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6)
에셀 커를 부인(본명: 앤스티, 1881. 3. 8-1969)
부산 1902-5; 진주 1905-15
에델 안스티(사진 우)는 루더글랜 감리교회와 기독교면려회의 회원이었다. 1902년 초 그녀는 커를과 결혼했다. 에델은 1903년 2월 9일에 장녀 사라 에델(Sarah Ethel)을 출산했다. 1903년 말경, 커를 가족이 부산진의 한국형 집에서 살고 있을 때, 커를 부인은 건강이 악화되어 고생을 하였다. 1904년 초 프랜시스(Frances; 아명 Annie)가 태어났다. 두 딸은 1913년 이후 중국 지푸(芝罘)에 있는 학교에서 일 년의 대부분의 보냈다.
커를 부인은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을 보살피는 일 외에도 여성들을 위한 주일학교, 예비신자교육과 세례를 준비하 는 소녀들과 여성들을 위한 금요일 저녁반, 연례 사경회에서 가르쳤다. 몇몇 경우, 그녀는 여성들을 가르치기 위해 시골 교회들을 방문할 때 커를을 동반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아들 휴 대니얼 (Hugh Daniel)는 1911년 9월 20일에 태어났다.
에셀 커를은 따뜻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동료선교사들과 한국인 이웃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1915년 커를 가족이 한국을 떠나서 호주에 영속적으로 남아야 했던 것은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어가고 있었고, 또한 두 딸의 미래의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