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DNA에 새겨진 혈통과 인류의 발자취(1)
한국의 혈통증명서는 족보[族譜]다. 이 족보가 한 가계[家系]의 혈통을 생물학적으로 검증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왕조시대[王朝時代]의 신분을 인증하려는 목적으로 기록한 경우가 많으므로 혈통의 명확성이 불분명 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 족보가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것은 1562년(명종 17)의 문화유보(文化柳譜)라 하나, 전하여 지지는 않고 최고(最古)의 족보는 안동 권씨의 족보 “성화보”(成化譜)라고 한다. 굳이 조선시대가 아니더라도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의 문벌귀족들도 족보와 유사한 혈통 증명 체계를 가졌었다고 한다. 조선초에는 “성을 가진” 양반이 3%정도 밖에 되지 않았었다고 하나 현재는 한국인의 거의가 족보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인 중에 신라 김알지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양반이 4백만 명, 전체인구의 10퍼센트라고 하며, “양반임을 자처하는” 김, 이, 박, 정씨는 무려 대한민국의 인구에서 2,191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족보에 기록된 혈통을 DNA로 검증한다면 족보내용이 fiction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수없이 나타날 것이다. 족보문화가 일반화 되지 않은 미국에서 DNA로 혈통을 가려낸 유명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그 제퍼슨의 후손
미국의 3대 대통령이자 비국독립선서의 기초자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 4.13~1826. 7.4) 에게는 스캔달[scandal]이 있었다. 그의 재임시에 여자 흑인 노예였던 샐리 헤밍스(Sally Hemings)의 아이 아버지가 제퍼슨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1802년 당시에, 당사자인 제퍼슨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으나 제퍼슨 반대파와 노예 폐지론자, 그리고 미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영국이 이를 계속 문제 삼았었다. 이 논란이 170여년 흐른 지난 1998년에 영국 레스터대학의 마크 조블링 교수팀은 이 논란을 종식시키고 그의 조상은 어디서 왔는가를 감별하기 위해서 DNA 유전자 감별법을 동원했다. 부계로만 유전되는 Y염색체를 이용한 친자확인법으로, 그 결과는 같은 해 11월, ‘네이처’(Nature)에 발표되었다. 이미 고인이 된 일물이지만 개인의 사생활 문제이기도 한 것인데 이런 내용이 신문이 아닌 과학지에 실리는 일이 발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인간의 Y염색체는 아버지에서 아들로만 유전되기 때문에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유전학적으로 확인하는데 이용된다. 이 방법이 쓰여지기 위해서는 제퍼슨에서 오늘날까지 부계로만 이어지는 후손이 필요하다. 즉 제퍼슨의 아들, 다시 그의 아들, 그리고 또 그의 아들 등으로 이어지는 후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계로만 이어지는 제퍼슨의 후손이 없었다. 대신 제퍼슨의 형제에게서 부계 후손이 있었다. 제퍼슨과 그의 형제의 Y염색체는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에 동일하다. 따라서 제퍼슨의 부계 후손의 Y염색체와 제퍼슨 형제의 부계 후손의 Y염색체는 같은 자료다. 실험에 실제 동원된 대상은 토머스 제퍼슨의 형제였던 필드 제퍼슨의 후손 5명, 그리고 흑인 노예였던 샐리 헤밍스(Sally Hemings)의 아들로 이어진 부계[父系] 후손 1명인 이스턴 헤밍스였다. 이들로부터 얻은 Y염색체의 유전정보를 비교해본 결과, 이스턴 헤밍스는 제퍼슨의 자손으로 판명된 것이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그의 흑인 노예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음이 만일하에 들어난 것이다. 지난 1998년 검사 당시, 제퍼슨의 Y염색체는 독특한 특성을 보였는데, 이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잘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제퍼슨의 조상이 중동 지역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9년 후인 2007년에 레스터(Leicester) 대학의 마크 조블링(Mark Jobling) 교수는 제퍼슨이 갖고 있던 Y염색체의 독특한 특징을 두 명의 영국인에게서 찾아냈다고 BBC가 방송한 일이 있었다.
제퍼슨의 사례에서 보듯 DNA속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혈통정보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DNA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유기화학물질이다. 다만 이 DNA가 쌍을 이루어 배배꼬여서 덩어리를 만든 유전정보를 듬뿍 담고 있는 염색체는 육안으로 가능하며 DNA도 가닥 하나하나는 볼 수 없지만 염색[染色]을 통해서 그 량[量]을 측정도 하고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재, 과학자들은 이 DNA 떡 주물르듯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DNA를 구성하고 있는 염기 서열은 약 99.9%가 동일하며, 개인간 또는 민족간의 DNA염기 서열의 차이는 0.1-0.2%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부분의 염기 차이를 분석하면 혈통을 규명할 수 있음은 물론 유전질환의 원인 규명과 치료 등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유전자 감식이라고 하며 인류의 기원을 밝히려는 연구, 한 개인의 조상찾기 등에도 이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응용한 벤처 기업을 창업하여 호황을 누리는 회사가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에는 DNA 분석 통한 뿌리찾기 열풍이 있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해서 생각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조상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애팔래치아 산악 지대에서 태어나고 자란 브렌트 케네디씨는 여느 고향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계 조상을 두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짙은 자신의 피부색에 대해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의 의문은 플로리다주의 DNA프린트 지노믹스라는 업체에서 199달러를 주고 DNA 검사를 받아본 뒤 해소될 수 있었다. 검사 결과 케네디씨의 피에는 북부 및 서부 유럽계 유전자가 45%, 중동계와 터키 및 그리스계가 각각 25%, 남아시아계가 5% 섞여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케네디씨는 1900년대 초 할아버지가 피부색이 짙다는 이유로 투표권조차 부여받지 못한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DNA가 범인 새출이나 친자 확인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긴 하나 조상찾는 일 보다는 한민족의 뿌리에서 부터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연구가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DNA로 밝혀지는 한국민족의 이동경로는 한국인이 단일민족을 부르짖는 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었으나 지구촌화 되여 가는 현대에 들어와서, 단일 민족이라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DNA를 통한 유전자의 근원을 밝히게 되었으니 국수주의 國粹主義]적인 한국민족의 단일민족 주장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DNA분석을 통한 한민족의 근원을 밝히는 연구결과는 많이 발표되었다. 2004년에 2월 17일에 김욱 단국대 교수(인류유전학) 연구팀은 “한국인을 비롯한 중국·일본·베트남·몽골 등 동아시아 11개 민족집단에서 1,949명의 유전자를 조사·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북방계보다는 주로 남방계에서 비롯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북방계도 뚜렷해 ‘이중의 민족기원’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휴먼 지네틱스〉에 발표된 일이 있다. 한국인은 대부분 남방의 농경문화 민족에서 그리고 일부는 북방의 유목·기마 민족에서 비롯돼 ‘이중의 민족기원’을 지닌다는 연구결과 내용이다. 또 한국인과 몽골인이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최근 다른 연구결과와 달리,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중국 베이징 한족과 만주족, 일본인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결과는 지금까지 한국인의 민족기원과 관련한 연구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가장 많은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위해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유전되는 두 가지 염색체의 디엔에이(DNA)를 이용해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추적했다. 하나는 아버지에서 아들한테만 전수되는 ‘와이(Y) 성염색체’의 DNA이며, 다른 하나는 난자 세포에만 존재해 모계로 전수되는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mitocondria DNA]다. 김 교수 연구팀은 2001~2003년 한국과학재단 지원으로 11개 민족 738명의 Y염색체를, 2002~2003년엔 8개 민족 1,211명의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를 비교 분석해 얻어낸 결과다. 먼저, 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는 ‘한국인의 원류는 북방 민족’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른 것이다. 김 교수는 “16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현대인(호모 사피엔스)은 6만~8만년 전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이주 집단의 한 갈래가 2~3만년 전 아시아 남쪽으로 가는 과정에서 Y염색체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엠(M)175’라는 유전자형을 지니게 됐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번에 Y염색체를 비교해보니 한국인 75%에서 이런 유전자형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한국인 10명 가운데 7, 8명이 아시아 남쪽으로 이동하던 2~3만년 전의 집단과 동일한 Y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몽골인을 뺀 동아시아인 대부분에서 엠175 유전자형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이런 사실은 엠175 유전자형 집단이 중국 중북부인 황허·양쯔강 유역에서 농경문화를 이룩해 인구의 대팽창을 일으키면서 5천년 전쯤 한반도와 다른 아시아 남부로 퍼져나갔다는 유전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연구에선 중국 중북부 농경민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남방계와 별개로, 한국인에선 몽골·시베리아 북방계 Y염색체의 유전자형(20%)도 발견됐는데, 이는 남방계가 대규모로 옮아오기 이전에 알타이산맥이나 시베리아 바이칼 주변에서 빙하기를 피해 남하한 집단이 먼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풀이된다. 결국 “지금의 한국인은 한반도에 먼저 들어온 일부 북방계와, 대규모로 이동해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이 섞여 이뤄졌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이번 11개 민족집단의 비교분석을 통해, 2300년 전쯤 농경문화를 전한 야요이족이 한반도를 통해 일본 본토로 이주했다는 유전적 증거도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인이 주로 중국 중북부 농경문화에서 비롯했다는 Y염색체의 분석결과는 이 연구팀이 따로 벌인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의 분석결과와도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다음호에 계속>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