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신화가 된 노예 스파르타쿠스
M. J. 트로우 / 부글북스 펴냄 / 2007.01.19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배우이며 프로듀서인 커크 더글라스, ‘스파르타쿠스’의 각본을 쓴 달톤 트럼보, ‘스파르타쿠스’의 원작 소설가 하워드 패스트, 1차 대전의 폐허에서 스파르타쿠스단을 조직한 혁명가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 스파르타쿠스를 고대 프롤레타리아의 진정한 대표자로 본 카를 마르크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시각으로 스파르타쿠스를 해석하고 그려내었다.
이 책은 스파르타쿠스가 신화로 자리잡게 된 배경과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아울러 당시 로마의 생활상과 정치도 함께 살펴보고 있으며, 특히 검투사의 생활이나 로마 군대의 편성 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키케로, 살루스티우스, 리비우스, 플루타르코스, 아피아누스, 파테르쿨루스 등이 남긴 역사 기록과 옛 트라키아지역과 이탈리아에서 출토된 유물을 바탕으로 스파르타쿠스 시대의 로마를 재구성하였다.

○ 목차
들어가는 말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제1장 트라키아에서 온 사나이
제2장 ‘빵과 서커스’를 위한 사나이들
제3장 트라키아 검투사, 트락스
제4장 베수비우스 산 그늘 아래에서
제5장 원로원과 로마 사람들
제6장 가장 비천하고, 가장 비열한 존재들
제7장 로마군, 전쟁터에서 달아나다
제8장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제9장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제10장 스파르타쿠스의 전설
○ 저자소개 : M. J. 트로우
1949년 영국 사우스 웨일즈 출생
킹스 칼리지에서 역사 전공.
현재 영국의 범죄소설가 협회 회원으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펴면서 역사 선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모험’과 ‘레스트레이드와 리바이어던’ 외에 논픽션으로 ‘부디카’ ‘헤라클레스’ 등이 있다.
– 역자: 진성록
한국외국어대 졸업. 전문번역가.
옮긴 책으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 드 보통), 『독서의 역사』(알베르토 망구엘), 『세월』(마이클 커닝햄), 『나, 모나리자』(진 칼로그리디스) 등이 있다.
○ 줄거리
스파르타쿠스는 원래는 자유민이었다. 결혼도 했다. 노예의 아들이었다면 로마 군대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노예 신분을 속이고 입대했다가 로마군 당국에 걸리는 날에는 사형까지 당할 수 있었다. 스파르타쿠스가 군에서 탈영한 이유는 로마 군대가 자기 부족을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고향을 짓밟고 들어가 자기 가족들의 목을 따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는 해석이다.
탈영했다가 잡혀 노예로 팔린 뒤 스파르타쿠스는 검투사 학교장 바티아투스가 명령하는 때에, 그가 지시하는 방식 그대로 죽어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죽음도 장엄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투기장의 구경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자.”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그렇게 끌고 나온 검투사가 70명. 그 숫자가 나중에 7만 명, 10만 명으로 늘어났으니, 스파르타쿠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리더십이 읽힌다.
베수비우스산을 근거지로 잡은 스파르타쿠스는 깎아지른 절벽을 수직으로 내려가 로마 군인들의 옆구리를 찌름으로써 로마와의 첫 격돌을 승리로 장식했다. 야생넝쿨로 튼튼한 사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전술은 역사상 스파르타쿠스가 처음이었다. 스파르타쿠스가 도시를 칠 때마다 노예만 그에게로 넘어왔던 것이 아니다. 자유민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도 그에게 합류했다. 그는 이타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약탈품을 공평하게 분배했다. ‘별이 없는 장군’이었다.
당시 10만 병사라면, 로마 군단의 경우 짐을 실은 동물만 7천5백 마리나 된다. 그렇게 큰 규모의 추종자들을, 더구나 여자와 어린이들까지 포함된 집단을 이끌고 로마 군대와의 전투에서 최고 6회, 작게는 네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에서 스파르타쿠스의 리더십이 확인된다. 스파르타쿠스가 초반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철저히 로마식 전투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로마인과 로마인이 맞붙는 전쟁에서는 언제나 지휘관의 자질이 승패를 좌우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죽은 동료 크릭수스를 위하여 로마인 죄수 300명을 바쳤다.
스파르타쿠스에 앞서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노예 반란에서는 노예 지도자들이 왕을 자처했으나, 스파르타쿠스는 끝까지 동료 노예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전리품도 똑같이 나눴다. 크라수스와의 전투에서 죽음을 맞을 때도 그의 시신은 수많은 노예군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스파르타쿠스의 슬픈 운명은 그가 지휘권을 행사하도록 태어난 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성공을 거두는 한에서만 안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싸움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권력에 그대로 남기 위해서는 언제나 승리를 거둘 수 있어야 했다.

○ 스파르타쿠스(Spartacus)에 대하여
스파르타쿠스(라: Spartacus)는 기원전 73년부터 2년 뒤인 기원전 71년까지 노예들을 이끌고 반(反)로마 공화정 항쟁을 지도한 노예 검투사이다.
.생애
처음에는 병사로 있다가, 후에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되어 싸우다가 잡혀 노예가 되었다. 그는 건강한 몸과 뛰어난 무예로써 노예 투사가 되었다. 그 후 노예 제도에 반대하여 칼 잘 쓰는 노예들을 거느리고, 항쟁을 일으켰다. 한때는 그의 세력이 컸고 대규모 진압 군대까지 격파했으나,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에게 항쟁은 진압되었고, 약 6000여 명의 항쟁 가담자들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처형되었다.
.계급 투쟁
그에게 동조하는 70명의 검투사들과 이탈리아 남부의 카푸아의 검투사 양성소를 탈출, 항쟁을 일으켜 한때는 남부전역을 장악했다. 그의 이러한 승승장구는 계급투쟁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로마 공화정의 어리석음과 대농장(라티푼디움)을 소유한 지주들에게 땅을 빼앗긴 몰락농민들의 불만 덕분이었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의 계급투쟁은 투쟁 노선대립으로 인한 내분(스파르타쿠스는 노예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로마 공화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항쟁을 일으켰으나, 대다수의 노예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했다)등으로 인해 진압당했다. 진압으로 붙잡힌 6,000명의 포로들이 아피아 가도에서 십자가형으로 공개처형당했을 정도로 스파르타쿠스의 계급투쟁은 거대한 항전이었다.
당시 포로들의 계급투쟁을 군대의 힘으로 진압한 크라수스가 “스파르타쿠스가 누구냐”고 묻자, 서로 자기가 스파르타쿠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그는 억압받는 계급들의 영웅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