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시드니의 동백꽃을 보며(1)
필자의 집 입구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5월 초순인 이맘때 즈음에는 빨강색 꽃망울을 화사하게 터뜨린다. 이 나무가 2층 다이닝룸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게 되는데 아침식사를 하는 시간에 꿀을 빨아 먹는 새 honeyeater[?]를 비롯해 몇 종류의 새들이 분주하게 꽃송이를 비집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필자의 고향인 경기 지방엔 동백나무를 볼 기회가 없었는데 시드니의 주택가에는 동백나무가 정원수로 많이 심겨져 있어서 온대[溫帶]지방에 사는 것을 실감한다. 동백[冬柏]이라는 이름 자체가 겨울[冬]의 우두머리-맏[伯]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동백꽃이 자취를 감추면서 봄을 맞게 되지만 시드니는 봄이 아닌 가을에 꽃이 피고 이름뿐인 겨울이긴 하지만 때로는 눈을 흠뻑 맞으면서도 빨강 빛깔의 아름다운 꽃잎을 드러내는 동백꽃은 한국에서 겨울 꽃의 백미[百媚]로 칭송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시드니의 겨울은 어쩌다가 기온이 급강하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을인지 봄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따듯한 날도 많으니 다른 대륙에서 이주[移住]한 나무들이 헷갈려서 개화기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동백나무를 가운데 두고 철쭉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데 한국 같으면 진달래와 함께 봄에나 꽃을 피워야 할 철쭉꽃이 동백꽃을 시샘이나 하려는 듯 연분홍색의 꽃잎을 활짝 피우니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인식세계를 가지고 있다. 3월경부터 한 두 송이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던 동백꽃이 5월에 들어서면서 만개하였고 아직도 꽃망울이 많은 것으로 봐서 계속해서 꽃송이를 장식하게 될 것 같다.
동백[冬柏]이라는 이름
동백[冬伯]이라는 말 자체가 겨울의 으뜸이라는 의미다. “伯”이라는 한자가 ‘맏-elder’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 한국의 농촌진흥청은 금년[2015년]에 엄동설한에 꽃을 피워내는 동백을 1월의 꽃으로 선종한다고 발표한 바가 있다. 동백은 청렴과 절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꽃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이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한국, 중국, 인도차이나반도, 일본 등 아시아지역에 200여종이 서식한다. 한국은 서해 어청도부터 동해 울릉도까지 주로 바닷가에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다. 동백꽃의 꽃봉오리를 말려서 차를 다려먹기도 하는데 쓴맛과 매운맛이 나며 어혈을 없애주고 부종을 내린다고 해서 한방[韓方]에서 약재[藥材]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산다화[山茶花]라고도 한다. 밑에서 가지가 갈라져 관목으로 되는 것이 많다. 전체에 털이 없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매끄러우며 작은 가지는 갈색이다. 꽃잎이 수평으로 활짝 퍼지는 뜰동백이라는 유사종[類似種]도 있다.
시드니의 nursery에는 동백묘목을 많이 판매하고 있는데 표찰[標札]에 camellia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 생물의 종[種]은 새생물분류단계의 “속[屬]genus+종[種]species+명명자[命名者]”로 표기하는 것인데 동백나무의 학명이 “Camellia japonica Linne”이다. Camellia는 동백나무의 속[屬]이며 japonica는 종[種]이고 Linne는 명명자 이름이다. 식물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 사람, Linne가 2명법이라는 생물의 종을 나타내는 방법을 창안해서 세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식물의 종(種)》을 저술하면서 다룬, 약 4,000종의 동물, 5,000종의 식물Camellia에 명명자[命名者]로 그의 이름을 넣었으니 생물 종명[種名]에는 Linne가 많을 수밖에 없다. 동백나무의 학명은 Camellia japonica L.로 속명인 Camellia는 게오르그 카멜(Georg Joseph Kamel; 1661-1706)에서 유래된 것이며, 게오르그 카멜은 체코슬로바키아 식물학자이자 선교사로 17세기에 필리핀에서 동아시아의 식물을 연구하며, 동백나무를 유럽에 소개한 사람이다. 린네가 동백나무를 학계에 발표하면서 동백나무의 속명(屬名)을 카멜리아(Camellia)라 붙여 카멜(Kamell)의 동백나무 연구 업적을 기렸다. Camellia속은 동남아시아에 약 100종이 분포되어 있는데, 그 중 우리나라에는 동백나무와 중국 원산의 차나무(Camellia sinensis <L.> Kuntze)가 자생하고 있다. 영어로 동백나무는 Camellia다
김유정의 소설”동백꽃”
한국인에게 동백꽃 하면 이미자의 히트곡 “동백아가씨”, 동백나무로 뒤덮인 전남 여수의 “오동도”와
함께 강원도 춘천 출신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도 연상하게 되는데 동백아가씨나 오동도는 동백나무와 연관이 있지만 소설 “동백꽃”은 주로 해안가에 서식하는 동백나무와는 전혀 다른 나무다. 강원도 에서는 산수유 꽃 색깔과 비슷한 노랑색의 꽃이 피는 생강나무를 산 동백이라고 하는데 이 나무 이름에서 소설제목을 설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생각나무는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 부르는 것이다, 생강나무로는 차를 끓여 먹기도 하고 열매는 기름을 짜서 머리 기름으로도 사용하였다. 김유정의 소설에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 하며 주인공들의 로맨스가 동백꽃과 함께 정감 있게 묘사 되어있다.
“거지반 집께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늘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 하니 깔렸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 맞게스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놀란 것은 그 앞에서 또 푸드득, 푸드득,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놓고 …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조매화[鳥媒花]
동백꽃에는 아카시아 못지않게 꿀이 많다. 한국에서는 동백꽃이 만발하는 겨울에 곤충들이 활동 할 수 없으며 대신해서 참새와 비슷하게 생긴 동박새가 꿀도 빨아 먹고 꽃가루를 매개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동백꽃을 조매화[鳥媒花]라고도 하는 것이다. 호주에는 꽃들이 유난히 많은 탓인지 꿀을 빨아먹는 새들이 않다. 그런 연유인지 새 종류 중에 꿀을 먹는 새라고 해서 honeyeater라고 불리어 지는 새들이 많다. 꿀벌들이 동백꽃 꿀을 모아 주지 못하니 사람들이 동백꽃 꿀을 맛볼 수 없다. 동백꽃이 문학 작품이며 노래 등으로 사랑 받고 있다. 두보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히는 이태백의 시집에도 신라의 해홍화[동백꽃]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한국의 동백꽃은 오래 전부터 명성이 알려져 왔음을 짐작케 한다. 동백기름은 여인의 머릿매를 맵시있게 매만져 주는 머릿기름으로 동백나무로 깍은 얼레빗과 동백기름을 이고 산골 무주 구천동에서 땅끝 두만강까지 행상을 다니던 박물장수 이야기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동백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도둑이 잘 든다고 믿어 집안에 심지 않는 나무로 알려지고 있으며 꽃이 떨어질 때 통꽃이므로 꽃잎이 지는 것이 아니라 꽃송이가 꼭지채 쑥 빠져 떨이지는 것이 흡사 사형당할 때 목이 잘려 떨어지는 것과 같은 불길한 인상이라 해서 이를 멀리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시드니에는 5월 들어 동백꽃이 지기 시작하는데 꽃잎을 날리기도 하지만 꽃송이가 칼로 도려 낸 것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한국의 동백꽃 명소
한국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여러 곳의 동백나무숲이 있다.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동백나무숲은 3백년 전에 마량첨사가 바다에 밀려온 꽃뭉치 꿈을 꾸고 바닷가에 가보니 꿈에 본 꽃을 발견하고 그 꽃을 가꾸어온 것이 바로 이 동백나무숲이 되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경남 거제의 동백섬이라 불리는 지심도는 거제도 지세포에서 동쪽으로 6km 떨어진 해상에 자리하고 있으며 해안선 길이 3.7km, 면적 0.36㎢ 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지만 지심도가 유명세를 타는 이유는 오직 하나, 동백꽃 때문이다. 여수 오동도 동백에는 어부 남편을 기다리다가 도둑을 피해 바다에 몸을 던진 여인의 전설이 전한다. 오동도로 들어가는 길이 768m의 방파제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다. 서남부의 해안 전북 고창 선운사 에는 수령 500년 정도의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선운사 고랑으로 /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선운사 동구, 미당 서정주>,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말이에요~”<송창식, 선운사> 등의 시로 노래로 유명하며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곳이다. 광양 옥룡사지 동백꽃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도선국사가 35년간 머물렀다는 옥룡사지가 있다. 옥룡사의 흔적은 찾기 어렵지만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지는 동백나무 7천여 그루가 꽃대궐을 보여준다. 동백꽃을 보며 울컥 고향생각에 젖는 것을 어쩌랴?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1963년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여주 대신고등학교 교감과 수원 계명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은퇴,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