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빌립보서 1장 6-8절 강해
6.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본문 6절의 말씀을 보면, “너희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인들을 통하여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착한 일” (헬: ἔργον ἀγαθὸν)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두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좁은 의미에서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복음전파 사역을 위해서 물질로 협력하고 후원했던 사랑의 나눔을 의미합니다.[1] 즉 5절에 나오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교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전파를 위해서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도록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랑의 나눔과 물질적인 헌신’을 ‘착한일’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나눔이 풍성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있을 때에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16 절). 그 후에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갔을 때에도 바울에게 필요한 물질을 공급해 주었다고 고린도후서 11장 9 절에서 언급합니다. 뿐만아니라, 그후 약 10년의 세월이 지나서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던 이 당시에도 빌립보 교인들은 교회를 대표해서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바울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빌립보서 4:18절 참고).
뿐만 아니라, 로마서 15장 26절의 말씀을 보면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마게도냐 지역은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를 포함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지역에 큰 흉년이 들자 빌립보 교회와 함께 다른 지역의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을 돕고자 ‘사랑의 헌금’ (헬:‘코이노니아’)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위해서 변함없이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았음을 볼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본문 6절에서 말하는 “착한일” (‘a good work’)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cf.요10-27-28; 롬 8:29). 빌립보 성도들이 사랑의 수고와 물질적인 헌신을 기쁨으로 하게된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서 힘썼던 사랑의 나눔과 헌신을 가능하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착한일”이요, 그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완성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자의 구원이 종말에 완성될 그 날까지 이성화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빌 1:19; 2:12-13 참고).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안에서 시작하신 구원의 사역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요, 그 착한일(구원)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지속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2]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현재 거룩해져가는 삶, 즉 성화되어가는 삶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증명이 됩니다. 다시말해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안에 계시는 거룩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변화 되어 가는 삶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종종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실패해도 이러한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하여 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가고 더 하나님의 성품을 닯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자는 ‘모든일들이 합력해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이 말씀은 그다음에 이어지는 8장 29절과 30절의 말씀과 연결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하는데 유익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빌립보서 1장 7절을 보면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면서 비난자들로 부터 혹은 이단으로 부터 복음을 방어하고 그것을 확정하는데 동참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나와 함께 은혜에 동참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서 빌립보 교인들은 깊은 애정의 대상이었고 바울의 사역과 삶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8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 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것은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과 헌신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구원의 은혜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조건없이 그들을 사랑할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신자들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가는데 결코 실패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즉 하루 하루의 삶을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듯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착한 일(구원과 코이노니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