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칼럼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
어느 날 목사가 되어 성경을 읽다가 가장 놀라우면서도 두려운 성경 구절을 읽게 되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니,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장)고 하는 말씀이 그것이다. 예수를 믿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궁극적이면서도 결론적인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사는 것이다. 이 말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이 영생을 얻기 위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열심으로 교회를 다니고 날마다 ‘주여! 주여!’를 외치며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세상의 직업을 버려가면서까지 선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기도원 원장이 되어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가보아도 천국의 앞자리를 맡아 놓으신 분들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분들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성경은 불법을 행한 자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 걸까. 과연 어떤 법이 이들을 불법으로 정죄하는 것일까.
기독교인이란 종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종교인이란 종교행위의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유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말처럼 종교행위의 삶을 통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의 기준을 삼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독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을 강하게 질타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않고 성전 중심의 종교행위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칭찬 받는 일에 열심히 살았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을 향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고 지적하셨던 것이다. 심지어 세례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마 3:9-14)고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 세례요한이 말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이란 이제까지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살았던 삶을 멈추고 가진 것으로 가난한 자와 고아를 돌보는 나눔의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성경에 보면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는지를 물어본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배운 계명을 지키라고 대답해 주시자, 그는 자신있게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모든 계명을 어려서부터 지켜왔다고 말한다.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태 19:20). 이쯤되면 예수님의 칭찬과 더불어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태 19:21)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는 계명 가운데 이웃사랑을 어려서부터 지켰다고 했는데 과연 어떤 사랑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사랑할 만한 사람만 사랑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결국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함으로 돌아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는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재물을 나눈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는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자들에 대해 부요하지 못한 부자들에 대해 예수님은 그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장).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자들은
이제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이나 주의 종들이 외쳤던 첫 번째 외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말씀이다. 예수 믿고 세상 복 받으라는 것이 아니었다. 회개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이 회개의 심령 위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싹이터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회개한 심령 곧 기경된 마음 밭에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더욱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회개한 그들의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결국은 물이 소금물로 바뀌듯 육적인 삶에서 바뀌어 거듭난 신령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을 아노라고 말하는 당신이 먼저 회개하라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무슨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교회를 다니면서 몇십년 동안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반복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몰라 신학을 해야 할지 아니면 어떤 비즈니스를 해야할지 기도부탁을 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주의 종의 길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직업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특별히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상관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내 눈에 들보를 빼어 냄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 즉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에 몸부림쳐야 한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어느 날 전도여행 중에 성령의 간섭을 받게된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기독교인의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도함으로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구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관심과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어야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아주 오래 전부터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관심과 간섭과 인도하심을 받는 복된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용호 목사(시드니달란트교회 담임, 호주 나눔선교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