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 Cogito ergo sum Credo ut intelligam / 침묵의 뿌리 / Dum inter homines sumus, colamus humanitatem / 동물농장 · 인간세상 · 사람고시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85) _ 2020년 11월 9일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과’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음의 핵심을 비껴가는 우수개 같은 이야기 이지요.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생이란, 행복 아니면 불행, 불행 아니면 행복, 그 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일 겁니다. 모든 것을 도 아니면 모로만 보려는 극단주의일 수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행복이나 불행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개인적이며 심리적 현상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다행이 있다’ – 여류 소설가 백영옥님의 글입니다. 그이의 그런 말에 대해 ‘모든 다행은 일종의 행복이 아니냐? Happy와 Lucky가 어떻게 다르냐?’ 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Happy 하면 그게 Lucky한 것이고, Lucky하면 그게 Happy 한 것이지, 다행과 행복, 그 둘은 같은 것이란 말을 하고 싶은 것일 겝니다. 한국어가 갖는 행복과 불행이라는 두 단어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유사성과 어감상의 차별성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평범한 일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가장 많습니다. 인생살이란 모두 다 행과 불행으로 갈라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덤덤하게 지나가는 일들이 대부분인데, 그 중에서 가끔은 행복한 일로, 또 가끔은 불행한 일로 번저져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 그 둘 사이에 중간 지대는 없을까요?
아주 많은 경우, 저는 행복감을 크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불행한 것도 아닌 나날을 살아갑니다. 저는 그것을 ‘일상’ 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우리는 일상성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 일상성의 반복 속에서 우린 행복과 불행의 교차를 경험합니다.
물론 불행하길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만, 그렇다고 해서 매 순간 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꼭 만족스럽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우리네 일상 입니다. ‘웃으며 삽시다’ ‘웃으면 복이 옵니다’ ‘즐거워서 웃고 행복해서 웃고 좋아서 웃고 기뻐서 웃고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으세요’ 이런 카톡을 받기는 하지만, 우리가 바보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 주어진 하루 하루란 그렇게 웃을 일들만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웃을 수도 없고 울수도 없는 일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일들이 비일 비재합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은 더더욱 행복을 인생 최고 최대의 목적인양 가르치고, 세뇌받고, 설교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때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같은 공리주의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직 나 하나의 행복만’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고, 심지어는 ‘당신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세상이 되어갑니다. ‘모두의 행복이 아니라 나의 행복’ – 이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인생이란 불행한 사람을 곁에 두곤 결코 자기도 행복해 질수 없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불행은 나의 행복 마져도 깎아 버립니다. 함께 행복하지 못하면 함께 불행해지는 것이 우주의 원리요, 법칙입니다.
그리고 이젠 정말 깨달을 때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행복’ 그것도 ‘나의 행복’에다 두면 않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생이란 꼭 성공하고, 이기고, 승리하여, 만족을 얻고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못해도, 그져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행복하지 못하면 불행한 게 아닙니다. 불행하지만 않으면 그게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 순간 순간, 하루 하루, 그져 덤덤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러니 행복한 순간이 와도 그냥 한번 씽긋 웃고, 불행한 일을 당해도 그냥 한번 울음으로 매듭을 짓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일상성의 진실과 평범성의 성실함 같은 것이 아마도 행복과 불행 사이에 현존하는 안간의 실존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린 성공할지 실패하게 될지 예측할수 없는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우린 건강할지 병들지 모르는 날들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다 어찌될지 몰라도 꼭 한가지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면서 살아갑니다. ‘죽는다는 것!’ 우린 다 죽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죽을 것이니까, 그냥, 여기서, 일찍 죽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않됩니다. 우리 인간은 반드시 죽을 줄을 알면서도, 그래도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아갑니다. 언젠가는 죽을 인생, 그냥 일찌감치 죽자거나, 아님 어차피 죽을 인생, 적당히,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자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인생살이에서는, 그 일이 반복적 단순 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 입니까?
우린 내일이면 다시 배고파진다는 것을 안다고해서 ‘또 배고파질 건데 먹어선 뭐하느냐’고 말하는 얼간이가 아닙니다. 우린 ‘몇일만 지나면 또 먼지가 쌓일 것이 뻔한데 청소는 해서 뭘하느냐’고 말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덧없이 흘러갈 것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우린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인생이란 꼭 행복해야만 사는 것도 아니고 불행하다고해서 접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과 불행, 그 둘 사이에는, 그 둘을 넘어서는 ‘말없는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라틴어 인문학 (57) _ 11월 10일
Cogito ergo sum Credo ut intelligam.

(코기토 에르고 숨 크레도 트 인텔리감)
cogito, 생각하다, 의심하다, 영어 think
ergo, 그러므로, 영, therefore
sum, 이다, 있다, esse,
credo, 믿다, 확신한다, believe 같이 쓰는 말, confido, 영어의 confident
ut, 하도록, 하라고, 영어 for
intelligam, 원형 intelligo, 알아듣다, 이해하다, 깨닫다, 식별하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I think therefore I am. 르네상스 초기 근세 철학자요, 인문학자였던 르네 데카르트 (R. Descartes)의 말.
Credo ut intelligam.
나는 믿는다. 알기 위해서.
나는 알기 위해서 믿는다.
I believe to understand.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누스 (St. Augustinus of Hippo)가 한 말로 후에 안셀름 (Anselm of Canterbury)이 그의 명제 Proslogion 에서 사용한 명제.
Cogito ergo sum 과 Credo ut intelliga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알게된다’
이 2개의 라틴어는 중세와 근세, 기독교 신앙과 인본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명제라 할수있습니다.
Cogito ergo sum은 이성주의의 근본 뿌리인 반면, Credo ut intelligam 은 기독교 신앙의 원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Cogito ergo sum 과 Credo ut intelligam, 이 두 명제는 역사를 통하여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기도 했고, 피차 상호 보완하기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나치게 이성주의나 주지주의로 흐르는 것을 견제하기도하고, 반면에 지나치게 신비주의나 광신주의로 흘러가지 않토록 이 둘은 상호 견제와 협력을 이루어 왔던 것입니다.
Cogito ergo sum
Credo ut intelligam
오늘은 이 두 문장과 함께, 혹은 이 두 문장을 이용하여 다른 몇가지 라틴어 문장들을 추수려 보았습니다.
1) Cogito ergo sum
2) Credo ut intelligam
3) Desidero ergo sum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탐욕적 인간.
4) Amo ergo sum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사랑하는 인간
5) Spero ergo sum
나는 희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희망하는 인간
6) Laboro ergo sum
나는 일한다 (노동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일하기 위해서 사는 인간.
7) Ludo ergo sum
나는 춤추며 논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즐기는 인간
8) Cano ergo sum
나는 노래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예술적 존재로서의 인간
9) Possideo ergo sum
나는 소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소유를 추구하는 인간존재
10) Conquiro ergo sum
Commercor ergo sum
나는 구입한다 (사들인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소유하고 소비하는 인간.
11) Comedo ergo sum
나는 먹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먹기위해 사는 인간.
12) Bibo ergo sum
나는 마신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쾌락적 인간
이런 오래된 라틴어 단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내 존재의 이유, 목적, 방향, 목표, 근거를 다시 묻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무엇에 근거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살아지면, 이것이 없어지면 나라는 존재의 삶은 더 이상 의미도 가치도 없어진다고 할수있는 ‘나의 본질’ ‘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내가 서람으로 존재하는 한, 마지막 까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저도, 여러분 인문학 친구들도 함께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Cogito ergo sum
Credo ut intelligam
Desidero ergo sum
Amo ergo sum
Spero ergo sum
Laboro ergo sum
Ludo ergo sum
Cano ergo sum
Possideo ergo sum
Conquiro ergo sum
Comedo ergo sum
Bibo ergo sum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말 50가지’ – 아무리 바쁘셔도 꼭 소리내어 읽으시면서 오늘 하루를 출발하십시다. 날마다 해 보니까 정말 좋네요.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86) _ 11월 11일

침묵의 뿌리
은퇴 후 나이를 더해 가면서 몇 차례에 걸쳐 지니고 있던 책들을 주변에 나누고 나니 이젠 남은 것들이 그리 많질 않습니다.
엇그제는 그 중에서 작가 조세희님이 쓴 ‘침묵의 뿌리’를 다시 빼들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낡은 책이지요. 초판이 1985년에 나왔고 지금 제 손에 있는 것은 2004년, 7쇄 입니다. 조세희님은 우리들에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더 잘 기억되는 분인데, 이 ‘침묵의 뿌리’는 당시 사북 탄광의 아픔을 담고 있는 여러 흑백 사진들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온 그 시대의 양심적 증언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저 보다 나이가 두어살 위인 작가는 저와 ‘동시대의 사람’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침묵의 뿌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류는 지구라는 하나의 별 속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사실은 동시대인이 아니다” (14쪽)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분명 ‘하나의 세계’ 이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모두 ‘동시대인’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작가는 우리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비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동시대인 이면서도 비동시대인 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 보면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 임을 수없이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우린 한 지구 속에서 제각기 다른 사람들 처럼 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갖은 자와 없는 사람 사이의 간극입니다.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 잘 사는 제 1세계 나라와 못사는 제 3세계 나라의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벌어져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21 세기를 위한 21 가지 제언’에서 말합니다.
‘세계 부의 50%는 1%의 부유층이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 부자 100명이 세계 최저 빈곤층 40억 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 같은 나라 까지도 국부의 87%를 상위 10%의 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
‘그런데 더 큰 문제는 2100년이 되면 실제로 부유층이 빈곤층 보다 더 재능 있고 더 창의적이 된다는 점이다. 부자들과 부자 나라가 가난한 사람들이나 가난한 나라 보다 더 아름답고 창조적이고 지성적이고 건강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부가, 물질이, 돈이 인간의 정신적, 영적, 도덕적 영역 까지도 확실하게 선점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자의 말이 옳고, 갖은 자의 양심이 바르고, 잘 사는 사람들의 행동이 도덕적인 것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 여기,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 양극화만 심해지는 게 아닙니다. 지적 양극화, 권력의 양극화, 세대적 양극화, 성적 양극화, 사상의 양극화, 신념의 양극화, 종교의 양극화, 인종적 양극화를 포함하는 각종 사회적 양극화 (Social Polarization) 와 사회적, 계층적 불평등은 우리로 하여금 ‘진짜 우리가 같은 지구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종 인간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예전에는 말했습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 같아야 사람이지!’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말한답니다. ‘돈 없는 사람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은 사람도 아니야!’ 시대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 세상 이치의 근본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실로 오늘, 우리 시대는 돈이 사람의 인격, 양심, 신앙, 자격, 존경, 품위를 결정하는 때가 되어 버렸습니다. 별로 뛰어난 것이 없는 사람도 명품을 들고 있거나, 고급 자동차를 타거나, 고급 주택지에, 큰 집에서 살면, 그 명품과 고급 자동차와 비싼 집이 그 사람을 착하고, 눙력있고, 위대하고, 더 나아가 인격 까지 고상한 사람이 되게 해 주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돈이란 단순한 물질이나 재화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모든 것 중에 모든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멋도 모르고 철이 덜든 사람들만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라고 말 할 뿐입니다.
조세희님은 그 책, ‘침묵의 뿌리’에서 이런 글도 남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좋은 말을 수없이 많이 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다음에 한 일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당시 그들이 했던 그 많은 말들을 몇 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드디어 우리가 죄지을 차례가 되었다!'”
이 말은 그 책에 두 번 나옵니다. 12쪽과 123쪽 입니다. 어쩜 그리도 똑같은지, 어쩜 그렇게도 변함이 없는지, 오늘을 살면서도 우린 여전히 오래전 그 시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세상도, 인간도, 역사도, 가인 이후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는 자책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때와 똑같이, 집단적 탐욕과 불의에 그대로 몸담고 있습니다.
그제나 이제나 그들은 고상한 말, 좋은 말, 참 잘하고, 참 많이하고, 참 멋지게 합니다.
제 다이어리엔 두꺼운 카드 보드에 쓴 좋은 말씀이 끼어 있습니다. 그날 이후 너무 감격해서 그 분의 연설문 중 몇 문장을 써놓곤 가끔 읽곤 합니다.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저는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도 진심으로 우리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의 동반자이고 대화를 정례화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 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 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대로 청와대에서 나오겠습니다. 퇴근갈에는 시장에 들려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수시로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 소리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하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겠습니다. ×××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참 아름답고 멋진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조세희님이 남겨준 그 더음 말도 기억합니다.
“드디어 우리가 죄지을 차례가 되었다 !”
그런데, 정말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만 그렇습니까?
나는 어떻습니까?
저는 평생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고, 좋은데다가, 거룩하기 까지 한 말들을 수도 없이, 많이 해왔습니다. 멋진 설교, 멋진 강의, 멋진 글, 멋진 책들…
할 말이 없습니다.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조세희님이 “침묵의 뿌리”를 통하여 제 입을 막고 있습니다.
야, 아놈, 홍길복 ! 코로나 마스크만 끼지 말고, 양심의 마스크도 좀 끼고 살아라!
그 시대와 그 이들은 모두 오늘 저의 스승이요, 반면교사들 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오늘의 추천도서 : 침묵의 뿌리, 조세희 지음, 열화당, 1985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유발 하라리 (Tuvalu Harari) 지음, 전병근 옮김, 김영사, 2018.
라틴어 인문학 (58) _ 11월 12일
Dum inter homines sumus, colamus humanitatem.
(둠 인테르 호미네스 수무스 콜라무스 후마니타템)
dum, 접속사 ×××동안은, 영어 during
inter, 안에서, 영어도 into
humines, 원형 homo, 인간들
humanitatem, 원형humanus 인간답게, 인간적으로
sumus, 원형 sum, 이다. 있다.
colamus, 원형 colo, 여긴다, ~같다, ~다워야 한다,
Dum inter homines sumus, colamus humanitatem.
둠 인테르 호미네스 수무스 콜라무스 후마니타템
인간들 속에 있는 한 인간다워야 한다.
인간들 속에 있는 한 인간답게 살아야한다.
고대 로마 시대의 격언이지만, 이 문장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공자 논어 중, ‘안연편’에 나온다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군군신신부부자자’ (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원래 이 말은 중국 제나라의 왕이었던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정치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삶의 중심중 하나인 정치를 포함하여 사람이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원칙을 일러주신 교훈이라 할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제각기 자기 자신의, 위치, 본분, 책임, 역할이 있습니다. 자연 까지도 그러합니다. 산은 산다워야하고 물은 물 다워여합니다. 해, 달, 별, 바람, 비, 눈을 비롯하여 식물에게는 식물, 동물에게는 그 동물에 따른 ‘그 자신의’ ‘그 본연의’ 위치와 역할과 책무가 있고, 모두들 자신에게 주어진 그 책임을 다함으로 우주와 만물은 운행되는 것입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Dum inter homines sumus, colamus humanitatem.
인간들 속에 있는 한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이 라틴어 문장과 공자님의 가르침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인간 공동체 안에는 제각기 ‘자신의 자기다움’이 있습니다. 그 ‘자기다움’을 지킬 때, 세상은 아름다움과 조화와 균형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대통령은 대통령 답고,
공직자는 공직자답고,
군인은 군인답고,
사장은 사장답고,
직원은 직원답고,
선생은 선생답고,
학생은 학생답고,
목사는 목사답고,
스님은 스님답고,
신자는 신자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어머니는 어머니답고,
자식들은 자식다운 세상,
이것을 공자님은

‘군군신신부부자자’라 하셨고,
고대 로마인들은
Dum inter homines sumus, colamus humanitatem 이라했던 것입니다.
그 이름에 합당하게 말하고 처신해야 합니다. ‘정명’입니다. 이름값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개는 개답게, 소는 소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 다움’이 사라졌습니다.
인간에게는 인간다움이 있습니다. 사람은 짐승처럼 되어도 않되고 반대로 하느님 처럼 될려고 해도 않됩니다. 그냥 딱 사람처럼, 사람답게만 말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Dum inter homines sumus, colamus humanitatem.
인간들 속에 있는한 인간답게 !
(추천도서: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제롬 케이컨 지음, 김성훈 옮김, 책세상. /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찰스 파스테르나크 편저, 채은진 옮김, 말글빛냄, 2008)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말 50가지’ – 오늘도 꼭 소리내여 읽어보세요. 정말 좋은 출발이 되실겁니다.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87) _ 11월 13일
동물농장. 인간세상. 사람고시
‘동물농장’ (Animal Farm) 은 원래 유명한 소설이어서 읽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이 1945년에 출판한 풍자소설 입니다.
소설의 스토리는 주로 스탈린 시대를 배경하여 그와 그 시대를 풍자적으로 비판함으로 마치 반공소설이 아니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오늘날은 그런 오해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사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추려봅니다. 한 시골농장에서 가축들이 인간주인의 관리가 너무 가혹하다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촟불혁명은 아니지만 가축들이 단합하고 의기투합하여, 인간주인인 농장주와 관리인들을 축출하고 자기들 끼리 ‘평등한 동물농장’을 만들기로 결의합니다. 그들은 농장 이름도 ‘동물농장’ – Animal Farm 이라 고치고 자기들의 지도자로 돼지를 선출합니다. 돼지가 소, 말, 양, 개, 고양이, 닭, 거위 등 자기들 세계에서는 그래도 머리가 제일 좋고, 지능지수가 가장 높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돼지의 이름은 나폴레옹입니다. 처음에는 규칙도 새로 만들고 서로 하나가 되어 그런대로 재미있게 동물농장이 운영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자 풍차를 만드는 사업을 계기로 하여 그들 사이에는 권력투쟁이 노골화 됩니다. 동물들은 서로 이간질하고 거짓말을 하며 싸우게 되면서 지도자 나폴레옹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어 드디어 독재자가 됩고 맙니다. 동물농장의 권력자가 된 나폴레옹과 그의 추종자들은 사람들이 자는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호의호식하며, 날마다 술을 마시며 온갖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마침내 지배계급과 다른 동물들 사이에는 갈등이 심화되더니 엄청난 전쟁으로 번져 모두가 함께 망하는 것으로 끝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 읽었던 ‘동물농장’을 상기하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도 동물 중에 하나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우리는 그것들과는 ‘다른 동물’ 이어야 할텐데, 정말 그런가하는 의구심이 밀려옵니다. 우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인간세상의 지도자로 뽑지, 돼지를 우리의 지도자로는 뽑지는 않습니다. 우린 인간이니까, 우리는 사람이니까, 어디까지나, 인간을, 사람을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법관이나 교수나 회장이나 사장이나 아버지나 어머니로 모십니다. 우리는 ‘동물농장’에서 사는 가축들이 아니라 ‘인간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인간의 기본은 ‘인간됨’ 입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인이 되기 전에 먼저 사람부터 되어야하고, 사업가나 교육자나 종교인이나 부모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부터 되는 것이 순서입니다.
전에 신학교에서 입학 시험 때, 면접을 하면서 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오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잠간 머뭇거리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좀 되어 보려구요!
대부분 획일적으로 ‘주의 종이 되려고요’ ‘목회자가 도려고요’ ‘선교사가 되려고요’ 라는 식으로 대답하는데, 그는 참 생소하면서도 신선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좀 되어 보려구요!’ 그런데 그때 제가 그분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님 사실 신학교란 일단 사람이 된 사람 중에서 그 다음 무엇을 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곳 입니다. 우린 일단 사람이 되었다고 판단된 사람을 선발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분의 대답이나 저의 코멘트가 모두 일리있는 말로써 오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사람됨이 먼저요, 사람됨이 근본이요, 기초입니다. 사람되는 시험부터 먼저 치고 나서 합격이 되면, 그 다음에 대통령이 되든지, 장관이 되든지, 국회의원이 되든지, 목사가 되든지, 스님이 되든지, 교육자가 되든지, 애비가 되든지, 어미가 되는 것이 옳바른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문과이든 무과이든, 과거를 치룰 때엔 논어나 맹자를 포함하여 사서삼경을 시험과목으로 출제하고, 시경이나 서경이나 역경을 읽고,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게 했습니다. 인문학이 행정이나 국방, 정치나 과학, 사회나 인간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요, 근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각종 국가고시나 자격시험이나 대학입시를 비롯하여 교수임용, 목사고시 등에서 인간됨의 바탕이랄 수 있는 이런 인문학적 소양시험을 꼭 치루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고등고시,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변호사시험, 의사고시, 목사고시, 교수임용 등등 각종 자격시험에서는 필수로 ‘소크라테스의 변명’ ‘방법론 서설’ ‘순수이성비판’ ‘논어’ ‘맹자’ ‘대학’ ‘시경’ ‘서경’ 등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살펴볼수 있는 시험을 제도화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도 나이만 규제하지 말고 먼저 입후보를 하려면 입후보자 자격시험으로, ‘목민심서’나 ‘맹자’ 로크나 루소, 벤담이나 밀의 책들을 시험과제로 제시하여 여기에 합격한 사람들로 입후보자의 자격을 한 단계 높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하면 오늘날 진짜 수준 이하의 정치인들을 어느 정도는 줄일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목사고시도 성경시험, 교회행정, 설교학 같은 것들만 보지말고, 고전이나 상식, 타종교의 경전이나 인문학책들 중에서도 시험을 치루게 하여 폭넓은 교양과 인간됨의 바탕을 테스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간 세상’이 점점 ‘동물농장’과 ‘동물의 세계’로 급속하게 변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어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이런 저런 잡다한 고뇌를 함께해 봅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추천도서: 동물농장, 조지 오웰 저, 도정일 옮김, 민음사, 2001)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말 50가지’ – 이 작은 책갈피는 오늘의 삶을 보다 더 근본으로 가깝게 가도록 도와 주는데 도움을 드립니다. 작은 일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매일 천천히 소리내셔서 읽어 보세요. 제가 해 보니까 참 좋네요.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