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Story 열 여덟 번째 이야기
화평케하는 예배자
시편 예배자 08.
“내가 화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주소서.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내게 더할꼬.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숮불이리로다.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을 싸우려 하는 도다”(시편120편)
우리들이 살아가고 이 땅은 온갖 전쟁의 소문과 IS의 테러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때에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며 예배하는 우리들은 교회와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 가운데 온전히 세워지는 진정한 화평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5:9)라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화해자인 것은 아닙니다. 때론 어떤 사람들은 싸움을 일으키며, 분쟁을 만들어 내는 자입니다. 그들을 문제를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런 자들과 함께 살거나 함께 일해야만 합니다. 시편 기자가 120편을 썼을 때가 아마도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였습니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을 싸우려 하는도다”(6-7절). 이 구절은 마치 이땅에 계셨을 대의 예수님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듯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 분을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예수님을 핍박하며 결국에는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후로 이 세상에는 갈등이 들어왔습니다. 나라들은 식량과 에너지문제로 서로를 대적해서 전쟁을 벌이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않습니다. 다윗은 갈등을 겪어야 했고,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갈등을 경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고 믿는 예배자인 우리들은 화평을 허무는 자들이 아니라 화평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평안이 있고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하나님과 전쟁 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갈등을 경험하는 한편에 평안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맞아야 합니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라고 시편 기자는 말했습니다. 이 말을 히브리 원어대로 해석하자면 이런 말이 됩니다.“나는 화평이지만 저들은 전쟁이로다” 우리는 각각 전쟁터가 되거나 축복의 장이 됩니다. 각각 전쟁을 선포하고 있거나 평화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화평케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그들과 함께 평화가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분쟁하는 사람들과 함께 들러서면 전쟁을 따라 오는 것을 봅니다. 과연 나는 이 세상과 교회앞에 화평케하는 자인지 아닌 분쟁 가운데 서있는 자인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배자들은 화합하는 자입니다. 예배자는 화평케하는 자입니다. 예배자는 겸손히 주님의 말에 순종하며 헌신하는자입니다. 이 악하고 갈등이 난무하는 교회안과 사회와 더 나아가 이 세상 가운데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들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예배자가 됩시다.
양화영 전도사(시드니동산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