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曼陀羅·曼茶羅)
만다라는 기본적으로 우주를 상징한다. 즉 신들이 거할 수 있는 신성한 장소이며, 우주의 힘이 응집되는 장소이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만다라에 ‘들어가’ 그 중심을 향하여 ‘전진’하며 유추에 의해 흩어지고 다시 결합하는 우주 과정으로 인도된다.
만다라는 기본적으로 2종류가 있어 우주의 2가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에서 여럿을 향해 움직이는 ‘태장계’와 여럿에서 한 곳을 향해 움직이는 ‘금강계’가 그것이다.
○ 만다라 개관
만다라(曼茶羅, 曼陀羅, 산: मण्डल, मंडलMaṇḍala, 원, 완료, 영: Mandala)는 다양한 개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만다라”라는 낱말 자체는 “원(圓 · circle)”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만달라(मण्डल Maṇḍala)를 음을 따라 번역한 것이다.
만다라는 원래는 힌두교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불교에서도 사용된다. 주로, 힌두교의 밀교(탄트리즘 ·Tantrism)와 불교의 밀교(금강승 · Vajrayana)의 종교적 수행 시에 수행을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정해진 양식 또는 규범에 따라 그려진 도형을 가리킨다. 힌두교의 얀트라(यन्त्र · Yantra)도 이러한 도형에 해당하는데 만다라의 일종이라 생각할 수 있다. 보통 “얀트라”라는 낱말은 만다라와는 구분하여 힌두교의 문맥에서만 사용되는데, 반면 “만다라”라는 낱말은 힌두교와 불교 모두에서 사용된다. 힌두교와 불교의 전통에서, 만다라의 기본 형태는 사각형의 중심에 원이 있으며 사각형의 각 변의 중앙에 한 개의 문이 있는 형태로, 이 때 각 문은 주로 영어의 티(T)자 모양을 한다.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의 밀교 경전에서, 당나라의 현장(玄奘: 602~664) 이전의 번역인 구역(舊譯)에서는 만다라(曼茶羅)를 단(壇)이라고 한역(漢譯)하였다. 반면 당나라 현장 이후의 번역인 신역(新譯)에서는 취집(聚集)이라고 한역하였다. 한편, 만다라를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한편, 불교에서, 만다라 꽃은 연화(蓮花: 연꽃)를 가리키며 불상(佛像) 앞에 놓인 제단을 만다라라고도 한다. 금강승(바즈라야나) 계열의 티베트 불교에서는 모래그림(sandpainting)을 사용하여 만다라를 제작하는 방법도 개발하였다. 이들을 모래 만다라(Sand-mandala)라고 한다.
○ 불교의 만다라
불교의 밀교에서는 다라니(陀羅尼)를 암송하는 것을 통해 마음을 통일시키는 수행과 여러 부처와 보살에 대한 공양(참고: 염불)이 강조되었는데, 사각형 또는 원형의 흙으로 만든 단(壇)을 만들어 여기에 불상과 보살상을 둔 후 수행 의식을 행하고 공양을 올렸다. 이 단(壇)을 만다라라고 하였는데, 또한 여러 부처와 보살이 충만되어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취집(聚集)이라고도 하였다.
산스크리트어 “만달라(मण्डल Maṇḍala)”는 원래는 본질을 뜻하는 만달(Maṇḍal)과 소유를 뜻하는 라(la)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낱말로, “본질의 것”, “본질을 소유한 것”, 또는 “본질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는, 불교의 본질은 보리(菩提), 즉 깨달음이기 때문에 만다라는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境地)를 상징화하여 신성(神聖)한 단(壇)이라는 물리적 · 입체적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 티베트 등의 불교 중 밀교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부처와 보살을 배치한 그림을 가리켜 만다라고도 한다. 이러한 그림으로서의 만다라도, 다만 도형화하여 평면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화하여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입체적인 단(壇)과 본질적인 의미가 동일하다. 이런 면에서, 만다라는 수행자가 명상을 통하여 우주의 에센스(“불성”)와 합일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깨달음의 안내도라는 의미가 있다.
불교의 밀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만다라를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윤원구족은 낱낱의 살(輻)이 바퀴축(轂)에 모여 둥근 수레바퀴(圓輪)를 이루듯이, 모든 법을 원만히 다 갖추어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 태장계 만다라
‘대일경'(大日經)은 7세기 후반에 인도 중부에서 성립되었는데, 여러 부처와 보살을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집대성하여 만다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 만다라를 태장계 만다라(胎藏界曼茶羅 · Garbhadhatu mandala)라고 하였다. 태장계 만다라를 사용하는 태장계 밀교는 이론적으로 ‘화엄경'(華嚴經)에 나타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의 교의를 받아들여 현실의 사상(事象)에서 곧바로 우주의 진실상(眞實相)을 직관(直觀)할 것을 주장한다.
– 금강계 만다라
‘대일경'(大日經)이 성립된 때로부터 얼마 후에 인도 남부에서 성립되었다고 하는 ‘금강정경'(金剛頂經)은 유가행파의 교의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금강계 만다라(金剛界曼茶羅 · Vajradhatu Mandala)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금강계 만다라를 사용하는 밀교를 금강계 밀교라고도 한다.
○ 불교와 미술
– 밀교를 중심으로 활성화된 불교미술
한중일 세 나라는 일반적으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의 묘사를 근거로 하여 만다라를 그린다. 위 사진들은 모두 일본밀교의 만다라이다.
대일경에 나오는 만다라를 태장계(胎藏界), 금강정경에 나오는 만다라를 금강계(金剛界)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각 본존을 상징하는 범자(梵字)로 만든 만다라를 종자자(種子字)만다라라고 일컬으며, 본존들의 상징물들로 구성한 만다라는 삼마야계(三摩耶界)만다라라고 부른다.
불교에서는 만다라를 사각형 또는 원형의 신성한 단에 경전에 의거되어 조성하고, 모든 의식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파괴함이 원칙이나, 때로 완성된 만다라를 회화로 그려 경배와 명상의 대상으로 모시기도 한다.
– 티베트 불교의 만다라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는 물감이 아니라 색색의 모래로 만다라를 만드는데, 이를 만드는 광경은 장관이라 할 만하다. 색모래로 만든 만다라를 의식과 기도가 끝나고 마지막에 모두 쓸어 모아 강에 흘려버린다. 이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덧없으며 세상에 모든 것에 집착할 의미가 없음을 상기하기 위함이며, 남은 만다라를 삿된 무리(이교도/악령)들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티베트는 일본밀교와 달리 주로 금강정경에 근거하여 만다라들을 그린다. 일본의 만다라가 본존을 직접 그린 만다라, 종자자 만다라, 삼마야계 만다라를 모두 구별해서 그리는 것과는 달리 티베트 밀교는 이 세가지 만다라를 모두 조합하여 만다라를 조성한다. 물론 이 세 가지 만다라를 따로 그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모든 본존들을 조각하여 만든 입체적 만다라를 최고로 여긴다. 그러나 입체 만다라는 만들기가 어렵고 보존이 어려워서 현존하는 것은 몇점 되지 않는다.
최근에 한국에 티베트 불교가 들어와 만다라가 조금씩 대중에게 알려졌는데, 이 틈을 파고 돈에 눈이 먼 상인들이 만다라가 무슨 부적인 마냥 만다라를 인쇄하거나 괴랄한 모양으로 조각해서 파는 것이 빈번해졌다. 이런 만다라는 완전히 잘못되었다. 실제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는 수행인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면 이런 만다라를 사거나 파는 사람들을 걱정한다.
또 심리치료사나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만다라를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런 것들은 불교의 만다라와는 이름만 같을 뿐 상징과 의미가 다르다.
○ 심리치료에서 만다라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칼) 구스타프 융이 주장한 개념으로써, 심리치료의 한 기법이기도 하다. 불교미술의 만다라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이 만다라는 위에 설명된 만다라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힌두교, 불교, 도교 등의 동양종교와 연금술과 같은 신비주의적인 사상을 비롯하여, 중세 그리스도교의 예수, 장미, 십자가 그림 등에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순환적인 원형 혹은 정사각형의 형태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데, 융은 이러한 그림들이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통합적인 인격을 상징한다고 보고 이를 만다라라고 불렀다.
융 자신도 이러한 만다라 그림들을 그리면서 내적 균형을 잡아가기도 하였으며 그것을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과정으로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중요한 과정으로 보았다. 이는 현대 심리치료에서도 계승되어, 현대에 와서 이 만다라 기법은 미술치료, 놀이, 수행 및 안정 등을 위해 다양한 방면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술치료에서 만다라 색칠의 그 의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내면으로의 회귀와 만남 그리고 자아실현 이라는 사람이라면 꼭 필요한 삶의 단초를 충족시키는데 있다. 이런 기본적인 사람의 욕구가 충족됨으로써 만다라 색칠하기는 그 효과가 여러 방면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