에프
.직업: 작가, 극작가
.활동기간: 1829 ~ 1870
.장르: 소설, 희곡, 수필
.부모: 부) 토마 알렉상드르 뒤마 (Thomas-Alexandre Dumas), 모) Marie-Louise Labouret
자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앙리 보어, 미카엘라 클레리 조셉 엘리자베스 코디어 등
.연극: Henri III et sa cour, Anthony: A Play in Five Acts, La Tour de Nesle, Romulus 등
.영화: 몬테 크리스토, 아이언 마스크, 삼총사, 사총사, D’Artagnan and Three Musketeers 등
○ 생애 및 활동
알렉상드르 뒤마는 프랑스 엔주 빌레르 코트레에서 태어났다. 뒤마의 할아버지는 포병으로 아이티에서 근무하였다. 그곳에서 아프리카계 케러비언 혼혈인이었던 마리 케세테 뒤마와 결혼하였고 빌레르 코트레로 돌아와 뒤마의 아버지인 도마 알렉상드르 뒤마를 낳았다. 도마 알렉상드르 뒤마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휘하의 장군으로 활약하였다. 그가 이끌던 부대는 “아메리카 연대”라 불렸다. 뒤마가 태어난 1802년 무렵 도마는 퇴역하여 고향인 빌레르 코트레로 돌아온 상태였고 가세가 점점 기울자 집과 재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뒤마가 4세이던 1806년 사망하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뒤마는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하자 뒤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는 유명해졌다. 그의 집안은 여전히 가난했지만 아버지의 명망으로 인해 귀족들과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1822년 부르봉 왕정복고가 일어난 후 뒤마는 파리로 가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루이 필리프의 루아얄 궁전 사무실에 취직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된 뒤마는 잡지에 극본을 기고하기 시작하였다. 1829년 그의 첫 번째 단행본으로 출간된 희곡 《앙리 3세와 그의 궁정》의 성공으로 뒤마는 대중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같은 해 발표한 《크리스틴》 역시 호평을 받았으며 이듬해인 1830년 그의 고용주였던 루이 필리프가 시민왕으로 즉위한 후 뒤마는 《찰스 10세》를 출간하였다.
1830년대 중반 프랑스는 산업화를 겪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었다. 이에 따라 작가들의 경향 역시 공화주의를 지지하는 부류와 왕정 복고를 지지하는 부류가 폭 넓게 분포하고 있었다. 출판에 대한 검열이 사라진 것도 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뒤마는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뒤마는 시대 변화에 민감한 작가였다. 극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자 뒤마는 당시 빠르게 성장하던 언론 매체인 신문에 연재 소설을 기고하기 시작하였다. 1838년 발표된 그의 첫 소설 《자본가 폴》은 기존에 발표하였던 동명의 희곡을 각색한 것이었다. 뒤마는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수많은 자신의 희곡을 소설로 각색하여 발표하였다.
1839년에서부터 1841년까지 뒤마는 유럽 역사에서 유명한 범죄 사건을 뽑아 8권짜리 《유명한 범죄자들》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는 베아트리체 첸치, 마르탱 게르, 체사레 보르자, 루크레치아 보르자 같은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카를 루드비그 상트, 앙투아네 프랑수아 데스루 등의 당대 인물들이 수록되었다. 한편 1840년 뒤마는 펜싱 마스터 아우구스틴 그리시에르와 함께 《펜싱마스터》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그리시에르가 러시아에서 겪은 12월 반란의 경험담을 담고 있다. 뒤마는 그의 자서전에서 그리시에르로부터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뒤마는 많은 작품을 출판하였고 그로 인한 수입도 컸다. 그러나, 그는 호화스런 생활과 여성 편력에 들인 비용때문에 종종 빚더미에 몰려 파산을 하곤 하였다. 시민왕 루이 필리프가 반란에 의해 폐위되고 루이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뒤마는 함께 몰락하였다. 1851년 벨기에 브뤼셀로 추방당한 뒤마는 러시아로 탈출하였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프랑스어가 널리 통용되었기 때문에 뒤마는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1861년 3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 왕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뒤마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신문 《인디펜덴테》의 발간을 주도하며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에 앞장섰다. 3년을 이탈리아에서 보낸 뒤마는 1864년 파리로 돌아왔다.

혼혈인이라는 정체성은 뒤마의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뒤마는 1843년 발표한 그의 소설 《조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아버지는 물라토였고 내 조부는 깜둥이였소. 내 증조부는 원숭이였지. 알겠소, 선생? 우리 가족은 당신네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였소.” — 뒤마
○ 저서
가신의 집에 들어선 샤를 7세 (Charles VII chez ses grands vassaux, 1831)
펜싱 마스터 (Le maître d’armes, 1840)
호두까기 인형 (1844)
다르타냥 로망 : 삼총사 (Les Trois Mousquetaires, 1844), 20년 후 (Vingt Ans Après, 1845), 철가면 (Le Vicomte de Bragelonne, ou Dix ans plus tard, 1847)
몬테크리스토 백작 (Le Comte de Monte-Cristo, 1845–1846)
섭정의 딸 (Une Fille du régent, 1845)
두 명의 다이아나 (Les Deux Diane, 1846)
발루아 로망 : 여왕 마고 (1845), 몽소로 부인 (La Dame de Monsoreau, 1846)
마리 앙투와네트 로망 : 붉은 집의 기사 (Le Chevalier de Maison-Rouge, 1845), 죠세프 발사모 (Joseph Balsamo, 1846 ~ 1848), 왕비의 목걸이 (1849 ~ 1850), 앙그 피투 (Ange Pitou, 1853), 샤르니 백작 (La Comtesse de Charny, 1853 ~ 1855)
검은 튤립 (La Tulipe noire, 1850)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