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십자가를 지는 능력(2) 눅 22:39-46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쉽지 않습니다.
기도가 대체 무엇입니까? 기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친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의 친밀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 나의 소원을 하나님앞에 아뢰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요구하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기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사귀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귐이 없이 하는 기도는 그것은 기도라기보다는 주문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구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놀부 집에 스님이 시주를 받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놀부가 문전박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스님은 굳건하게 문 앞에 서서 염불을 외우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스님의 염불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놀부가 피식 웃으면서 놀부도 같이 염불을 외움니다. “주나봐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기도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자녀들과의 대화입니다. 물론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경계하게 되고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게 됩니다. 결코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친밀해지면 다릅니다.
친밀감에도 깊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1단계 친밀감은 얼굴은 아는 정도입니다. 교회에서 눈인사만 하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밖에서 만나면 저 사람은 같은 교회 교인이다 정도로 압니다. 2단계 친밀감은 인사를 주고 받는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서로 간에 예의를 갖추고 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눌 정도의 친밀감입니다. 3단계 친밀감은 대화를 나누는 정도입니다. 교제실에서, 카페에서, 아니면 남녀선교모임에서 간단하게 대화를 나눈 사이입니다. 이 사이정도만 되어도 편한 사이가 됩니다. 이 정도 단계가 되어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이지요. 4단계 친밀감은 밥먹는 사이입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되면 편한 사이입니다. 누가 불편한 사람과 밥을 먹겠습니까? 물론 목사가 밥먹자고 하면 불편하니까 안먹으려고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먹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목사가 밥먹자고 하는가? 편하게 지내자는 것입니다. 5단계 친밀감은 함께 여행가는 사이입니다. 여행갈 때에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그래서 여행은 정말 편한 사람들과 가야 합니다. 여행갈 정도가 되면 정말로 좋은 관계, 친밀감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정착하려면 최소한 3단계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6-7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과는 얼마나 친밀하십니까? 여행갈 정도의 친밀감이 있으면 좋지만 아마 하나님과 여행가면 매 순간 긴장하면서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과 최소한 대화를 나눌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합니다. 이게 무엇인가? 바로 기도입니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