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25강 주안에서 기뻐하라(2편) <빌립보서 3:1-3>
1.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지난 시간에 이어 3장 1-3절을 좀더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3장 1절을 보면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너희에게 안전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부 성경 학자들은 ‘안전하다’는 말을 2장 3절과 14절의 말씀과 연결해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생활이 ‘다툼과 허영’ 그리고 ‘원망과 시비’와 같은 부정적인 모습의 신앙 생활을 하지 않도록 지켜주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말씀은 우리가 누리는 영적인 기쁨이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켜준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어지는 3장 2절과 3절 말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먼저 2절 말씀을 보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한글 성경은 한 문장으로 끝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세 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블레페테’ (βλέπετε) 즉 ‘주의하라’는 동사를 세번 반복해서 사용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NIV 영어 성경을 보면 ‘개들을 주의 하라, 악한 자들을 주의하라, 육체를 상해하는 자를 주의 하라’고 세개의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굉장히 강조해서 ‘주의하라’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서 교회안에 있는 거짓 교사들 즉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을 ‘개들,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자들’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은 ‘몸을 상해하는 일’이라고 번역되하고NIV영어성경은 ‘몸을 상해하는 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어야 하지만 동시에 율법도 잘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자들이 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안에 있는 이러한 유대인 거짓 교사들을 향해서 ‘개’라고 표현하면서 ‘개들을 주의하라’ 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종종 비유적인 의미로 ‘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특별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말로 ‘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마15: 22-28).
사실 지금 시대에 ‘개’를 말하면 애완용 개를 생각하기 쉽지만 고대 사회에는 사납고 무서운 전염병을 옮기는 들개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개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면서 더러운 것들을 주워 먹거나 때로는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기 때문에 습니다. 이 당시의 개는 더럽고 악한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개가 아니라 율법을 가지고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너희들이 이방인들보다 못한 ‘개’와 같은 존재라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행악자’ 즉 악을 행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구원의 복음을 변질시켜서 결국 예수를 믿으려 하는 사람들까지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오늘 본문 2절은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을 보면 ‘몸을 상해하는 일’이라고 번역하고 NIV 영어 성경은 ‘몸을 상해한 사람들’이라고 번역하고 했지만 둘다 ‘할례’를 가르킨다는점에서 볼때 원문의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해서 여기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할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안에 있는 거짓 교사들이나 일부 유대인 신자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어야 하지만 동시에 할례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사도 행전 15장 1-2절을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초대 교회 당시에 할례가 구원의 문제와 관련해서 얼마나 큰 이슈가 되었는지 잘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오는 15장19절을 보면 이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에서 정식 회의안건으로 다루었고 결국 ‘이방인 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할례 문제로 괴롭게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할례가 무엇일까요? 할례는 헬라어 ‘페리토메’(περιτομή:페리+토메)이고 영어로는 ‘circumcision’ (‘circum’ + ‘cision’)인데 둘 다 ‘둘레+자르더’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서 남자 성기의 ‘포피 절제’를 의미합니다. 특별히, 창세기 17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모든 후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할례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로 여기고 중요한 종교 의식으로 거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구약 성경은 계속해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신명기 10장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또 예례미야 4장 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이러한 말씀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믿고 종교적인 의식으로 행했던 육체적이고 종교적인 할례 의식보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의 할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교적인 의식과 형식적인 신앙 생활보다도 우리의 마음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할례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2 장28-29절에서 ‘성령으로 마음이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이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유대인들에게 외쳤던 할례 의식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유대인 신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할례를 행하는것은 단지 자기 신체를 상해하는 것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갈5: 6-7절 참조). 그래서 본문 3장 3절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은 우리가 할례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글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영어 성경은 예배한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라트류오’가 ‘봉사한다’와 예배한다’는 두 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섬기는 예배와 봉사 즉 영어로 말하자면 ‘ministry’를 의미한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예배’와 ‘봉사’는 다른 두개의 뜻이 아니라 ’ministry’ 가르키는 하나의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문맥상 ‘예배’라고 번역한 것이 더 알맞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진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안에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요4: 23절 참조).
또 3장 3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받은 신자는 그 마음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살펴보면 과연 내 마음 중심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는 알수 있습니다 (고후13:5절 참조).
또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가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은 육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이 우리 삶의 진정한 기쁨의 근원이 되시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신앙 생활이 안전한 길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안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봉사하면서 육신의 것을 신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성령안에서 예배하며 자신의 육신의 것을 을 신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주님의 주신 참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