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2 : 기원부터 천 년까지
허진모 / 미래문화사 / 2020.9.21
-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역사 읽기의 새로운 묘미!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2권이 출간되다
인기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의 취미사학자 허진모가 쓴 명쾌한 역사 입문서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의 두 번째 권이 출간되었다. 1권이 기원전까지의 동서양 역사를 담았다면, 2권에서는 기원후부터 중세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방대한 역사 지식으로 바탕으로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역사 읽기의 새로운 묘미를 선사한다.

○ 목차
저자의 말 | 인류가 처음으로 맞는 천 년의 세계
Ⅰ. 역사의 이해를 돕는 인물들
- 역사는 곧 인물이다
- 기원후의 인물들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예수 | 아우구스투스, 왕망, 유수 | 로마의 폭군들과 《삼국지》의 영웅들 |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1세, 사마염 | 테오도시우스, 부견, 광개토대왕 | 아틸라, 탁발도, 유의륭 - 중세의 인물들
오도아케르, 테오도리크, 탁발굉, 클로비스 | 양견과 양광, 쇼토쿠 태자, 무함마드 | 김유신, 이세민, 무아위야, 무조 | 단신왕 피핀, 현종과 양귀비 | 알 라흐만,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샤를마뉴 | 최치원, 주전충, 아율아보기, 왕건 | 오토 1세, 조광윤, 위그 카페
Ⅱ. 기원후의 서양과 동양
- 서양사와 중국사의 큰 줄기
- 새천년의 시작
기원후의 로마 | 로마의 게르마니아 포기 | 기원후의 중국 - 제정 로마와 후한
로마 제정의 시작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 후한과 광무제 | 곤양대전과 신의 멸망 - 제국의 성장통 1
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후한 왕조 - 제국의 성장통 2
네로 | 후한 왕조와 환관 | 후한의 문화 - 혼란과 번영
네 황제의 해 | 플라비우스 왕조 |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 | 마원과 반초의 원정 | 오현제의 시대 | 당고의 화 - 로마의 군인황제 시대와 후한의 삼국 분열 시대
오현제 시대와 군인황제 시대의 차이 | 세베루스 왕조와 군인황제 시대 | 삼국 시대와 《삼국지》 | 본격적인 군인황제 시대
Ⅲ.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와 로마의 4세기
- 남북조 시대와 테트라르키아
서진과 위진남북조 |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 | 디오클레티아누스와 테트라르키아 | 테트라르키아의 이해 - 분열과 쇠퇴
위진남북조와 5호 16국 | 5호 16국 시대 | 콘스탄티누스 왕조 |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단절과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 서로마 멸망의 시작, 아드리아노플 전투 - 북위
북위라는 나라 | 명군 효문제 | 북위의 분열 - 명군과 암군
테오도시우스 대제 | 남조의 왕조들 | 유송의 막장 황제들 - 소멸과 소생
서로마의 멸망과 동로마의 생존 |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멸망 | 남조 송의 멸망과 제 | 제의 막장 황제들 - 로마의 황혼
동·서로마의 본격적인 분단 | 아이티우스와 보니파키우스 | 아이티우스와 카탈라우눔 전투 | 서로마와 동로마의 다른 운명 - 양무제와 후경
남조의 양과 양무제 | 후경의 난 - 왕조의 멸망
서로마의 마지막 9명의 황제들 | 로마의 마지막을 좌우했던 리키메르 | 동로마에서 온 황제들 |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과 남북조 시대의 종말 | 남북조 시대 내의 ‘삼국지’ 구도 | 망국의 군주와 혼란기의 끝
Ⅳ. 중세에 대하여
- 중세라는 시대
중세는 곧 암흑? | 동양사에 있어서 중세라는 용어 | 중세에 대한 또 다른 주장 | 중세와 봉건제 - 중세의 시작
서로마 멸망 후의 첫 번째 패권 다툼 | 테오도리크와 동고트 왕국 | 프랑크족과 클로비스 그리고 메로빙거 | 동로마, 비잔틴 제국, 비잔티움 제국 | 비잔티움과 비잔티움 제국의 이해 - 로마 이후의 유럽과 중국의 통일 시대
클로비스 사후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재통일 | 프랑크 왕국의 세 번째 통일 | 허수아비 왕과 궁재 | 수·당 시대 | 중국의 대운하 - 동양과 관련한 용어에 대하여
동양과 아시아, 그리고 중동 | 다시 동양과 아시아 | 공간적 구분과 제국주의 - 수양제와 무함마드
아라비아와 이슬람 | 수라는 나라 | 수양제 양광 | 수양제의 몰락, 수의 멸망 | 무함마드 사후의 이슬람 | 정통 칼리파 시대의 이슬람 | 정통 칼리파 시대 이슬람의 변질 | 마지막 정통 칼리파 알리 - 전쟁과 대결
세계사의 ‘빅 매치’ 고구려-수 전쟁 | 네 번의 전쟁 | 알리와 무아위야의 대결 | 무아위야와 우마이야 왕조 | 우마이야 왕조 속의 두 계통 | 우마이야 왕조의 멸망 - 새 왕조의 출현
당이라는 나라 | 당의 건국 과정 | 이세민과 현무문의 변 | 정관의 치와 태종 | 당고종과 측천무후 | 황제 무측천 | 당의 부활과 무측천의 평가 | 무위의 화 | 카롤링거 왕조 | 피핀 3세 | 유럽의 영웅 샤를마뉴 | 서양의 봉건제와 기사 - 새로운 국면
아바스 왕조 | 아바스의 역사 틀 잡기 | 당, 꺾이다 | 천보난치와 양귀비 | 제국을 무너트린 간신의 아이디어 | 안록산의 난 - 분할된 제국
샤를마뉴 사후의 프랑크 왕국 | 유럽의 모양이 만들어져 가다 | 아바스 왕조의 변화 |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을 있게 한 조약 | 프·이·독을 있게 만든 두 번째 조약 - 쇠퇴와 멸망
당의 쇠퇴 | 황소의 난과 당의 멸망 | 카롤링거 왕조의 황혼 | 동·중·서프랑크의 카롤링거 왕조 - 저물어가는 새천년
오토 대제와 위그 카페 | 아바스 왕조의 고난 | 5대 10국 시대 | 후량 | 후당과 후진 그리고 후한 | 후주
부록
역사적 인물들의 형님아우 관계 | 중국 남북조 시대 왕조 정리
참고문헌
○ 저자소개 : 허진모
오랜 시간 문명과 전쟁, 종교, 미술, 고고학 등 세계의 모든 역사를 정리하고자 하는 허황된 꿈을 좇아 개인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오로지 ‘재미로 역사를 탐구’하고자 스스로를 취미사학자(趣味史學者)로 부르고 있다. 팟캐스트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에서 역사를 말하고 있고 기업과 정부기관, 대학 등에서 강연을 한다. 저서로는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1, 2?, ?휴식을 위한 지식-한눈에 보는 미술사?, ?허진모 삼국지1, 2?가 있으며, 방송으로는 tvN <어쩌다 어른>, KBS <정치합시다>, KBS <역사저널 그날> 등에 고정출연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동양사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 책 속으로
역사 (歷史)는 인간이 해온 행위를 기록해놓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다. 개개인에게도 역사가 있고 물건에도 역사가 있으며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에도 역사가 있다. 그래서 역사라는 말에는 세상 만물의 시작이,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력이 들어 있는 것이다. 왠지 거창하게 들린다. 하지만 역사를 대할 때 별스런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심각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 우릴 주눅 들게 만들었던 것은 지식이 아닌 평가였고, 지배했던 것은 나의 기호가 아닌 사회의 잣대였다. 생각할수록 이 재미있는 역사를 재미없게 놔둘 수 없다는 확신이 든다. 부디 즐기시길 바란다. — 「저자의 말」 중에서
P.45
왕조가 바뀌면 국가도 바뀌는 것이 보통인 동양과 달리 로마는 지배자의 혈통이 국가와 정부를 이루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세습과는 거리가먼 공화정이 종말을 맞이한 후 세습이 권력 이양의 주된 방법으로 자리 잡은 것이 로마의 제정이다. 따라서 세습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선출이라는 뿌리 깊은 과거의 방식으로 위정자를 만들어냈다. 물론 여기서 선출이라는 과정은 공화정에서처럼 절차를 따르는, 건설적인 것이 아닌 특정 집단의 무력과 협잡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그래서 초대 황제아우구스투스 이래 로마 제정의 정권 창출은 ‘세습‘과 ‘기형적 선출‘의 반복이었다.
P.59
왕망은 여론이라는 것의 힘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조작하는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미디어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를 가진 인물이었던것이다. 그는 여론이 곧 민심이고 민심이 허락해야만 대권이 허락됨을, 그리고 그것을 인력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이 모자라던 시절은 철저히 명성을 얻기 위해 행동했고, 힘을 얻고 난 뒤에는 재물을 풀어 여론을 조작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수십만 명의 백성이자신을 지지하고 자기 뜻대로 청원을 하는 등의 성과를 얻는다. 큰 그림을위한 지난한 과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이다.
P.97
현대의 인재 선발제도가 과거보다 무조건 낫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뽑아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공정성이다.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과 공정한 선발 과정……아, 아닌가.
P.103
중국 역사의 고질적인 병폐는 외척과 환관의 정치 개입이다. 이 두 세력중 하나에 의해 황제가 무력화되고 국가가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후한은외척에 의한 부작용과 더불어 이후 당이나 명에서 등장하는 환관정치병폐의 초기 버전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먼저 화제가 9세의어린 나이에 등극했다는 것이다. 황제가 어린 탓에 태후 두씨가 섭정을하게 되었고, 덩달아 두씨 가문이 요직을 차지하고 횡포를 부렸다. 이는 외척이 나라에 폐를 끼치는 전형적인 시나리오이다.
P.123
왜 로마는 이와 같은 비생산 시설을 이토록 큰 규모로, 그것도 지속적으로 건설하였을까. 이 질문은 정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콜로세움과 같은 대규모 경기장은 로마시민들의 오락시설인 동시에 매우 정치적인 시설이기도 하였다. 경기장뿐 아니라 신전이나 목욕탕과 같은 대규모 시설은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유력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황제 또한 정부의 업적을 보고하고 자신의 치적을 선전하는 장소로 이러한 곳들을 활용하였다.
P.136
로마의 평화 시대 또는 오현제 시대라고 하면 대개 평화와 번영만을 올리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시기에도 무수한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인류사에서 전쟁은 거의 생활이었다. 오히려 전쟁이 없는 시기를찾는 것이 더 빠를지 모른다. 로마 또한 마찬가지다. 로마의 평화란 국경에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루어진 내부의 고요함이었다.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오현제가 칭송을 받았던 이유가 군사적 업적에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시대와 비교해도 전쟁의 숫자가 적지않았다. 이렇듯 힘을 바탕으로 이룩한 평화의 시대에 로마는 평화를 누렸지만 인접국은 억압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진정한 평화란 자신의힘으로 주도한 역학관계에서 쟁취한 평화인 것이다. 이것이 팍스 로마나의 ‘Pax‘ 이며 그 주도적인 힘이 헤게모니이다.
P.144
충신은 간신을 이기지 못한다. 그 이유는, 충신은 나라를 돌보느라 바빠 간신에겐 관심이 없으나, 간신은 나랏일 따윈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충신 때려잡는 데에 온 힘을 쏟기 때문이다.
P.159
도덕성과 지능이 떨어지는 집단에 거대한 권력이 주어졌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로마근위대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저 로마라는 곳에 이런 집단이 계속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이며,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수백 년을 지속했다는 것은 더 불가사의하다.
P.163
군사력만 놓고 보면 동탁은 가장 강한 군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정권을 잡고 천하를 흔들 수 있었던 것은 황제를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황제라 해도 그는 여전히상징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를 천자라 하였는데, 고만고만한 세력들 사이에서 천자의 확보는 정통성과 직결되었다. 즉 자신이 정부이고, 자신의 사병이 정부군이며 이에 대항하면 반란이 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황제는 이 게임에서 최고의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P.187
절차를 무시한 집권은 ‘한탕‘과 ‘요행‘의 표본이 되어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한번 쿠데타가 일어난 나라에서 그런 일이 계속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군인황제 시대가 되기 전까지 천 년이나 발전해 왔던 로마가 군인황제 시대 이후 200년간 쇠망의 길을 걸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P.200
역사는 발전하는가‘라는 어려운 명제를 놓고, 만약 역사가 발전한다고가정하면 통일기보다 분열기가 그 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힘도 훨씬 강하다. 진통은 성장의 필요조건이고 혼란은 안정을 향한 동력이 된다. 역사란 그것을 반복하는 과정인 것이다.
P.227
화북의 단일 왕조 북위 영향력을 고려하였을 때 북위는 남북조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다. 130년 5호 16국 시대를 마감하고 AD 534년 동위·서위로 분단될 때까지 100년간 화북 전체를 다스렸던 북위는 중국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인 호한융합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호한융합은 북방의 유목민족이 중원의 농경민족으로 흡수되는 현상을 뜻한다.
P.278
그 ‘차이‘를 만든 사람 중 하나가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첫째 아들 아르카디우스이다. 아르카디우스는 우수한 평가를 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재위 또한 13년에 그쳐 28년 동안 서로마를 지배했던 동생 호노리우스에 비해 짧았다. 그러나 아르카디우스가 취했던 하나의 조치가 후세에 높은 평가를받는다. 그것은 바로 사산조 페르시아의 황제 야즈데게르드 1세Yazdegerd I에게 자신의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의 대부가 되어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이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P.299
아무리 강한 군대도 배신이는 장사가 없다. 역사는 어떤 외적보다도 내부의 적이 더 치명적일 수 있을 수도 없이 보여주고 있다. 로마가 마주했던 마지막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P.317
위진남북조 시대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중국이 정치적으로 한족과 이민족, 즉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이 융합되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본격적인 강남 개발이 시작된 시기였고 종교적으로는 불교가 궤도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유.불.선 사상이 혼재되어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유목문화가 섞이게 된 화북과, 화북의 한족이 내려와 섞인 강남에 각각 독특한 문화가 발달하는 등 문화사에서도 중요한 시기라 하겠다.
.324
중세를 암흑기로 보는 표현 자체가 애초부터 세계사를 서유럽 중심으로보려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AD 5세기부터 천 년 동안의 암흑은 서유럽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므로, 중세라는 말의 앞에는 반드시 서유럽이라는지역명이 붙는 것이 옳다. 이 시대의 동유럽만 하더라도 동로마 제국, 즉비잔티움 제국이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유럽과 접한 서아시아, 과거 로마의 영토였던 북아프리카는 아라비아인들이 또 다른 화려한 문명을 건설하였으며, 중국은 눈부시도록 찬란한문화를 꽃피웠다. 암흑은 개뿔. 서유럽을 제외한 모든 대륙은 이때야말로 성기를 누리며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강대하게 성장했다. 서유럽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서유럽과 한 덩어리로 같이 묶일 이유가 없었다.
P.329
시기적으로 게르만족에 의한 서로마의 멸망과 이슬람의 유럽 침입은250년 정도의 간격이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게르만족에 의한 로마의 붕괴는 유럽 사회를 바꾸지 않았으나, 이슬람의 침입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명의 진입이자 충돌이었다는 것이다.
P.367
프랑크족의 전통 법인 살리카법을 따르면 어떠한 국가도 강대국이 되기 어려웠다. 국가가 부강해지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따라주어야 하는데, 이법 아래서는 영웅이 나타나 나라를 크게 성장시킨다 하더라도 그가 세상을떠날 때면 아들의 숫자만큼 나라가 쪼개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국력이 축소되는데, 분열된 나라들은 분쟁을 피할 수 없다. 운이 좋아 그나라들이 다시 통일되어 영토를 회복한다 해도 기능적으로 분열 전의 수준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무슨 낭비인가.
P.387
양견의 수는 여러모로 진시황의 진출을 닮았다. 전국 시대와 남북조 시대라는 오랜 분열을 마감한 것과 영토의 통일에 맞춰 여러 제도적인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켰다는 점 등. 무엇보다 얼마 안가 멸망하였다는 것과 그 뒤를 이은 왕조가 혜택을 입어 번영하였다는 것도 닮은 점이다. 역사학에서 말하는 가장 좋은 표현을 가져오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진의 멸망은 한이라는 진정한 통일시대를, 의 멸망은 당이라는 국제화 시대를 열었다. 181 여러 이유로 수, 당은 전대의 진, 한과 많은 비교가 된다.
P.388
과거제는 이전까지 없었던 획기적인 인재 등용방법으로 그 파장이 매우 컸다. 이전의 구품중정제대표되는 추천 방식의 등용제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제도였다. 이는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다. 신분제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에서 전통적인 제도를 대신해 시험으로 관리를 뽑는다는 것은 왕권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계급제도 자체를 흔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문의 후광이 아닌 개인의 노력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게한 이 제도는 기득권 세력을 견제할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냈다. 이는 양견이 노렸던 효과이기도 하다.
P.399
인류 역사시대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1만 년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의 시작부터 따져 5천 년으로 보았을 때 중동은 5천 년 중 4천년을 유럽과 같이 살았다. 진정한 동양과 접촉한 시간은 천 년 남짓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중동과 중국이 한 덩이로 묶여 있는 것이다. 중동이 무슨 깍두기인가.
P.402
지도는 종교와 역사의 수많은 의미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시각 자료이다.
결국 유럽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심어진 이 차별 의식은 상대에게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된다.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에서 행해진 납치와 학살, 인종 청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신앙심이라는 자기변명이 더해지면 양심이라는 최후의 장치마저 작동하지 않게 된다. 각국이 그토록 노력하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는 인종차별 의식의 형성에 지도가 너무나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유럽인들이 만든 대륙의 구분과 그들이 만들어낸 지도는 이렇게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도는 매우 조심스럽게 만들고 다루어야 할 물건인 것이다. 이는 지도를 이용한 교육 또한 마찬가지이다.
P.411
황제의 행동은말로 내리는 어떠한 명령보다도 아랫사람에게 강하게 어필된다. 입만 나불거리는 썩은 위정자를 보는 백성의 시선은 고금이 다르지 않기에 군주의이 같은 노력은 재정 확충과 민생안정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역사는 이러한 수문제의 치세를 ‘개황의 치‘라 부른다.
P.486
자카리아스의 뒤를 이은 교황 스테파누스 2세 stephanus II는 이러한 절실한 마음을 담아 AD 754년 피핀에게 기름을 한 번 더 부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양동이째 퍼부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피핀은 정성 어린 기름을기쁘게 뒤집어쓴 뒤 확실한 대가를 지불했다. AD 755년 롬바르드족으로부터 교황을 지켜준 데 이어 동로마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윈-윈 Win-Win이었다. 이때부터 교황은 이탈리아 중부 지방 일대를 독자적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교황령 Papal State의 시초이다. 성스러운 왕이 세속의 왕과 점점 차이가 없어지는 과정이다.
P.492
봉토를 받은 봉신들은 그 땅의 생산물로 먹고살며 기병을 육성해야 했다. 즉 자급자족하며 힘도 기르는 독립적인 권력자였던 것이다. 칼 마르텔은 이 독립적인 권력자들에게 각각 게르만식의 충성서약을 하게 만들었다.
개별적인 계약을 한 것이다. 봉토는 마르텔에 대한 군사적인 의무를 이행하는 데 대한 대가였다. 봉신들은 토지를 받으면 봉사를 해야 했고 봉사를 하지 않으면 토지는 몰수되었다. 이것이 바로 중세 봉건제가 만들어지는과정이다. 마르텔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봉신들이 많아야 대규모의 기병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기병을 늘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토지가 필요했고, 토지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을 멈출 수 없었다. 전쟁이 곧 비즈니스였던 것이다.
P.546
황소의 난은 당을 멸망으로 이끈 사건이다. 이는 안사의 난과 곧잘 비교되는데 안사의 난이 당의 정치제도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황소의 난은 사회제도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사의 난이 절도사라는 지배 세력의 반란이라면 황소는 농민이라는 민중 세력의 저항이라 할 수 있다. 당의 전반과 후반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두 사건은 이렇듯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P.565
분열 시대와 통일왕조 시대의 가장 큰 차이는 갈등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갈등은 국가 간의 경쟁, 즉 전쟁을 말하고 후자의 갈등은 내부자들 간의 경쟁, 즉 권력 투쟁을 말한다.

○ 출판사 서평
- 역사 부문 1위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허진모 작가의 역사 내공을 책으로 만나다
역사 부문 1위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에서 활약 중인 허진모 작가가 들려주는 명쾌한 역사 입문서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2권이 출간되었다.
1권에서 4대 문명의 태동에서부터 기원전까지의 동서양 역사를 담았다면, 2권에서는 기원후 인류가 처음으로 맞이한 천 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변화가 없는 시대는 없지만, 예측할 수 없는 여러 방향으로 굽이치던 거친 물줄기가 서서히 지금 인류가 서 있는 곳으로 크게 몸을 움직인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이다.
1장에서는 본격적인 역사 서술에 앞서 워밍업으로 기원후부터 중세까지 활약했던 인물들을 먼저 소개한다. 역사란 ‘사람’이 한 일을 ‘사람’이 쓴 것이므로 “역사는 곧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인물에 대한 이해는 이후 서술되는 통사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기초 지식이 된다. 세계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장 곤란하게 하는 것이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왕조와 사건들로 동?서양사의 틀을 잡을 차례다.
2장에서는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넘어가는 시기의 동서양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 로마는 제정 시대를 맞이하고, 중국은 전한에서 후한으로 넘어갔다.
3장에서는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와 동?서로마의 본격적인 분단이 이루어지고 멸망으로 향해 가던 로마의 4세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중세를 다루고 있다. 흔히 암흑기라고 말하지만, 이는 서유럽 중심으로 바라본 것이다.
동로마에서는 서로마 멸망 이후에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갔고, 서아시아에서는 아라비아인들이 이슬람 문명을 건설하였으며, 중국에선 수에 이어 등장한 당 왕조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시기가 바로 중세인 것이다.
2권에서는 등장인물이 많아지고 역사의 흐름이 복잡해진 만큼 1권보다 더 다양한 시각 자료를 수록하였다. 풍부한 사진과 지도를 실은 것은 물론이고,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역사 속 주요 인물의 특징과 복잡한 사건들을 재미있는 일러스트와 도표로 정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또한 주요한 시기마다 그 시기의 역사적 사건들을 동서양 역사의 맥을 잡아주는 연대표로 정리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방대한 세계사를 공부해 보고 싶은데 복잡하고 지루한 역사 개론서의 벽에 가로막혀 포기했다면, 쏟아지는 인명과 지명의 홍수에 누가 누군지, 여기가 거긴지 헤매느라 역사는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한다.

- 반쪽자리 역사는 가라! 종횡무진 동서양을 오가며 풀어내는 ‘진짜’ 역사 이야기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의 가장 큰 매력은 쉽고 재미있지만 결코 얕거나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초심자부터 역사 책 좀 읽었다는 마니아들까지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를 좋아하는 이유다.
저자는 기나긴 역사에서 각 시간과 각 공간을 따로따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 인물들을 연결고리로 삼아 동서양의 역사를 연결 지어 서술하고 있다.
동양사, 서양사, 한국사 각기 따로 배웠던 역사들을 한데 그러모아 동서양을 종횡무진 오가며 풀어내다 보니,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역사적 지식들이 맥락을 찾고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역사 배우는 재미를 더한다.
입체적인 세계사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허진모 작가는 역사 입문서를 읽을 때 “시험을 치기 위한 교과서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글을 처음 배울 때의 동화책처럼” 대하라고 말한다. 그에게 지식이란 “사고를 위한 연료”일 뿐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대해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인류의 모든 것을 담고 있고, 세상만물은 각각의 역사를 갖고 있다. 또한 역사는 ‘사람’이 한 일을 ‘사람’이 쓴 것이고 사람에 ‘달린’ 일이다.
역사가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필요한 모든 지식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를 지향할 수 있는 모든 생각에게 지식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역사인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를 알아야 비로소 알게 되는 지식들을 자신만의 독특하고 유쾌한 해석으로 서술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