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기다림의 미학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마주하는 가장 힘겨운 싸움 중 하나는 바로 ‘기다림’입니다. 현대 디지털 사회는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속도’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들은 대부분 ‘느림’과 ‘기다림’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꽃을 피웁니다.
기다림이 힘든 이유는 그 과정 중에 아무런 징조나 가시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동이 트기를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혹은 꽁꽁 얼어붙은 대지 아래서 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기다림의 본질은 ‘침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6일간 여리고성을 돌때도 그랬습니다. 따리서 사람들은 이 적막함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중도에 포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봄에 씨앗을 뿌린 후 곧바로 수확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을 통과해야 하고, 가뭄과 태풍을 견디며 곡식을 가꾸어야 합니다. 땀 흘려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는 그 인고의 과정이 없다면 가을의 풍성한 황금물결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노아의 삶은 더욱 극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지었던 120년이라는 세월. 맑게 갠 하늘 아래서 거대한 배를 만드는 노아를 향해 사람들은 비웃음과 조롱을 퍼부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그 시선을 견디며 묵묵히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변화가 보이지 않는 120년을 견디게 한 것은 눈앞의 상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속을 실체로 믿는 ‘기다림의 힘’이었습니다. 결국 홍수는 왔고, 그의 기다림은 인류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위대한 성취로 돌아왔습니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성취는 없습니다. 한 길을 가고, 한 우물을 파는 사람만이 결국 마르지 않는 샘물을 만납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얕게 파헤치는 이들에게 대지는 그 깊은 곳에 숨겨둔 물의 원천은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고, 어깨가 무너질 것 같은 피로가 몰려와도 ‘반드시 물이 나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삽질을 계속하는 것. 그 무모해 보이는 반복이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딱딱한 지층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생명수를 마주하게 됩니다.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죽이며 버티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면의 근육을 키우고, 목표를 향한 의지를 정련하는 가장 능동적인 ‘창조적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름을 받고 99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열국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었듯, 우리 인생의 위대한 도약 역시 긴 기다림의 끝자락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당장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아 답답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지금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맑은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깊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기다리는 사림은 소망중에 살고, 끊임없이 샘물을 퍼 올리는 사람입니다.
주의 날에 드리는 간절한 기도
사랑과 은혜의 주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신 이 복된 주일 아침에 주님을 찬양합니다.
십자가의 고난 뒤에 찾아온 찬란한 부활의 아침처럼, 우리 삶의 모든 어두움과 절망이 물러가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오늘 드리는 이 예배가 단순히 형식을 따르는 시간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다시 만나는 기쁨의 축제가 되게 하소서. 우리 영혼이 다시 살아나며, 부활의 승리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구체적인 감격으로 나타나게 하소서.
혼자가 아니라 ‘우리’로 부르신 주님의 뜻을 기억합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기쁨을 나누는 사랑의 교제가 있게 하소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과 동행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서로의 길동무가 되어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네게 하소서. 만나는 모든 이들의 얼굴 속에서 주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하시고, 공동체의 온기가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분주한 세상의 소음을 뒤로하고, 고요히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영적 분별력을 주소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시고, 주님이 예비하신 그 길 위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내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머무는 깊은 만남의 시간이 되게 하소서.
예배의 문을 나설 때, 우리의 고백이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간구합니다. ‘기다림의 미학’을 가슴에 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한 우물을 파는 인내를 주소서. 오늘 얻은 영적인 힘으로 한 주간의 삶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 진리의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게 하소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주님과 동행하는 경주가 되게 하시고, 마침내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까지 멈추지 않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레바논의 눈물
어제 (2024년 10월) 만난 레바논 출신의 이야기는 그의 고국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레바논의 상황을 sickness (병을 앓고 있다)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헤즈볼라라는 무장단체가 국가 주권을 침해하고 이스라엘과의 분쟁을 야기하며 레바논 국민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고, 국민들은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려 고통받고 있습니다.수백만명의 피난민들이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레바논의 현실은 역사적으로 과거 우리 조선이 겪었던 임진왜란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일본은 명나라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조선 땅을 침략했고, 우리는 전쟁터로 전락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서도 볼 수 있듯,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던 조선은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바논과 조선의 사례는 오늘날 우리에게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외부 세력의 간섭 없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자주국방을 위한 노력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강력한 국방력 구축: 첨단 무기 체계 확보와 군사력 증강을 통해 외부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위력을 갖춰야 합니다.
* 균형 잡힌 외교 전략: 주변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국제 사회에서 협력을 통해 안보 위협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 국민들의 안보 의식 고취: 국민들이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발적으로 국방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보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역사는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으며,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도 남의 나라를 위해 피흘려 지켜주지 않습니다. 좀더 축소하면 개인이나 가족 그리고 그 어떤 조직도 스스로 지킬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야 합니다. 다른 외부의 도움으로 지킬수 없습니다. 레바논의 비극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는 끊임없이 국방력을 강화하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주국방과 평화 유지를 위한 노력만이 미래 세대에게 안전하고 번영된 국가를 물려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그떤 것도 도움으로 지킬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스스로 홀로서기를 훈련하야 합니다.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