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영광마을 이야기
건강검진
요 몇 개월을 전후로 건강이 심상치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던 건강검진을 받기로 하였다. 작은 누님의 소개로 들른 병원, 분주하게 몇 가지의 검사 과정을 거쳐야 했다. 있는 힘껏 숨을 불어 대야 하는 심폐검사는 물론이거니와 심전도 검사에 초음파 검사까지, 급기야는 몸 깊숙한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시경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사전에 요상한 맛을 내는 약품 한 컵을 들이키는가 싶더니 입에는 매캐한 게스(Gas)도 한입 불어 담고는 검진 베드 위로 올라가 모로 눕는다. 그리고는 번쩍번쩍하는 카메라가 번들거리며 내 입으로 들어와서는 목구멍을 넘고 저 밑에서 꿈틀댔다. 막혀오는 숨을 참지 못하고 “꽥꽥” 거리며 토할 기색으로 입을 벌리고 만다. “참지 마시고, 다 토해 내거나 침이 나오면 삼키지 말고 뱉어 버리”라는 의사들의 말이 얄미웁게 들릴 즈음. 내시경 검사를 마쳤다.
검사를 마치고 앉은 좌석에서 저 몸 구석에서부터 무엇이 올라오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매스꺼움과 매캐한 가스의 후휴증에 몇 번을 “꺼억꺼억” 대야 했고 속에 있는 것을 다 내어놓고 나서야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속을 들켜 버리면 이렇게 아픈 것일까? 하는 생각에도, 내가 어떠한가를 보려면, 보여주려면, 그래서 건강해질 수 만 있다면, 잠시의 아픔이나 괴로움도 유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앞에 선 나의 모습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왜 자꾸 난 보여 드리리지 않으려 자꾸 감추는 것일까? 아니, 왜 자꾸 무서워만 하는 걸까? 무서워하여 보여드리지 못하면, 나를 볼 수 없는데도 나를 고칠 수도 없는데도 말이다…. 병원을 나오면서 아내의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부끄러운 고백
좋으신 주님을 믿고 한 가지 고백을 더 하겠습니다…. 중략 … 왜 이런 고약한 버릇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으로는 부익부 빈익빈을 개탄하면서 행동으로는 번번이 부익부 빈익빈을 돕는 짓을 하고 맙니다.
오늘만 해도 그랬습니다. 백화점 슈퍼에서 물건을 살 때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 푼 깎을 엄두도 못 내지요. 깎기는커녕 물건 값이 얼마인지도 확인해보지 않고 대충 필요한 걸 바구니에 담게 됩니다. 집에 와서 과일이 썩은 걸 발견해도 끽 소리도 못하니, 표기된 무게나 제대로인지 알 게 뭡니까.
그렇게 못나게 굴다가도 전철역 앞 노점에선 별안간 이악해집니다. 할머니가 벌여놓은 푸성귀가 하도 싱싱해서 걸음을 멈추고 흥정을 할 때는 제법 똑똑한 척까지 합니다. 이리저리 뒤척여보고 천 원어치가 애걔걔…, 요것밖에 안 되느냐고 덤을 달라기도 합니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기껏 광주리장사한테 말입니다.
슈퍼에선 꼼짝 못하던‘고객은 왕’노릇을 기껏 다 팔아야 일이만 원어치밖에 안 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할머니 앞에서 하다니요.
주님, 제가 만일 주님께 심판 날,“제가 앉을 자리는 왼편입니까, 오른편입니까?”하고 묻는다면 저는 죄인 중에도 가장 얼굴 가죽 두꺼운 죄인이 되겠지요.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부끄러움이 뭔지 깨닫게 하소서.
– 박완서,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중에서-
이제 고인이 된 원로 작가는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지극히 적은 소자에게 냉수 한그릇 대접했던 옛적 일을 떠올리게 하셨던 마땅한 하늘 음성의 까닭을 이렇듯 부끄러운 자신의 고백을 통해 풀어놓습니다. 얼굴 가죽 두꺼운 죄인이 바로 자신이라고… 부디 이 계절 우리의 부끄러움을 만날 수 있기를…
백남호 목사(영광감리교회)
경북 울진의 매화리 영광마을에서 현재 14년째 목회 하시고 계신 백남호 목사님께서 섬기고 계신 교회 주보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