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예수와 큰 구원II (1)
(욘 4:10-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지난주에는 예수님의 사역이 요나의 사역과 비교할 때, 당연한 일이지만, 더 크다는 사실에 대하여 아래 본문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마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즉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요, 요새 말로 이야기 하자면, 선교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의 선교사역으로 말미암아 니느웨라는 성(장차 앗수르의 수도가 되는 큰 성)의 수십만 명의 사람(약 60만명으로 추산)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당할 위험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라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긴급한 말씀(회개와 구원)을 전할 때, 그 사역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또한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하신 사역은 그 당시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것이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재림하실 때까지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즉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한 개의 성 정도가 아니라, 지구에 온 인류가 그 대상이며, 또한 시대를 망라하는 이 세상 끝 날까지에 대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예수님 이전이나 이후에 어떤 선교사역보다도 큰 사명을 띠고 있으며, 당연히 큰 구원을 이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지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최대의 선교사역이며, 곧 최대의 표적(miraculous sign)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예수님의 큰 구속사역의 예표가 되었던, 요나의 사역을 기록한 요나서의 마지막 두 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읍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욘 4:10-11)
하나님의 큰 사랑
오늘 말씀은 요나가 니느웨의 회개로 그 성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자, 그가 하나님께 성을 낸 것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어떻게 성을 내었는가 하면: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욘 4:3)
요나는 죄인인 이방민족의 구원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요나의 고국인 이스라엘의 이웃나라로 항상 위협적인 존재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의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께 불경스러웠기 때문에 저주받아 마땅한 나라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나의 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왔던 것을 요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징계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끌어안으셨던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 당시 전쟁마다 거의 다 승리를 하였지만, 그 주변국가(블레셋, 미디안 등)들을 완전히 진멸하지 않으셨던 하나님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니느웨성이 회개를 한다면, 하나님께 잘못을 빈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요나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적 앗수르의 가장 중요한 성인 니느웨가 살아남을 기회, 즉 멸망의 경고를 하고 싶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 성으로 가는 내륙 길에 반대되는 욥바라는 항구도시로 가서 당시 세계의 끝이라 여겨지던 서반아(스페인)의 남쪽 항구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될 수 있는 한 멀리 도망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집요한 독촉(큰 물고기 사건)으로 말미암아, 니느웨에 할 수 없이 가게 되어 그들의 멸망을 경고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마음에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즉 니느웨에게 경고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멸망할 터인데, 경고를 해서 회개를 할 경우는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그런 느낌인 것입니다.
아무튼 요나는 하나님께 그런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하시니라.’ (욘 4:1-4)
나름대로 하나님의 자비와 인애를 믿기 때문에, 굳이 경고하지 않아도 결과는 그들이 회개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니느웨에는 가지 않겠노라고. 제가 경고하는 것이 무슨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고 생각했던 요나였습니다.<다음호에 계속>
손창건 전도자(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