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노동의 미래
(Where now for New Labour)
앤서니 기든스 / 을유문화사 / 2004.2.28

–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권의 이론적 기반인 ‘제3의 길’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의 신작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권의 이론적 기반이었던 ‘제3의 길’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 사실 기든스와 노동당의 만남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뒤르켕가 베버를 마르크스보다 선호하였고 현실 정치에서도 기존 좌파들과는 의견을 달리했다. 그러나 변화된 현실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노동당의 핵심적 가치를 창출해낸 ‘제3의 길’은 사회개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유례없는 경기 침체와 9.11테러, 이라크전쟁까지 전 세계의 상황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고 노동당의 ‘제3의 길’ 정책은 좌파 우파 모든 사람들의 날카로운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사회 정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해서 명석하고 예리한 견해를 제시한다. 심오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 기든스 특유의 날선 파토스를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유럽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또한 전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목차
역자 서문
서문
서론
1. 신노동당과 그에 대한 비판
2. 좌파의 신화
3. 제3의 길, 제2단계
4. 영국은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
5. 공공 서비스의 부활
6. 국제주의와 세계화
7. 결론

○ 저자소개 : 앤서니 기든스 (Anthony Giddens, Baron Giddens)
앤서니 기든스 (Anthony Giddens, Baron Giddens)는 1938년 1월 18일, 영국 런던 에드먼턴에서 출생했다.
현대 사회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인 그는 사회 이론과 계층론 분야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유럽 지성의 쌍벽을 이루며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릴 만큼 대중적 지지와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 거장이다. 특히 사회 이론 분야에서 유럽의 지적 전통과 현대적 흐름을 반영한 ‘사회 구조화 이론’으로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사회주의의 경직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극복하는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사회 발전 모델을 주창하였다.
이 ‘제3의 길’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등 유럽을 이끄는 중도좌파 정치가들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기든스는 고전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검토하는 작업부터 현대성에 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 이론가로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사회학자가 사회학 입문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기든스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이 책을 계속 보완하며 제8판에 이르렀다. 그의 저작은 전 세계 29개 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데, 기든스 자신이 폴리티 (Polity)라는 학술 전문 출판사를 공동 설립해서 매년 80여 권의 학술 서적을 간행하는 출판인이기도 하다.
영국 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1959), 런던정치경제대학교 (LSE)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 영국 레스터대학교 사회학 강사 (1961 ~ 1970), 케임브리지대학교 강사와 교수 (1970 ~ 1997)를 거쳐 런던정치경제 대학교 학장 (1997 ~ 2003)을 역임했다. 현재 런던정치경제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자본주의와 현대 사회 이론』(1971), 『선진 사회의 계급 구조』(1973), 『사회학 방법의 새로운 규칙』(1976), 『사적 유물론 비판』(1981), 『민족 국가와 폭력』(1985), 『근대성의 결과』 (1990), 『근대성과 자아 정체성』(1991), 『친밀성의 변동: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1992),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1994), 『사회학의 변론』(1996), 『제3의 길: 사회 민주주의 쇄신』(1998), 『노동의 미래』 (2002)가 있다.
– 역자 : 신광영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 사회학회 부회장, 한국 스칸디나비아학회 회장, 비판사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국제학술지 Globalizations, Social Forces, Journal of Contemporary Asia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Asian Journal of German and European Studies (AJGES)의 공동 편집장을 맡고 있다. 동아시아와 유럽의 불평등 체제, 복지제도와 노동정치에 대한 비교사회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계급과 노동운동의 사회학』(나남, 1994), 『동아시아의 산업화와 민주화』(문학과 지성사, 1999),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을유문화사, 2004),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 (후마니타스, 2013)가 있으며, 공저로 『한국사회의 계급론적 이해』(한울, 2003), 『세계화와 소득불평등』 (집문당, 2007), 『대한민국 복지』(두리미디어, 2011), 『세계화와 생애과정의 구조변동』(한울, 2014)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불평만 하는 마르크스주의 경향은 신노동당에 비판적인 사람들 사이에 살아 있다. 그것은 좌파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는 어려움으로 정부에 있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권력의 현실과 타협과 관련된 어려움을 가린다. 대부분의 산업 사회에서 지난 세기 대부분 좌파는 권력을 잡고 있기보다는 권력을 잡지 못했다. 이상주의는 외부에서 들여다볼 때 더 쉽게 유지된다. 의심할 여지엇이 좌파의 일부는 좌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보다 우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에 더 행복해한다. 그것은 우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 적이 더 쉽게 공격되고 이념적 통합성이 더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 p.33
○ 출판사 서평
유례없는 경기침체, 9.11테러,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좌우파 모두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는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 그러나 저자는’제3의 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민영화, 복지개혁, 교육, 환경, 지방분권, 교육, 평등사회의 실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제3의 길의 실천적 문제를 논하는 책이다.

○ 독자의 평 1
앤서니 기든스와 토니 블레어라는 이름이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많은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앤서니 기든스는 여전히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학자다. 아울러 토니 블레어 정권 역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책은 2001년에 집필된, 조금은 오래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바 ‘제3의 길’을 주창하며 집권한 영국 노동당이 1기를 마친 뒤, 새로운 2기를 맞는 시점에서 ‘신노동당’이 추구했던 정책, 비판받았던 부분에 대한 설명 혹은 반박,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노선’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이후 영국 노동당의 정책과 노선은 많은 비판과 저항 속에 실패한 것으로 – 특히 진보 진영에게 –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처로 상징되는 영국 보수정권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평가는 저마다 다르다.
이 책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 특히 지금 바로 이 땅에서 –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제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기 시작한, 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싹을 틔웠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여지없이 역진한 여러 가지 가치 혹은 정책들이 당시 영국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에, 영국 노동당 정권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전해줄 수 있다. 아울러 한국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국민 스스로 하지 않으면, 결국 낙후된 우리 정치의 현실이 바뀌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기든스가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들은 민영화, 복지 개혁, 지방분권, 교육, 환경, 세계화 등이다. 어느 것 하나 지금 우리와 관련해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기든스는 우파가 다시 부활시킨, 아니 더욱 강화시킨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동시에, 기존 유럽 좌파들이 가지고 있던 이념적, 정책적 경직성에서 탈피해 새로운 정치 담론, 정책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민영화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유연한 접근,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비판 등 기존 좌파적 시각에선 다소 파격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기든스의 이론과 정책 제시를 그대로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 아직 우리는 인정하긴 싫다 하더라도, 영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치적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영국과 우리가 처한 정치 상황이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든스는 무조건적인 반대나 비판이 아닌 ‘현실적이면서도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현 정부나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과 시민사회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체계화된 논의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구호에 그칠 뿐이다.
이번 총선과 대선을 통해 우리 정치는 한 단계 도약하느냐, 다시 주저앉느냐에 기로에 서게 된다. 결과는 온전히 우리 선택에 달렸다. 다양한 가치와 정책들이 경쟁하는 선거가 되었으면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추잡하고 짜증나는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꽤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겪어 오지 않았나. 그런 경험들이 또 다른 현명한 선택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기든스는 세계적인 석학답게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북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함이 보여 아쉬웠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단 하나의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경제 성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은 지구적 경제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미얀마 혹은 북한과 같이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사회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회에 속한다.”
북은 지구적 경제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 적이 없다. 김일성 주석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염원은 미국과의 수교를 통한 국제 사회의 편입이었다. 이것을 끝까지 막고 군사적·경제적 제재를 지속해 고립시킨 것이 미국과 김대중 정권 이전의 남한이었다는 사실. 숨길 수 없다.

○ 독자의 평 2
제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는 정원영 교수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최근 에세이를 읽고 난 후에, 관심이 생겨서 구매를 했다. 적색의 얇은 책은 금방이라도 다 읽을 정도여서,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적색의 책이라, 나는 마치 금서를 읽는 듯한 느낌으로 첫장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아쉬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번역이다. 사실 가끔 나 스스로가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번역이 그런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책은 정직한 직역 그 자체였다. 따라서, 가끔은 저자가 정말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봐야했다.
그리고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순전히 내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데, 책의 내용을 잘 살펴보기 전에, 제목만을 기억하고 책을 샀다는 문제점이다. 책을 읽다보니, ‘노동의 미래’라는 제목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주제 (미래사회의 노동문제라든지 하는 거창한… 이 짧은 책에 그걸 기대하다니…)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Where now for New Labour는 말 그대로 2001년 영국 노동당 집권2기에 따라 저자가 제시하는 정책방향에 대한 제안서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2004년에 출간된 본서의 실효성은 이미 그 시점에 다한 것이 되고, 2008년에 다시 그 책을 읽는 시점에서는 정확한 현실을 반영하기는 이미 어려운 것으로 본다. 또한 그 배경이 영국사회이므로 현재 한국사회의 모순에 적용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본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역자서문의 말마따나, 이 책의 의미는 사회학자로써의 앤서니 기든스가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벗어나, 현실적인 대안정책을 제시하는 과정은 그 현실 배경이 다르나, 우리들에게도 시사점을 준다는 것이다. 현실적 대안없는 무조건적인 반대라든지 구호에서 벗어나, 우리들도 이제는 본서와 같이 적용가능한 대안정책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건전한 사회발전을 이어가야 된다는 점이다.
1992년 좌파의 승리는 중도좌파 정당들의 실용주의적 쇄신에 따른 것이며,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국가개입과 평등주의보다는 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해야 된다. 전통적인 수동적 재분배보다는 훈련과 재훈련 사업과 같은 사회적 투자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노동당은 자의적으로 좌파의 이념을 폐기한 것이 아니며, 이는 사회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 전통에 기반하여 새로운 진보주의를 대변해야 한다. 사회민주당으로서 노동당은 공공기관과 공적 영역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적극적인 정부를 요구한다. 정부의 활성화는 분권화와 지역과 지방권력의 확장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는 민간 회사들을 포함하는 비국가 기구와 함께 협력하여 효율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복지는 수동적인 혜택보다는 인적 자본 보장쪽으로 가야 된다. 세계화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나 시장근본주의를 거부하고, 국제 영역에서 적극적인 정부 역할을 단언해야 한다.
○ 독자의 평 3
책의 원제는 ‘Where now for New Labour’다. 여기서 New Labour가 새로운 노동이 아닌 신노동당이라는 것은 어지간한 눈치없는 사람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상업적인 고려를 안하고 생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터, 다소 황당한(?) 제목에 대해선 일단 관용을 베풀어도 좋을 듯 싶다.^^;;;
제3의길이 블레어 정부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절찬리에 ‘팔려나가고’있을 때, 에릭 홉스봄과 스튜어트 홀을 위시한 영국 좌파 학자들은 ‘제3의 길은 없다’라는 책에서 블레어 정부와 기든스의 기획은 ‘그저 우회하는 것일 뿐’이라며 통렬히 비판했었다. 이 책을 보고 난 느낌은 글쎄, 우회라는 표현조차도 후하겠다는 것. 책에서 보여지는 기든스의 논리 대부분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대항하기보다는 이를 좌파적으로 억지로 수렴하여 합리화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아울러 이 책이 발간된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기든스가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가 행한 이라크 파병을 어떻게 보는지도 굉장히 궁금하다. 그것마저 합리화하려나?) 게다가 자신을 비판하는 소위 ‘구좌파’세력에 대해서는 심지어 ‘의심할 여지없이 좌파의 일부는 좌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보다 우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 더 행복해한다’는 이야기까지 하는데, 다소 진지함을 결여한 발언이 아닌가 싶어 실망스러웠다.
아울러, 제3의 길의 기획이 애초 취지와는 달리 실제 정책대안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어서 정반합의 합(合)이라기보다, 단순한 절충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국유화와 민영화 사이에서 ‘관민 협동체제’뭐 이런 대안은 솔직히 기든스’씩이나’되는 학자의 대안이라고 보면,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이, 고고한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건 자신의 이론을 팍팍한 현실 속에 구체적인 정책의 형태로써 적용해보려는 노력의 모습만큼은 확실해 보이며, 그 점은 동북아의 분단된 국가의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굉장히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도 방송을 틀면, 그 수많은 식자들과 교수들이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하지만, ‘한국은 어떤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기든스만큼 딱 부러지면서도 독창적으로, 그러면서도 사려깊고 따뜻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학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ps.번역의 문제에 있어서, 접속사나 조사가 어긋나고 주어술어의 호응이 종종 어그러지는 경향이 보여지는데, 혹여 새로 찍어지는 판본에는 그 부분에 있어서 수정을 해 주셨으면 하는 조그만 소망이 있다.

○ 독자의 평 4
노동의 존재는 까마득히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물관에 가면 우리는 수렵 채집에 필요한 도구들을 통해 조상들의 노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수고로이 일을 하여 그 결실을 먹고 살도록 명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흔적들과 오늘날 사회모습 속에 나타나는 노동의 의미를 비교해 보면 오늘날의 노동의 의미가 과거보다 확장되었으나 노동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 단어를 먹고 살기 위해 몸을 움직여 수로고이 일을 한다는 것으로 정의 내렸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와 함께 노동의 모습은 상당히 변하였다. 근대화 이전까지는 자급자족 수단으로써의 노동이었다면 근대화 이후에는 무형재산의 한 형태가 됨으로써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팔아서 번 돈으로 먹고 살게 된 것이다. 이후 소비시대가 열렸고, 산업경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지나 현재 세계화라는 급격한 변화 속에 노동역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화는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심화된 세계 시장의 확대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시장은 지식경제를 기저로 두고 있다. 지식 경제란 생각, 정보, 지식이 혁신과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많은 노동력이 물질 생산이나 물건의 유통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디자인, 개발, 기술, 마케팅, 판매와 서비스에 종사하는 경제를 말한다. (현대사회학, 기든스, p.345 인용)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물질 생산과 유통에 많은 노동력이 사용됐었으나 오늘날의 지식경제에서는 그 모든 일들은 대부분 기계가 할 수 있다. 당연히 많은 전문 육체노동자가 실업자가 되거나 낮은 보수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에 빠르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생산양식이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는 전문지식을 갖춘 노동자(피고용자)가 소규모로 팀을 이루어 활동하게 하였으며 고정된 지위에서 정해진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여러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다기능을 갖추게 하였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기업을 이끌어가는 고용주가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특히 앞으로 많은 날을 일하며 살게 될 젊은 층에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더욱더 빠른 속도로 물질적인 것이든 비물질적인 것이든 생산해 낼 것이고 고용주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고용할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노동과 세계를 바라본다면 이 시대의 피고용자(노동자)는 대부분 언제 소득이 끊길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다.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은 단순한 소득의 재분배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 대응하려면 국가차원에서 보다 근본적인 사회정책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미래>에서 기든스가 제시하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란 자본주의의 문제점인 시장실패와 사회주의의 경직성을 극복하고 이 둘의 장점을 통합하여 세계화라는 거대한 변화에 대응한다는 정치 이념이다. 이 이념이 추구하는 바는 첫째, 연대적 • 포용적 사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둘째, 불평등을 제거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공적제도의 구축과 적극적 정부에 의한 발전된 복지사회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구체적인 정책 프로그램은 다음의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공의 이익을 최상으로 높이기 위해 국가와 NPO, 기업, 제 3섹터는 협력하여 공적제도를 더욱 강화한다. 둘째, 경제 흐름에 대응하는 재정원칙을 세우며 지나친 조세지출을 지양한다. 셋째, 복지국가의 구조개혁을 단행하여 복지 의존성을 약화시키고 시민 권리와 책임을 강화 한다. 넷째,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여 사회적 약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 기술 등에 투자한다. 다섯 째, 개인의 안정을 위한 법과 질서를 확립한다. 여섯 째, 환경정책에 더 높은 관심을 가져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 (본 도서 제 2장 p. 41~61)상당히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기든스의 이러한 주장은 영국이라는 현실 공간에서 실현되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 주체는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신)노동당이다.
현재 노동당(신노동당)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기존의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부가 주체가 되어 복지국가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정책의 방향은 가진 자들로부터 없는 자들에게 사회 자원을 재분배하고 공공혜택을 제공하는 보편적인 복지개념을 바탕으로 하였다. 또한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은 시민이 가진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었다. 이때까지의 복지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기 위한 ‘You can just receive benefits.’의 의미였던 것이다. 하지만 위의 정책 프로그램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 노동당은 ‘일’을 중시한다.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혜택을 베풀지 않으며 따라서 사회적 약자가 노동 시장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 기술 투자 등에 더 중점을 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혜택을 받는 권리 외에 시민의 책임을 강조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무조건적인 복지혜택은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킬 확률을 높일 수 있으며, 복지 혜택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복지 형태를 생산적 복지 또는 일하기 위한 복지(welfare-to-work)라고 한다.
기존의 노동당이 제시한 복지국가를 반대하고 나선 것은 신노동당이 처음은 아니다. 바로 이전의 집권당이었던 보수당이 1973년 오일쇼크와 IMF를 겪으면서 복지 긴축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복지국가의 역할을 제한하여 정부의 공공지출을 통제하고, 자유시장적 경제 원리를 도입하였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상호의존성이 심화되는 시대에 비대한 정부와 경직된 노동 시장 구조로는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이유로 생각된다. 그리고 복지제공 주체를 확대하여 민간부분의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을 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신노동당은 그 뿌리는 노동당 즉, 사회민주주의에 두고 있지만 보수당이 편 정책 방향도 어느 정도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며 산다. 다시 말해 자신의 노동력을 재산 삼아 노동 시장에서 돈을 벌어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 시장에서 활동하는 모든 노동자가 사회적 약자는 아니지만 그들 중에는 뜻하지 않게 노동 시장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근로 능력이 있음에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을 갖추지 못해서 또는 노동 시장에 접근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노동 시장의 유연함과 포용력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 시장은 보다 많이, 보다 높은 질의 생산을 이루기 위해 유연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생산력은 높아졌어도 고용과 해고의 주기가 빨라져서 실업률이 높으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도 그에 필요한 교육과 기술 훈련이 부족하여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노동의 미래>를 통해 기든스가 제시한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이념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장 아니면 분배라는 양자택일 논리에서 벗어나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하는 정책 개발 및 실행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보다 상호의존적이며 수많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의 길은 이 같은 변화들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향후 20~30년 동안 세계 정치에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