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알폰스 무하 : 매혹적인 선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장우진 / 책우리 / 2017.2.10
포스터, 장식패널, 극장의 무대와 의상, 일러스트, 벽화,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보석디자인, 조각, 초상화. 이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무하는 세기말 아르누보를 지지했던 대중들에게 그 이전의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명랑하고도 심원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선이 그려내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 책은 무하의 생과 작품을 통해, 19세기 말 유럽의 지적 풍토와 예술적 조류, 예술 주변을 둘러싼 감수성들을 되돌아보며 세기말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일부 포스터와 장식패널 외에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무하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다양하게 분석하여 새롭게 소개한다.

○ 목차
머리말
Ⅰ. 세기말의 한 가운데
벨 에포크의 파리
젊은 예술가의 초상
상징주의
아르누보
Ⅱ. 인생의 극장 앞에
보헤미안의 고향
체코의 시골 소년
빈과 뮌헨의 수업시대
파리에서 맞은 봄
Ⅲ. 무하, 세기말을 장식하다
극적인 만남 사라 베르나르
일상의 그 모든 것
박람회의 풍경
Ⅳ. 무하 양식
아르누보의 별
화가의 작업실
세기말의 여인들
Ⅴ. 보헤미아를 향하여
아메리카의 보헤미안
슬라브 서사시
끊임없이 재현되는 무하
무하연보
참고문헌
무하도판목록
색인
○ 저자소개 : 장우진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미술사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미술과 만화에 대한 관심을 통해 ‘미술, 만화로 읽다’를 출간하고 미술에 대한 강의와 저작을 계속하고 있다. 그 외 저서로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자’가 있다.

○ 책 속으로
P.99~100 : 사라는 그가 그린 포스터가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당장 그와 계약을 맺고 싶어 했다. 사실 <지스몽다>를 위한 포스터가 처음부터 무하에게 의뢰된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 다른 유명화가들이 그려 준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퇴짜를 놓았던 그녀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여 연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이 포스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녀 주위엔 학식 있는 지식인들과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그녀 자신도 아마추어 소설가요, 화가, 조각가였던 만큼 그녀의 안목은 정확했다.
1895년 새해 첫날, 파리의 광고 선전탑에 이 포스터가 나붙자 그것은 곧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폭이 좁은 장방형의 포스터는 실물 크기의 여배우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해 주었다. 당시의 원색적인 다른 포스터들과는 달리 파스텔 톤의 투명한 색채와 명암으로 채워진 무하의 포스터는 비잔틴식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배경과 화려한 중세풍의 의상으로 이국적이면서도 장식적인 느낌을 주었다. 평면적인 배경과 장식은 사색에 빠진 듯한 그녀의 사실적인 얼굴과 대비되어 신비감을 더해 주었고, 포스터 속의 그녀와 눈이 마주친 파리지앵들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무하는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진 것이다 – 극적인 만남 사라 베르나르
P.113~121 : ‘국수 가락 양식’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풍성하게 늘어진 머리카락은 여인의 벗은 몸 위로 흘러내리고 가슴 깨의 별 무리에서 시작된 연무는 여인의 머리띠를 이룬다. 한 손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댄 채 턱을 괴고 또 한 손에는 깃털 펜과 붓이 살며시 쥐어져 있다. 이 포스터는 ‘무하 양식’의 전형이 된 몽환적 여인과 장식, 인상적인 타이포를 보여주고 있다. 무하가 이 포스터를 제작하고 있을 때 레옹 데샹은 무하의 작업실에 들러 작업 중인 이 그림을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된다. 데샹은 무하에게 그림을 완성하지 말고 미완성인 지금의 상태로 포스터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이 포스터는 스케치 풍의 날렵하며 자유분방한 선이 살아 있는 이색적인 포스터가 되었다. 데샹의 말대로 이 포스터는 대중들에게 신선한 감각을 선사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같은 해에 제작된 연작 패널화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각기 다른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하고 있다(114-5쪽 그림). 봄꽃으로 화관을 얹은 봄의 여인은 작은 새들의 지저귐에 맞춰 수금을 뜯으며 더할 나위 없는 봄의 서정성을 노래한다. 태양만큼이나 붉은 양귀비꽃을 머리에 꽂은 여름은 그녀의 작은 발로 수면을 유희하고 물가에 자라난 수풀의 어린 가지에 기대어 의식에서 몽환으로 이어지는 여름 한나절의 나른함을 표현하고 있다. 포도를 수확하는 달콤한 가을은 그윽한 국화 향이 그 취기를 더하고 동장군이 지배하는 겨울, 여린 가지에 무겁게 내려앉은 눈은 숲의 작은 새들까지 떨게 한다. 그러나 새들은 여인의 품에서 날개를 접고 그녀의 입김으로 추위를 녹인다. 무하는 이러한 연작 장식 패널로 큰 성공을 거두고 뒤이어 다른 버전의 ‘사계’와, ‘네 개의 예술’, ‘과일과 꽃’, ‘네 개의 별’, ‘네 가지의 꽃’, ‘네 가지의 보석’ 등의 연작을 완성한다. 각기 다른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들 작품에는 상징성을 지닌 여인과 세심하게 선택된 자연이 그의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제 무하의 포스터는 거리를 메우고 그의 장식 패널은 값싼 목로주점의 먼지 낀 벽에서, 가난한 학생의 허름한 하숙방에서 혹은 고급 주택의 응접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의 포스터와 장식 패널은 다시 비단 천에, 그리고 엽서에, 작은 과자 상자, 도자기 접시에도 인쇄되었다. 그의 작품은 굳게 닫힌 미술관의 유리문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이 닿는 거기에, 눈이 머무르는 어느 곳에나 있는 대중을 위한 예술이 되어가고 있었다. – 일상의 그 모든 것

○ 독자의 평
알폰스 무하(1860~1939) 작업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슬라브 서사시> 연작 같다.
세계사로 보자면 한국보다 풍파를 더 많이 겪었다고 할 수 있는 체코에서 태어나 가난하지만 목가적인 풍경 속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무하 그림의 토대였다.
무하 그림의 신비주의적인 요소는 종교를 통해 형성된 것 같은데, 교회 성가대원이기도 했던 무하가 그림으로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도 교회 천장화를 보면서였다.
나중에 상징주의, 심령술, 최면 기법, 프리메이슨 활동 등으로 인해 신비주의가 더 강화된다.
무하가 작품을 위해 모델들에게 요구하거나 찍은 사진들은 그런 바탕에 있었다.
조국을 떠나 파리, 미국 등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아르누보 장식 화가라는 꼬리표를 얻은 것보다 조국에서도 이방인 취급당해야 했던 상황이 더 속상했을 거 같다.
중년에 접어든 무하는 슬라브 유대와 평화를 위해 <슬라브 서사시> 작업에 들어간다. 재산을 모아두지 않아 여유롭지 않은 탓에 기획에서부터 후원자를 만나 완성하기까지 20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중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어렵게 어렵게 그림을 그렸던 상황도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그린 그림 모두를 체코에 기증했는데, 체코가 2차 세계 대전 후 공산화되면서 <슬라브 서사시>가 “시대착오적이고 맹신적인 애국주의 결과물”이란 비난을 받으며 문서 보관소 지하창고에서 처박혀 있었던 걸 생각하면…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