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8월 5일, 고려의 장수 이성계 (李成桂, 1335 ~ 1408)가 새 왕으로 등극하며 조선 건국
조선은 1392년 8월 5일에 고려의 무관이었던 태조 이성계 (太祖 李成桂 , 1335년 10월 27일 ~ 1408년 6월 18일)가 건국하였다.
태조 초대 국왕 (재위: 1392년 8월 5일 / 음력 7월 17일 ~ 1398년 10월 14일 / 음력 9월 5일)에 등극하며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
성 (姓)은 이(李), 본관은 전주 (全州), 휘는 단 (旦), 초명은 성계 (成桂), 초자는 중결 (仲潔), 자는 군진 (君晉), 호는 송헌 (松軒), 송헌거사 (松軒居士)이다.

– 태조 (太祖) 이성계 (李成桂)
.휘: 이성계 (李成桂) → 이단 (李旦)
.별호: 자 – 중결 (仲潔) 또는 군진 (君晋), 호 – 송헌 (松軒) · 송헌거사 (松軒居士)
.묘호: 태조 (太祖)
.존호: 지인계운응천조통광훈영명 (康獻至仁啓運應天肇統光勳永命)
.시호: 강헌성문신무정의광덕태상왕 (康獻聖文神武正義光德太上王)
.능호: 건원릉 (健元陵)
.출생: 1335년 10월 27일, 고려 동북면 화령군 영흥 흑석리
.사망: 1408년 5월 24일 (72세), 조선 한성부 창덕궁 광연루 별전
.왕조: 조선가문전주 이씨
.부모: 부) 환조, 모) 의혜왕후 최씨
.배우자: 신의왕후 한씨, 신덕왕후 강씨
.자녀: 8남 5녀 (적자녀 8남 3녀)
.종교: 불교
* 조선의 제1대 국왕대한제국의 추존황제
.재위: 1392년 8월 5일 ~ 1398년 10월 14일
.전임: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 / 후임: 정종
* 고려 국왕
.재위: 1392년 7월 17일 ~ 1393년 3월 9일
.즉위식: 1392년 7월 28일
.전임: 공양왕 / 후임: 고려 왕정 폐지
* 권지고려국사
.재위: 1392년 ~ 1398년
.전임: 공양왕 / 후임: 정종
*군사 경력
.복무: 고려 군사복무기간 1356년 ~ 1392년
.최종계급: 삼군도총제사 (三軍都摠制使)
.지휘: 고려 삼군도총제부
.근무: 고려 도평의사사참전
.참전: 쌍성부 (영흥) 탈환 (1356년), 개경의 홍건적격퇴 (1361년), 나하추 (몽고족) 격퇴 (1362년), 기황후 (몽고족) 격퇴(1364년), 김삼선 · 김삼개 (여진족) 격퇴 (1364년), 동녕부 (평양) 탈환 (1370년), 개경의 왜구토벌 (1377년), 지리산의 왜구토벌 (1377년), 황산대첩 왜구토벌 (1380년), 호바투 (여진족) 격퇴 (1383년), 길주의 왜구토벌 (1384년), 제1차 요동 정벌 (1388년), 제2차 요동 정벌 (1392년)

○ 생애 및 활동
이성계 (李成桂, 1335년 10월 27일 ~ 1408년 6월 18일)는 1335년 (충숙왕 후4년) 고려 동북면도 화령에서 출생하였다.
고려의 장수이며 공민왕과 우왕 시대에 홍건적과 왜구토벌에서 영웅적 공로를 쌓아 입지를 다졌다.
1388년 (우왕 14년) 철령 이북의 영토문제를 두고 명나라와 갈등이 빚어지자,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명나라의 요동을 정벌할 것을 우왕으로부터 명을 받았다.
우군도통사 (右軍都統使)로서 요동 정벌을 위하여 북진을 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장악하였고, 공양왕으로부터 선위의 형식으로 개경 수창궁에서 즉위함으로써 조선을 개국하였다.
조선을 개국한 후에 ‘단 (旦)’으로 개명하였다. 정도전과 조준을 비롯한 혁명파 신진사대부들과 전제 개혁을 비롯한 각종 사회 개혁을 단행한 끝에 조선을 개국했고, 한양으로 천도해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묘호는 태조 (太祖)이며, 시호는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 (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다. 이후 존호가 더해져 대한제국 때 명나라에서 내린 시호 강헌 (康獻)을 삭제하고 고황제 (高皇帝)로 추존하여 정식 시호는 태조지인계운응천조통광훈영명성문신무정의광덕고황제 (太祖至仁啓運應天肇統廣勳永命聖文神武正義光德高皇帝)이다.
재위 기간은 6년 2개월이며, 퇴위 후 태상왕이 되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있는 건원릉 (健元陵)에 안장되었다.

○ 조선 건국
조선 (朝鮮, 1392 ~ 1897)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한반도를 518년간 다스렸던 왕조이다.
고려 말 신진 사대부의 지지를 등에 업어 무관 태조 이성계가 1392년 8월 5일 왕위에 오르며 건국하였고, 조선 후기에 조선은 고종이 선포한 대한제국으로 계승되었다.
이자춘의 아들이자 고려의 신흥 무인 세력이었던 이성계는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그는 창왕 · 공양왕을 왕위에 올렸다가 신돈의 사생아라고 사건을 조작하여 폐위하는 등 정권 · 군권 · 경제권을 행사하였고, 전제 개혁을 단행했다.
1392년 음력 7월 17일 (8월 5일)에는 공양왕이 왕대비에게 준 옥새를 이성계가 받아 들어 주변 측근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면서 조선왕조는 막을 올린다.
1393년 음력 2월 15일에는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1394년에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조선을 개국하고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재위 기간은 6년 2개월이며, 퇴위 후 태상왕이 되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있는 건원릉 (健元陵)에 안장되었다.
생전에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곁에 묻히고자 하였으나, 아들 태종에 의해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현재의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 터에 최초로 안장되었다.
능호는 건원릉 (健元陵)이다.
태종은 부왕이 수시로 찾기 위해 마련한 신덕왕후의 능을 바로 도성 밖으로 이장하고, 능의 석물과 문인, 무인석은 청계천 광통교 교량의 난간과 받침돌로 훼철해 버렸으며,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태조는 신덕왕후의 무덤이 태종에 의해 훼철된 뒤, 태종에게 자신을 선산이 있는 함흥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태종은 왕조의 개창자이기도 한 아버지의 무덤을 한양과 멀리 떨어진 함흥에 묻는 대신 한양 근교의 양주에 모시고, 함흥의 흙과 억새풀을 가져다 무덤을 덮었다고 한다.
○ 태조실록 (太祖實錄)
조선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이다.

– 내용
1392년 7월부터 1398년 12월까지 태조의 재위 6년 6개월간의 국정 전반에 대한 역사를 싣고 있다. 15권 3책.
현전의 정족산본 (鼎足山本)은 필사본이고, 태백산본 (太白山本)은 인본 (印本)이다. 정식 이름은 ‘태조강헌대왕실록 (太祖康獻大王實錄)’이다.
태조가 재위 7년만에 정종에게 양위한 뒤 상왕 (上王) · 태상왕 (太上王)의 지위에 있다가 1408년 (태종 8) 5월에 죽자 이듬해 8월에 태종이 영춘추관사 (領春秋館事) 하륜 (河崙), 지춘추관사 (知春秋館事) 유관 (柳觀), 동지춘추관사 (同知春秋館事) 정이오 (鄭以吾) · 변계량 (卞季良) 등에게 명해 『태조실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이에 춘추관기사관 (春秋館記事官) 송포 (宋褒) 등이 조선에 있어서 실록 편찬이 처음일 뿐만 아니라 시대가 멀지 않고, 또 당시에 활동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살아 있으므로 지금 『태조실록』을 찬수 (撰修)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하여 후일을 기다리자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태종은 찬수의 뜻을 굽히지 않고 태조 원년부터 정종 2년까지의 사초 (史草)를 제출하도록 각 사관 (史官)에게 명하였다.
그러나 서울 거주자 10월 15일, 지방 거주자 11월 1일로 정해진 제출기한이 지나도록 사초가 잘 들어오지 않자, 사초를 제출하지 않은 자에 대해 자손을 금고 (禁錮)하고 은 20냥의 벌금을 징수하도록 하는 처벌규정을 만들어 사초 제출을 독려하였다.
그리하여 1410년 정월부터 하륜 · 유관 · 정이오 · 변계량 등이 주축이 되어 춘추관기주관 조말생 (趙末生) · 권훈 (權壎) · 윤회 (尹淮), 기사관 신장 (申檣), 외사관 (外史官) 우승범 (禹承範) · 이심 (李審) 등과 함께 『태조실록』 편찬에 착수해 1413년 3월에 완성하였다.
편찬 완료 직후 출판하려 했으나 정부에서 번란중복 (繁亂重複)된 기사가 많다 하여 개수 (改修)를 주장해 출판하지 않았다.
그 뒤 1438년 (세종 20) 변계량이 지은 헌릉 (獻陵) 비문 (碑文) 가운데 1398년 (태조 7)의 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 (정종 2)의 제2차 왕자의 난에 대해 사실과 어긋나게 기록한 내용이 있다는 논의가 있자 세종은 이를 개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당시 편찬 완료된 『공정왕실록』 (정종실록)과 『태종실록』도 아울러 개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4년 뒤인 1442년 춘추관 감관사 신개(申槩), 지관사 권제 (權踶), 동지관사 안지 (安止) 및 집현전학사 남수문 (南秀文) 등의 주관으로 실록개수가 이루어졌다.
그 뒤 1448년에 지춘추관사 정인지 (鄭麟趾) 등이 다시 증수 (增修)하고, 1451년 (문종 1) 고려의 폐왕 (廢王) 우 (禑)를 신우(辛禑)로 고치는 간단한 개수를 거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태조실록』은 1431년 (세종 13)에 『태종실록』이 완성되자 『공정왕실록』 · 『태종실록』과 함께 고려시대의 실록을 보관해둔 충주사고 (忠州史庫)에 봉안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이것만으로는 영구 보존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자 1445년까지 위의 삼조실록 (三朝實錄) 3부를 더 필사해 춘추관과 충주 및 신설한 전주·성주 사고에 각각 1부씩 봉안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된 정족산본의 태조·정종·태종의 삼조실록은 이 때 필사해 전주사고에 봉안한 것이다.
『태조실록』은 태조가 즉위 이후 1398년 (태조 7) 12월 말일까지 6년 6개월 간에 있었던 정치·외교 · 국방 · 경제 · 사회 · 문화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이 연월일순에 의해 편년체 (編年體)로 서술되어 있다.
태조는 제1차 왕자의 난 직후인 1398년 9월 5일에 세자에게 양위했으므로 재위 기간은 실제로 이때까지지만, 『태조실록』에서는 그 해 말까지 수록범위로 삼았다.
이 시기는 조선 개국 초기로서 신왕조가 사대정책 · 억불숭유정책·농본정책을 기본정책으로 내세우는 한편, 고려 왕족과 신하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한양 (漢陽)으로 도읍을 옮겨 국가의 면모를 새롭게 하고 제도개편을 착수해 기반을 조성해나간 시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왕자 사이에 왕위계승을 둘러싼 혈투가 벌어지는 등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국 초창기의 사실 (史實)은 물론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기본적인 자료가 된다.
1920년대 이후 조선 역대왕 (태조∼철종)의 실록이 여러 차례 영인될 때, 이 실록도 함께 영인, 간행되었다.
1972년에 모두 2권의 번역본 『태조강헌대왕실록』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출간하였고,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번역본과 원문을 공개하고 있다. (http://sillok.history.go.kr/)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