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발터 벤야민 선집 전11권
발터 벤야민 저 / 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김남시, 김영옥, 황현산 역 / 2009 ~ 2020
– 발터 벤야민 사상의 진수를 선보이다
전방위적 사상가 발터 벤야민의 텍스트를 번역한 『발터 벤야민 선집』 시리즈. 국내 벤야민 전공자 3인이 지난 10년간의 독해모임을 통해 얻은 결정판본 번역작업의 결과물이다. 벤야민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주제별로 묶었으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그동안 국내에서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의 지적ㆍ사상적 세계는 19230 ~ 40년대에 걸쳐 이루어진 성과물이지만, 21세기가 들어선 지금에서도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그의 글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양상이나 문제점들에 대한 풍부한 해석과 의문부호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그의 사상이 주로 유물론적 모더니즘 미학과 사회철학적 시각에서 해석되어 왔다면, 1990년대 들어서는 언어철학, 번역이론, 미메시스론, 산문양식 등이 조명되고 있다.
○ 목차
1권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2권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3권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
4권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
5권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6권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 번역자의 과제 외
7권 카프카와 현대
8권 브레히트와 유물론
9권 서사 기억 비평의 자리
10권 괴테의 친화력
11권 모스크바 일기

○ 저자소개 :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 ~ 1940)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 ~ 1940)은 독일 출신의 유태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낭만주의 비평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거나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괴테의 소설에 대한 비평문 「괴테의 친화력」을 통해 당대의 보수적인 문예학의 풍토를 비판하기도 한다. 1924년 교수자격논문인 『독일 비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 활동을 펼쳐나간다. 1928년 출간된 철학적인 아포리즘 모음집 『일방통행로』는 그가 즐겨 왕래하던 프랑스에서 당시 태동한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받은 영향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나중에 그의 정신적 유산의 관리자가 된 테오도르 아도르노를 비롯해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를 알게 되면서 이들과 지적 교분을 나눈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초현실주의를 비롯해 마르셀 프루스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프란츠 카프카, 카를 크라우스, 샤를 보들레르, 니콜라이 레스코프 등에 대한 글 이외에 그는 「생산자로서의 작가」와「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등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글을 발표한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 (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주』 (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게오르그 짐멜의 에세이적 글쓰기 스타일이 엿보이는 벤야민은 뛰어난 산문가였고, 모더니티, 매체미학, 언어철학, 역사철학에 대한 글들을 비롯해 인문사회과학의 다양한 모티프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그의 사상은 70년대 전집 발간 이래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으며, 자크 데리다, 조르지오 아감벤 등 현대철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출판사 서평
제1권 ‘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사상의 전개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다. 벤야민이 1924년경 이후 주요 일간지들의 문예란에 발표한 글들을 묶은「일방통행로」는 현실과 초현실 세계의 다양한 경험들에 대한 아포리즘적이면서도 이미지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사유이미지」는 벤야민이 주로 1932년 전후에 쓴 단편들을 지칭한다.
2권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아우라’ (Aura)의 개념으로 익히 알려진 본서는 그의 사상이 국내에 가장 폭넓게 전파되는 데 기여한 잘 알려진 글이다. 그의 글이 ‘현재성’을 갖는 또다른 이유가 이 글에서 잘 드러나며 그를 현대 매체미학의 선구자로 일컫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학, 미학, 문학, 신학 등 거의 모든 인문학적 사유의 전방위적 사상가였던 발터 벤야민 선집 2번째 책.으로 ‘아우라’ 개념으로 익히 알려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그의 사상이 국내에 가장 폭넓게 전파되는 데 기여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벤야민은 지금까지의 예술이 ‘의식’에 바탕을 두었다면, 이제 예술은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고 역설한다. 그런 대표적 예술매체로서 그는 사진과 영화에 주목하며, 이 책에 실린 두 글은 새로운 현대의 ‘기술’이 어떻게 전통적인 예술개념을 전복시키며, 기술에 의해 지배되는 자연에 대한 충실한 모사가 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현대의 예술작품을 논함으로써 벤야민의 글이 ‘현재성’을 갖는 잘 드러나며 그를 현대 매체미학의 선구자로 일컫게 하고 있는 중요한 미학 에세이이다.
3권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
철학, 미학, 문학, 신학 등 거의 모든 인문학적 사유의 전방위적 사상가였던 발터 벤야민 선집 3번째 책. 마르셀 프루스트의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와 같은 개인적ㆍ사적 차원을 넘어 유럽 문화와 사회의 기초가 해체되고 파괴되어 가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쓴 자전적 에세이다.
1930년대 독일, 벤야민이 살았던 시대는 안정과 불안의 전조가 뒤엉킨 동요의 시대였다. 시민계급에게는 상대적으로 안정기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그 안에서는 몰락의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더욱이 벤야민이 나치 집권 시기에 이 글을 썼다는 점은 ‘불안’의 이미지가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가 유추되는 대목이다. 유복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면서도 시민가정의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반항이나 재난과 불행에 대해 어렴풋한 예감이 뒤엉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야만으로의 회귀라는 1930년대 독일의 절박한 위기상황 속에서 세태를 초월하는 유유자적함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와 역사를 자신의 유년시절에 비추어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역사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단순한 시간적 흐름에 따른 삶의 파편적 나열이 아닌, 자신이 유년시절 겪었던 이미지들의 길어올림을 통해 재구성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4권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발터 벤야민 선집에 드디어 6번째 책 중 제4권으로 이번에 출간된 책은 벤야민의 ‘보들레르론’에 대하여 집중 조명한다. 그가 보들레르에 관해 남긴 세 편의 글을 모두 수록함으로써 19세기 최고의 시인 보들레르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읽고자 했던, 즉 근대 대도시의 새로운 생활 방식과 그 물질적 조건을 정면으로 고찰하려는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보헤미안’, ‘거리산보자’ 그리고 ‘근대성’이다. 벤야민은 보들레르라는 렌즈를 통해 19세기 파리의 신화적 지형학 속에서 움직이는 개인의 운명을 탐색한다.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는 보들레르론에 대한 철학적 요약이자 해설로 이 시선은 벤야민의 견해에 따르면 구원 없는 세계를 바라보는 근대 예술의 비극적 시선이다.
끝으로 원래 『샤를 보들레르: 자본주의 전성기 시대의 시인』에서 ‘시적 대상으로서의 상품’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던 제3부의 결과물로서 남겨진 「중앙공원」에서 벤야민이 특히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보들레르 시를 특징짓는 알레고리적 시선의 역사철학적 근거였다.
5권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발터 벤야민은 유복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를 살다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40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국경 마을 포르부(Port Bou)에서 음독자살한 불우한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의 지적ㆍ사상적 세계, 그리고 그가 남긴 글들은 지금도 각광을 받는다.
발터 멘야민 선집 5권으로 1940년 마지막으로 쓴 역작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운명과 성격」, 「폭력비판을 위하여」, 「꿈 키치」, 「초현실주의」 등 11편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집필할 당시 노트자료들을 모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들’을 함께 수록했다.
6권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 번역자의 과제 외’
발터 벤야민은 유복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를 살다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40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국경 마을 포르부 (Port Bou)에서 음독자살한 불우한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의 지적ㆍ사상적 세계, 그리고 그가 남긴 글들은 지금도 각광을 받는다.
벤야민의 초기와 후기사상을 관철하는 모티프이자 그의 사상 전체의 토대인 ‘언어이론’에 관련된 글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미래 철학의 프로그램에 대하여」, 「번역자의 과제」 등 7편을 수록했다. 특히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는 그의 초기 사상을 주도한 언어철학의 핵심이다.

7권 ‘카프카와 현대’
발터 벤야민 선집 7권. 발터 벤야민 사상의 양대 축은 유대신비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이다. 특히 그의 사상과 이론에서 신학적 사유가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에게서 신학적 사유가 다소 명시적으로 드러난 개념들은 신학(적인 것) 외에 신적인 것, 신성한 것, 계시, 진리, 메시아적인 것, 희망, 구원 등인데, 이 개념들은 그와 연관되는 다른 개념들, 이를테면 유토피아, 행복, 신화, 정의와 법, 죄와 속죄, 혁명 등과 내밀하게 변증적으로 얽혀 작동한다.
게다가 이 개념들은 서로 매개되어 있기 때문에 신학적 사유는 그의 언어철학, 역사철학, 정치철학, 예술론, 미학 등 모든 영역에서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폭넓게 작용하고 있고, 그의 사유 전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많은 벤야민 연구자들이 그의 사유에서 초기부터 일관되게 작용하는 역사철학을 ‘기억’ (Eingedenken, 상기)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역사신학’ (Geschichstheologie)으로 해석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히 그의 신학은 ‘유대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는 있지만, 그것은 유대교 자체나 유대인들의 국가 건설(‘정치적 시오니즘’)에 대한 관심에서가 아니다. 그에게서 “유대교는 결코 자체 목적이 될 수 없고, 정신적인 것의 중요한 담지자이자 대변자”였다.
8권 ‘브레히트와 유물론’
발터 벤야민 선집 8권. 발터 벤야민 사상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마르크스주의와 관련, 특히 문학 (더 범위를 넓혀 미학까지) 분야에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이다. 하지만 벤야민과 가장 두터운 친분을 나누었던 게르숌 숄렘과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벤야민 사상의 정수는 브레히트의 그늘을 벗어나야 빛을 볼 수 있다고 했으며, 이를 직접적으로 벤야민에게 충고했다.

9권 ‘서사 기억 비평의 자리’
발터 벤야민 선집 제9권에는 발터 벤야민의 중요한 비평들이 수록되어 있다. 벤야민 최초의 장문의 비평문으로 초기 그의 형이상학적이고 언어철학적인 사유의 맹아가 담긴 횔덜린 시 비평을 비롯하여, 그에게 있어 비평의 본질적 특성 가운데 하나가 논쟁 (Polemik)이라면 타락한 부르주아 저널리즘에 맞서 싸운 카를 크라우스에 대한 비평은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아울러 벤야민 사상의 핵심적 모티프인 ‘기억’에 대한 성찰에 그 누구보다도 큰 영향을 끼친 마르셀 프루스트와 독일 민중과 구전적 전통(방언 등)에 뿌리를 둔 진정한 이야기꾼 요한 페터 헤벨에 대한 비평 역시 주목할 만한 비평임에 틀림없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도스토옙스키와 폴 발레리, 고트프리트 켈러, 니콜라이 레스코프 등 당대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들을 다룸으로써 벤야민에게서 ‘비평’이 자신의 지적 작업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10권 ‘괴테의 친화력’
발터 벤야민 선집 10권. 이 책은 발터 벤야민의 박사학위 논문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 (1919), 그리고 교수자격 논문인「독일 비애극의 원천」 (1928)과 함께 초ㆍ중기 그의 주요 3대 저작 가운데 하나로 중요한 작품이다.
그의 초기 사상의 여러 모티프가 농축되어 있는 이 에세이를 통해 그는 독일 문학비평의 전범을 세우게 된다.
여기서 그는 무엇보다 자신이 처음부터 추구했던 ‘철학적 비평’의 이론과 실제를 전개한다.
이번 선집 제10권에는 이 에세이 외에도 관련 노트와 게르숌 숄렘에 의해 청탁 받아 쓴 백과서전 항목 「괴테」도 수록하여 벤야민의 ‘괴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11권 ‘모스크바 일기’
발터 벤야민 선집 제14권.
벤야민은 많은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편지들에서 사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 편지들은 수신자들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어 그의 진솔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모스크바 일기』는 우리에게 이론가 벤야민의 배후를 이루고 있는 ‘인간’ 벤야민에게 접근해갈 통로를 마련해준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장난감 가게에서 아들을 떠올리는 가장으로서의 벤야민을 만난다.
그 벤야민은 램프를 고치려다 합선을 일으키고, 무거운 짐을 든 채 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 다니며, 찾던 물건을 발견하면 아이처럼 기뻐하는 서투르고도 천진한 인물이며,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다른 남자를 신경 쓰고, 그녀와의 이별에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신경을 거스르는 룸메이트에게 토라져 말을 안 하는 갑갑하리만치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글이 단지 사적 삶의 기록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애정과 갈등을 둘러싼 개인적 삶의 곡선은 사회주의 건설을 둘러싼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ㆍ정치ㆍ문화적 사건들의 좌표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를 벤야민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도시 모스크바의 인상학이 메우고 있다.

○ 언론소개 : “국내 ‘베냐민 번역’ 표준으로 정착된 것 같아 만족해요” 이화여대 독문과 최성만 교수
최성만 교수는 선집이 나오기까지 학생들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베냐민에 관심이 많았던 한 학생 주도로 여러 대학 학생들이 네이버에 카페를 만들어 자율적으로 베냐민 스터디를 했어요. 저도 참여해 번역 텍스트를 카페에 올렸죠. 그 결과 선집이 나올 수 있었어요. 학생들과 제가 서로 윈윈한 거죠.” 베냐민 스터디 모임을 주도한 신은실 (영국 에든버러 대학 사회인류학과 박사과정)씨는 최 교수의 대학원 제자로, 둘은 함께 <미메시스와 타자성>을 번역했다.
최성만 교수는 선집이 나오기까지 학생들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베냐민에 관심이 많았던 한 학생 주도로 여러 대학 학생들이 네이버에 카페를 만들어 자율적으로 베냐민 스터디를 했어요. 저도 참여해 번역 텍스트를 카페에 올렸죠. 그 결과 선집이 나올 수 있었어요. 학생들과 제가 서로 윈윈한 거죠.” 베냐민 스터디 모임을 주도한 신은실(영국 에든버러 대학 사회인류학과 박사과정)씨는 최 교수의 대학원 제자로, 둘은 함께 <미메시스와 타자성>을 번역했다.
최성만 이화여대 독문학과 교수는 최근 두 권의 번역서 <카프카와 현대>, <브레히트와 유물론>(윤미애 공역)을 펴냈다. 그가 90년대 후반에 기획해 2007년부터 도서출판 길에서 내는 ‘발터 베냐민 선집’ 열 번째와 열한 번째 책이다. 선집은 2~3년 안에 네 권을 더해 15권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최 교수는 이미 나온 선집 11권 중 8권(2권은 공역)을 직접 옮겼다. 2009년 한길사에서 나온 베냐민(1892~1940) 초기 주저 <독일 비애극의 원천>과 유대교 학자 게르숌 숄렘의 베냐민 회상록 <한 우정의 역사-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2002)까지 더하면 지금껏 ‘베냐민 저술’ 10권을 번역했다.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1년 6개월 뒤 정년”이라면서 “정년 뒤에는 베냐민의 후기 주저이자 미완성 대작인 <파사주 프로젝트> 번역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대 독일의 유대계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베냐민은 문학이론은 물론 철학, 신학, 심리학, 정치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은 저술 활동을 했다. 특히 영화와 사진 등 대중매체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물들은 1960년대 이후 서구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소개됐으며, 80년대 들어선 대학에서도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 죄르지 루카치와 이른바 ‘비판이론’으로 알려진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 학자인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과 함께 다뤄지기 시작했다. 8년 전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는 국문학자가 2008~2011년 가장 많이 인용한 외국 학자가 베냐민이라는 조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최 교수가 베냐민 전공자들과 함께 독일어 원전 번역을 하는 선집은 학술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길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15쇄를 찍은 선집 2권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매년 1천권가량 나가고 다른 책들도 대부분 3쇄 이상 찍었다고 한다.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인 이승우씨가 한길사에 있을 때 먼저 선집 출간을 제안했죠. 앞으로도 새 주제가 떠오르면 현재 15권으로 기획된 선집 분량이 두세 권 늘어날 수 있어요. 베냐민은 한때 인식의 확장 실험을 위해 의사 입회 아래 마약을 하는 실험도 했어요. 마약에 대해 쓰고 말하기도 했죠. 이 주제로도 한 권 더 낼 수 있어요.”
선집의 ‘상업적 성공’을 예상했냐고 하자 그는 “당연하죠”라고 받았다. “베냐민은 국제적으로 학술대회가 가장 많이 열리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조르조 아감벤이나 슬라보이 지제크, 자크 랑시에르, 테리 이글턴 등 서구를 대표하는 이론가들의 글에는 베냐민 사상의 주요 내용이 녹아 있어요. 베냐민이 현대 이론가들에게 중요한 사유의 모티프(창작 동기)를 제공하고 그들을 연결시켰다는 의미로 ‘베냐민 커넥션’이란 말까지 있죠. 마르크시즘에 형이상학과 신학을 기묘하게 결합한 베냐민의 사유를 가지고 연구한 게 아감벤의 책 <남겨진 시간>입니다. 21세기 초두부터 서구에서 회자한 ‘신학의 귀환’도 베냐민에 대한 국내 독자의 관심을 키웠어요. 그는 유대신학과 유물론적 정치라는 양 날개로 난 사상가였어요.”
그는 선집을 매체이론이나 역사철학, 언어철학, 보들레르, 카프카, 브레히트 등 베냐민의 저술을 주제별로 나눠 구성했다. 같은 저술의 각기 다른 판본들도 함께 옮기고, 상당한 분량의 미발표 수기 노트도 번역했다. 권별로 상당한 분량의 해제를 붙인 것도 보통의 학술번역과 다른 점이다. <카프카와 현대>는 수기 노트의 분량만 100쪽이 넘는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해외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주로 3판을 수용했는데 80년대 후반에 뒤늦게 2판이 발견됐어요. 2판에는 아도르노가 읽고 격찬한 혁명론이라든지 ‘미적 가상(아우라)’ 등 독특한 각주가 많아요. 이 글 관련 노트에도 ‘정신분산 이론’이나 ‘학습 가능성’ 등 원 텍스트 이해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내용이 많아요. 텍스트가 나오게 된 역사를 보여주는 노트들이죠. 독자들도 이런 노트를 같이 봐야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는 20년 이상 힘을 쏟아온 선집 번역의 학술적 의미를 이렇게 자평했다. “국내 베냐민 번역의 표준으로 정착된 것 같아요. 번역이 나쁘다는 평이 별로 없다는 데 만족합니다. 너무 직역 투라는 불만 정도죠. 선집을 읽은 국내 한 미학자가 그러더군요. 이전에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1급이고 베냐민은 2급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집을 읽은 뒤 생각이 바뀌었다고요.”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74학번이다. 모교 독문과 대학원에 79년 입학해 석사를 하고 베를린 자유대에서 95년에 베냐민의 미메시스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부 시절 그의 별명은 성에 독일 철학자 니체의 체를 붙인 최체였단다. “대학에 들어가 슬럼프에 빠져 학교생활을 엉망으로 했어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별다른 생각 없이 공대 진학을 결정한 탓이죠. 공학 공부가 싫었어요. 대신 니체나 괴테 전집, 사서삼경 등을 읽고 매일 일기를 쓰며 버텼어요.” 그는 학부 졸업 뒤 삼성전자를 몇 개월 다니다 그만두고 인문학 공부로 인생의 방향타를 틀었다. “졸업하고 학부 3학년 학사편입을 하려고 국문학과 불문학, 독문학 순으로 시도했는데 다 안 됐어요. 그 뒤로 절에까지 들어가 공부한 끝에 독문학과 대학원에 들어갔죠.”
대학원에서 베냐민을 전공한 데는 이런 사연도 있었단다. “80년 민주화의 봄을 맞아 독문과 대학원에서도 학생들 스스로 루카치나 아도르노 같은 이론가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때 대학원 동기들이 돌아가며 자기가 쓸 논문 주제를 말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동기 홍승용(현대사상연구소장, 전 대구대 교수)이 먼저 아도르노로 쓰겠다고 해요. 아도르노는 우리가 같이 번역 스터디도 했고 저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말이죠. 선수를 빼앗긴 것 같아 순간 착잡했죠. 그래서 저는 베냐민으로 쓰겠다고 했죠. 똑 같이 아도르노로 쓰겠다고 하면 민망할 것 같았거든요. 그 순간의 결정이 이후 삶에 영향을 미친 거죠.”

‘국문학자 가장 많이 인용한 외국학자’
‘발터 베냐민 선집’ 14년째 번역중
최근 10·11권 출간…15권 완성 목표
2권만 15쇄 찍는 등 스테디셀러 ‘성공’
공대 시절 철학에 빠져 인문학자로
“분과주의 강한 국내학계 ‘통섭’ 절실”
베냐민 사유의 현재성은? “베냐민 이론은 절대적으로 현재를 지향합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와 같은 현재를 ‘황소’라고 표현하며 텍스트는 옛 것이더라도 이론은 모름지기 이 황소의 뿔을 잡고 싸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 싸움의 현장은 황소의 피로 흥건하지요. 오늘날 용어로 통섭을 선취한 사상가이기도 하죠. 전공을 넘나들며 특히 예술작품 분석을 통해 스스로 통섭을 추구했어요. 그가 한 통섭의 성과는 2차 대전 이후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인문학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프랑스의 롤랑 바르트나 미셸 푸코에 견줄 수 있어요. 기술과 예술, 아방가르드와 전통, 유물론적 정치와 신학 등 상호 배타적인 영역들을 변증법적으로 아우르고, 또 비평에서 미학은 물론 정치적인 힘까지 표현한 것도 지금껏 그의 글이 읽히는 이유이죠.”
한국에서도 통섭이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 대학 현실은 이 말과 거리가 멀단다. “한국 대학은 ‘전공을 바꿔 전과하면 전과자가 되는 곳’이라는 말까지 있어요. 푸코조차도 한국 대학에서 강사를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우리는 분과 학문주의가 강고해요. 뿌리주의죠. 연구자에게 ‘너의 소속을 말해봐’라고 말합니다. 그 소속이 권력이 돼 거기에 안주하죠. 열려야 창조적인데도요. 한국의 분과 학문주의는 적폐 중 적폐입니다. 예컨대 베냐민도 한국 대학에선 독문학 분야로만 취급해요. 그가 다룬 작가와 주제들이 인문 사회과학 전체를 넘나드는데도요.”
분과 학문 안의 권력관계는 학술의 토대가 되는 번역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베냐민 저술 <파사주 프로젝트>엔 보들레르 관련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같이 번역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불문학 전공자에게 물었더니 보들레르 번역은 불문학계의 귀족 아니면 손을 대지 못한다면서 거절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어요. 영문학 쪽은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나 시 ‘황무지’를 쓴 T. S. 엘리엇이 그렇죠. 번역에 나섰다가는 철퇴를 맞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그는 “일본은 베냐민 선집이 70년대 후반 나왔고 20년 뒤에 한 번 더 나왔다”며 “기초 텍스트가 제대로 번역돼야 그 바탕 위에서 학문적 연구와 토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껏 번역하며 국가 지원을 한차례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팀까지 꾸려 야심 차게 준비해 <파사주 프로젝트> 번역 지원 신청을 했는데 서너 차례 떨어졌어요. 그 뒤로는 신청하지 않아요. 우리는 진국일수록 경원시합니다. 진짜를 알아보는 눈이 없어요. 지원받으면 쓸데없는 데 신경 써야 하는 문제도 있고요. 우리는 의심 위에 서 있는 저신뢰 사회죠. 이런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있을까 싶어요.”
그가 보기에 현재 한국은 “가짜 인문학이 횡행하는 사회”다. “진짜는 경원시 되거나 묻힙니다. 독문학 전공 학생들도 그렇고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아요. 제가 번역한 책을 독문학과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도 베냐민 책에 흥미를 느낄 학생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더군요. 독문과를 다녀도 어학만 생각하지 인문학은 뒷전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굶주림이 있는 이들도 귀로 편하게 들으려고만 해요.”
그는 우리 사회의 인문학 쇠퇴가 자신이 베냐민 저술 번역에 몰두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고 했다. “2천 년대 들어 독문학 분야에서는 대학원 공부가 미래의 삶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사라졌어요. 1980년대부터 공고해진 신자유주의 영향이 컸다고 봐요. 그 뒤로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거의 포기한 학생만 공부를 지속할 수 있어요. 유학을 간 학생들도 전공을 직업과 연결하기 위해 귀국할 생각을 포기하고 국적을 바꿀 기회를 엿보는 실정이죠.”
최 교수에게 가장 좋아하는 베냐민 텍스트를 묻자 가장 먼저 돌아온 답은 “모두 다”였다. “베냐민의 글을 읽다 보면 단어 하나 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어요. 100% 퓨어(순수한) 다이아몬드죠. 베냐민은 극도로 절제하고 단련된 글을 썼어요. 글을 읽으면 묵직해 숨이 찹니다. 보통 학자들의 건조한 글과 달리 촉촉해요. 읽을수록 진국이 빠져나옵니다.” 그는 인터뷰 뒤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하나 고르라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이다”고 밝혔다. “베냐민 최후의 글로 역사와 정치에 대한 그의 사유가 응축되어 담겨 있죠. 당시 히틀러-스탈린 밀약을 접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꿈도 증발해버린 충격적 현실 앞에서 써 내려 간 글입니다. 일종의 최후 진술로 읽는 이의 숨이 차오르게 합니다. 유대 메시아주의와 역사적 유물론의 정치학이 결합한 이 글은 절망적 현실에서 희망과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베냐민 수용사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글이기도 해요.” ‘무명인의 기억을 기리는 일이 유명인의 기억을 기리는 일보다 더 어렵다. 역사적 구성은 이 무명인의 기억에 바쳐진 것이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문장은 베냐민이 나치에 쫓기다 최후를 마친 스페인 해안 마을 포르부에 세워진 베냐민 기념물에서도 볼 수 있어요.”
베냐민이 최후를 마친 스페인 해안마을 포르부에 세워진 기념물 유리판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무명인의 기억을 기리는 일이 유명인의 기억을 기리는 일보다 더 어렵다. 역사적 구성은 이 무명인의 기억에 바쳐진 것이다.’ 최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베냐민 텍스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에 나온다.
베냐민 번역의 난점을 묻자 그는 베냐민 문장의 특성을 설명하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베냐민의 글은 모던하면서도 고풍스러워요. 변증법적이기도 하죠. 두 가지 의미가 뻗어 나가요. 신학 이야기를 하다 세속 이야기를 하고 그런 식이죠. 베냐민식 변증법의 특징은 매개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전복의 변증법이자 열린 변증법입니다. 종합하지 않고 열어두죠. 긴장을 계속하게 합니다. 신비주의적 분위기도 있고요.”
그는 올해 초부터 천도교 서울 대교당을 다니며 천도교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별세한 그의 부친(최몽연)은 천도교 교령 아래 지위인 도정까지 지냈다고 한다. “부친은 한국전쟁 때 월남해 전북 익산에서 쌀가게를 하셨어요. 도정은 예전으로 치면 대접주 자리이죠. 부친 장례를 치르며 제가 부친의 세계에 대해 그동안 너무 몰랐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동경대전> 등 천도교 경전 공부를 시작했어요. 경전을 공부하면 할수록 교리에 어마어마한 가르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_ 강성만 선임기자 (한겨레, 2020년 8월 19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