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52)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9장 동과 서, 어떻게 다른가? – 문화충격
3. 서양인, 완전히 이해할 수 있나?
[동은 동, 서는 서. 둘은 서로 합하지 못하리/East is East, West is West. The twin shall never meet]. 영국이 세계 여러 지역을 식민지로 두어 [대영제국에 해가 지지 않는다]던 19세기 [키플링/R. Kipling, 1865~1936]의 시 한 구절이다. 근래 동양인과 서양인,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서로 밀접하게 교류하고 양자의 차이가 점점 모호해지는 것을 보면 이 말은 시대착오일지 모른다.
민족과 국가는 나라마다 인종, 언어, 문화가 달라 서로 구별된다. 인종과 언어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물론 언어와 문화는 별개가 아니다. 언어는 문화의 주요한 내용이고 또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문화를 만들어 나가지만, 분석의 편의상 여기서는 문화를 따로 떼어 보기로 한다.
문화는 크게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물질문화는 주택이나 산업시설, 그 밖에 여러 문명의 이기처럼 형체가 있어 눈으로 볼 수 있는 문화다. 음식, 주택, 기계, 생산 수단과 조직, 교통수단, 은행제도, 보험제도, 의료제도, 교육제도는 여기에 속한다. 정신문화는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 의식구조, 태도 등 밖으로 잘 보이지 않는 내면 문화다.
두 문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가령 한 나라의 교육제도는 학교, 교재 내용, 교육시설 등 물질적 측면으로 되어 있지만, 이 또한 정신문화인 가치와 교육철학이 결정한다. 반면 물질문화가 가치와 교육철학을 변화시킨다. 컴퓨터, 비디오, 인터넷, 휴대폰, 화상 의사소통 수단 등의 등장이 교육철학과 방법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 예이다. 그래도 이러한 양분법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늘 우리의 세계를 물질문화 측면에서 본다면 키플링의 생각은 크게 시대착오인 것 같다. 지금 세계는 서양의 물질문화로 일원화되고 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것이 더 실용적이어서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받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통 한옥 대신 난방, 수세식 화장실 등 시설 면에서 편리한 아파트를 선택했다. 서양의 자동차 문화를 안 받아들인 나라는 드물다.
그러나 정신문화에 대해 묻는다면 대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동양권, 특히 한국이 위치한 동부아시아 지역사람들의 가치와 태도는 지금도 서양과 다른 면이 많다. 가령 한국의 학교 건물과 시설은 서양의 것과 같다고 해도 학교 운영, 교육의 내용은 서로 다른 철학과 가치관을 반영한 탓에 크게 차이가 난다.
요즘 한국인을 보면 겉으로는 서양인이고 안으로는 역시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서양인과 동양인간, 서양인과 한국인간에 문화적 마찰이 지금도 문제가 된다면 이는 내면 문화인 가치관과 사고방식 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문화적 적응도 용이한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여러 차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물질적 문화여서 눈으로 보고 쉽게 배울 수 있는 것, 둘째로 배우기는 어렵지 않으나 이미 몸에 밴 가치관과 습관과 정서 때문에, 아니면 개인적으로 불이익이 되기 때문에 못하는 것, 셋째로 이해 못하여 체득하지 못하는 것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예로는 식탁문화, 주거문화, 자동차 문화, 크레디트 카드와 슈퍼마켓 등 당장 필요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이용을 들 수 있다. 둘째의 예는 남녀관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많은 남성 우위의 문화에서 자란 결과, 한국 남자들이 웬만한 서구식 문화를 받아들인 경우도 [여자 먼저/lady first]의 서양 매너를 잘 실천하지 못한다.
영미국가에서는 아버지가 오랜만에 만난 딸을 자연스럽게 껴안거나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자녀에게 이런 식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서양 매너는 어른들에게 익히기 어려운 예이다.
타인의 마음속을 헤아려 보는 것을 영어로 [emphasize/감정이입, 공감대 형성]을 한다고 한다. 그것은 남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 남의 입장에서 나를 굽어보는 능력이다. 이게 가능해야 충분한 인간 교류가 가능한데, 서로가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쳐야 그게 가능하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미드 [G. Mead, Mind, Self. Society 1934] 같은 고전적 사회심리학자의 [자아/自我/self-concept]에 대한 설명을 읽어야 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이나 외국에서 외국인과 친교를 맺는다. 국제결혼한 사람도 많다. 이들은 상대를 나름대로 잘 이해했다고 믿지만, 오래 지내 본 후에 좁히지 못할 간격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에서 오래 살면서 한국인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도 많지만, 이들도 한국인의 깊은 마음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은 성장과정이 다른 두 집단간 자아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인은 한국인들 가운데서 나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인 나름의 자아와 행동기준을 갖고 있다. 서양인도 마찬가지다. 백인이 인종적 편견이나 우월감을 가졌다면 이것 또한 그들 사회에서 얻은 자아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인이 잘 알고 지내던 서양인에게서 야속하다는 느낌을 받거나 오해를 하는 것도 같은 경우다. 동서가 아직도 서로 융화 못하는 영역이 여기다. 유학생, 이민자들 모두 현지 사회에 적응하면서 여기에서 높은 장벽에 부딪치는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정신문화의 이해와 습득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준다.
4. 예절은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문제다
문화적 마찰은 이질집단간의 교류를 전제로 한다. 교류가 없으면 마찰도 충격도 없다. 그런데 인간의 교류란 알고 보면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말과 글, 제스쳐 그 밖에 어떤 방법으로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고 나누는 과정이다.
이때 나타내는 방법이 잘못되면 속마음과는 관계없이 오해와 갈등이 빚어진다. [실은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하는 말은 소용이 없다. 그리고 그 여건은 문화가 결정한다. 언어는 문화 속에서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의/etiquettes, manners]는 그런 예의 하나다.
영미인들은 [Thank you]라는 말을 우리보다 훨씬 자주 쓴다. 진정으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한 때가 보통이지만, 아닐 때도 있다. [No, thank you]라고 했을 때,. 꼭 고마워서가 아니라 그 반대일 수도 있다. [I am sorry]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에서나 상대방에게 미안한 짓을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영미사회에서는 불쾌한 감정을 나타낼 때, 자기 잘못이 아닌 때도 약간 냉소적으로 미안하다고 한다. 위의 경우, [감사하다][미안하다]를 어떻게 쓸까는 두 문화의 예의법을 알아야 한다.
서양인들은 동양 사람들보다 제스처를 더 잘 쓴다. 이런 비기호적 메시지의 구체적 의미는 역시 문화 속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인이 미안하다는 뜻으로 나타내는 웃음을 서양인들은 반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처럼 말과 제스처에 얽힌 문화를 모르면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으며 문화적으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이 문화이고, 문화가 커뮤니케이션이다/Communication is culture, culture is communication]라고 한 에드워드 홀의 말 [E. Hall, The Silent Language 1959]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 유명한 말의 뜻은 한국어의 경어와 반말의 사용법을 생각하면 더 분명해진다. 한국어에서는 상대의 나이, 성별, 계층에 따라 쓰는 말투가 다르다. 존칭도 그렇다. 이 문화를 잘 모르고 말을 하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예의에 어긋나며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된다. 영미사회에서는 남녀노소와 직위와 관계없이 상대방은 [you]이다. 한국에서는 [당신]이란 한마디가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엄청난 결례의 말이 될 수 있다.
많은 영어 표현이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반영하여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고 독단적인 말은 피하게 되어 있다. 일상생활에서 남에게 어떤 충고나 자문을 해 줄 때, 그 표현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여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으로부터 권위적이며 일방적으로 하는 것까지 많다. 한국에서라면 [이봐, 이렇게 하라고]라고 할 때, 영어에서는 [내가 당신이라면 이렇게 하겠는데…(If I were you, I would…)]라고 한다면 그런 차이다. [내가 당신의 입장이라면……이렇게 하겠어요/If I were in your shoes…]도 같은 말이다.
[그럴 리 없다]라는 뜻의 영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I would be surprised if…]를 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놀랄 일이다]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말한다. [Believe it or not]이라는 말이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믿거나 말거나]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지각 있는 영미인은 상대가 믿거나 말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 않는다. 영미인들이 잘 쓰는 이 표현은 [안 믿으시겠지만, 그게 사실입니다.]라고 할 때 쓰인다.
[Would you mind if I…]는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여 무엇을 요구하거나 질문할 때 잘 쓰이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한다면 괜찮겠습니까]의 뜻이다. 상대방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기 요구를 어차피 관철할 것이면서도 그렇게 묻는 외국인들이 가끔 없지 않으나 대개는 매우 정중한 표현법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해해야 할 언어사용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열거해나가는 몇 가지 문화와 가치의 차이에 대한 비교와 논평은 영미문화가 우리 것보다 우수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로마에 살면 로마인처럼 행하라/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는 말대로 순조로운 유학생활을 위한 토론일 따름이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