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황제 : The Lives of the Twelve Caesars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 u-paper / 2016.7.6
– 수에토니우스 (AD 69? ~ 122?)의 ’12인의 로마황제’
역사는 지나간 일들의 조합이다. 따라서 역사가가 어떤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취사선택되고 기술되는 역사와 그 해석이 달라진다. 아무리 뛰어난 역사가에 의해 서술된 역사라고 하더라도 당대의 사실을 온전하게 담아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후대인들이 역사 문헌을 통해 오래된 과거의 사건과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살필 때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절실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정사 (正史) 못지않게 야사 (野史)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회고되는 역사는 역시 로마의 역사일 것이다. 세계 최대의 제국을 일구었던 로마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원천과 교훈을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이 성취한 역사는 숱한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고 재해석되어 왔다. 에드워드 기번 (1737 ~ 1794)의 ‘로마제국 흥망사’, 테오도오 몸젠 (1817 ~ 1903)의 ‘로마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후대 역사가와 대중의 뜨거운 사랑은 받은 책들이다. 이들이 쓴 로마의 역사는 당연히 18세기에서부터 20세기 까지 당대인들이 로마를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과 저자의 개인적 해석을 담고 있다.
또 정통 역사서가 아니더라도 숱한 지성들에 의해 로마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자 하는 매력적인 시도가 지속되어 왔다. 마키아벨리 (1469 ~ 1527)의 ‘로마사 논고’와 몽테스키외 (1689 ~ 1755)의 ‘로마제국의 성공과 실패’는 로마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평설로 대표적인 역저이다.
아무튼 로마의 역사를 조명한 후대의 문헌이 풍부하긴 하지만 로마 시대를 다각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인들이 바라 본 자신들의 역사는 어떠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음을 잊지 말자. 당대에 기록된 역사는 그 시대를 몸으로 겪어낸 이들의 생생한 체험과 공유된 사유가 배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타키투스 (55? ~ 117)가 쓴 ‘역사’와 ‘연대기’, 수에토니우스 (69? ~ 122?)의 ‘황제열전’를 먼저 읽는다면 당대인과의 시대적 간극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수에토니우스 (Gaius Suetonius Tranquillus)가 쓴 이 책의 원제는 ‘카이사르들의 전기 8권’ (De Vita Caesarum Libri Ⅷ)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황제정의 토대를 만든 탁월한 장군의 이름이지만 사후 신격화되어 ‘카이사르’는 곧 황제를 의미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였다). 12명의 로마 황제의 전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보통 ‘황제열전’으로 불린다 (mediapen).
○ 목차

초판 Cover & story
THE LIVES OF THE TWELVE CAESARS
PREFACE
CONTENTS
THE TWELVE CAESARS
CAIUS JULIUS CASAR.
D. OCTAVIUS CAESAR AUGUSTUS.
TIBERIUS NERO CAESAR.
CAIUS CAESAR CALIGULA
TIBERIUS CLAUDIUS DRUSUS CAESAR. 465
NERO CLAUDIUS CAESAR.
SERGIUS SULPICIUS GALBA.
A. SALVIUS OTHO.
AULUS VITELLIUS.
T. FLAVIUS VESPASIANUS AUGUSTUS.
TITUS FLAVIUS VESPASIANUS AUGUSTUS.
TITUS FLAVIUS DOMITIANUS.
LIVES OF EMINENT GRAMMARIANS
LIVES OF EMINENT RHETORICIANS.
LIVES OF THE POETS.
THE LIFE OF JUVENAL.
THE LIFE OF PERSIUS.
THE LIFE OF HORACE.
THE LIFE OF PLINY.
FOOTNOTES
INDEX.
저자 사진 및 프로필
원서로 읽는 세계 명작 시리즈
판권 페이지
부록 (Clarissa, Volume 1 (of 9)
cover
초판 Cover & story
Clarissa, Volume 1 (of 9)
저자 사진 및 프로필
○ 저자소개 :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트란퀼루스 (Gaius Suetonius Tranquillus, 69? ~ 130이후)

수에토니우스는 서기 69년경 기사 계급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90년대부터 로마에서 지내며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소 플리니우스의 후원 아래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뛰어난 학자이자 역사가인 그는 일찍부터 학문에 헌신하여 많은 책을 저술했다. 그는 트라야누스 황제 밑에서 황실 비서로 연구와 장서를 담당하였다. 또 하드리아누스 황제 밑에서는 칙서를 관리하는 황실 비서로 일했는데, 당시에 『열두 명의 카이사르』를 집필하고 있었다. 이 책 『열두 명의 카이사르 : The Lives of the Twelve Caesars』은 그의 저작 가운데 현재까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유일한 책이다.
130년 이후 사망했으나 그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 편자 : 박경귀
청소년기부터 학교 공부보다 자연 속에서 습관처럼 책을 읽었다. 1970년대 초, ‘자유교양대회’의 참가를 계기로 인문 고전의 매력에 빠진 저자는 자신을 만든 8할 이상이 인류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고전이라고 믿는다. 2010년부터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지식인들과 ‘고전 200권 읽기’ 모임을 시작했고, 2012년부터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 읽기’의 이사장으로서 고전 읽는 품격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이와 함께 Happy Classic 고전 아카데미에서 고전 특강과 토론을 열고 있고, 공개강좌를 지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또한〈미디어 펜〉과 〈미래 한국〉에 4년에 걸쳐 고전 평론을,〈서울신문〉에 매주 고전 칼럼을 연재 중이다. 2013년부터 8차례에 걸쳐 그리스문명 답사 여행을 다녀왔다. 현대 문명의 원천인 그리스 문화유산을 생생하게 느끼고,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데일리안〉에 그리스 문화유산 답사기의 형태로 ‘ad Greece’를 연재했다. 고전에 심취하다 보니 행정학 박사를 취득하고,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으로 13년 동안 봉직한 것이 오히려 인생의 덤처럼 느껴진다는 저자는 국무총리실, 국방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 다양한 부처에서 평가위원을 역임하고, 행자부 지방공기업혁신단장을 거쳐 2015년 9월부터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11인 지성들의 대한민국 진단》과 《감추고 싶은 중국의 비밀 35가지》가 있고, 근간으로 《인문학의 원천 그리스 로마 고전》, 《그리스 문화유산 답사기》가 있다.
○ ‘황제열전‘ (De vita Caesarum) 개관
수에토니우스는 로마 제국 초기 12명의 황제를 기록한 ‘황제열전’ (De vita Caesarum)을 저술했다. 수에토니우스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치세 때 몇 번이나 비서관 (秘書官)과 공문서관 (公文書館)의 감독 업무를 맡았고, 덕분에 로마 관보 같은 공문서 기록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그것을 토대로 ‘황제열전’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문서, 관보 등을 참고해 일부 사실을 확인해 적었어도, 대부분은 이탈리아와 저자의 고향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떠돌던 야담, 소문 등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본인이 추측해 각색 후 저술했다.
‘황제 열전’은 그가 잠시 공직에 몸담았던 하드리아누스의 치세에 대체로 저술된 것으로 보이며, 수에토니우스의 친구에 의해 서기 119년에 정무총감 가이우스 셉티키우스 클라루스 (Gaius Septicius Clarus)라는 인물에게 헌정되었다.
‘황제 열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시작으로 도미티아누스까지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플라비우스 왕조 12명의 황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초대 황제로 보고 있으며, 책 제목 역시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이를 통해 당대 로마에서 카이사르를 최초의 황제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근대까지만 해도 대중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카이사르가 로마 최초의 황제라는 인식이 절대적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원수정 (Principatus)’이라는 개념이 정립되면서 최초의 원수 (프린켑스)인 옥타비아누스를 최초의 황제로 서술하게 된 것이다.
가십 형식의 내용이 대부분이고, 온갖 뜬소문과 저자 개인의 추측들이 더해져 만들어진 책이지만, 내용이 강렬하고 로마 시대에 저술된 책 중 살아남은 까닭 때문에 대중에 알려진 로마의 이미지 형성에 ‘황제열전’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당장 유명한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에 “주사위는 던져졌다 (Alea iacta est)!”고 외쳤다거나, 암살 당시 죽기 직전 중얼거렸다는 “브루투스, 너마저도 (Et tu, Brute)…”라는 명대사도 ‘황제열전’에 나온 “너도냐, 내 아들아(καὶ σὺ, τέκνον)”라는 대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수에토니우스의 저서를 제외하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카이사르가 실은 간질을 앓고 있었다는 설도 이 사람의 기록이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황제 중 칼리굴라가 벌였다고 알려진 수많은 악행들과 그의 근친상간 이야기, 티베리우스가 손자 칼리굴라 손에 질식사했다 등의 뜬소문 이야기들도 수에토니우스 손에서 나왔다.

이런 까닭에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은 연대기 순으로 사건을 나열하면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어떠어떠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있다” 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생김새가 어떻게 생겼다던가, 이 사람이 태어날 때 무슨 일이 있었다던가, 계보가 어떻게 된다던가, 자신이 그 내용을 어디서 인용했는지에 대해서 적고, 이후의 어떤 황제들에 대해서든 일관된 순서로 경력과 공적 (일화에 가깝기는 하지만)을 적고 있으며,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작정하고 쓴 역사서라기보다는 대중용으로 저술한 역사 이야기집 같은 느낌이 든다.
다만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수에토니우스 본인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언급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다섯 황제들에 대한 기록들은 상당히 부정적인데, 문제는 그가 적은 내용들이 당대 로마의 기록인 까닭에 한때 후세 학자들에게 그대로 믿어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수에토니우스 본인이 로마에서 비서관이나 공문서 관련 공직을 맡았고 로마 관보를 조사해 황제들의 행적을 조사했기는 했지만, 애초에 수에토니우스가 살았던 시기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시대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에서 백 년 쯤은 후대였던 데다 수에토니우스 본인도 자신이 조사한 공문서 기록 외에 세간에 떠도는 소문, 가십거리들을 주워 모아서 실제 사실인 양 같이 기록해 놨다는 (심지어 일부는 자기창작을 넣었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까닭에 로마사 연구자들에게 타키투스, 디오 카시우스 등의 기록과 달리 로마 시대 저서 중 분실되지 않고 전해짐에도, A급 사료로 평가받기보다는 B급 수준으로 평가받거나 그 이하로 취급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심할 경우에는 당대에 작성된 파테르쿨루스, 유대인 필로, 대 플리니우스, 소 플리니우스, 요세푸스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서 제정시대 풍속들을 알아보는 용도로 참고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왜냐하면 다른 책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의 기록들이 상당히 많은데다, 일일이 당대 기록이나 다른 역사가들의 저서들과 대차대조하기 전까지는 사실로 오인되는 주장들과 작가 개인의 상상과 분석이 더해져 완성된 내용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 따라서 위키러들 가운데 극단적인 경우는 ‘황제열전’과 그 저자 수에토니우스를 두고 남자 시오노 나나미, 로마판 동인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황제열전’의 한국어 번역은 1998년에 풀빛미디어에서 펴낸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황제’ (전2권)와 2009년에 다른세상 (출판사 이름이다)에서 펴낸 ‘열두명의 카이사르 – 고대 로마 역사가가 쓴 황제 이야기’가 있다. 전자는 ‘갈리아 전기’나 ‘타키투스 연대기’의 역자 (중역)로 알려진 박광순이 번역한 것이고, 후자는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영역본을 조윤정이 중역한 것이다.
○ 역자의 글
제1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제2권은 아우구스투스, 제3권은 티베리우스, 제4권은 칼리굴라, 제5권은 클라우디우스, 제6권은 네로의 전기를 수록했다. 제7권은 내란의 혼란한 시기에 아주 짧게 재임했던 3인의 군인 황제 갈바·오토·비텔리우스가, 제8권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이어 집권한 그의 두 아들 황제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 3인의 전기가 수록되었다.
이 책의 번역서 제1권에서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를 각각 상당한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2권에서는 나머지 9명의 짧은 전기를 한권으로 묶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열전’이 정사 (正史)적 기술로 영웅과 왕들의 정돈된 전기라면,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은 야사 (野史)에 치중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로마 황제들의 감추어진 민낯과 당시의 풍속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전거 (典據)이다.
수에토니우스는 황제의 가문과 탄생 과정, 성장기, 주요 관직생활의 활동상, 용모와 취미, 성격, 그를 둘러싼 각종 풍문과 악행, 죽음과 관련된 불길한 전조 (前兆)를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황제의 소소한 개인사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황제에게 확대경을 들이대다 보니 당대의 시대적 상황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당시 정치 사회적 사건들과 황제의 중요한 업적과 행태가 생략되거나 아예 다루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점이 책의 약점이기도 하다.
특히 황제에 대한 다양한 풍문과 악행, 다양한 평가에 대한 전거 (典據)가 부족한 편이다. 저자가 황제의 생활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데 치중한 느낌이다. 결국 ‘믿거나 말거나’ 식의 기술도 적지 않게 섞여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로마 시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질 우려도 있다.
또 역사적 사실과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풍문 사이에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여지도 적지 않다. 수에토니우스는 황제와 관련된 숱한 세평 (世評)과 소문, 험담 등을 정열적으로 수집했다. 하지만 그가 채집한 정보들의 진위와 가치를 판별하고 비판적으로 취사선택하기보다 되도록 많은 것을 ‘들은 그대로’ 수록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황제에 얽힌 비화를 상당히 많이 채록하여 편찬했다는 것은 저자가 당시 로마인들에게 체험적으로 검증된다는 것을 이미 고려했으리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수에토니우스가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무조건 기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낯선 이야기조차 당대에는 평범한 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이 고전이 된 특유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정사 (正史)에서 다룰 수 없는 당대의 사회상, 풍습, 황궁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적 행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황궁을 중심으로 커튼 뒤에서 벌어진 암투와 배신, 기이한 에피소드가 풍부하게 기술되고 있다. 게다가 근엄함으로 치장된 황제의 박제된 활동이 아니라 황제의 사생활과 치부까지 거침없이 폭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통의 역사서에서 볼 수 없는 1차적 자료를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황제의 포고문이나 서한, 창작한 글이나 시, 황실의 일지 등을 인용한 대목은 누군가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이렇게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거의 소실되었기 쉬운 자료들이다. 수에토니우스가 황실의 비서역할을 수행했었기에 채록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당대 로마인들의 구체적인 풍습과 생활상을 드러낸 점도 로마인의 일상을 살피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여러 곳에 걸쳐 미신과 점, 꿈, 성생활, 복장에 대한 묘사도 적지 않다. 황제들이 점치기를 좋아하고 신전의 신탁에 크게 의존했던 것도 당대의 사회문화적 특성의 하나였다.
12명의 황제 중 수에토니우스의 험한 재단 (裁斷)의 대상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베시파시아누스 황제가 대체로 훌륭한 황제군에 속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네로, 도미티아누스의 경우 잔혹한 행위, 근친상간, 음란한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저열한 품성의 폭군에 속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황제도 인간적 약점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많은 황제들이 재위 초기에는 원로원과 시민들을 존중하며 선정 (善政)을 베풀다가, 권력에 도취하면서부터 귀족과 원로원, 시민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네로와 칼리굴라도 재위 초기에는 성군 (聖君)으로 인기를 모았었다. 하지만 점차 권력이 공고화되자 대중들에게 영합하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잔인한 검투 시합과 볼거리, 무상 급식을 제공하면서 국고를 고갈시켰다.
로마 제국에 무절제하고 폭력적 황제가 자주 등장했었던 요인은 뭘까? 우선 로마 황제가 올바른 품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전횡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장치가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황제는 명목상으로는 ‘제일 시민 (princeps)’으로 공화정을 표방하는 듯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최고집행관이었던 집정관과 원로원 위에 군림하는 전제적 권력자로 행세했다. 황제 (Emperor)에게 집정관의 한 사람으로서의 권한 이상을 부여함으로서 실질적으로 종신 독재관의 권력을 안겨 준 셈이 되었다. 그러니 황제의 폭주를 막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는 로마가 지닌 군사국가적 성격에서 기인한 것 같다. 제국의 방대한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선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했다. 당연히 장군과 병사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고착되다 보니 변방과 속주의 군사력은 지휘관의 사병이 되기 일쑤였다. 또 군단병들의 이기심과 지휘관의 권력욕이 결부되어 반란과 황제 암살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가 군단병의 군사력을 활용해 반란을 일으켜 일선의 지휘관에서 일약 황제가 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에 보이는 로마 황제들의 추악한 행태와 어처구니없는 실정 (失政)이 로마 황제들의 진면목을 모두 대변한다고 보면 큰 착각이다. 로마 황제 가운데는 선정 (善政)으로 세계 최고의 로마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5현제 (五賢帝)가 있었다. 네르바(재위 96∼98), 트라야누스 (재위 98∼117), 하드리아누스 (재위 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 (재위 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재위 161∼180)가 그들이다.
이들 훌륭한 황제들이 연이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제위(帝位)를 세습(世襲)하게 하지 않고, 원로원 의원 가운데 가장 유능한 인물을 황제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원로원과 황제, 시민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었기에 현명한 리더의 배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합리적 제도가 계속 유지되지 못했던 점은 못내 아쉽다. 이로 인해 이후 황제의 난립기를 거쳐 3세기 초기에는 일 년에 5~6명의 황제가 교체되는 등 극심한 위기의 시대를 겪게 된다. 군대의 반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황제 암살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힘이 있는 군단장을 병사들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면서 황제로 즉위하는 악폐가 반복되었다.
아무튼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은 1세기 말까지의 초기 황제정 시기의 황제 12명의 재위 중 행적을 당대인의 시각에서 샅샅이 살피고 있다는 점에서 꼭 읽어야할 고전이다. 초기 황제들의 생활상과 당대의 풍속도는 호기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때론 역겨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작가적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이 책에서 갖가지 삽화와 우화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로마 황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로마 제국을 움직인 최고 권력자의 내밀한 생활에 대한 풍부한 영감의 원천임에 틀림없다. _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