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쇼펜하우어 수상록
쇼펜하우어 / 범우사 / 1997.3.31
– 쇼펜하우어론, 여성을 혐오한 염세주의
19세기 전반의 염세주의적인 경향을 철학의 영역에 반영시킨 쇼펜하우어는 1788년 2월 22일 유럽 대륙의 북쪽 해안에 있는 자유 도시 그다니스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하인리히 플로리스는 네덜란드인의 피를 이어받은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는 독립심이 강한 자유주의자였고 볼테르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어머니 요한나는 아버지보다 스무 살이나 아래였고, 훗날 여류작가로서 세상에 알려질 만큼 지적 능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쇼펜하우어 자신이 말했듯이 그는 의지, 즉 성격은 아버지로부터, 지성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러나 양친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성품이 과격한 데가 있는, 꿈 많은 이상주의자여서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아버지와의 생활에 매우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가 꽤 자유롭게 연애 관계를 즐긴 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쇼펜하우어는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기는커녕 미움을 받았다고 하니 그의 불행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듀란트에 의하면, 그녀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성가신 녀석이기 때문에 함께 지내는 사람이 퍽 어려울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1805년 4월 아버지가 죽은 뒤로 두 사람은 별거하게 된다. 쇼펜하우어로 하여금 염세주의자가 되게 한 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그가 다섯 살 때 그다니스크 시가 프러시아에 병합되어 자치를 상실하자, 자유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이에 견디지 못하여 식구를 이끌고 함부르크로 이사했다. 거기서 아홉 살까지 보낸 쇼펜하우어는 그 후 약 2년 동안을 프랑스의 르아브르에 사는 아버지의 친구에게 맡겨져 아주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열한 살 때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온 그는 상인들의 자녀를 교육하는 학교에 들어가 4년 동안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상인 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를 상인으로 만들고자 생각했던 아버지는 자식이 옆길로 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열다섯 살 난 쇼펜하우어를 기숙학교에 보내 보았지만, 그의 학문에 대한 동경은 점점 더해갈 뿐이었다. 그리고 열일곱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학문할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19세기 당시 대학 진학 예비학교였던 김나지움(인문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21세에 겨우 괴팅겐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의학부에 적을 두었지만 칸트파인 슐체 교수의 강의를 청강한 뒤부터는 철학을 전공하였다.
그 후 23세에 베를린 대학으로 옮긴 쇼펜하우어는 슐라이어마허·피히테 등의 강의를 청강했지만, 그들의 학설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실망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1813년경에는 나폴레옹 지배하에서의 해방을 열광적으로 호소한 피히테에 감동하여 그는 지원병으로 해방전쟁에 참가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해방전쟁에 참가하기는커녕 전란을 피해 드레스덴으로 가 루돌슈타트에 정착했다. 그리고 여기서 학위 논문 ‘충족 이유율의 네 가지 근원에 대하여’를 완성시켜 예나 대학의 철학과에 제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그는 한때 어머니가 있는 바이마르로 돌아가 그곳에서 괴테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가들과 꽤 친밀한 교제를 가졌다. 또 때마침 바이마르에 와 있던 동양학의 권위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로부터 인도 철학에 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입수했는데,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수확이었다.
1814년에는 어머니와 싸우고 바이마르를 떠났으며, 그 후 다시는 바이마르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는 영원히 어머니 곁을 떠나고 말았다. 쇼펜하우어의 성격은 점차 침울해졌으며, 의심이 많아지고 또한 공포와 불길한 망상에 사로잡혔다. 파이프를 잘 간수하기 위해 자물쇠를 채우거나, 이발소에 가서도 결코 목덜미에 면도날을 대지 못하게 하거나, 잘 때는 권총에 탄환을 재어 침대 옆에 놓았다고 한다.
한편 자기의 위대함이 인정받지 못할 때는 몹시 화를 냈는데, 그것은 거의 편집적이었다. 그런 것을 보면 발광하여 죽은 할머니의 피가 쇼펜하우어의 몸에 흐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6세부터 4년 남짓한 세월에 걸쳐서 씌어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는 쇼펜하우어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그는 이 책에 관해서 “낡은 모든 관념의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독창적인 사상으로서, 지극히 성공적이며 시종일관된 체계로, 명석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또 매우 아름답다”고 말하였고, 또 “금후 다른 무수한 책들이 씌어질 요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이토록 자신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세상 사람들의 주의를 거의 끌지 못했다. 출판된 지 16년이 지난 뒤 인쇄 부수의 대부분이 휴지값으로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쇼펜하우어는 몹시 상심했다.
그 저서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니체가 그의 책을 고서점에서 발견한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쇼펜하우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사람들은 당시 유럽에 풍미하던 이상주의에 환멸을 느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오래 전부터 자기의 철학을 큰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1822년 그 기회가 왔다. 베를린 대학에 강사로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강의 시간을 헤겔의 강의 시간에 맞추어 실력을 과시하려던 의도는 빗나가 ‘정신을 차려 강의실을 돌아보니 자기는 텅 빈 자리들을 향해서 지껄이고 있을’ 정도였다. 자존심이 상한 쇼펜하우어는 마침내 사표를 제출하고 교단을 떠났다. 그리고 헤겔에게 맹렬한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화풀이를 했다. 1931년 베를린에 콜레라가 발생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30년 남짓한 여생을 보내게 된다.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한 그의 생활을 러셀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아트만 (세계 영혼)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를 기르며 매일 두 시간은 산보를 하였고, 긴 파이프로 담배를 피웠다. 런던 타임스를 구독하였으며, 자기 명성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통신원을 고용하기도 했다. … 신령술과 주술을 믿었으며 서재에는 칸트의 흉상(胸像)과 청동제 불상을 놓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점을 제외하고는 칸트의 생활 태도를 본받으려고 애썼다.
쇼펜하우어의 생애는 결코 염세주의에 일관된 생활은 아니었다. 러셀이 “쇼펜하우어의 교설은 그 자신의 생애에 의해서 판단해도 좋다면 성실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일류 식당에서 음식을 들었고 약간의 연애를 했지만 그것은 육욕적인 것이었지 정열적인 연애는 아니었다. 그는 또 터무니없이 싸움을 좋아했고 이상할 만큼 탐욕적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현실주의자적인 일면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또 만년에 명성이 높아지자 그는 자기에 관한 기사를 모두 탐독하고는 아주 만족해 했다고 한다.
1860년 9월 21일 아침상을 받은 쇼펜하우어는 탁자를 향하고 있는 자세로 조용히 그리고 누구의 간호도 없이 72세로 생애를 마쳤다. 그것은 ‘열반’을 이상의 경지로 삼은 쇼펜하우어에게 어울리는 죽음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가르친 것은 이미 소임을 다했다.
이 사람이 산 것은 언제까지나 남으리라.
이 사람을 잘 보라.
이 사람은 아무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
이것은 철학자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찬양한 시구이다.
쇼펜하우어의 에세이는 독일어로 쓴 글 중에서 가장 명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는 속담·격언·시가 도처에 인용하고 자신의 독특한 유머와 풍자를 곁들여 참으로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쇼펜하우어의 ‘소품과 보유집’ (Parerga und Paralipomena)이라는 수상집에서 일곱 편을 골라 옮겨 놓은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번역하는 데 텍스트로 레클람 판의 ‘쇼펜하우어 전집’을 사용하였음을 밝혀 둔다.
○ 목차
1. 쇼펜하우어론
2. 사색에 대하여
3. 독서와 서적에 대하여
4. 저술에 대하여
5. 여성에 대하여
6. 자살에 대하여
7. 예술에 대하여
8. 죽음에 대하여
○ 저자소개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8년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811년 베를린대학교에 들어가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1813년 베를린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집필,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충족이 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 역자 최혁순
고려대 철학과 졸업. 독일 뮌헨 대학에서 수학하고 현재 한국번역가협회 회원으로 있다. 옮긴책으로는 <쇼펜하우어 수상록>, <고독이 그림자를 드리울 때>, <그리스. 로마 신화>, <오 고독이여>, <러셀 인생론> 등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학자란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을 말한다. 사상가나 철학자는 인류의 눈을 뜨게 하고 그 전진을 촉진시키는 자로서 범세계적인 책을 직접 읽은 사람을 말한다. … 본래 자기의 근본 사상에만 진리와 생명이 깃든다. 왜냐하면 오직 그것만을 우리들은 진정한 의미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에서 얻은 남의 사상은 남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나 남이 벗어서 버린 헌 옷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정신 속에 불타고 있는 사상과 책에서 읽은 남의 사상을 비교한다는 것은 마치 봄에 만발한 꽃과, 화석이 되어 버린 태고의 꽃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 p.18
스스로 생각하여 획득한 것은 단지 읽어서 안 것에 비해 100배나 더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비로소 구성 부분으로, 또 유기적인 구성 요소로 편입되어, 그 체계와 완전하고 긴밀하게 결합되어 그 근거와 결론이 모두 이해되기 때문이다. — p.19
자살은 또한 일종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회답을 강요하려는 일종의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툰 실험이다. 왜냐하면 이 실험은 질문을 하고 그 다음 대답을 들을 의식의 동일성마저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 p.97
수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장서의 효용이 의문러우며 수량은 보잘것 없더라도 정리가 잘 된 장서라면 훌륭한 효과를 거두는것과 같이 지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이 끌어모아도 스스로 사색해낸 지식이 아니면 가치는 의문스러우며 양으로는 보잘것 없어도 몇번이고 골똘히 사색해 낸 지식이라면 가치는 훨씬크다. — p.15
.사색은 원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는 사색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과,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 사이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차이가 있다.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 독서하는 정신과는 달리 자신의 충동에 따라 움직인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 그 사람의 찬성과 그 때의 기분에 맞는 것을 사색하기 위한 소재와 기회를 제공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다독은 정신을 탄력성을 몽땅 잃게 한다.
.무턱대고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은 자신의 사상을 갖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래 자기의 근본 사상만이 진리와 생명이 깃든다. 왜냐하면 오직 그것만을 우리들은 진정한 의미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 그러므로 독서는 다만 자기의 사상의 샘이 고갈되었을 때에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대가 그대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소유하려면 그것을 스스로 획득해야 한다. <괴테 / 파우스트>
.스스로 사색하여 얻은 진리는 산 수족과 같은 것으로, 그것만이 정말로 우리 자신의 것이다.
.독서는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독서를 계속해 가면 다른 사람의 사상이 강하게 흘러 들어온다. … 학문은 없어도 경험이나 대화, 얼마 안 되는 독서로 얻은 하찮은 지식을 언제나 자기의 생각으로 삼아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독서로 일생을 보내고 여러 가지 책에서 지혜를 얻은 사람은?여행 안내서를 몇 권 읽고서 어느 지방에 정통한 것 처럼 행세하는 사람과 다름없다. … 정리된 지식, 명확한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이와는 반대로 사색으로 일생을?보낸 사람은 실제로 그 고장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과 같다.
.평범한 서적 철학자와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역사가와 목격자의 관계와 같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생각하는 일은 그렇지 못하다. … 임의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외적 동기와 내적 기분, 긴장이 잘 합쳐져 조화를 이루면 자연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해 사색을 하게 된다.
.사색이란 단번에 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단계적으로 나누어 할 필요가 있다. … 이론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역시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독서는 정신에 생각하는 생각하는 재료를 보급해 주긴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대용품으로 언제나 우리가 가는 향방과는 달리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하여 생각해 주는 것이다. …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책을 읽는 데 정신이 팔려 현실 세계를 직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독서가 사색을 대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단순한 경험도 역시 사색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책을 읽고 있을 때는 생각하는 일이 거의 없다. … 틈만 있으면 언제나 책을 보는 생활을 계속 하면 정신은 마비되기 때문이다. … 정신도 역시 다른 사람의 사상의 압력을 끊임없이 받으면 탄력을 잃고 만다. … 숙고를 거듭하고 읽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독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종이 위에 그려진 사상은 일반적으로 모래 위에 남은 보행자의 발자국과 같은 것으로, 물론 그 사람이 걸어간 길은 알 수 있지만, 그 사람이 그 길을 걸으며 무엇을 보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눈을 사용해야 한다.
.이미 소질로 또 가능성으로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독서를 함으로써 그런 특질을 불러일으켜 … 비로소 우리는 이런 특질을 실제로 소유하기 이른다. 그러므로 독서가 글을 쓰는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이 길 밖에 없다. 즉, 우리 자신이 지닌 천부적 재능의 사용법을 독서를 통해 배우는 것으로, 언제나 천부의 재능을 전제로 한다. 이런 재능이 없이 독서를 통해 차디찬 죽은 수법만을 배우게 되면 천박한 모방자가 될 뿐이다.
.악서는 무용할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해를 끼친다.
.읽지 않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그 기술이란 많은 독자가 그때 그때 닥치는대로 조급하게 사 보지 않는 일이다. 즉, 모든 시대에 모든 민족이 나은 천재의 작품만을 숙독해야 한다. … 이런 작품만 진정 우리를 자라게 하고 우리를 개발한다. 양서는 가끔이라도 좀처럼 뜻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 양서를 읽기 위한 조건은 악서를 읽지 않는 것이다.
.반복은 연구의 어머니다. 중요한 책은 무엇이든 반드시 계속해서 두 번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두 번째는 그 문제의 연관성이 보다 잘 이해되고 이미 결론은 알고 있어서 처음 부분을 더 한층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같은 대상을 다른 각도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명예와 돈은 같은 부대에 들어가지 못한다.” (스페인 격언)
.모름지기 번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스스로 써 보도록 하고 타인이 쓴 저서의 원형을 손상하지 마라.
.어떤 사물이 고상하고 완전한 것일수록 성숙은 늦고 더디다.
.여성은 현재에 몰두하는 정도가 남자보다 크며 만약 현재가 허락만 되면 여성은 그것을 훨씬 멋지게 즐길 줄 안다. 이것으로 하여 여성 특유의 명랑성이 생기고 이것이 고생하는 남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필요에 따라서는 때때로 유력한 위로자가 되기도 한다.
.남성은 정열이 고조되면 사물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거나 공상적인 것을 덧붙이는 일이 흔히 있다.
.여자들의 허영심은 … 물질적인 사물, 즉 자기의 일신을 아름답게 꾸민 다음에는 부화, 사치, 장려와 같은 면에 열중하는 악벽이 있으며 … 남자들의 허영심은 대체로 지성이니 교육이니 용기니 하는 비물질적인 장점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모든 욕망은 필요와 결핍과 가난과 괴로움에서 일어난다. 욕망을 충족시키면 그것을 일단 진정시킬 수 있으나,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된 반면에 충격을 느끼지 못하는 욕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더구나 욕망은 오래 계속되며, 욕구는 무한히 전개되는 반면에 향락은 짧고 적은 분량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의지를 진정시켜 잠재우거나 계속해서 붙잡아 매어둘 힘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욕망의 지배와 의지의 주권 아래 놓여 있는 한, 그리고 우리가 희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한, 계속해서 안식이나 행복을 손에 넣을 수는 없다.
.대체로 모든 사물은 우리들의 이해관계를 떠날수록 아름답다. 그러나 인생 자체가 아름다운 것은 결코 아니다. 아름다운 것은 시의 거울에 비춰서 반사된 인생의 그림 뿐이며, 이 그림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미처 모르던 청년 시대의 일이다.
.어떤 행위의 내면적인 의의와 외면적인 의의는 서로 관련이 없으며 때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아야 한다. 어떤 행위의 외면적인 중요성은 현실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에 의하여 측정되지만, 내면적인 중요성은 인간성에 빛을 던지고 인간생활의 특수한 면을 발굴하여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예술에서는 행위의 내면적 의의만이 중요하고 역사에서는 외면적 이의가 소중하다.
.세계의 참된 본성을 심각하게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는 것으로 음악만큼 강렬히 작용하는 것은 없다. … 나는 음악을 들으면 언제나 모든 인간의 생애는 어떤 영원한 영혼의 꿈이며, 죽음은 꿈이 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 작품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인간의 이데아를 분명히 재현하여 우리에게 이데아를 인식시키는 데 있다.
○ 독자의 평
쇼펜하우어의 에세이를 두고 ‘독일어로 쓴 글 중에서 최고의 명문’이라고 평한다는데 번역본인 이 책만 봐서는 그것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화법은 그의 사상을 간결하고도 확실하게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발소에 가서도 결코 자신의 목덜미에 면도날을 대지 못하게 하고, 잘 때는 권총에 탄환을 재어 침대 옆에 두고 잤다는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 흔히 염세주의(厭世主義) 또는 비관주의라 함은, 세상이나 인생에 실망하여 이를 ‘싫어하는’ 생각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그의 글을 통해 단순히 세상을 ‘싫어한다’는 증거를 포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세상과 인생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둘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가깝습니다. 〈자살에 대하여〉에서 그는, 자살은 죄악이 아닐 뿐더러 죽음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최후의 피난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분명히 합니다. “자살은 고난에 찬 이 세상 속에서 참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상적인 구원만을 받는 것이므로, 자살은 최고의 윤리적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도피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성직자들이 자살을 죄악시하는 그 근거나 논리가 매우 졸렬함을 비판하는 것이지, 자살 그 자체를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되 자살은 결국 도피라는 그의 생각에서 ‘염세’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하여〉를 읽으니, 그가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상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과 죽음은 자연에게 전혀 파격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때문에 상심할 필요는 없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습니까? 이 말만 놓고 보자면 그의 생각이 노장사상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비록 개체(인간 개인)의 죽음으로 개인의 의식은 일단락되지만 “죽음의 손에 멸망된 것은, 거의 형상뿐”이며 “우리의 한정된 빈약한 인식 능력은 시간 속에서 그 그림자와 이 형상을 의식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면 봄에 새 잎이 돋아나지만, 이런 사실로써 위로받지 못하고 ‘그 나뭇잎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서글퍼하는 비유를 하면서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아, 미련한 나뭇잎이여! 너는 어디로 가느냐? 그리고 다른 잎사귀들은 어디서 오는가? 네가 두려워하는 허무의 심연은 어디 있는가? 너는 차라리 자기 자신이 나무 속에 숨어서 끊임없이 작용하고 활동하는 힘 속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힘은 모든 나뭇잎의 세대를 통하여 생사에 구애받지 않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생사에 구애받지 않음이라! 이것이 과연 세상을 ‘싫어하는’ 염세주의자의 생각인가요? 그렇다면 왜 노자와 장자를 두고 염세주의자라고 하지 않는 걸까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노장사상이라 하듯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생각을 쇼펜하우어 사상이라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사색에 대하여〉와 〈독서와 서적에 대하여〉에서도 깊이 새겨둘만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수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정리가 되지 않으면 장서의 효용도 의문스러우며, 수량은 보잘것없어도 정리가 잘 된 장서라면 훌륭한 효과를 거두는 것과 같이 지식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진리를 터득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여러 가지 지식이나 진리와 결합시키고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 단계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신의 지식이 되고 그 지식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말이죠^^.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독서에서 얻는 것은 남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나 남이 벗어서 버린 헌 옷에 불과하며, 오로지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색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해도 좀 지나치리만치 독서의 ‘불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최고의 독서법은 “읽지 않는 기술”입니다. 양서를 읽기 위해서는 악서를 읽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을 해치듯 다독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점차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독서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책 읽는 것 자체를 게을리하는 사람들이 이 말로써 위안을 얻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통찰도 결국은 독서와 이에 따른 깊은 사색에서 얻어진 것일테니까요. 쇼펜하우어를 성인(聖人)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역사상 아직 염세적 사상을 가진 성인은 없었습니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그의 생각 또는 주장과는 달리 실제 자신은 명예욕과 질투 또는 시기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대학에서 헤겔에 맞선 강의를 개설하고 실패하고 저주스러운 욕설을 퍼부은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그가 생사의 구애됨을 거부하였듯이, 아침상을 받고 탁자를 향하고 있는 자세로 조용히 그리고 누구의 간호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토록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어했던 그의 바람은, 훗날 고서점에서 그의 책을 우연히 발견한 니체로 인해 실현됩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