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경험주의와 주체성 – 흄에 따른 인간본성에 관한 시론
질 들뢰즈 / 난장 / 2012.5.12
1953년 소르본대학의 한 철학강사가 데이비드 흄에 관한 연구서를 발표했다. 약관의 질 들뢰즈가 바로 그였다. 들뢰즈의 흄 강의는 이미 철학도들 사이에서는 그 독창성 덕택에 ‘놀라움’으로 통했다.

바로 그 강의의 성과가 『경험주의와 주체성』이다. 들뢰즈의 처녀작으로, 그의 저서로는 국내에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이 책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저 놀라운 강의를 직접 맛볼 수 있게 해준다.
○ 목차
서 문
1. 인식의 문제와 도덕의 문제 Probl?me de la connaissance et probl?me moral
2. 문화의 세계와 일반 규칙 Le monde de la culture et les r?gles g?n?rales
3. 도덕과 인식에서 상상력의 힘 Le pouvoir de l’imagination dans la morale et dans la connaissance
4. 신과 세계 Dieu et le Monde
5. 경험주의와 주체성 Empirisme et subjectivit?
6. 인간본성의 원리 Les principes de la nature humaine
7. 결론: 합목적성 Conclusion: La finalit?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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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페르디낭 알키에, 조르주 캉길렘, 장 이폴리트 등을 사사했다. 1969년 미셸 푸코의 뒤를 이어 파리8대학 철학과의 철학사 주임교수가 되었고 이후 동일성과 초월성에 반하는 차이와 내재성의 사유를 통해 기존 철학사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했다.
주요 저서로 『니체와 철학』, 『프루스트와 기호들』, 『베르그송주의』,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 등이 있으며,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앙띠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썼다.
– 역자 : 한정현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서 기독교 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와 경희사이버대학교 등에서 강의 중이다. 지은책으로 『들뢰즈 사상의 분화』(공저/ 2007)가 있고, 옮긴책으로 『들뢰즈와 시간의 세 가지 종합』(2008), 『들뢰즈 이해하기』(2007) 등이 있다.
– 역자 : 정유경
성신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고대 메두사 도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천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책으로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2008)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약관의 사상가, 놀라운 엄격함과 일관성으로 구조주의를 넘어서다! |
우리는 위대한 철학자가 창출한 새로운 개념들로만 이뤄진 철학사를 꿈꿀 때가 있다. 흄은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는 언제나 내가 경험주의자라고 느껴왔다. (질 들뢰즈).
1953년 소르본대학의 한 철학강사가 데이비드 흄에 관한 연구서를 발표했다. 약관의 질 들뢰즈가 바로 그였다. 들뢰즈의 흄 강의는 이미 철학도들 사이에서는 그 독창성 덕택에 ‘놀라움’으로 통했다. 바로 그 강의의 성과가 『경험주의와 주체성』이다. 들뢰즈의 처녀작으로, 그의 저서로는 국내에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이 책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저 놀라운 강의를 직접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우선 들뢰즈의 흄은 익히 알던 흄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놀랍다. 대륙의 ‘3H’(헤겔, 후설, 하이데거)가 지배하던 당대 지성계에서 흄은 극단적 회의주의자로 비판받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정신의 외부에 있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이미 지각된 대상(관념)”뿐이라고 주장하는 경험주의를 끝까지 밀어붙힘으로써 전통적 자아 개념을 해체한 인물이 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들뢰즈의 흄은 “주체란 믿고 발명하는 능력 자체”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주체성의 창안에 관심을 기울인 위대한 유물론자이다.
이렇게 해석된 흄을 통해, 들뢰즈는 구조주의가 지성계를 휩쓸기도 전에 이미 구조주의에서 벗어났다. 들뢰즈의 흄 강의가 놀라운 또 다른 이유이다. 28세에 주저 『인간본성에 관한 논고』(1739)를 쓴 흄과 만난 26세의 들뢰즈는 이미 탈구조주의자였던 것이다! 구조주의는 무의식적 구조(가령 ‘언어’ 같은 상징적 체계)가 주체를 구성한다고 본다. 그러나 들뢰즈는 “인간은 발명하는 종(種)”이라는 흄의 주장에 일찌감치 주목해, 오히려 주체란 구조로 환원될 수 없는 세계, 전체화가 불가능한 단편들의 세계 안에서 스스로에게 주어진 것을 종합해 그 세계 자체를 능동적으로 넘어서는 뛰어난 익살광대임을 설파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들뢰즈 자신이 이후 펼쳐나갈 모든 사유의 맹아가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자신의 첫 저작에 이후의 작업 내용을 모두 담은 철학자로는 흄 이외엔 들뢰즈밖에 없다(28세 이후 흄이 쓴 모든 책도 사실상 『논고』의 해설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주체성, 차이, 반복, 의미, 상상력, 배치, 계열화 등 들뢰즈의 핵심 개념들이 모두 담겨 있다. 이 개념들에 대한 들뢰즈 자신의 해석·설명이 말년까지 엄격하고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이 책은 그 자체로 들뢰즈에 대한 뛰어난 입문서이기도 하다. 독창적인 들뢰즈 사유의 등장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봐야만 한다.
○ 책 속으로 (2쪽)
‘참된 경험주의자’ 흄을 통해서 재해석된 주체의 역량
데이비드 흄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의 심리학을 감응의 심리학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오직 감응의 심리학만이 참된 인
간과학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흄은 심리학자이기 이전에 모럴리스트이고 사회학자이다.
흔히 흄이 속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험주의는 지식의 기원·발생이 이성이 아니라 경험, 즉 ‘지각’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경험주의의 창시자들은 이 기본 입장의 정합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존 로크는 지식의 성립이 경험 내부(지각된 관념들 상호간의 관계)가 아니라 외부 대상과 관념 사이의 유사성에 놓여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경험주의의 존립기반을 스스로 부정했다. 조지 버클리는 (지각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외부 대상을 부정함으로써 지식의 기원을 철저히 경험 내부로만 한정해 경험주의의 수미일관성을 확보하려 했지만 결국 경험 외부에 존재하는 신에게 지식의 기원을 두었다.
이와 달리 흄은 어떤 실체(외부 대상, 혹은 신)에 기대어 지식의 기원을 설명하지 않는다. 흄은 모든 것을 ‘지각’의 연합으로 설명해낸다. 지각은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된다. 인상은 가장 직접적이고 생생한 지각으로서, 모든 관념에 선행하면서 관념의 기원이 된다. 즉, 인상-지각은 관념-지각을 발생시키고, 이 관념들이 인접성·유사성·인과성이라는 원리에 따라 다양하게 결합되어 지식이 형성된다.
들뢰즈는 이런 흄의 논의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인상이나 관념 같은 항들 자체가 아니라 관계이며, 이런 관계가 항들에 외재적이라는 사실임을 강조한다. 요컨대 흄에게서 모든 관계는 사물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외재적 접속(연합의 운동)에 의한 것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이런 관계의 외재성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로써 인간은 그 자신이 오직 경험 안에만 있다면 결코 얻지 못할 관념과 관계를 기획하고 발명해가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문화, 도덕, 제도를 창안해냄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넘어서 스스로 움직여가는 주체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가령 흄은, 인간은 본성 자체가 이기적이므로 각자의 이해관계를 제한해 사회를 구성했다고 보는 사회계약론자들에게 반대한다. 흄이 보기에 인간에게 본성 같은 건 없다. 오직 정념만이 있을 뿐이다. 정념의 특징 자체가 부분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기적이라기보다는 편파적이다. 따라서 문제는 정념의 편파성을 통합해 각자의 제한된 정서를 공감으로 확장하고 일반화하는 인위적 고안물을 발명하는 데 있다. 인간이 탐욕을 소유권으로, 성욕을 결혼으로 충족시키는 사회를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정념을 다스리는 이런 연합의 원리는 사람과 사물,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구체적 정황’ 속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시대마다 나라마다 그토록 수많은 형태의 문화, 도덕, 제도 등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경험을 넘어서는 경험의 조건, 인간본성의 원리와 상상력의 역할, 지각의 다발을 넘어서는 주체의 형성, 정념의 편파성을 넘어서는 인위적 고안물의 발명 등에 대해 끊임없이 흄에게 물음을 던진다. 훗날 명확해지듯이 들뢰즈의 이런 물음들은 단 하나의 물음으로 귀결된다. 기존과 다르게 살아가려면 우리는 기존의 관계, 연합, 배치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혹은 더 간단하게, 우리는 어떻게 다른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 ‘관계의 철학자’ 흄에게 들뢰즈가 배운 바이다.
『경험주의와 주체성』이 들뢰즈에 대한 뛰어난 입문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저 들뢰즈의 첫 책이어서가 아니라 훗날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손 등과 접속해 ‘차이의 철학’과 ‘욕망의 윤리학’으로 완성될 들뢰즈 자신의 철학적 방향이 처음 제시된 책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 책은 들뢰즈에게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청년 들뢰즈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그의 후기 사상과 맞닿아 있는지 알게 해줄 것이며, 들뢰즈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들뢰즈의 문제의식을 명확하고 상세하게 소개해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