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십자가의 원수2 (빌 3:17-19)
17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1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나를 본받고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본받으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살펴볼 18-19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17절의 말씀과는 대조적으로 잘못된 신앙의 모델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신앙의 영향을 끼치는 자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십자가의 원수는 누구를 가르키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교회안에서 율법을 강조하는 유대인들을 가르킬 수도 있고, 이세상의 쾌락을 즐기던 교회안의 이방인들을 가르킬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둘다 가르킬 가능성이 많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원수’는 그 당시에 있었던 두 부류의 신앙인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첫번째 부류인 율법주의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율법주의자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앞의 3장 2-5절의 내용에서 이미 언급한바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었지만 동시에 구약의 율법도 잘 지키고 할례를 행해야만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가르쳤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십자가를 말하였지만 그들의 행위로는 율법을 더 강조하고 할례라는 육체의 흔적을 자랑함으로써 십자가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주의자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자신도 할례를 받았고 자신도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 흠이 없었던 자였다고 설명하면서 그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이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이처럼 구원의 진리에 대해서 잘못된 가름침을 주고 있는 교회안의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을 ‘개들, 행악하는 자들’ 이라고 책망했습니다(3장 2). 오늘 본문 3장 18절에서는 그들이 바로 십자가의 피를 욕되게 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변질시킨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하는 모든 행위들은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선행을 하는 모든 행위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십자가의 원수’라고 부르는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율법 폐기론자들과 방종주의자들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말해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마음껏 욕망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도 된다고 생각했던 신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인간의 영혼이나 정신적인 세계는 고상한 반면에 인간의 육신과 물질적인 세계는 악하다’고 여겼던 이원론적 사상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을 받은 이단 종파가 후에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로 영지주의입니다. 그들은 육신이 아무리 타락하고 죄를 지어도 영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잘못된 신앙의 길을 가는 신자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십자가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원수가 된 자들의 특징을 오늘 본문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 말씀을 보면 십자가의 원수로 불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배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 이라고 말씀합니다.[1] 그들은 육신적인 만족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면서,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와같은 자들에게 ‘너희에게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2 :16). 또 사도 바울은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갈5:13).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세상의 법과 질서와 윤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법과 윤리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법과 윤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의 타락한 문화와 가치관에 물들어서 이 세상에 안주하면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우리들은 마지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장 2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영적인 기쁨과 내세의 확신 속에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버린 자들이 있다고 사도 바울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욕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가는 생활이지 축복을 받아서 나의 욕심과 정욕을 더 채워가는 생활이 아닙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과 싸우면서 자신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자 아래 내려 놓는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을 본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삶,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19절의 말씀과 같이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노라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부끄러운 일들을 영광스럽게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니 19절의 말씀과 같이 오직 ‘땅의 일을 생각하는자들’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누리면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금욕적인 수도원 생활을 하는 것이 더 수준 높은 신앙 생활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가정생활에 부대끼고, 직장생활의 갈등에 부대끼면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삶을 원하십니다. 문화생활을 누리면서도 그속에서 경건하고 진실한 신자의 모습으로 살아감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나를 본받아 살라고 말씀한 후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길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늘의 상을 바라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앙 생활이 되어야 할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직 이 땅의 것만 생각하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살지만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에게 맡겨주신 거룩한 성도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며 이 땅에서 천국의 영광스런 삶을 맛보며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줄 믿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소망으로 삼고, 십자가의 진리를 따르며 그 진리를 전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WBC 주석의 호돈(Hawthorne)은 ‘배를 신으로 섬기는 자들’은 율법주의자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말해서 율법에 나오는 음식 규례를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자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내면과 본질보다 신앙의 형식과 의식을 더 숭배하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추측도 가능하나 사도 바울이 ‘그들의 영광이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한 말에 의하면, 교회안의 있는 방종주의자들을 가르키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