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미학(美學) 순례
작금의 시대를 다원화(多元化)의 시대라고 한다. 다원화의 의미는 단순히 무언가가 다양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가치-개념들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면 개인주의와 집합주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같이 적대적이면서도 서로 공존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어느 하나만이 공존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를 추구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는 늘 반복되면서 뒤새김질 하지 않았던가? 우주와 대 자연까지 천하만물은 늘 변했고 변할 것이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순간 막혀 모두 죽기 때문이다. 고인물은 썩는다 그래서 흐르도록 변화를 줘야한다. 이치에 맞는 변화는 곧 살기위한 하나의 몸부림인 셈이다. 과학 만능주의 시대에,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철학적 담론을 논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여유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시대에 살면서 전시대부터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아름다운 것에의 추구(追求)가 아닐까싶다.
필자는 일반 역사학의 새로운 전문 분과인 ‘개념사’적 방법론으로 미학(美學)을 어떻게 자신들이 처한 삶의 현실을 인식하고 해석하며 표현했는지 이러한 주관적인 인식과 내면적 경험의 세계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고 기독교의 미학은 무엇이었는지는 살펴보고 싶었다.
플라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준 소크라테스는 ‘미덕은 곧 지식이다’이라는 명제를 제시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아름답다. 선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모두 사물이 지닌 적합성이라는 동일한 관점에서 비롯된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삼태기 또한 그 역할을 다했다면 당연히 아름다운 것이다 올바른 행동이 곧 아름다운 것이며 선(善)은 미(美)와 동일시된다는 게 그의 미학(美學)이다.
공격적인 듯한 변론을 펼친 플라톤은 미와 선은 별개의 것이라며 선으로 미를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현실을 개조할 이상국가의 청사진으로 ‘철인왕’을 제시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이처럼 플라톤은 미를 ‘이데아’라고 보았다. 본질이 자연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화하거나 발전하지 않는 이데아는 지극히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그것이 구현하는 미는 절대적이다.
소크라테스가 미를 상대적이라고 본 것과는 반대되는 입장이다 이데아는 불교에서 얘기하는 ‘공상’과 유사하며 ‘개념’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플라톤은 예술을 모방이라고 보았는데 예술은 신을 모목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방임의 기회와 이유를 부여하기 때문에 모방시인과 예술가는 자신의 이상국가에서 쫒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승과 다른 사상을 가졌던 플라톤 처럼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스승과 사상이 갈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모방이라고 주장했으며 스승 플라톤을 사랑하지만 그의 이데이론에 모순과 혼란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의 미는 완전한 것이며 질서, 균형, 명료성이 곧 완전성이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은 그의 ‘시학’에서 더 넓고 심오하게 이야기 된다.
중세기까지 플라티노스, 호라티우스, 롱기누스에 의해 탄탄히 자리를 매김한 미학은 르네상스에 들어와서는 미학과 신학이 결합되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때는 미가 신성함과 연결되어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알리기에리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문학과 그림을 통해 많이 표현된다.
그리스에서 로마, 이탈이아로 향해 움직이던 미학사상은 17세기에 들어 프랑스에서 적극 탐구된다.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이성주의 미학의 토대를 밟고 대칭, 간명, 조화 등이 주요 화제가 되면서 베이컨에 의해 경험주의 미학이 발전했고 섀프츠베리에서는 감관설로 발전한다. 데이비드 흄은 취미판단론을 주장해다.
18세기 계몽운동은 근대 사상혁명의 최고봉이 이른다. 이에 따라 계몽주의 미학이 흥기를 맞이하는데 ‘지식은 곧 힘이다’라는 말처럼 미학 또한 계몽과 맞닿아 있다. 루소는 체계적인 미학을 남기지 않았지만 감상주의의 대표이며 낭만주의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드디로의 현실주의 미학, 지암바티스타 비코의 형상적 사유 규칙의 미학,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의 미학을 걸쳐 장소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독일까지 퍼져나간다.
19세기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니체에 의한 비합리주의 미학과 비극의 미학이 대두되고 러시아인 니콜라이 체르니샤프스키의 생활 속 미학 감정 이입과 실험미학이라는 획기적인 변화의 미학을 주장한 구스타프 테오도르 페히너를 거쳐 20세기의 크로체의 표현주의 미학,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미학은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21세기까지도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학문이다.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 미학 에르스트 카시러의 상징주의 미학 또한 여러 힘있는 주장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미학은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더 발전하는데 뒤에 샤르트르는 ‘오랫동안 빈민들에게 관심을 보였고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을 동정했다. 그는 자유가 인류 투쟁의 가장 힘 있는 도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뒤에 변절했다고 카뮈와도 다른 길로 갈라섰다. 나중에 사르트르도 변절했지만 그 사상이 당대와 후시대에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쳤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20세기 최대의 마르크스주의 유파인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사회비판 미학을 내세웠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마르쿠제이다. 14-15세기에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가 있었다면 20세기엔 마르쿠제의 ‘유토피아’가 있었다. 마르쿠제는 마르크스와 마오쩌둥과 함께 ‘3M’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심미와 예술을 혁명의 무기, 해방의 약속으로 보았다 그의 미학은 해방미학이며 인간해방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아도르노의 부정의 미학과 소쉬르의 구조주의 미학에 뒤새김질을 하며 21세기 미학은 무엇인가? 여기 우리의 질문에 이르게 된다. 미학 이론을 일상의 에피소드들과 버무려 설명하면서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미학은 숨어 있다는 정순복교수의 일상의 미학이 있어서 가슴이 따뜻하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미학은 무엇일까? 일상의 삶이 미학이라면 진정한 지혜자는 이부영 교수가 “자기와 자기실현”이라는 책에서 “버림받음 속에서 버리라는 진리를 깨닫고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그랬다. 예수님도 십자가 앞에서 처절한 고백을 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ελωι ελωι λαμα σαβαχθανι)(마 27:46; 시 22:1)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러나 앞 장에서 주님은 겟세마네 기도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마 26:39)라고 결단하신다. 예수님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이고, 예수님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이며, 예수님의 징계는 우리의 평화가 되었다(사 53:5) 우리의 죄를 대속함으로 죄를 이기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죽음을 이기시는 주님, 그것은 곧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운 아름다운 십자가의 미학이었다.
미학(美學)에서 아름다운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지 않는 이유는 아름다운을 어떤 틀에 포장하면 그것은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를 읽어낼 수 있는 가치라면 십자가의 미학도 어떤 교리나 명제로 갇혀 놓으면 살아있는 소중하고 거룩한 생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미학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들의 일상의 삶에서 ‘버림으로 얻어지는 아름다운 진리’를 고난주간에 생각을 해봤다.

전현구 목사 (시드니조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