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수용소군도
원제 : Arkhipelag Gulag
알렉산드르 이자에비치 솔제니친 / 열린책들 / 2009.11.10
이 소설은 1926년부터 1946년까지의 거대한 숙청의 흐름을 오비 강, 볼가 강, 예니세이 강, 세 대하에 비유한 고백적 다큐멘터리이며, 기아와 고문과 폭력에 시달리며 사막이나 극지방에서 중노동을 해야 했던 수백만 사람들이 겪은 혹독한 탄압에 대한 연대기이다.

이 작품에서 솔제니찐은 신랄한 풍자와 기지 넘치는 문체로 스탈린 시대와 이후 뻬레스뜨로이까로 자유화의 바람이 불기까지 러시아 안에서 자행되었던 대량 처형, 왜곡된 재판, 정의의 부재 등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마야꼬프스키, 숄로호프, 고리끼 등을 비판함으로써 소비에트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 목차
제1부 감옥기업
제1장 체포
제2장 숙청의 흐름
제3장 신문
제4장 푸른 제모
제5장 첫 감방, 첫사랑
제6장 그해 봄
제7장 기관실에서
휴먼 다큐멘트리의 최고봉 『수용소 군도』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찐 연보

○ 저자소개 : 알렉산드르 이자에비치 솔제니친 (Aleksandr Isaevich Solzhenitsyn, 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
‘러시아의 양심’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저항작가. 카프카스 산맥의 작은 휴양지 키스로보츠크에서 태어난 솔제니친은 홀어머니와 궁핍한 생활을 했다.
로스로프대학교에서 물리와 수학을 공부하고 모스크바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했다. 1940년 결혼하고 이듬해 대학을 졸업한 그는 나치 독일의 러시아 침공으로 군에 입대해 포병장교가 되었다.
그러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재자 스탈린을 ‘콧수염 남자’로 빗대 말한 것이 탄로나 1945년에 체포되기도 했다. 그가 ‘반혁명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것은 27세 때였다.
1956년부터는 러시아 랴잔시 중학교 수학교사로 일했으며,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데뷔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구상하였다. 이후 1962년에 이 단편소설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1970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병 대위로 근무하던 중 투옥돼 10년간 수용소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그린 『수용소의 군도』로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소련의 정치제제와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과 몇몇 동료 반체제작가들에 대한 소련 당국의 냉대를 끊임없이 비판하였다.
1974년에는 반역죄로 소련에서 추방 당했으며, 이후 미국 버몬트 지역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소련연방 붕괴 후인 1994년, 20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러시아 시민권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서방 물질주의를 비판하면서 조국 러시아의 부활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2007년 6월 러시아는 그에게 예술가들의 최고 명예상인 국가공로상을 수여하였다.
2008년 8월 3일 향년 89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 역자 : 김학수
자유롭고 호기심 많은 낙천주의자이며 조용한 듯 직설적인 사수자리이다. 출판사 디자이너 시절, 디자인해야 할 책을 돋보이게 해줄 매개체인 일러스트를 자급자족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숨은 재능과 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 시절에도 일러스트에 큰 뜻을 두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노력한 결과,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자 했던 막연한 꿈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 현재는 출판 디자이너에서 그림 작가로 완전히 업종 전환한 상태이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친근함’과 ‘코믹함’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이 즐거워진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도 출판계과 광고계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으며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소담출판사 디자인실 디자이너로 근무(1999~2002)했고, 디자인정글 이달의 디자이너에 선정(2005.01)된 바 있다. 그린 책으로 《 3030 English 듣기》 시리즈,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 《시나공》 시리즈, 《바빠》 시리즈, 《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 등 다수가 있고, 지은 책으로 《일러스트 쉽게 배우기》 《오 마이 갓!》 《하루가 미안해서》가 있다.

○ 책 속으로
언제나 그렇듯이 무슨 자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만 하면 곧 <과거의 족속들>—무정부주의자, 사회 혁명당, 멘셰비키 그리고 애매한 지식 계급에 대한 검거 선풍이 일어나곤 했다. … 자기 편리에 따른 세계관은 역시 <사회적 예방 조치>라는 편리한 법적 술어를 만들어낸다. p.61
산업당 재판에 뒤이어 1931년에는 근로 농민당 사건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판이 준비되고 있었다. (…) 그리하여 이미 <수천 명>에 달하는 피고인이 근로 농민당에 소속된 사실과 자기들의 흉악한 목적을 <자백>했다. pp.69-70
1920년대에 톨스토이주의자의 커다란 집단이 알타이 산맥 기슭으로 추방되었다. 그들은 거기서 침례교도들과 함께 공산 자치제 마을을 건설했다. (…) 그러나 곧 검거 선풍이 휘몰아쳤다. 맨 처음에 교사들이 체포되었다(국정 교과서에 따라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71
테러 행위란 말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뜻으로 인식되었다. (…) 가령 맥줏집 근처에서 열성 당원에게 <너 이놈 두고 보자!>라는 식의 위협 문구뿐만 아니라, 시장 바닥의 아낙네가 <너 같은 건 뒈져버려!>라고 한 말까지도 TN, 즉 <테러 기도>로 판단되어 엄한 형벌을 적용하는 근거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p.87
한 수도국 직원은 자기 방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스탈린에게 드리는 장황한 편지가 낭독되기 시작하면 번번이 스위치를 끄곤 했다. 이웃 사람이 그것을 밀고했다(아, 그 이웃 사람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그는 <사회적 위험 분자>로 몰려 8년 형을 선고받았다. p.98
스탈린은 이제 시대적 요구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10년이란 형량은 치열한 전쟁기엔 그 정도로 족했겠지만, 세계사적인 승리를 거두고 난 지금으로서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금 형법 자체를 무시하고, 아니 그 속에 포함된 수많은 법조항과 이미 공포 시행 중인 절도 및 횡령에 관한 단속법이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1947년 6월 4일에 종전의 모든 법령을 포괄하고도 남을 새 법령을 공포했다. 이 법령을 수용소 죄수들은 곧 <6•4법>이라 명명했다. p.113
우리가 악인들을 징벌하지 않고 또 그들을 비난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그 비겁한 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또 이것은 새로운 세대들로부터 정의의 온갖 원칙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무관심>한 세대로 성장하겠지만, 결코 <교육의 부족>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비겁한 행동이 한 번도 이 땅에서 처벌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동이 언제나 행복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자기들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pp.214-215

○ 출판사 서평
– 1970년 노벨 문학상, 『타임』지가 뽑은 〈20세기 100선〉
솔제니찐이 <문학적 탐구의 한 실험>이라 부른 2천여 페이지의 『수용소군도』는 러시아에서 비밀리에 쓰이기 시작해 외국에서 완성되었다. 이 소설은 1926년부터 1946년가지의 거대한 숙천의 흐름을 오비 강, 볼가 강, 예니세이 강, 세 대하(大河)에 비유한 고백적 다큐멘터리이며, 기아와 고문과 폭력에 시달리며 사막이나 극지방에서 중노동을 해야 했던 수백만 사람들이 겪은 혹독한 탄압에 대한 연대기이다.
이 작품에서 솔제니찐은 신랄한 풍자와 기지 넘치는 문체로 스딸린 시대와 이후 뻬레스뜨로이까로 자유화의 바람이 불기까지 러시아 안에서 자행되었던 대량 처형, 왜곡된 재판, 정의의 부재 등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마야꼬프스끼, 숄로호프, 고리끼 등을 비판함으로써 소비에뜨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독자의 평 1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 당시의 적나라한 사회상을 그린 책 ‘수용소군도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글, 김학수 옮김, 열린책들 펴냄)’를 읽다보니 30년 전 그 때가 떠오른다. 1989년 12월 냉전 종식을 선언하고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술렁술렁했던 분위기가 생각난다. 1917년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일어난 나라가 74년 만에 붕괴됐다는 것은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개혁과 개방의 파고는 북한만은 넘어가지 못 했다. 소련이 붕괴된 후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웠고, 요즘도 종종 동해로 미사일을 발사한다.
각설하고, 소비에트는 노동자와 농민의 정부를 표방하며 차르를 몰아내고 사회주의 국가를 세웠으나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그 결과 러시아 각지에서 내전이 발발했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반혁명 세력을 몰아내고 숙청한다. ‘수용소군도’는 공포의 독재 정치 시기에 작가 역시도 적법한 절차 없이 8년형을 언도 받고 만 11년 만에 석방되어 집필하기 시작한 다큐멘터리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 본인은 물론 227명의 정치범들의 이야기와 편지에는 허구가 없다. 그래서 원고를 완성해 놓고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증인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출판을 미루다 1973년에 간신히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그 당시 투옥의 참다운 법칙은 <인원수의 할당>, 기준량(노르마)에 따른 계획 배분이었다. 도시마다, 지구마다, 군관구마다 체포 인원수를 할당받았고, 그 수를 기일 내에 확보해야 했다. 나머지 문제들은 순전히 일선 기관원들의 재량에 달려 있었다. (본문 p.119)
신문관의 일은 물론 그다지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낮에도 출근해야 하고 밤에도 출근해야 하며, 또 어떤 때는 몇 시간씩 계속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증거>를 얻어 내려고 골머리를 앓을 필요는 없다(그것은 신문을 받는 죄수들이 할 일이니까). 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굳이 가려낼 필요도 없다. 단지 <기관>이 요구하는 대로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되어 나가게 마련이다. (본문 p.234~235)
옛날부터 인간의 눈에 비친 정의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왔다-즉, 선은 승리하고 악은 망한다고.
그러나 우리는 선이 승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비겁한 자들에 의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그런 시대에까지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은, 지칠 대로 지친 선이 누더기를 걸치고 감방 한구석에 말 한마디 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시대이다. (본문 p.272~273)
만약 진리의 이 조그만 첫 물방울 하나가 마치 심리적인 폭탄처럼 이토록 폭발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다면, <진리>가 폭포처럼 무너져 내릴 때 과연 우리 나라에는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젠 두 번 다시 그것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 (본문 p.453)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옛날 옛적 러시아에서…’로 시작하는 구연동화가 아니라 유감이다. 게다가 결국 사람은 어디에서 살고 있어도 똑같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졌던 일들이라 소름 끼친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죽이고, 그 추악한 진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더 큰 폭력으로 억압하지만 결국 진실의 씨앗은 열매를 맺어 세상에 널리 퍼진다는 것. 사실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는 수십년 후라야 말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 몰라 모골이 송연하다. 이러한 끔찍한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기에 우리는 결코 무심할 수 없는 것이다.

○ 독자의 평 2
솔제니찐 (열린책들 번역에 근거하여 솔제니찐으로 표기한다)은 우리가 다 아는바와 같이 러시아 수용소문학의 대가이다. <이반데니비소치의 수용소 하루>를 통해 1900년대 당시 러시아 수용소의 실상을 밝힌바 있듯이 그는 <수용소군도>에서는 특별하게 기록을 남긴다. 이 작품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다른 책과 다르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솔제니찐 본인의 체험담을 기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 다음엔 극동 지방의 한국인들(까자흐스탄으로 추방). 이것은 <민족적인 혈통에 따른> 체포의 첫 케이스였다.”(121)
솔제니찐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던 한국인들이 왜 러시아 횡단 화물열차를 타고 이유 없이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는지에 대해 위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민족적 혈통에 따른’ 첫 체포였다고.
이것은 간접 망상증(솔제니찐의 표현)에 걸린 스딸린의 광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스딸린의 눈에는 자기 나라가 온통 간첩으로 들끓고 있는 것같이 보였기 때문에 아무런 근거 없이 극동에 있는 한국인들을 간첩으로 몰아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여 죽음을 당하게 했다. 러시아는 이후 스딸린의 이같은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시인하였지만 이미 시간이 흐른 뒤여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고스란히 피해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한국인만 당했던 것이다.
“수십만 명의 한국인들 역시 같은 혐의로 까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378)
솔제니찐은 우리를 대신하여 위와 같이 증언해 주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간첩 협의를 받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자국민에 대한 대우도 다를바가 없었다.
“스딸린식 논법에 의하면 외국에 체류한 일이 있는 소련 사람은 예외 없이 감옥에 들어가야만 한다”(402)
심지어 전쟁에서 패한 러시아 군인들도 간첩 혐의로 몰아 최저 10년형, 20년형, 총살형으로 몰렸다. 솔제니찐 본인이 그런 피해자였다. 한때 러시아 포병중대 장교로 근무했던 그가 친구와 스딸린을 비방하는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방첩대원들에게 불려가 계급장을 떼이고 죽음의 수용소인 감옥에 갇혀 8년 동안 수형 생활을 했던 것이 증거인셈이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발견한 한 가지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러시아인인라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는 사실이었다.”(390)
스딸린이 지배하던 러시아 당시에는 징벌 불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법이 있는 곳에는 범죄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투옥의 참다운 법칙은 할당된 인원수를 채우는 것이었다. 무더기로 감옥에 잡혀 들어가 <군도>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심지어 스딸린은 대대적인 유태인 학살도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솔제니찐은 증언하고 있다. 다행히 이 계획은 스딸린의 죽음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수용소군도>는 광기에 빠진 사형집행인들의 모습이 어떤지 과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소련 비밀경찰들이 왜 이 작품이 서방 세계에 알려지지 않기 위해 집요하게 수색했는지 알 수 있다. 소련의 비참한 광경을 솔제니찐에 의해 공개되었고 그는 한 동안 살인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인간의 권력욕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인간의 양면을 보여주는 문학이다. 배고픈 이들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감옥 안에서 목숨을 지탱하기 위해 어떻게 몸부림치는지 솔제니찐을 통해 볼 수 있다. 차마 몽롱한 정신 상태로 이 책을 읽을 수 없을게다.
현재 내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내 입 속으로 들어가는 밥 한 톨이 얼마나 소중한 지 새삼 깨닫게 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