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122)
생각하게 해 주는 인도체험 이야기들 (2)
* 제가 읽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열림원, 2015)은 시인 류시화씨의 인도 여행기입니다. 그이는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 2015년 까지 해마다 한번씩 25년 동안 25번 이상 인도 여행을 하고 이 흥미로우면서도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게하는 책을 냈습니다. 물론 이 책은 객관적 여행정보를 담은 글이 아니라 주관적 경험담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도 처럼 정말 다양한 모습을 지닌 나라를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가 쓴 시집으로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 처럼” “지금 알고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같은 것들이 있고 그외 수필이나 강연집으로는 “나의 모국어는 침묵”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등이 있습니다. 이 잡기장의 처음 글 ‘인도’는 류시인의 글에다 제가 검색해 본 몇가지를 보탠 것이고, 그 외의 글들은 그 분의 글들을 약간 다듬은 것들 입니다.

* 인도의 식당에서는 흔히 바닥을 닦던 걸레로 식탁이나 그릇도 닦곤 합니다. 인도에 와서 불교철학을 연구하던 어떤 한국인 교수 집에 있던 가정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어느날 그 교수는 가정부에게 행주와 걸레는 구분해서 각각 다른 것으로 쓰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가정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선생님은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차별하면서 그것이 그것이고 세상 모든 게 다 똑같다는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불교를 전공하려고 하십니까? 불교는 제가 가르켜드릴께요. 세상만사 모두 모두 다 그게 그것이고 똑같은 것이라는 게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 인도인들은 대부분 손으로 밥을 먹습니다. ‘왜 당신들은 스푼을 사용하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밥을 먹습니까?’ 어느날 나는 그에게 그렇게 물었다가 된통 설교를 들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누구의 입에 들어갔다 나온 지도 모르는 것, 그것도 수천 수만 번도 더 많은 사람들의 입속을 들락날락했던 그 스푼이 더 깨끗하고 위생적일까요, 아님 내 손으로, 내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정결하고 위생적일까요? 한번 솔직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들은 스푼 사업가들의 꼬임에 속는 줄도 모르고 속고 있는 겁니다.’
* 산스크리트어로 만트라는 영어로는 Mantra 라고 표기합니다. 그 뜻은 본래 ‘진언’ ‘진리의 말씀’ 이라는 의미입니다만 ‘주문’ 혹은 ‘주문을 왼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이나 천주교의 성모송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의’관세움보살 나무아비타불’도 일종의 만트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만트라 수행 중 세상을 바꾸고 인간을 살리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만트라의 주송은 이렇다고 합니다.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훔리 사파하’ 요가에서는 만트라의 진언, 주문을 ‘옴 마니 밧메 홈’이라 하면서 이를 반복하여 외우면 신비한 능력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와같은 ‘만트라’는 세 가지 기본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첫째는 ‘너 자신에게 정직해라. 너 자신을 속이거나 자신과 적당히 타협하지 말아라’
둘째는 ‘어떤 것도 결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라. 슬픔도 기쁨도 다 지나가는 것이다’
셋째는 ‘누가 너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하느님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마라. 네가 도와 주어라. 하늘이 너에게 맡긴 것을 다시 또 하늘에다 돌리지 말아라’
* 10살 쯤 되는 소년 비시누는 어린 소매치기 소년입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고 출신성분이 낮아도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뭐 좀 건진 게 있니?’ ‘아니요 오늘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도 내일은 뭘 좀 훔칠 수 있을 거예요’ 비시누는 언제나 희망적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요? 우린 모두들 크고 작은 소매치기들이 아닌가요? 그리고 오늘은 허탕을 쳐도 내일은 뭘 좀 건질 것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요?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가운데 수피즘이라는 학파가 있습니다. 그 학파의 스승 중 주나이드가 오래 전에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주나이드가 늙었을 때, 제자들이 자주 물어 온 질문입니다. ‘선생님의 선생님은 누구였습니까?’ 그 때 주나이드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여행 중에 길을 잃고 사막에서 어떤 도둑을 만나 그와 몇일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매일 밤 그 도둑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보시오. 난 지금 물건을 훔치러 갑니다. 그러니 당신은 날 위해서 기도해 주시오.”
도둑이 돌아오면 나는 그에게 물었다.
“뭐 좀 훔친 게 있소?”
그럼 도둑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은 실패했소. 그러나 당신이 날 위해 계속 기도하고 신의 축복이 있으면 내일은 성공할지도 모르지요!”
그 도둑은 늘 실망하지 않고 희망 속에서 일을 계속했다. 어떤 때는 성공하고 또 어떤 때는 실패하면서도 말이다. 이게 바로 인생 사는 모습이다. 그 때 그 도둑이 내 눈을 떠서 인생을 보게 해 준 나의 스승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다 도둑이 아닐까요? 오늘도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계속해서 도둑질을 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인생살이에서 성공하게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는 도둑질에서 성공하게 해 달라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요?
* 어느 날 여행 중, 나는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반가워서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전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출구가 어디인가요?’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아까 조금 전에 길을 잃고 헤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날 때 부터, 태어난 후 부터 쭉, 계속해서 길을 잃고 헤매고 다닌 겁니다. 그러니 그냥 가십시오. 당신은 길을 가르쳐 주어도 반드시 또 길을 잃을 것입니다.’
* 당신을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얽어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을 자유케 할 사람도 오직 당신일 뿐입니다.
* 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화를 내지 마십시오. 감정에 휘말리는 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 내가 있으니 당신이 있고, 당신이 있어서 내가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산이 있어서 골짜기가 있고, 빛이 있으니 어둠 또한 있듯이, 모든 존재는 하나요, 한 몸 입니다. 내가 오늘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다 당신이 있어서입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