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선교적 교회(2) 롬 12:18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를 쓴 게리채프만이라는 분이 심리학자 제니퍼 토머스라는 분과 함께 <5가지 사과의 언어>를 썼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왜 사과해야 하고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사과의 5가지 언어를 소개합니다.
첫째 언어는 “미안해”입니다. 사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입니다. 사과할 때에 가장 중요한 첫 번째가 바로 유감표명입니다. 그것은 미안해라는 말로 표현되어 집니다. 이것은 사과의 감정적 측면으로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준 데 대한 죄책감과 고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어느 날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는데 음식에서 상한 것 같아서 주인을 불러 음식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음식주인은 음식냄새를 맡더니 괜찮은 것 같다고 하면서 바꾸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조금 불편한 것을 내 자신이 느꼈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았더니 그것은 그 주인이 음식을 가지고 가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은 그 음식을 가지고 가면서 이렇게 말을 해야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또 미안해라는 말을 할 때에 미안한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이 화내면 건성으로 ‘미안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들은 자신들이 왜 잘못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죠. 단지 이 불편한 시간, 어색한 시간을 회피하기 위하여 미안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 사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과할 때에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무시하는 말을 한 것에 대하여 미안해,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듣고 화를 버럭 낸 것에 대하여 정말 미안하다”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할 때에 진정성이 있는 미안해가 됩니다.
둘째 언어는 “내가 잘못했어”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 수십년이 걸리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하지 못하다가 임종 앞에서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붙잡고 흐느끼면서 아들아 내가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내가 잘못 했어라고 말하는 것이 왜 그처럼 힘이 들까요? 그것은 자존심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내가 바보천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굴욕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과는 내가 잘못했어라고 상대방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폴 마이어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들 중 하나는 바로 내 자신의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셋째 언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상대방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 동시에 보상에 대한 고민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으면 반드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상대방이 감사한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작은 정성을 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너무 적은 것이라서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상대방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 받습니다. “무슨 소리를, 마음이 중요하지 내용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내용물을 봅니다. 그리고 내용물의 내용에 따라 마음이 중요해지기도 하고 중요해지지 않기도 합니다. 정말 마음이 중요하고 내용물이 중요하지 않은가요? 진정한 사과는 상대방에게 보상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속건제로 나타납니다. 레위기 19:22 “제사장은 그가 범한 죄를 위하여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것이요 그리하면 그가 범한 죄를 사함 받으리라.”
넷째 언어는 “다신 안 그럴게”입니다. 이 말은 진실한 뉘우침입니다. 뉘우침이라는 단어는 돌이킴 또는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토머스 플러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뉘우침은 빠를수록 좋다. 왜냐하면 너무 늦어 버릴 때가 얼마나 빨리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과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할께요라고 하는 고백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사과 하고 나서 나는 여전히 안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과가 아닙니다. 노력하다가 실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문제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패했다고 한다면 빨리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부제자반을 했다고 해서 부부간에 서로에게 처음 사랑처럼 잘 해주고 닭살 커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대하는 것은 노력하는 것을 기대할 뿐입니다. 노력하는 모습이 바로 진정한 사과입니다.
다섯째 언어 “날 용서해 줄래”입니다. 이것은 용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요청한다는 것은 관계회복을 원한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회복되어지기를 원한 다면 상대방에게 “날 용서해 줄래”라고 말해야 합니다.
부부제자반의 한 아버지가 부부제자반을 하면서 아들에게 편지 한 통을 쓰면서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아들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는 줄 아십니까? “아버지! 다 잊었습니다. 지난 일이고 그 당시에 제가 잘못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어요”라고 말하면서 도리어 아빠를 아들이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빠 편지를 받고 아들이 “아빠 저 감동했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면 아빠는 아들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요? 우리는 나의 자녀들에게, 나의 부모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화평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였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인은 화평하지도 않았고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교회는 자기 영역만을 넓혀왔고, 선교라는 이름으로 십자군전쟁을 하면서 사람들을 죽여 왔고, 선교라는 이름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핍박하고 괴롭혔습니다. 유럽에 가면 어느 때에는 기독교가, 어느 때에는 가톨릭이 어느 때에는 이슬람이 점령하여 황폐되어진 성전을 보게 됩니다. 그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곳에 진정한 십자가의 사랑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멀리 가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을 포용하기 보다는 더 저주하고, 미워하고 외면합니다.
이제 교회가 세상에 사과를 해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미안해요! 교회가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내가 잘못 했어요 세상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이어요 내가 조금 더 손해 보았더라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교회가 이 지역을 잘 섬길께요, 사랑으로 섬길께요”, “그리고 다신 안 그럴께요. 전도한다고 피해주지 않고, 우리끼리만 잘 살겠다고 하지 않을께요”, “이제 용서해주세요. 교회가 제대로 할께요, 이 시대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도록 노력할께요” 우리 한국교회가 이제 세상에 용서를 구해야 할 때입니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