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위기(危機)란 한문으로 위험(danger)+기회(opportunity) 합해진 단어이다. 부정과 긍정이 합해진 단어이다. 웹스터 사전에 의하면 “위험한 고비(crucial time)”과 “어떤 일의 전환점(turning point)”라고 정의되어 있다. 위기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위기는 위험이 따르지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인생에는 3종류의 위기가 있다. 1. 발달적 위기, 2. 실존적 위기, 3. 상황적 위기이다.
1. 발달적 위기
발달적 위기는 개인의 발달과정 상의 위기이다. 발달단계에서 개인의 생애 주기에 따른 위기와 가족의 생애 주기에 따른 위기를 포함한다. 즉, 출생, 입학, 청소년기, 직업 선택, 가정을 떠남, 학교 졸업, 결혼, 임신, 중년기의 위기, 부모 상실, 퇴직, 배우자의 사망, 친구의 사망 등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각 발달단계마다 발달과제를 수행해야 하는데, 발달과제를 적절히 수행하지 못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발달적 위기가 발생한다.
지금은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 베이비 붐 시대들이 은퇴를 시작했다. 이제 은퇴 후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은퇴 준비하지 않고 은퇴를 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하다. 은퇴 후의 문제는 경제적 문제, 건강 문제, 외로움 문제이다. 이 세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꾸준하게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 (1955년~1963년 출생) 고령화 사회에서 은퇴는 은퇴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 은퇴하고 최고의 인기 남편은 ‘집에 없는 남편’이라고 한다.
2. 실존적 위기
존재와 실존은 다르다. 존재는 그냥 있는 것이고, 실존은 있음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의미가 부여되지 않을 때 우리는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된다. 실존적 위기는 목적, 책임, 자유, 헌신 등 인간에게 중요한 이슈를 동반하는 내적 갈등이나 불안과 관련된 위기이다. 나는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가?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이가? 등에 대한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 삶의 목적이 없을 때 위기를 겪는 것이다. 실존적 불안은 삶의 궁극적인 경계, 즉 죽음과 기회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유형의 불안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없다면 항해하는 인생이 아니라 표류하는 인생이 될 것이다. 실존에 가장 중요한 단어는 자유와 선택 그리고 책임이다. 실존적 삶의 의미는 누가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아야 한다. 하나님을 통해서 의미를 찾는 사람을 유신론적 실존주의라고 하고, 하나님 없이 의미를 찾는 사람을 무신론적 실존주의라고 한다.
3. 상황적 위기
상황적 위기는 심각한 질병, 외상,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자연재해와 인재, 폭력범죄 등과 같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외부사건에 의한 위기이다. 오늘날의 갑작스럽게 발생한 코로나 사태 등이다. 예측하지 못한 우발적인 위기는 직업상실, 후원자의 상실, 존경받는 지위나 신분의 상실, 신체불구가 되는 사고, 질병, 유방 절제 같은 수술, 친구나 친척 혹은 자녀나 배우자의 죽음, 자신의 임박한 죽음, 배우자의 간통, 심한 알콜 중독이나 약물중독, 새삼스러운 장애 발견, 원치 않는 임신, 임신 중절, 안정된 환경을 떠나야 하는 경우, 전쟁, 공황, 태풍 같은 국가적 재난이나 천재지변, 자살 등 많이 있다고 본다.
10일 전에 갑자기 아침에 다리에 심한 통증이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통풍’(Gout)이 재발한 것이다. 아플 통(痛) 자에 바람 풍(風)을 쓰는 통풍은, 한자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아픈 병이다. 통풍은 완치가 없다고 한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2년전 예루살렘에서 통풍이 처음 왔다. 어떤 분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위로해 주었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중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의 상황적 위기에 직면한다. 오늘 본문은 바울은 가이샤라를 떠난 배는 중간에서 로마로 가는 큰 화물선이 알렉산드리아 배로 옮겨 타고, 그레데 섬의 남쪽에 있는 미항이라는 항구에 도착했다. 지중해의 겨울 바다는 예측이 힘든 거센 풍랑이 종종 불어왔다. 바울이 이동할 당시는 속죄일이 지난 때이니 지금의 10월쯤으로 겨울이 오던 때였다.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에게 지금 출항하는 것은 위험하니 연기하자고 권유했으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행선을 강행한다. 처음 며칠은 남풍이 순하게 불어서 순항하는 듯했으나, 곧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 닥친다.
로마로 항해하는 알렉산드리아 호가 광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이때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절망하고 오열하고 있는 저들게 소망을 주었다. 인생의 바다에서 우리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온다. 항해하던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우리도 인생의 바다에서 광풍을 만나 표류할 때가 있으나, 하나님 말씀을 의지할 때 항해할 수 있다. 광풍이 전화위복이 되어 더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사도 바울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개척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이다. 그곳에서 귀신들린 종을 치료해 주었다가 주인에게 고소를 당하여 감옥에 갔다. 바울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간수장을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간수장 뿐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를 구원하였다. 바울이 광풍을 만나지 않았으면 몰타에 갈 일이 없었을 것이다. 몰타에는 바울의 항구가 있고, 몰타인구의 95%가 기독교인이다.

인생의 바다에서 유라굴로의 광풍을 만나 표류할 때, 말씀의 등대를 의지하여 희망의 항구로 항해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가을은 심판의 계절입니다
오축(Megiloth-Five Scrolls)이란 말이 있다. “다섯 두루마리들”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5번의 절기 때 오축을 읽는다. 유월절에는 아가서를, 오순절에는 룻기를, 예루살렘 멸망일에는 예레미야애가를, 부림절에는 에스더서를, 가을 추수절기인 초막절에는 전도서를 읽는다.
이스라엘 농부들은 일 년에 세 번의 추수와 관련된 절기를 지킨다. 봄에 보리를 추수하는 무교절, 밀을 추수하는 맥추절, 가을에 과실을 추수하는 수장절이다. 각각의 절기는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있다. ‘무교절’은 출애굽한 ‘유월절’, ‘맥추절’은 율법을 받은 ‘오순절’ 그리고 ‘수장절’은 이스라엘의 40년간 광야 생활을 한 ‘초막절’이다. 유대인들은 절기 때마다 읽은 성경이 따로 있다. 유월절에는 아가서를, 오순절에는 룻기를, 장막절에는 전도서를 읽는다. 수장절은 우리나라 ‘추석’과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추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절 가운데 하나로 음력 8월 15일에 지킨다. 추석은 중추절(仲秋節), 가배(嘉俳), 가위 또는 한가위라고도 부른다. 중추절(仲秋節)이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 3달로 나눌 때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가위’에서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이다. 한가위란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란 뜻이다.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가위란 큰 날 또는 큰 명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 무교절(유월절, Passover)
무교절은 보리를 추수하는 절기이다. 출애굽한 유월절은 이스라엘에서는 새해의 첫 달이다. 유월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은 날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아가서를 읽으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한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으로 해석한다.
2. 맥추절(오순절, Pentecost)
맥추절은 소맥을 의미하는 밀을 추수하는 절기이다. 맥추절은 출애굽하고 50일이 지나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오순절이다. 신약에서는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한 ‘성령강림절’이다. 성령으로 교회가 탄생하여 ‘교회의 생일’이기도 하다. 룻기를 읽는 이유는 룻기의 배경이 맥추절이었고, 룻이 나오미에게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리라”(룻1:16) 헌신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헌신해야 하는 것과 연관된 것으로 본다.
3. 수장절 (초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수장절은 우리의 추석 명절과 상당히 유사한 명절일 뿐 아니라, 지키는 날짜도 비슷하다. 2021년 추석이 21일인데, 초막절은 9월 20일부터 27일까지 1주간 지킨다. 1년 중 마지막에 당하는 절기로 가을 농작물을 거두는 시기에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도 담고 있는 절기이다. 초막절은 일주일 동안 진행되며, 유대인들은 초막을 짓고 그 안에 살면서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기념한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전도서를 읽는다. 솔로몬은 3권의 책을 썼다. 정확한 저작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아가서는 청년 때, 잠언은 중년 때, 전도서는 노년 때 쓴 것으로 추정된다. 아가서는 청년의 ‘사랑의 열정을, 잠언은 중년의 ‘지혜의 찬양’을, 전도서는 노년의 ‘인생의 통찰’을 기록한 책이다. 전도서의 주제는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은 헛되니, 해위의 것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다. 전도서의 결론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이다.
마태복음 13장에 7가지 ‘천국비유’가 나온다. 두 번째에 ‘가라지 비유’가 있다. 천국은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원수가 몰래 그곳에 가라지를 뿌렸다. 종들이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나, 주인은 잘못 뽑다가 곡식이 다칠 수 있으니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라고 한다.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13:30) 가을은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계절이다. 가을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는 결산의 때이다.
스코틀랜드를 알면 장로교가 보인다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이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을 계승하게 되었다. 1603년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두 왕국은 통합되지만, 같은 임금을 모시는 동군연합 단계였다. 1707년 연합법으로 동군연합 관계인 잉글랜드 왕국과 통합하여 ‘연합왕국’을 이루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었다. 잉글랜드 사람들이 ‘앵글로색슨족’인 반면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아일랜드나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와 같은 ‘켈트족’이다. 따라서 잉글랜드와는 인종도 다르고, 문화가 다르며, 국민성도 다르다. 둘은 서로가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같은 나라지만 사이는 좋지 않다.
1. 존 낙스(John Knox, 1514~1572)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장로교 창시자이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부였지만, 장로교를 스코틀랜드에 정착시켰다. 존 녹스는 위대한 신학자이자 동시에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메리 여왕조차도 그의 기도를 두려워하면서 “백만 군사보다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고 고백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하나님께 “스코틀랜드를 주시든가 아니면 내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는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었고, 스코틀랜드를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
1560년 8월, 드디어 스코틀랜드에 종교개혁의 날이 찾아 왔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교황의 권위를 배격하고 교황의 관할권을 폐지했다. 카톨릭 미사 집전을 금지하고, 이를 세 번 이상 위반할 시 사형에 처하기로 했다. 낙스와 다섯 명의 개신교 사역자들이 위원회를 구성하여 4일 만에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The Scot Confession)’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1560년 의회는 총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를 국가의 신조로 채택했다.
1643년 7월부터 1648년 2월까지 열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스코틀랜드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참석하여 장로교회의 정치와 교리의 요람이 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 기타 원칙들을 만드는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물론 이 교리의 사상들은 칼빈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스코틀랜드장로교회가 직접적으로 적용했고, 세계에 전하여 준 것이다.
2. 장로교(Presbyterian)
‘존 낙스’는 ‘존 칼빈’의 제자이다. 개혁 신학의 기초를 ‘칼빈’이 세웠다면, 장로교의 영성과 목회적 기초는 ‘낙스’가 세운 것이다. ‘장로교’라는 단어는 넓은 의미로 칼빈의 신학 노선을 따르는 교파를 뜻한다. 장로교는 신학적으로는 다른 개혁파 교회들과 거의 같으나, 교회 구조에서 목사와 장로가 교회를 다스리고, 대의정치의 원칙에 따라 당회, 노회, 대회, 총회로 이어지는 계층적 교회 질서를 가지고 있다. 잉글랜드에서 시작된 성공회, 감리회, 구세군 등은 감독 정치를 핵심으로 하는 수직적인 체계를 중요시 여기지만,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장로교는 수평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성향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를 회중이 선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각 교회는 당회(Session)를 가지고 있다. 당회는 목사 또는 복수의 목사와 치리장로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당회의 임무는 각 교회를 영적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노회(Presbytery)는 일정한 지역 내의 모든 목사와 각 교회로부터 파송 된 총대 장로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다. 노회는 지역 내의 교회와 목사들에 대한 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대회(synod)는 인근 지역 최저 3개 노회 이상으로 구성된다. 소속 노회의 모든 목사와 한 교회 한 명의 장로에 의해 구성된다. 그 관할하는 노회에 대해서 감독권을 가지고 있다. 총회(General Assembly)는 교회의 최고 기관이다. 그러므로 총회는 전 교회를 대표하고 있다. 총회는 전 노회로부터 파송 된 대의원에 의해 구성되며 대의원의 수와 선출 방법은 규정을 정하여 시행한다. 총회는 전 교회와 그 활동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해외선교연구센타’(OMSC)가 발표한 2013년 통계를 보면, 세계 기독교 인구는 23억 5500만명(33.3%)이다. 이중 장로교인은 0.8%에 불과하다. 세계 장로교인은 1800만이며 이중 1/3(600만)이 한국인이고, 미국이 350만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장로교인은 기독교인구의 1%도 되지 않는데, 한국은 개신교인의 60% 이상이 장로교인이다. 통계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한국 선교사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3. 한국 장로교
한국 장로교는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소속인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가 1870년 만주에서 시작한 선교사역을 기점으로 볼 수 있다. ‘존 로스’는 1882년 최초로 한글성경을 번역한 선교사이다. 1884년에 입국한 알렌 의사도 미국 북장로교 출신이고, 1885년의 언더우드 역시 미국 북장로교 출신이며, 이후 호주 장로교(1889), 미국 남장로교(1892), 캐나다 장로교(1898) 선교사들이 속속히 입국했다. 장로교는 복음전도와 함께 의료선교, 교육선교, 문서선교, 사회선교 등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초창기 선교방식이 한국의 근대화에 많은 공헌을 했다. 결국 한국선교는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장로교 주도로 흐르게 되었다.
독자적으로 진출한 4개의 장로교 선교회는 한국 장로교회의 창설을 위해 서로 긴밀한 협력하며 신학교육, 문서사업 등에서 연합을 도모하기로 했다. 이들은 장로교 공의회(Presbyterian Council)를 조직하여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다가, 마침내 4개의 장로교회가 연합하여, 1901년 5월 15일 평양 장로회 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1907년 ‘평양 대부흥회’가 있은 후, 1907. 9. 17일 ‘장대현교회’에서 4개의 장로교가 하나로 통합하게 되었다.
해방 후 한국 장로교는 3번 분열의 역사를 갖는다. 첫 번째 분열은 1952년 신사참배의 문제로 ‘고신과 총회’, 두 번째 분열은 1953년 신학 문제로 ‘예장과 기장’, 세 번째 분열은 1959년 WCC 문제로 ‘통합과 합동’이 분리되었다. 교단이 분열할 때마다 지역교회는 많은 혼란을 겪게 되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진주에는 서로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두 개의 장로교회가 있다. 봉래동에 있는 합동 측 진주교회와 평안동에 있는 통합 측 진주교회이다. 원래는 하나의 교회였으나 교단이 분열하면서 교회도 갈라지게 된 것이다.
4. 호주 장로교
호주 장로교의 역사도 한국과 큰 차이점은 없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분열된 장로교인들이 호주로 이주해 오면서 하나의 장로교회를 만들었다. 1901년, 각각의 장로교회는 연합하여 ‘호주 장로교회 총회’를 탄생시켰다. 1901년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장로교인들은 인구의 11.3%를 차지했고, 성공회, 가톨릭, 감리교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호주연합교회에 들어오기 직전인 1976년, 장로교인들은 전체 인구의 6.6%였다. 1977년 6월 22일 호주의 ‘장로교회, 감리교회, 회중교회’가 연합하여 ‘호주연합교회'(Uniting Church in Australia)을 만들었다. 호주연합교회가 탄생된 것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교단보다는 선교’에 중점을 두었고, ‘다름보다는 같음’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가능했다.
세 교단은 1972년에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이 투표에서 감리교인들의 85%, 회중교인들의 83%가 연합을 지지했지만, 장로교는 부정적이었다. 1974년 5월 1일 호주장로교총회의 최종투표는 230대 143으로 연합을 결정하게 됐다. 결국 1,437개 장로교회 중에서 916개 교회(64%, 교인 69%)는 연합교회에 참여하기로 했고, 521개 교회(36%, 교인 31%)는 장로교회로 남기로 결정했다. 호주의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은 ‘연합교회’가 되었고, 장로교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정체성을 유지하며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