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유전자 가위 CRISPR-Cas9
인류의 평등 일깨워준 디엔에이의 유전 정보
21세기가 열리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mj세대라는 신조어가 있다 대학의 전공분야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분자 (化學分子) 가운데에서 가장 경이로운 분자(分子)를 꼽으라고 하면 디엔에이 (DNA)라고 부르는 디옥시리보 (deoxyribo) 핵산 (核酸)이 틀림없을 것이다. 당의 일종인 디옥시리보오스 (deoxyribose) 와 인산 (H3PO4) 그리고 뉴클레오티드라 (nucleotide)는 유기 (有機) 염기 (鹽基)가 차례로 이어져 만들어지는 두 가닥의 사슬이 정교하게 나선 모양으로 꼬인 디엔에이는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정보 창고의 구실을 한다. 우리 몸의 세포 수는산출방법에 따라 천층만차지만, 일반적으로 60조개라고 발하고 있다. 그런 세포에는 정말 중요한 ‘핵 (核)’이라는 기관과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 (mitocondria)’라는 기관들이 들어 있다. 세포의 핵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 정보를 담은 ‘핵 디엔에이 (DNA)’가 들어 있고, 미토콘드리아에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가 들어 있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세포에는 수천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디엔에이는 1869년 독일에서 일하던 스위스 과학자 요한 미셔가 외과 수술용 붕대에 묻은 고름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 처음 발견했다. 그러나 디엔에이의 화학적 구조가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무려 84년이 1953년 영국의 과학자 왓슨 (James Dewey Watson)과 크릭 (Frances Crick) 덕분이었다.
DNA의 개요 (槪要)
우리의 핵 DNA는 그 길이가 무려 1.8m에 이르고, 23억개에 이르는 유전 암호를 담고 있다. 우리 몸에 들어 있는 모든 핵 디엔에이를 한 줄로 이으면 그 길이가 무려 2천만㎞나 된다. 그런데 디엔에이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디엔에이는 생명의 세계에서 가장 활성이 낮은 분자다. 살인사건 수사에서 말라버린 체액이나 머리카락에서 디엔에이 (DNA)를 채취할 수 있는 것도 그런 특성 때문이다. 그런 DNA가 우리 몸을 살아 움직이게 해주는 수없이 다양한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유전 정보를 후손에게 전해주는 구실도 한다. DNA에 담긴 유전 정보를 읽어내고, 그 작동 원리를 밝혀냄으로써 생명의 신비를 밝히려는 것이 바로 현대 생명과학 (生命科學)의 목표다. 우리는 그런 과학 지식을 통해 히틀러가 주장했던 인종주의 (人種主義)나 우생학 (優生學)이 완전한 허구 (虛構)임을 밝혀냈고, 우리의 DNA가 침팬지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결국 모든 인류는 평등한 존재이고, 우리 Homo sapiens가 구세주 (造物主) 한테 특별히 선택받은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낸 것이 바로 현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우리가 평등 (平等)과 자유 (自由)를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하고,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과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근원적 이유를 이보다 더 확실하고 명쾌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 그에 비하면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동물 복제 (動物 複製)와 유전병 (遺傳病) 치료와 같은 생명공학 (生命工學) 기술은 작은 소득 (所得)에 불과하다.
분자생물학 (分子生物學)
CRISPR-Cas9와 같은 유전자 편집 기술은 DNA는 단순한 생명과학의 극히 부분적인 화학의 용어가 아니라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고 많은 대학에서 분자생물학 (分子生物學)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되었다. 한국에도 “분자생물학과”라는 전공학과가 생긴 것은 오래전 일이다. 분자생물학도 세분 (細分)하면 한이 없을 것이지만 그중에 유전자가위에만 매달려 있는 학자들이 있다. 유전자가위로 옷 재단 (裁斷)하듯 DNA를 가위로 특정 부위를 잘라서 식물·동물의 육체적인 특징을 바꾸고 있다. 기술을 통해 잘린 특정 DNA 부분에 유전정보를 삭제, 추가, 또는 대체 (代替)하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 최근에 노벨상수상자가 나왔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을 투여하거나 외과적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유전자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때 유전자 교정 (gene editing)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인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다양한 유형의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해왔다. 그리고 정점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CRISPR-Cas9)’라 불리는 유전자편집 기술이다. 유전체 내에서 원하는 부위를 정교하게 잘라낼 수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혁명적인 기술”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두 명의 여성 과학자들이다. 2012년 스웨덴 우메오 대학의 에마뉴엘 샤르팡티에 (Emmanuelle Charpentier) 교수, 미국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Jennifer A. Doudna) 교수는 크리스퍼를 이용해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모든 DNA를 정교하게 잘라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지난해 (2020년) 10월 7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을 20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현재 프랑스 태생인 에마뉴엘 샤르팡티 ((Emmanuelle Marie Charpentier)에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로, 제니퍼 다우드나는 UC버클리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벨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두 사람이 개발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이 생명과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암을 비롯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환자 치료에 이 기술을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DNA 교정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이하 크리스퍼)를 2012년 최초로 개발해 ‘노벨상 영순위’로 불리는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감염생물학과 총괄책임교수 (48 · 독일 훔볼트대 명예교수)는 2020년 10월 13일 서울 연세대에서 인터뷰를 하며 이같이 말했었다. 샤르팡티에 교수는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회장 최준호) 정기학술대회에 기조강연 연사로 초청돼 지난해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었다.
크리스퍼는 최근 생명과학계에서 가장 ‘핫 (HOT)’한 기술
크리스퍼는 최근 생명과학계에서 가장 ‘핫 (HOT)’한 기술로 꼽힌다. 질병을 유발하는 비정상적인 유전자를 잘라 없애거나 회복시킬 수 있어 다양한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기존에도 유사한 기술이 있었지만 수백 배 이상 정밀하고 사용도 간편해 유전자 교정치료의 상용화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샤르팡티에 교수는 “누군가 크리스퍼로 유전병을 치료받게 된다면 매우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즈도, 암도 치료 가능
유전자 교정치료 대상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질병 중 하나는 그동안 불치병으로 여겨져 온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 · 에이즈)이다. 미국의 생명공학 기업인 ‘상가모 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1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7회 치료 중 HIV의 내성에 관한 국제워크숍’에서 에이즈 환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교정치료의 2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에이즈는 면역세포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HIV)에 감염돼 발병하는데, 선천적으로 ‘CCR5’라는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다. 상가모 연구진은 에이즈 환자의 면역세포에서 CCR5 유전자를 제거한 뒤 다시 체내에 투여했다. 그 결과 환자의 체내에서 HIV의 번식과 HIV가 잠적해 있는 저장소가 모두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우리 주변 모든 동식물의 유전자 교정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병충해에 강한 가축, 농작물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외 연구진에 의해 건강에 좋은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아진 대두, 독성 성분이 원천 제거된 감자 등이 이미 개발되었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동식물이 GMO (유전자변형생물)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미국·일본·남미 등지에서는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외부 유전자 도입 없이 농작물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경우에는 기존 육종법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품종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GMO 규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EU 법원은 여전히 GMO 규제 대상임을 밝혔다.
유전자가위 논란 (論難)
이제 우리 사회는 합리적 토론과 합의를 거쳐 21세기 들어 가장 혁신적인 생명과학 도구로 평가받는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동참할지, 아니면 잠재적인 위험을 두려워해 각종 법률과 규제로 과도하게 묶어둘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다만 선사시대 (先史時代) 때 철기로 만든 무기와 도구는 위험하고 비윤리적이니 석기와 청동기만 사용하자는 부족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유전자가위는 조불주에게 대들듯이, 인간 진화의 설계자가 될 듯이 내 달리고 있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