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라틴어 인문학 (56) 중에서 _ 11월 5일자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Dei Deo

(쿠아에 순트 카에사리스, 카에사리 에트 쿠아에 데이 데오)
quae, 원형, quaero. 묻다, 청하다, 질문하다, 구하다, 추구하다, 탐구하다, 영어동사 quest, 명사는 question.
sunt, 이다, 있다, be동사
Caesaris, 소유격, 가이사의 것
Caesari, 목적격, 가이사에게
Dei, 소유격, 하나님의 것
Deo, 목적격, 하나님에게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Dei Deo
(쿠아에 순트 카에사리스, 카에사리 에트 쿠아에 데이 데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려라 (구하라, 청하라, 물어라)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드려라 (구해라, 청해라, 물어보아라)
Give to the emperor the things that are the empero’s, and 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
기독교 교인이 아니드래도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귀절로 신약성서 마가복음서 12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전통적해석 중 하나는 가이사가 불의한 세속적 독재자라 하더라도 기독교는 그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복종하여 세금을 내는 등 국민으로써의 의무를 다해야한다는 해석입니다. ‘교회와 정치는 분리된다. 교회는 세속 정치에 개입해서는 않된다’는 식의 정교분리를 주장했던 보수적 한국교회는 이런 논리를 지지하면서 유신시대나 군부독재를 옹호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세속 (정치)역사에 대한 교회의 불개입을 통하여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좀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드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Dei Deo는 이 말씀의 진의는 오히려 후반부에 더 큰 강조점이 있다고 하면서 교회의 세속적 책임에 방점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 말은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말이고 설명을 들어도 그리 기분 좋게 이해가 잘 않되는 구절입니다.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Dei Deo
저는 신학적 논쟁이 있는 이 말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해 봅니다.
이 말의 시작은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던져진 시험, 올무, 테스트에 빠지지 않고 피하는 방법을 택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의에서 던져진 질문에 직답을 피함으로 인문학도들에게 시험이나 올무를 피해가라는 지혜를 보여주신 것아라고 봅니다. 인생이란 모든 질문에 직답하기 보다는 기다리거나 은유나 상징이나 피해가는 길을 통하여 지혜롭게 대처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멀더라도 직행 보다는 돌아가는 길이 오히려 더 빠른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그 자리에서 직접 모두 다 답하지 마라’
둘째는 ‘섞지 말아라. 이것 저것 모든 것을 한데 섞지 말아라. 이것과 저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근본이 다른 것을 같은 차원에서 보는 것은 발생학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고 봅니다.
셋째는 ‘인간이란 영과 육으로 되어있는 존재다. 이원론적이긴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하늘과 땅, 정신과 몸, 세상의 통치와 하늘의 통치가 있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여기에서 쓰인 라틴어 동사 ‘quaero’의 의미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본래 신약 성서가 사용하고 있는 Greek에서 ‘아포도테’로 쓰여진 이 단어가 Latin Vulgata에서 quaero, 즉 구하다, 묻다, 질문하다, 청구하다는 다양한 뜻을 지닌 단어로 번역된 역사를 잘 알 수는 없습니다만 이 단어 quaero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quaero의 의미를 대입하여 텍스트를 다시 해석해 보면 이렇게 풀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한테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칠 것인가 아닌가 묻지 말고, 가이사의 것, 세속적인 것, 정치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는 가이사한테 가서 물어보고 하느님에 대한 문제, 영적이고 정신적인 문제, 진리와 생명에 대한 문제는 하느님 한테 찿아가서 물어 보거라. 이게 정답이다” 라틴어 quaero는 영어에서 render to, give to, give back to, pay to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역사에는 많은 우문현답들이 있었습니다만 우리는 성서신학적 해석을 떠나서 인문학적 시각에서 이 문장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Dei Deo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물어보고 하느님에 대한 것은 하느님께 물어보시오.
시험과 올무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누가 무슨 말을 했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이것 저것 모두 다 하나로 섞어놓지 마시오.
여러가지 렛슨을 얻을 수 있는 귀절입니다.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Dei
Carpe diem !
Bonam fortunam !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말 50가지 – 이 아침도 너무 큰 소리는 아니지만 조용히 소리내어 읽어봅니다. 내 마음에 감사와 행복이 묻어납니다.

○ 마가복음 12:13~17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 병행구 마 22:15-22; 눅 20:20-26)
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 생전의 유대땅을 지배하던 로마 황제는 아구스도 (아우구스투스, Augustus, 재위 BC 27년 ~ AD 14년; 누가복음 2:1)와 디베료 (티베리우스, Tiberius, 재위 AD 14년 ~ 34년; 누가복음 3:1)다. 당시의 유대땅은 로마의 점령 하의 속주로 로마 황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예수께서 국가세금에 대한 정당성을 말씀하시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가르치실 때의 ‘가이사’ (로마 황제에 대한 우리말 성경의 지칭)가 바로 이 디베료다. 디베료의 본명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Tiberius Claudius Nero)다.
디베료가 황제에 오르면서 유대지방은 로마총독과 헤롯의 두 아들에 의해 분할 통치됐는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준 본디오 빌라도 (폰티우스 필라투스, Pontius Pilatus)도 디베료 황제에 의해 AD 26년 경 유대 지방에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준 7년 후 로마로 소환 당하여 해임되고 만다. 해임 이유는 유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빌라도의 군사적 행동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디베료는 국민들에게 중과세를 하지 않고도 많은 세금을 걷을 정도로 경제에 대한 식견이 있었지만 성격적으로는 의심이 많고 잔인한 사람이었다고 후세의 역사가들은 말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단 세계 제일국가의 황제지만 그도 역시 AD 37년 카프리 섬에서 생을 마감했다.

디베료는 독재자로도 유명하다. 디베료는 몰래 남들의 얘기를 엿듣고 밤새 분노를 삭인 다음 날 처형 명단을 제시했다. 명단에는 정적은 물론, 무고한 시민이나 어린아이까지 살해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또한 디베료는 물욕이 강했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백성들은 로마의 주화로 세금을 내야 했다. 로마인들은 주피터의 아내 주노 여신이 제국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주노의 신전은 ‘돌본다’의 뜻을 지닌 모네타 (Moneta)로 불렸는데 당시 주화들은 바로 주노 신전 모네타에서 주조되었다. 여기에서 생긴 용어가 돈이라는 말 ‘머니’가 탄생한다.
예수 당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는 말 속의 동전 주화에는 바로 당시 가이사인 디베료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한 면에는 ‘황제 티베리우스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라고 새겨졌고 그 반대편에는 최고 사제 칭호가 쓰여 있었다. 디베료의 로마 통치는 23년간 이어졌다. 디베료의 충복이었던 유대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을 당시 디베료 황제는 70살이 넘은 노인이었다.
노년에 디베료는 그동안의 악행으로 인해 일어날지도 모를 보복이 두려워 로마를 떠나 나폴리 아래 카프리 섬으로 떠난다. 섬이 안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포악함을 그대로 빼닮은 후계자 카리큘라에 의해 살해됐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