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식물의 왕국(1)
한국인이면 KBS의 “동물의 왕국”이나 “동물의 세계”등 자연 다큐멘터리를 통해 야생동물의 세계를 알고 이해의 폭은 넓어 졌겠지만 “식물의 왕국”은 선 뜻 이미지가 떠 오르지 않을 것이다. 식물의 세계는 역동적인 동물과는 다르게 정적이기에 생명체로서 대하는 태도가 소홀하게 된다. 더구나 인간의 관점으로 사고 할 수 밖에 없기에 자연을 객관적으로 바라 보기란 어려우며 지구는 인간의 왕국 이거나 동물의 왕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 지게 되는 것이다. 외게 생명체라는 입장으로 지구를 조명해본 시도는 많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답게 집중적으로 매달리지 않아도 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식물을 조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더구나 거의 매일 TV등 각종 매스컴이 알기 쉽게 자연을 조명하고 있다. 매일 접하게 되는 TV에서 비춰 주는 지구의 모습은 파랗고 푸르른 풍선 같은 모습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탐색 하게 된다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바다의 푸른 빛깔과 육지의 초록색을 주목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이미지로 지구를 관찰하고 갔다면 푸르르며 초록색의 행성이라고 기록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지구의 초록색깔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는 식물의 엽록체에 있는 엽록소의 색깔이다. 이 색소 때문에 지구는 초록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바다의 푸른 색깔은 물이 라는 물질이 발산 하는 것이지만 엽록체는 생명체인 식물 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며 초록색의 엽록체가 지구에 생명체가 있는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지구의 왕족은 식물이다” 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박테리아에서 조류로
최초의 생물은 간단한 세포로 이루어진 박테리아 같은 것이었다. 무생물에서 이 최초의 생물이 나타나기까지는 수 십 억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는 30억년전 선캄브리아기의 지층에서 박테리아로 보이는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보다 시간이 흐른 20억년전쯤의 지층에서는 보다 확실한 화석이 발견되었다. 캐나다 온타리아주의 남부에 있는 20억년전 선캄브리아기 지층에서 나온 박테리아와 물에 사는 수초의 일종인 조류의 화석이다. 이 무렵의 생물계는 100만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단위로 진화해 갔다. 이 박테리아나 조류는 엽록소와 빛에 의해 이산화탄소를 동화하여 산소를 만들 수 있는 생물, 즉 녹색 식물로 진화 온 것이다. 생물발생 이전의 지구에는 유리산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출현한 생물은 산소 없이 유기물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발효 형 미생물이었다고 생각 하고 있다. 발효에 의해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서, 다음으로 이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빛 에너지로 유기물을 합성(광합성)할 수 있는 ‘식물’이 나타난다.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내려 오는 무진장 한 에너지를 포도당[C₆H₁₂O₆]이라고 하는 유기물에 뭉쳐 놓는 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 비유 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덕택에 식물이나 꿈틀거리는 동물이건, 똑똑 하다는 인간이건 간에 생존해가며 자손을 번식 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광합성이 되면서 산소가 발생하니 산소에 의한 에너지 획득수단으로 하는 동물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환경의 변화가 생물을 변화시키고, 반대로 생물이 환경을 변화시키는(환경의 생물화) 양자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볼 수 있다.
식물이 지배하는 행성
생물과 자연을 합쳐 생태계라고 하는데, 구조의 발전과 함께 생물은 보다 높은 단계의 생물로 진화 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현상의 모든 활동은 식물로부터 시작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식물은 동물의 조상인 것이다. 그러나 동물이나 인간은 이세상을 그들의 관점에서 보고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줄 알지만 지구는 엄연히 식물의 행성이며 식물의 지배 속에 살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들이 숲을 불태우고 나무를 베어 내며 이 지구를 호령하며 살고 있는 줄 착각하지만 식물 쪽에서 보면 우리를 가소롭다고 여길 게 분명하다. 인간을 포함해서 지구상의 동물의 무게를 모두 합친다 해도 식물의 무게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니 말이다. 식물은 “아무리 날 뛰어 봤자, 아직까지 지구는 우리가 꽉 잡고 있는 행성이다”라고 할 것이다. 식물이 주도권을 빼앗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식물을 분자의 형태로 유전학을 연구 하는 “식물분자유전학자”들은 동물이 식물보다 뛰어난 생물체라는 생각은 가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유전자 개수로 따지면 동물과 식물은 비슷하다. 생명을 이루는 성분이나 생화학의 복잡성도 비슷하다. 동식물은 그저 서로 다른 생존·번식 전략을 취할 뿐이라고 했다. 빛·온도·습도 같은 환경 변화에 대해선 식물이 오히려 더 민감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생명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풀과 나무들을 보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절의 변화를 눈치 채고 대비한다. 포스택 생물과학과 남홍길교수는 말한다 [한겨레 사이언스온 기자와의 대담에서].“동물과 식물은 생존과 번식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식물은 고착생활을 하며 광합성을 하지만 동물은 이동하며 다른 생물을 먹이로 섭취 한다. 식물은 각 부분들에서 영양분을 만들면서 전체의 생존을 도모하는데, 동물이나 곤충이 공격할 때 앉아서 당해야 하기 때문에, 중요 부분은 분산시켜 단번에 전체가 망하는 위험을 피하는 생존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체회로가 더 유연해 지는 것이다. 다른 차이 라는 것이 이와 같은 번식 전략 때문인 것이다.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Stephen Harrod Buhner]의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동물은 태아 때에 거의 모든 기관이 만들어져 태어나는데, 식물은 씨앗에 프로그램만 있지 기관들은 만들 지는 않는다. 자라면서 환경 조건에 맞춰 줄기, 잎, 꽃 같은 기관들을 만들어간다. 생체회로가 유연하지 않다면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동물의 새끼들은 태어나면서 독립적으로 자연과 부디 치며 생존 하는 것은 쉽지가 않지만 식물들은 씨앗 하나 만들어 놓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은 끝이다. 식물은 자식들에게 After service 가 없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목숨을 바쳐 가며 새끼를 키우고 인간은 근 20여년간을 자식농사에 뼈 꼴이 빠진다. 식물들은 씨앗에 자연에 대처하는 DNA 매뉴얼[manual이 있어서 유연하게 생존전략을 펼 처 가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식물이 동물보다 탁월한 기능을 가진 것은 너무나 많다. 자연주의자이자 지구의 녹색의 시인으로 불리는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Stephen Harrod Buhner]는 철학, 문학, 의학, 생물학, 약초학, 생태심리학 등을 아우르는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실증적인 자료들과 생태운동가들의 생생한 현장 경험담을 통해 지구생명의 절박성을 충격적이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경고하는 15권의 저서를 출간 하였으며 그 중에 “The Lost Language of Plants”라는 저서는 한국에서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라는 제목으로 번역 되여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든 식물은 수많은 화학물질을 만들어 종족보존은 물론 자연과 소통하는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이 간섭하지 않고 식물들이 노는 대로 내버려 두면 그들의 언어를 가지고 군락을 이루고 자연의 평형을 유지하며 살아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들의 질서를 어지럽히게 되면서 식물들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언어 수단이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The Lost Language of Plants”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