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교육학
임마누엘 칸트 / 아카넷 / 2018.1.30
– 칸트는 어렵다! 아니다, 칸트의 『교육학』을 보라!
본서는 칸트의 강의안 수고(手稿)를 넘겨받아 링크(Friedrich Theodor Rink, 1770~1821)가 편찬한 『임마누엘 칸트의 교육학(Immanuel Kant uber Padagogik)』(1803)을 한국어로 옮기고 주석과 해설을 덧붙여 만든 것으로, 『교육학』은 그 약칭이다.
칸트의 교육학 이론은 당시까지의 여러 교육 경험과 이념들을 칸트 자신의 철학과 결합시킨 산물이며, 이로써 칸트는 로크, 루소와 함께 근대 계몽주의 3대 교육이론가라 칭해도 충분하다. 칸트가 강의 초기에 특히 루소를 자주 인용하고, 또 루소는 줄곧 로크를 의식하면서 자기 논변을 전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부록으로 로크의 이성주의 교육이론이 담겨 있는 『교육론』(1693)과 루소의 감성주의 교육이론을 대변하는 『에밀』(1762)을 요약해서 실었기 때문에, 세 사상가가 표명한 교육론의 차이점을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근대 계몽주의 교육이론가들의 저술을 접할 때 흥미로운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아동들의 교육에 대한 세세한 지침을 포함하고 있는 교육서의 저자들, 로크, 루소, 칸트 그리고 이들 교육론의 선구라고 할 수 있는 『아동교육론』(1529)의 저자 에라스무스 모두가 자기 자식들을 교육해본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로크와 칸트는 그나마 다년간의 가정교사 이력이 있으니 귀족 자제들에 대한 교육 경험은 있었으나, 루소는 자기 자녀들마저 고아원에 맡긴 처지에서 스스로 아동교육에 무능함을 고백하고 있다.) 또 하나는, 통상 감각경험주의자라고 일컬어지는 로크는 이성주의적 교육론을 펴고 있고, 프랑스 이성주의의 대표자 중 하나로 꼽히는 루소는 감성주의 교육론을 펴고 있으며, 이성주의자 중의 이성주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칸트는 루소의 교육론에 유의하고 있는 점이다. 사람이 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어쩌면 교육에서 일어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가장 큰 까닭일 것 같다.(그래서 교육론을 펴면서 칸트 자신도 정치와 교육이 인간사 중 최고 중대사이자 최대 난제라고 말하고 있다).

아동교육에 직접 경험이 없는 이들의 아동교육에 대한 의견이 수많은 아동교육자의 것보다 때로 더 적실한 것은, 결혼 경험이 없는 신부나 스님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이 이치에 더 맞는 것과 유사한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이론과 실천의 합일이 더욱 기대되는 분야, 도덕학이나 정치학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본다. 평생 노동을 구경만 한 이가 노동의 가치를 열렬히 역설하고, 군왕이 된 일도 될 일도 없는 사람이 왕의 법도를 세세히 논설한 사례도 적지 않다. 유경험은 흔히 자기 정당화나 자기 영웅화를 인도하지만, 오히려 무경험은 무(無)선입견과 이상(理想)을 나타내 보여 줄 때가 있다.
– 목차
책을 펴내면서
제1부 『칸트의 교육학』 해제
『칸트의 교육학』 해제
해제와 주해에서 한국어 제목을 사용한 칸트 원논저 제목[약호],
이를 수록한 베를린 학술원판 전집[AA] 권수(와 인용 역본)
『칸트의 교육학』 관련 주요 문헌
제2부 『칸트의 교육학』 역주
역주의 원칙
유사어 및 상관어 대응 번역어 표
『칸트의 교육학』 역주
『칸트의 교육학』 찾아보기
일러두기
인물 찾아보기
개념 찾아보기
부록
[부록 1] 로크의 『교육론』 개요
[부록 2] 루소의 『에밀』 개요
– 저자개 :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년 4월 22일 프로이센(Preußen) 쾨니히스베르크(Konigsberg)에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730~32년까지 병원 부설 학교를, 1732~40년까지 오늘날 김나지움(Gymnasium)에 해당하는 콜레기움 프리데리키아눔(Collegium Fridericianum)을 다녔다. 1740년에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 입학해 주로 철학, 수학,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1746년 대학 수업을 마친 후 10년 가까이 가정교사 생활을 했다. 1749년에 첫 저서 『살아 있는 힘의 참된 측정에 관한 사상』을 출판했다. 1755/56년도 겨울학기부터 사강사(Privatdozent)로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자연신학 원칙과 도덕 원칙의 명확성에 관한 연구』(1764)가 1763년 베를린 학술원 현상 공모에서 2등상을 받았다. 1766년 쾨니히스베르크 왕립 도서관의 부사서로 일하게 됨으로써 처음으로 고정 급여를 받는 직책을 얻었다.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담당하는 정교수가 되었고, 교수취임 논문으로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를 발표했다. 그 뒤 『순수이성비판』(1781), 『도덕형이상학 정초』(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 『도덕형이상학』(1797) 등을 출판했다.

1786년 여름학기와 1788년 여름학기에 대학 총장직을 맡았고, 1796년 여름학기까지 강의했다. 1804년 2월 12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사망했고 2월 28일 대학 교회의 교수 묘지에 안장되었다. 칸트의 생애는 지극히 평범했다. 그의 생애에서 우리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을 굳이 들자면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1793) 때문에 검열 당국과 빚은 마찰을 언급할 수 있겠다. 더욱이 중년 이후 칸트는 일과표를 정확히 지키는 지극히 규칙적인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단조롭게 보이는 그의 삶은 의도적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그는 자기 삶에 방해가 되는 세인의 주목을 원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명예나 찬사는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역 : 백종현 (白琮鉉)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포스트휴먼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석사 과정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하대·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소장,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한국칸트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철학』 편집인·철학용어정비위원장·회장 겸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Universality and Relativity of Culture”(Humanitas Asiatica, 1, Seoul, 2000), “Kant’s Theory of Transcendental Truth as Ontology”(Kant-Studien, 96, Berlin & New York, 2005), “Reality and Knowledge”(Philosophy and Culture, 3, Seoul 2008)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Phanomenologische Untersuchung zum Gegenstandsbegriff in Kants “Kritik der reinen Vernunft”(Frankfurt/M. & New York, 1985), 『독일철학과 20세기 한국의 철학』(1998/증보판2000), 『존재와 진리―칸트 <순수이성비판>의 근본 문제』(2000/2003/전정판2008), 『서양근대철학』(2001/증보판2003), 『현대 한국사회의 철학적 문제: 윤리 개념의 형성』(2003), 『현대 한국사회의 철학적 문제: 사회 운영원리』(2004), 『철학의 개념과 주요 문제』(2007), 『시대와의 대화: 칸트와 헤겔의 철학』(2010), 『칸트이성철학 9서5제』(2012), 『동아시아의 칸트철학』(편저, 2014), 『한국 칸트철학 소사전』(2015), 『포스트휴먼 시대의 휴먼』(공저, 2016), 『이성의 역사』(2017), 『제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사회 윤리』(공저, 2017), 『인공지능과 새로운 규범』(공저, 2018), 『인간이란 무엇인가?칸트 3대 비판서 특강』(2018), 『한국 칸트사전』(2019) 등이 있고, 역서로는 『칸트 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F. 카울바흐,1992)?『임마누엘 칸트?생애와 철학 체계』(2019), 『실천이성비판』(칸트, 2002/개정판 2009), 『윤리형이상학 정초』(칸트, 2005/개정판 2014), 『순수이성비판 1·2』(칸트, 2006), 『판단력비판』(칸트, 2009),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칸트, 2011), 『윤리형이상학』(칸트, 2012), 『형이상학 서설』(칸트, 2012), 『영원한 평화』(칸트, 2013),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칸트, 2014), 『교육학』(칸트, 2018)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인간은 오직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교육이 인간에서 만들어내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칸트는 교육에 알맞은 시기를 대략 16세까지라고 보면서도, 『교육학』에서는 실상 소년기(13세까지)까지의 아이들에 관한 교육론을 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당시 프로이센 법이 어린아이를 7세 미만으로, 미성년자를 14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에 따라 자식에 대한 “감독과 교육에 대한 양친의 권리”가 14세가 될 때까지로 인정되고 있는 사정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칸트 당시에는 교육 과정이 오늘날처럼 3단계(초등-중등-고등[대학])가 아니라 2단계로, 곧 학교 교육을 마친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상례였다. 칸트 자신만 하더라도 학교 과정을 거쳐 16세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대학생은 감독과 교육의 대상인 ‘학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연구하는 자’라고 일컬어졌다. 이에 비해 로크는 교육론에서 “21세가 되어 성년이 되어 결혼하면, 그것으로써 교육이 끝난다.”고 말하고 있고, 루소는 『에밀』에 성년 초기 시민 정치 교육까지를 포함하고 있어, 적어도 23세까지의 청년을 교육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교육’의 성격과 인간의 성장 과정을 어떻게 보는가의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칸트 교육학은 종전의 다수 교육론과 달리 일반 시민 교육을 내용으로 갖는다는 점에서 근대 민주사회 교육론의 개시로서도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로크의 『교육론』은 귀족의 가계 상속자를 염두에 두고 전개되고 있으며, 그 반면에 루소의 『에밀』은 특수한 상황에 놓인 아이의 개인교육을 서술의 중심에 두고 있다. 물론 칸트 역시 당시 사회 구조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타파하지는 못하고, ‘능동적 시민’만을 대상으로 삼아 교육론을 펴고 있지만, 칸트 당대에는 ‘수동적 시민’에 비해 이미 ‘능동적 시민’이 대다수였으니, 칸트 교육론을 보편적 교육론의 효시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