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원제 : Podroze z Herodotem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 크림슨 / 2013.5.30
– 폴란드 태생으로 기자, 저널리스트, 시인, 그리고 문화해설자 등으로 활동해온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의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저자가 2007년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06년 내놓은 마지막 르포르타주 에세이다. 평생 미지의 낯선 공간을 떠돌며 민족과 문화, 그리고 종교의 차이로 인한 소통의 장벽을 허무는 데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친 우리 시대 진정한 저널리스트의 표상인 저자가 자신의 멘토 헤로도토스의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들려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체험한 다양한 취재 여행을 회고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남긴 《역사》를 인용하고 있다. 2500년을 먼저 살다간 헤로도토스와 화자의 역할을 나누는 새롭고 독특한 문화적 실험을 시도하여 유구한 역사의 현장의 한복판에서 역사적 맥락에서의 성찰과 분석을 감행한다.

○ 목차
국경을 넘어서 7
인도에 유배되다 24
기차역과 궁전 39
랍비가 우파니샤드를 노래하다 58
마오 위원장의 백화제방 74
중국의 사상 92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에서의 추억 105
크로이소스의 행복과 불행 118
전투의 끝 130
신의 기원에 대하여 142
이슬람 사원 첨탑에서 바라본 풍경 156
암스트롱의 콘서트 168
조피로스의 얼굴 181
토끼 194
죽은 왕들과 잊혀버린 신들 속에서 209
히스티아이오스의 머리에 경배를 223
닥터 랑케의 병원에서 237
그리스인의 서술 방법 251
들개들과 새들이 물어뜯기 전에 265
크세르크세스 281
아테네의 맹세 295
시간은 사라지고 308
사막과 바다 320
닻 331
검은 것은 아름답다 344
광기와 분별이 교차하는 장면들 357
헤로도토스의 발견 369
우리는 지금 빛으로 둘러싸인 채 어둠 속에 서 있다 383
옮긴이 해설
2천5백 년의 동행 399
작가연보 441

○ 저자소개 :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저자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Ryszard Kapu?cinski : 1932~2007)는 기자, 저널리스트, 르포작가, 시인, 사상가이자 문화해설자.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 역사학부 졸업.
폴란드 통신사 해외 특파원 역임.
수많은 혁명과 전쟁의 증인으로 꼽힘.
전 세계 50여 개국의 취재를 담당하며, 총 27회의 혁명과 쿠데타를 직접 경험했음.
12회의 전쟁을 취재하는 동안 여러 차례 최전방에서 활약했음.
40회에 걸쳐 체포 및 구금을 당했고, 네 번이나 처형당할 위기를 겪었음.
폴란드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40개 이상의 문학상과 훈장을 받았음.
스페인 바르셀로나 라몬 율 대학, 이탈리아 우디네 대학, 불가리아 소피아 대학 등 7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 수여.
대표작으로 『검은 별』(1963), 『황제』(1978), 『만일 모든 아프리카가…』(1969), 『생(生)의 또 다른 하루』(1976), 『축구전쟁』(1978), 『황제』(1978), 『샤들의 샤』(1982), 『제국』(1993), 『흑단』(1998), 『기자의 자화상』(2003), 『헤로도토스와의 여행』(2006) 등이 있음.
그의 작품은 전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되었음.
2007년 1월 23일 바르샤바에서 사망.
– 역자: 최성은
역자 최성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및 같은 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를 졸업하고,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폴란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거리 곳곳에서 문인의 동상과 기념관을 만날 수 있는 나라, 오랜 외세의 점령 속에서도 문학을 구심점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왔고, 그래서 문학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라인 폴란드를 ‘제 2의 모국’으로 여기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부지런히 폴란드 문학을 번역, 소개하고 있다. 2012년 폴란드 정부로부터 폴란드 문학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공로로 십자 기사 훈장을 받았다. 옮긴 책으로《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쿠오 바디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흑단 – 카푸시친스키의 아프리카 르포에세이》,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 아담 자가예프스키 시선집》,《루제비치 시선》, 《헤르베르트 시선》 등이 있다. 황선미의《마당을 나온 암탉》, 김영하의 단편선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3인 시선집을 폴란드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 책 속으로
헤로도토스의 저술에서는 증오나 분노의 감정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만약 누군가가 이런 행동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 근거와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든 밝혀내고,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는 결코 개별적인 인간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가 나무라고, 비판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타락하고, 사악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사회제도에서 잘못을 찾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헤로도토스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이자 권위주의와 독재정치, 폭정에 항거하는 투사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이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존엄하게 살 수 있으며, 인간다움을 간직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헤로도토스는 이야기한다. 소국가들로 이루어진 조그만 나라 그리스가 동양의 거대한 세력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인들이 자유를 누리고 있었으며, 그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헤로도토스의 책은 여행을 통해 탄생했다. 그러므로 『역사』는 세계문학사에서 첫 번째로 기록될 위대한 르포르타주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천성적으로 기자로서의 본능, 기자로서의 눈과 귀를 갖고 있었다. 지질 출 모르는 인내와 끈기의 소유자였던 헤로도토스는 바다를 건너고, 대초원을 횡단하고, 사막을 가로지르면서 우리에게 모든 정보를 남겨주었다. 그가 보여준 불굴의 의지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단 한 번도 피로를 호소한 적이 없으며, 그 무엇도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려움도 모르고, 굴복할 줄도 몰랐던 한 인간으로 하여금 이토록 거대한 모험을 시작할 수 있게 이끌어준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우리 현대인들이 오래 전에 상실한 낙천적인 믿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세상을 기록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몰두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헤로도토스에게 점차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고, 나아가 우정 어린 감정까지 갖게 되었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자에 대한 애착도 커져만 갔다. 이것은 말이나 글로는 형언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었는데, 굳이 설명하자면,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인물에게 품는 막연한 연대감 같은 것이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혹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통해 우리를 자연스럽게 매료시키는 인물,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고, 모두를 하나로 융합시키는 불씨가 되는 그런 인물과 점차 가까워지는 느낌이랄까.
헤로도토스를 읽으며 나는 점차 그에게 어떤 동질감이나 형제애를 느끼게 되었다. 그로 하여금 여행을 결심하도록 만든 동기는 무엇일까? 과연 무엇이 그에게 이런 일에 착수하도록 했을까? 무엇이 고된 여정을 마다하지 않게 만들었고, 위험을 감수해가며 원정을 지속하도록 했을까? 짐작컨대, 그건 아마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또한 세상 ‘어딘가’에 가보고 싶고,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봐야만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뜨거운 바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세계에서는 다양한 문화와 문명이 공존하고 있으며 그들 간의 관계 역시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그려진다. 다른 문명과 충돌과 갈등을 빚고 있는 문명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문명과 상호 교류하면서 서로를 풍요롭게 만드는 문명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서로 팽팽히 대립했던 두 문명이 오늘 날에는 더불어 협력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내일이 되면 또 다시 전쟁터에서 서로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헤로도토스에게 있어 세계의 다(多)문화성이라는 것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세포와도 같은 것이며, 결코 한 자리에 영원히 고정되거나 한정지어질 수 없는, 다시 말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면서, 새로운 관계와 맥락을 형성하는 그런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21세기의 헤로도토스’ 카푸시친스키, 그가 남긴 마지막 르포르타주 에세이
카푸시친스키가 남긴 마지막 르포르타주 에세이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은 전 세계 1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 ‘모란테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가 무려 140여 권에 달하는 참고문헌을 토대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폴란드 출신의 기자이자 저널리스트, 르포작가이며 시인인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Ryszard Kapu?ci?ski, 1932-2007)는 평생 낯선 공간, 미지의 세계를 떠돌며 민족과 문화, 종교의 이질성으로 빚어진 소통의 장벽을 허무는데 자신의 생을 바친 인물이다. 세계 50여 개국에서 취재를 담당하면서 27번의 혁명과 쿠데타를 경험했고, 12회의 대규모 전쟁을 취재하는 동안, 여러 차례 최전방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 사이 40번 넘게 체포와 구금을 당했고, 네 번이나 처형의 위기도 겪었다. 에리트레아에서는 전갈에 물려 사경을 헤맸고, 탄자니아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다. 취재여행 도중 밀림에서 코끼리에게 밟히거나 독사에 물린 적도 있었다.
투철한 취재근성과 전문적인 역사 지식,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감수성을 두루 겸비한 카푸시친스키는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세상을 글로 재현해내는 과정에서 ‘르포르타주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저널리스트로서는 최초로 2005년과 2006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다.
독자들에게 지구촌 방방곡곡의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적인 감수성을 일깨우고, 풍요로운 문학적 체험을 제공하는 카푸시친스키의 작품은 결국 정보나 실상의 전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탐구와 고찰,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과 진정성이라는 점을 깨우쳐준다.
카푸시친스키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처음 만난 것은 기자생활을 시작한 직후 해외로 첫 취재 여행을 떠날 무렵이었다. 당시 그가 몸담고 있던 기관지 <젊은이의 깃발> 편집장이 비행기에서 읽으라며 선물로 건넨 책이 바로 『역사』의 폴란드어 번역판이었던 것이다. 이후 카푸시친스키는 해외 특파원이 되어 2천 5백 년 전 헤로도토스가 그랬듯이 언어도, 지리도, 문화도 낯설기만 한, 세계 방방곡곡의 다양한 나라들을 누비게 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평생 홀로 타지를 떠돌던 카푸시친스키에게 유일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에는 크게 두 명의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하나는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인용하면서 그 장면이 갖는 의미와 현대 사회와의 연관성을 냉철하게 되짚어보는 ‘분석자’로서의 카푸시친스키이다. 이 첫 번째 내레이터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해묵은 동서양의 대립과 반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기원을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집트 문화의 유구한 가치를 강조하면서 인류의 화해와 단합을 촉구하고자 했다. 또한 2천 5백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역사』가 가진 불변의 가치와 보편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두 번째 내레이터는 특정한 장소로 파견되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로서의 카푸시친스키이다. 이 책에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인도와 중국, 이집트와 이란, 아프리카 대륙과 그리스를 오가면서 카푸시친스키가 몸소 체험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삶, 그 애환과 환희가 진솔하게 드러나고 있어 카푸시친스키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이 두 번째 역할에서 카푸시친스키는 c의 저자인 헤로도토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경의를 표현하고 있다. 카푸시친스키는 헤로도토스를 ‘저널리스트의 원조’이자 ‘인류 최초의 글로벌리스트’라고 칭한다. 자신이 속한 마을, 그 좁은 공간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며 살아가던 고대 사회에서 처음으로 다른 문화,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먼 곳까지 여행을 감행했고, 이를 통해 얻어낸 소중한 경험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카푸시친스키에게 있어 헤로도토스는 그 발자취를 따르고픈 멘토이자 저널리스트의 진정한 표상이었던 것이다.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을 읽으며 2천 5백 년 전 헤로도토스의 여정을 함께 따라 가 보고, 20세기 카푸시친스키의 취재여행에 동행하게 된 독자들은 어느 틈엔가 헤로도토스의 페르소나인 카푸시친스키를 만나게 된다. 20세기의 기자가 체험한 다양한 스토리를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가 기술한 문화적 맥락을 통해 이해하고, 반대로 기원전 5세기에 발발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20세기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면밀하게 분석되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어느 틈엔가 헤로도토스가 카푸시친스키가 되고, 카푸시친스키가 헤로도토스가 되는 자연스런 접합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와 마찬가지로 카푸시친스키는 생의 대부분을 여행에 바쳤으며, 이를 통해 모든 종류의 ‘장벽’과 ‘경계선’을 뛰어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국가와 국가를 가르는 국경선, 다시 말해 공간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으로 시작한 카푸시친스키의 길고도 고달픈 여행은 이후 언어의 경계선, 문화의 경계선, 그리고 시간의 경계선을 초월하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짓기 힘든, 새롭고 독창적인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르포르타주이면서 역사책이기도 하고, 기행문이면서 회고록이기도 하며, 철학적인 단상을 담은 에세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청중에게 구술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집필된 『역사』가 단순한 산문이 아니라 서사시와 비극의 요소를 두루 갖춘 독특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역사적?인류학적 가치를 넘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고대의 헤로도토스가 그러했듯이 20세기의 카푸시친스키 또한 특정 사건을 취재함에 있어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주목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생각을 참조하고, 개별적인 견해를 면밀히 관찰했으며, 다각적인 반응을 종합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애썼다. 카푸시친스키의 저널리즘이 감동적인 울림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시선이 ‘사건’이 아닌 ‘인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카푸시친스키는 모든 선입견을 일체 배제한 열린 시각으로 주류 문화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조명함으로써, 독자들의 문화적 시야를 넓히고, 동시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미적 감수성과 보편적 정서를 공유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그런 의미에서 카푸시친스키야 말로 ‘21세기의 헤로도토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 최성은
– 헤로도토스는 누구인가?
헤로도토스 (Herodotus: 대략 기원전 489 ~ 425년)는 ‘역사’의 개념을 단순한 연대기의 기록에서 학문과 저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인물이다.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나소스 Halicarnassus)에서 태어났고, 시인이었던 삼촌, 파니아시스 (Panyassis)로부터 문필가로서의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와 바빌론,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고 스키타이를 여행하면서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해묵은 분쟁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페르시아-그리스 전쟁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았다. 그의 여행 범위는 북쪽으로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방인 스키타이,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거쳐 바빌론까지, 남쪽으로는 오늘날의 이집트 아스완 (Aswan) 지방인 엘레판티네 (Elephantine), 서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키레네 산맥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헤로도토스는 사망하기 20여 년 전인 BC 445년 경 아테네로 돌아와 정착했다. 당시 아테네는 세계의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헤로도토스는 페리클레스나 소포클레스 와 같은 저명인사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 무렵 헤로도토스는 연회에 불려 다니며 이야기꾼의 역할을 하였으며, 청중에게 주로 아테네의 여러 명문가에 관한 이야기, 또는 전쟁사나 그 밖의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자신이 여행한 미지의 땅에 대한 신비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시 낭독이 크게 인기를 얻어 아테네 시 (市)로부터 10 탈렌트의 포상금을 받았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아테네 토박이가 아닌 타지 출신이라 시민권을 얻을 수 없게 되자 다시 여행길에 올랐고, 결국 이탈리아의 남쪽에 위치한 그리스의 식민지 투리오이 (Thurioi)에서 여생을 보내며 『역사』를 저술했다. 헤로도토스의 말년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투리오이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는 설도 있고, 훗날 다시 아테네를 방문했다는 주장도 있다. 마케도니아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략 60세의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인과 장소는 알려진 바가 없다.
–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원전 431년부터 425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는 유럽의 산문 사상 최초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리스가 양분되었으나 페르시아의 제국주의 팽창정책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양국이 동맹을 맺고 함께 싸웠던 것에 초점을 맞춰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체로 서술되었다.
그러므로 동서분쟁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Greco-Persian War : 기원전 499년 ~ 479년)이 『역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는 한 권의 책이었으나 후대의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이 편의상 아홉 권으로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 자신이 아홉 개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로 된 『역사』를 청중 앞에서 직접 낭독했다는 주장도 있다. 구술을 염두에 두고 집필된 텍스트이기 때문에 당시에 유행하던 서사시와 비극의 영향을 받아 극적인 구성과 웅장한 문체가 인상적이다.
『역사』의 내용을 보면 1권에서 6권까지는 페르시아 제국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최초의 아시아 군주인 리디아 (Lydia)의 크로이소스 (Croesus : 기원전 595년 ~ 546년)가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정복하는 대목에서 시작해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인들이 후퇴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다음으로 7권에서 9권까지는 10년 후의 세월이 흐른 뒤 마라톤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고, 그리스를 페르시아 제국에 흡수하려는 크세르크세스 왕의 행적을 묘사한다. 마지막 9권에서는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거쳐 페르시아가 패배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면서 아테네 제국이 수립되는 것으로 대단원을 맺는다.
헤로도토스는 보고, 들은 내용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전해지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며, 한 가지 사건이나 현상을 언급하더라도 자기가 수집한 모든 버전을 전부 소개하는 것을 서술 원칙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스스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고,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 저서 『역사』의 핵심 자료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헤로도토스는 과거의 사실 (史實)을 시가 (詩歌)가 아닌 실증적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그리스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서 헤로도토스가 수집한 다양한 자료들은 단순히 정치, 사회, 역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민속학, 인류학적인 가치까지 아우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마의 철학자이며 문필가인 키케로 (Cicero)는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 카푸시친스키가 말하는 헤로도토스
고대의 수많은 철학자와 문인들 중 헤로도토스는 아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한 첫 번째 인물일 것이다. 물론 헤로도토스 이전에도 특정한 나라나 종족에 대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들 개별적으로 서술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인류를 개별적인 인종이 아닌 하나의 전체로 바라 본 최초의 작가이다. 다시 말해 그는 나무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숲 전체를 보는 안목을 지녔던 것이다. 오늘 날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어떤 사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후관계나 정황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은 저마다의 존재가치를 갖고 있고,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문화’라는 맥락 속에서 바라볼 때 보다 심층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헤로도토스는 ‘문화’야말로 인간을 설명해주고, 해석해주는 단서라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했던 것이다.
『역사』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타인에 대한 무한한 존중, 그리고 청중에 대한 저자의 겸손한 태도이다. 헤로도토스는 청중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역사 구송자 (口誦者)였다. 그러므로 그가 남긴 『역사』는 청중에게 구술되어진 텍스트이다. 당시의 청중은 말하자면 오늘날의 독자라고 할 수 있다. 헤로도토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더욱 효과적으로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는 『역사』에 수록될 내용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어떤 장면에서 독자들이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지, 또 어떤 대목에서 감동을 느끼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역사』가 흥미진진하고, 극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카푸시친스키에 대한 평가
“쓸데없는 눈물이나 환상을 만들어내는 삼류 문인 천 명 보다 카푸시친스키 한 사람이 훨씬 더 가치 있다. 르포르타주에 예술적 가치를 결합시킨 그의 비범한 재능 덕분에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카푸시친스키 본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 진상에 아주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 살만 루시디 (Salman Rushdie): 『생(生)의 또 다른 하루』의 영국판 서평에서 (1987)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가다보면, 자기 자신밖에 볼 줄 모르는, 편협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변경에 살면서 오히려 지평을 확장시키고, 자아를 넓혀 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변경에 다가가면, 더욱 어리석어지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더 큰 세계, 드넓은 지평을 만나게 되리라. 카푸시친스키처럼.” – 얀 미오덱 (Jan Miodek) 교수: 브로츠와프 대학교 명예박사 수여식에서 (2001)
“카푸시친스키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가장 행복을 느꼈던 세상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척박한 오지였다. 그런 곳에서 인간은 결코 다른 사람인척 가장할 수 없으며, 자신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보이게 된다.
카푸시친스키는 ‘스토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는 기자들을 준엄하게 비판한다. 그의 책에는 특별한 스토리도, 매력적인 줄거리도 없다. 그저 개별적인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 한느나 크롤 (Hanna Krall): 폴란드 작가 (2001)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