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현대 신약신학의 동향
G. F. 하젤 / 대한기독교서회 / 1982.9.15
현대 신약 신학의 동향 최근 몇년 동안 신약신학에 관계된 많은 양의 자료들이 출판되었다. 힌약신학의 본질, 기능, 방법, 그리고 그 범위에 대해 서로 상이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많은 신학자들이 이 주제에 대한 그들 자신의 해석을 내어놓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점증하는 많은 시도들은 학자들과 학생들 사이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혼란을 야기시켰다. G. F. 하젤은 논쟁되고 있는 근본문제들을 깊이있게 다루고 납득할 수 있도록 개관함으로써 신약신학을 위기에 몰아넣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밝혀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신약신학의 방법론, 신약성서의 통일성 문제, 그리고 신구약성서의 관련성 문제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현대 구약신학의 동향’의 자매편이다.

○ 목차
약어
서론
1. 신약신학의 기원과 발전
1. 종교개혁으로부터 계몽주의에 이르기까지
2. 계몽주의 시대
3. 계몽주의로부터 변증법적 신학에 이르기까지
4. 변증법적 신학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 신약신학의 방법론
1. 주제적 연구방법
2. 실존주의적 연구방법
3. 역사적 연구방법
4. 구속사적 연구방법
5. 결론적인 언급
3. 신약신학의 중심과 통일성
1. 문제제기
2. 신약의 중심에 관한 질문
– 인간론
– 구속사
– 계약, 사랑, 그리고 기타 제안들
– 그리스도론
3. 신약의 중심과 경전 안의 경전
4. 신약신학과 구약
1. 불일치와 불연속성의 형태
– 신약에 대한 과대 강조 – 구약에 대한 과소 강조
– 신약에 대한 과소 강조 – 구약에 대한 과대 강조
2. 통일성과 연속성의 형태
– 역사적 연결성
– 성서적 의존
– 어휘
– 주제
– 유형론
– 약속 – 성취
– 구속사
– 관점의 통일성
5. 신약신학에 관한 기본 제안들: 복합적 접근방법
1. 역사적 – 신학적 연구로서의 신약신학
2. 신약 문서들에 근거한 신약신학
3. 문서들과 자료군을 근거로 진술한 신약신학
4. 종교적인 주제들을 근거로 진술한 신약신학
5. 통일성을 드러내는 신약신학
6. 신약신학과 성서신학
주
참고문헌

○ 저자소개 : 게하르드 하젤 (1935 ~ 1994)
G. F. 하젤은 미시간주의 Andrews University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구약신학과 성경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구약신학:현대 논쟁의 기본 이슈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 역자 : 장상
이화여대 수학과 졸업(B.S.) 연세대 신과대학 졸업(Th.B.) 미국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 졸업(Ph.D.) 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신약신학) 역서 <오늘의 복음증언을 위한 소명>(세계개혁교회연맹편)
○ 요약 및 서평
제 1 장신약신학의 시작과 발전 (신약신학의 기본 이슈)
1. 종교개혁으로부터 계몽시대까지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전통과 스콜라신학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오직 성경”을 전투의 구호로 삼았다. 이러한 원리 하에서 성경은 더 이상 전통에 의하여 해석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그 이후 성경신학 발전의 원천이 되었다.
루터와 기타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의 해석학적인 의의를 신학의 전 영역에 적용하지는 않았다. 즉 그들은 “성경신학”으로 알려진 분야를 개발하지는 않았다.
“성경신학”이라는 용어를 개발한 자들의 선구자들은 사실 과격 종교개혁, 즉 재세례파 운동에 속한 자들로서 특별히 1530년대 초의 오스왈드 글래이트와 안드레아스 피셔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년 후에야 비로소 “성경신학”이라는 표현이 볼프강 야콥 크리스트만의 “성경신학”에서 최초로 나타나게 되었다. “성경신학”은 초기 개신교 정통신학의 전통적인 “교리체계”를 지지하기 위하여 신구약 성경으로부터 무분별하게 취해 내는 “증빙 본문들”로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교리학에 대한 “성경신학”의 보조적인 역할은 아브라함 칼로비우스에 의해 확립되었는데, 그는 “성경신학”을 과거에 “주경신학”으로 알려진 것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독일 경건주의의 강조점은 성경신학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경건주의에 있어서 성경신학은 메마른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발의 도구가 되었다.
1745년에 “성경신학”은 교리신학으로부터 분리되었고, 이것은 성경신학이 단순히 교리학의 보조학 역할로부터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2. 계몽시대
계몽시대에는 성경 연구를 위한 전혀 새로운 접근법이 여러가지 영향하에서 개발되었다.
그 중 첫번째로 제일 중요한 영향은 여하한 형태의 초자연주의에 대해서도 반발한 합리주의이다. 이것은 신적 계시의 무오한 기록으로서의 성경의 권위가 거부된 것을 의미했다.
계몽시대의 두번째 주요한 출발점은 역사비평법이라는 새로운 해석학의 개발이었다. 이것은 자유주의 학계와 그 이상에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방법이다.
세번째는 성경에 대한 급진적인 문서비평의 적용이다.
마지막으로 합리주의는 합리주의라는 바로 그 본질 때문에 성경 영감이라는 정통적인 견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따라서 궁극적으로 성경은 어느 다른 고문서처럼 연구되어야 할 고문서 중의 하나로 전락되었다.
3. 계몽시대로부터 변증신학까지
1813-1821년에는 고트로브 필립 크리스티안 카이저의 3부작 “성경신학”이 등장했다. 그는 “철학적인 보편 종교사의 관점”과 결합된 소위 “문법적 역사적 해석법”으로써 자신의 작품을 구성했다. 그는 “종교사적인” 접근법을 적용하여 모든 성경적, 비성경적 국면들을 보편 종교의 원리에 종속시킨 최초의 신학자였다.
드 베테는 “신구약성경 교리”를 1813년에 발행했다. 그는 게블러의 제자였다. 그의 작품은 프리스에 의해서 중개된 칸트 철학을 채택하고 성경신학을 철학 체계와 결합함으로써 합리주의로부터 떠나는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신앙과 감정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한 그의 입장은 히브리주의에서 유대주의를 경유하여 기독교로 넘어오는 종교의 “유전적인 발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내용적인 통일성을 분쇄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신학이 종교사의 한 형상으로 이해되게 된 것이다.
드 베테의 접근법은 스타인으로부터 과격한 반격을 받았다. 스타인은 드 베테의 접근법에 게블러의 프로그램과 바우어의 신약신학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약 저자들이 동의하는 예수님의 교훈을 신약의 핵심으로 만들고자 했다. 여기서 신약의 핵심과 통일성 문제 전체가 전면에 부상된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주요 이슈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성경신학의 “순수하게 역사적인” 본질에 관한 게블러와 바우어의 전통은 폰 쾰른의 “신약성경신학”에도 나타나 있다. 폰 쾰른은 히브리주의 – 유대주의 – 기독교의 발전론을 묘사했고 신정 사상의 영화, 윤리적 정화 및 보편적 확대의 역사를 제시했다. 메르크는 폰 쾰른이 결과적으로 수정된 교리신학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그가 역사적 비평적 성경신학의 과제를 해석의 과제로부터 예리하게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순수하게 역사적인” 신약신학에 관한 게블러와 바우어의 접근법이 페리디난드 크리스티안 바우어의 작품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바우어의 헤겔적 변증법은 그로 하여금 기독교 역사를 유대 기독교의 정과 이방 기독교의 반 간의 투쟁이 2세기 초기 가톨릭주의의 합으로 나타난 역사로 보게 하였다. 이것은 신약신학과 관계가 있는데, 신약신학은 “순수하게 역사적인 학문이지만 신약의 문헌들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약신학에 대한 “순수하게 역사적인” 접근법들과는 대조적으로 19세기 초기 학자들 중에는 신약신학의 “적극적으로 역사적인”방향에 속한다고 분류될 수 있는 학자들이 있다. 이런 방향의 창설자들 중에 로씨우스와 크레머가 있는데, 이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로씨우스는 “교리개념”에 대한 교리적 접근법을 역사적 접근법과 결합하였다.
바움게르텐 – 크루시우스의 노골적인 보수적인 “성경신학 개요”는 독특한 위치를 점한 책이다. 바움가르텐 – 크루시우스는 “교리의 기초와 규범 및 교리사의 출발점이 될 순수하게 성경적인 개념들의 체계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는 문법적 역사적 해석의 타당성을 인식했고 카이저, 드 베테, 로씨우스 등에 영향을 받은 것을 느꼈으나, 성경신학에 대한 이질적인 영향을 떨어버리기 위해서 이신론의 과도한 종교비판을 건전하게 반격하는 주장을 폈다. 그는 성경의 통일성은 신약과 구약을 연합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공동 주제에 근거하여 인식된다고 제의했다.
신약의 통일성과 다양성 문제는 아우구스트 네안데르의 접근법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네안테르는 사도시대의 역사를 추적한 후에(제1권), 상이한 사도들, 즉 바울, 야고보, 베드로, 요한의 가닥들을 구분했다(제2권). 이러한 사도들의 메시지 제시의 다양성은 그리스도의 교훈의 다양성 속에서의 “살아 있는 통일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네안데르가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슈미트에 미친 영향은 슈미트 자신이 거리낌없이 인정했다. 슈미트는 신약에 본질적인 통일성이 있으며 이것이 신약 저자들의 상이한 교리 속에 반영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와 유사한 견해가 1854년에 게오르그 루드비히 한과 1856년에 헤르만 메스너에 의해 주장되었다.
베르나르트 바이스의 “신약의 성경신학 교재”는 대단한 인기를 누린 책이다. 바이스의 접근법은 보수적이었다. 슈미트와 한과 메스너의 방법론과는 대조적으로 바이스의 접근법은 긍정적인 면이 많으면서도 보수성이 적었다. 그는 신약과 구약의 관계를 완전히 다루지 않았으며 요한복음이 예수의 교훈을 위한 출처라는 것을 완전히 배제해 버렸기 때문이다. 바이스는 “신약성경신학은 각기 다른 신약 문헌들의 다양한 교훈 형태들을 기술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바이스에게 있어서는 해석학적 토대는 “각 저자를 그 저자 자신 안에서 해석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스의 방법은 신학적인 ”교리 개념“ 방법이 특징이다. 신약신학에 있어서 “교리개념” 방법은 “현대적 적극적” 신약신학 입장의 대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학자들에게로 넘겨졌다.
“순수하게 역사적인” 신약신학 방법에 대한 또 하나의 “보수적인” 반발은 “구속사 학파”를 통해서 표현되었다. 19세기의 “구속사 학파”는 “말씀 속에 표현된”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 성경영감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인 역사의 결과 등에 기초하고 있다.
폰 호프만은 성경에서 직선적 구원사의 기록을 발견했다.
폰 호프만의 “구원사적” 접근법을 두고 파이네는 “19세기에 가장 유익한 신학적 발전”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폰 호프만의 영향은 해박한 학자 테오도르 짠에게 선명하게 나타난다. 짠은 신약신학을 과학적인 종교체계로 보지 않고 성경에 포함된 신학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았다.
쉴레터는 “무신론적 신학 방법들”이라는 도전적인 논문에서 현대적 역사비평법에 들어 있는 무신론을 거부하고 세계관을 포함한 문화신학이나 현대의 역사비평법이 신약신학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활동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역사적으로만 기독교의 발전을 연구하려는 방법은 “무신론적”이다.
몰간은 쉴레터의 입장이 판넨버그의 신학적인 입장의 일부 측면들 및 판넨버그가 그 이후의 “말씀의 신학”을 비판한 점과 공통점이 많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바른 지적이다.
고펠트와 크라우스는 쉴레터의 접근법 속에서 구원사 개념을 보았는데, 이것은 매우 정확한 관찰이다. 쉴레터는 “신학적인”관심을 지배적인 것으로 삼는 자들의 선구자이다.
윌리암 브레데가 “소위 신약신학의 과제와 방법에 관하여”에서 개괄적으로 제시한 방법은 쉴레터의 접근법과 이 이상 다른 방법이 있겠나 싶을 정도의 신약신학 방법이다.
바이넬은 “신비적 구속 종교”와 대조되는 “윤리적 구속 종교”로서의 “예수의 종교”를 크게 강조하였다. 이 둘이 초기 기독교의 “종교” 속에 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헤겔 변증법의 영향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바이넬의 책이 출판되고 2년 후에, 빌헬름 부세트의 중요한 책 “주 그리스도”가 등장했다. 부세트는 기독교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미묘한 역사를 통하여 바우어의 시대를 극복했다.
칼 홀과 고펠트는 초기 보편 교회의 기원이 부세트와 종교사적인 접근법에 의해서 설명되었는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개신교 신학은 다양한 파노라마로 표현되었다. 첫째, 1897년 바젤 대학교에서 자신의 전공인 신약해석과 고대교회사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프란쯔 오버벡이 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을 “근본적 불신앙”으로 이끈 순수 역사적 방법론 때문이다. 그의 급진적 불신앙은 신약을 순수하게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신학적인 과제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둘째, 종교사 학파가 있는데 그 종교사적 신학작업은 일관된 역사비평법에 기초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수한 역사적” 방법을 신랄하게 비판한 쉴레터가 있는데 그는 구속사적 접근법에 견고한 관심을 두었던 매우 박학한 학자이다. 이리하여 변증법적 신학이 일어난 시기까지 이른 것이다.
4. 변증법적 신학에서 현재까지
칼 바르트가 해석학과 신학에서 과격한 변화의 신호를 보냈다. 그는 1918년 독일어로 된 그의 강력한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도전적인 말로 자유주의에 대한 환멸을 표현했다. 바르트의 이러한 과감한 지적은 변증법적 신학을 낳은 부분적인 이유가 되었다. 변증법적 신학은 해석과 신학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한 신학이다. 바르트는 신인관계에서 신적측면, 즉 계시의 출처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였다.
20세기 신약연구에 있어서 가장 지배적인 인물이 변증법적 신학과 함께 등장하여 그것으로부터 출발했다. 루돌프 불트만의 학문활동은 양식비평과 비신화화, 이 양자를 창시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역사적 예수에 관해 새로운 연구에 대한 논쟁에 기여했다. 그의 활동은 그의 견해들에 대한 찬반의 문서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게 하였다.
불트만에 대한 가장 의미 깊은 반발은 1950년대에 불트만 자신의 학생들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들은 통상적으로 후불트만 학파라고 불리운다. 후불트만 학파는 역사의 예수가 신앙에 적실성이 없다는 불트만의 주장을 반격했다.
1960년대 초, 후불트만 학자중 몇 명은 불트만의 해석학, 특히 초기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채택한 불트만의 입장을 초월하여 언어가 기능하는 방식에 대한 불트만의 이해를 비판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연구 운동과 신해석학 운동에 회원으로 있는 후불트만 학자가 1976년에 영어로 논문을 발표했는데, 로빈슨은 그 논문에 “신약신학의 미래”라는 도전적인 제목을 붙였다.
스툴마허는 “승인의 해석학”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성서 말씀의 내재적인 능력” “신앙의 지평과 교회의 경험” “초월성으로부터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리와 만나기 위한 개방성” “신앙의 가능성에 대한 개방성”을 위한 충분한 여지를 포함하는 해석학이다. 그는 자신이 “케리그마신학, 경건주의, 그리고 성서적인 방향을 지닌 루터주의의 경계선에선 자”로서의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았다.
로빈슨과 스툴마허의 입장은 그들의 신약신학 개념에 있어서 불트만 학파에서 나오는 자들이 과격한 다양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로빈슨의 프로그램이 “순수한 역사적”방향으로 회귀하는 것임에 비하여 스툴마허의 프로그램은 소위 “구속사” 학파로 좀더 다가가는 것 같다.
로마 가톨릭 학계는 1928년에 최초의 신약신학을 출판했다. 불란서 신학자 레모녀는 “신약의 신학”에서 주제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본시르벤은 1951년에 “신약의 신학”을 내놓았는데 그도 역시 신약신학을 통합적으로 제시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현대 가톨릭 성경운동은 피우스XII세의 회람문으로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의 헌터가 쓴 “신약신학 서론”은 “그리스도의 사실”에 근거해서 신약신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을 다소 드러내고 있다.
1940년대 이후 미구의 “성경신학 운동”을 탁월하게 정리해서 소개한 사람이 차일즈이다. 그 운동은 미국 나름의 운동이라고 한 그의 독특한 강조점이 바르에 의해 도전을 받았는데, 바르는 “영국의 유럽 대륙에서도 동일한 넓은 경향이 배경은 달라도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제 2 장 신약신학의 방법론
1. 주제적 접근법
1) 알란 리차드슨
알란 리차드슨은 “신약신학 서론”(1958)이란 제목으로 신약신학을 제시했는데, 자기 책의 구조를 16장으로 잡았다. 리차드슨은 “신약신학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집필될 때 반드시 사도적 신앙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믿음과 들음”이란 제목의 제1장 벽두에서 “근본적인 신앙개념 연구로부터 신약신학 고찰을 시작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16장의 방법론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주제적인 구조이다. 리차드슨은 “내부로부터” 자신의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부과된 구조들로부터 자신의 주제를 다루는 것 같다.
2) 칼 쉘클레
쉘클레의 방법론은 “신약 전제를 통해서 더 무게 있는 단어들, 개념들, 주제들을 추적하고 신약의 개별적인 책들과 그룹들 속에서 실제로 그것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조직적으로 요약하여 묘사하는 것”이다.
2. 실존주의적인 접근법
1) 루돌프 불트만
불트만의 유산은 “순수하게 역사적인” 연구방향으로 남아 있고 그는 종교사 학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먼저 그의 역사적 뿌리가 역사비평법에 깊이 내려져 있음을 의미한다. 불트만의 두번째 역사적 뿌리는 1920년대의 변증법적 신학, 특히 바르트와 고가르텐과 연결되어 있다. 불트만은 역사적 이슈, 즉 “사고하는 행위”로 만족하지 않았다. 역사와 인간 존재에 대한 불트만의 이해는 그의 체계 속으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병합하게 하였는데, 그는 이 실존주의에 근거해서 “실존주의적 해석”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가 되었다. 불트만은 “역사적 재구성”과 “실존주의적 해석”을 결합했다. “실존주의적 해석”은 그의 비신화화 프로그램과 긴밀하게 묶여져 있고 상호 연관되어 있다. 비신화화가 해석의 방법으로 필요한 것은 “신학의 우주론이 성격상 본질적으로 신화적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중심이고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지하 세계, 이렇게 3층 구조의 세계관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세계관이 옳은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대인에게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신화적 세계관이 케케묵은 것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트만의 이해에 있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한 방향은 현대인이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신화적 세계관”을 받아들일 것을 기대하는 것이고, 다른 한 방향은 신학이 케리그마에서 그 신화적 틀을 벗겨내는 작업, 즉 그것을 비신화화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2) 한스 콘첼만
콘첼만은 재구성과 해석의 상호 관계 면에서 변화를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재구성, 즉 규범적인 것보다는 역사적인 것을 향한 변화이다. 불트만의 시대에는 “말해진 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과 본문들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강조하였으나, 콘첼만은 “시작들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가졌다. 오늘날에는 역사 긍정주의와 상대주의를 향한 새로운 경향이 있다. 성경신학자들이 수십년간 좋아했던 위로 향하는 경향 자체가 일종의 도피주의 – 역사적인 것에로 도피하는 것임이 입증되었다. 콘첼만은 역사 긍정주의와 상대주의를 향한 이러한 경향을 역류하고자 하였다.
불트만은 본문의 재구성이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매체를 통하여 현대인들을 위해 번역될 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 즉 “해석”을 강조했지만, 콘첼만은 이러한 불트만을 반대하는 작전을 통해서 그러한 경향에 역류하고자 했다. 실존주의적인 접근법은 실존주의적 해석에 맞는 신약의 부분들만을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에 맞지 않는 신약의 부분들만을 다룰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에 맞지 않는 신약의 부분들은 “내용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아예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불트만과 콘첼만의 실존주의적 접근법은 히브리서,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유다서, 계시록 등 문서들을 주목할 가치가 없는 저서들로 취급한 것 같다.
3. 역사적 접근법
1) 킴멜
킴멜은 “바울과 예수” 문제에 있어서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불트만은 브레데 계열에서 바울과 예수 사이의 단절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킴멜의 주장은 바울은 예수의 건전한 증인이며 해석자라는 것이다. 킴멜의 결론은 “예수와 바울은 동일한 역사적 진리에 대한 증인들이지만 바울은 예수가 이루어 낸 구원과 예수로부터 기대된 구원을 되돌아보면서, 또 내다보면서 지적한 것뿐이다”는 것이다. 킴멜은 신약신학의 통일성 문제를 강조한 것이다. 킴멜의 신약신학이 예수, 바울, 요한 등 주요 증언들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신약 전제의 통일성 문제에 대답할 수 없지만, 그는 이런 과정에 있어서 로제의 추종을 받았는데 로제는 그의 “신약신학 개요”의 결론을 “신약의 통일성”에 대한 한 장으로 내렸다.
2) 요아킴 예레미아스
“적극적 – 역사적” 연구방향의 최고 대표자는 괴팅겐 대학교의 국제적 명성이 있는 학자 요아킴 예레미아스이다. 그는 신약신학을 “케리그마 신학”으로 만드는 불트만의 접근법을 선두에서 비판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강력한 역사 반비판주의”를 개발했다. 예레미아스의 연구는 역사적 진리를 받들고 말씀을 가현설적 증발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예레미아스는 1971년에 독일어와 영어로 동시에 그의 “신약신학 : 예수의 선포” 첫권을 출판했다. 제1장은 “예수의 어록 전통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가?” 하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의 문제와 관련된 것인데 역사적 예수 문제를 불트만은 신약신학의 전제라고 보았고, 콘첼만은 신약신학의 일부가 결코 아니라고 선포한 바 있었다.
예레미아스는 “우리의 출처들이 예수 설교의 기본적인 사상들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가지고 제시해 주기에 충분한가의 여부”를 조사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제2장은 “예수의 사명”을 다룬 것인데 “예수와 세례 요한”, “예수의 소명”, “계시의 전달”, “하나님을 부를 때의 ‘아바’”, “사명에 대한 예스”등이 그 세부 항목들이다. 제3장과 제4장에서는 “구원 시대의 여명”과 “은혜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예수의 선포를 다루고 있다. 예레미아스는 “예수의 공식 선포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왕적통치였다” 제5장은 예수 메시지의 개인적인 호소를 다루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형성되고, 이 백성은 하나님을 끝없이 경배하는 신앙의 남은 공동체이다. 예레미아스는 제6장 “예수의 사명에 대한 예수의 증언”에서 그의 방법론을 논시했다. 예레미아스는 ‘에고’를 강조해서 사용한 것이 예수 당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것으로서 이것은 하나의 암시적 기독론을 지원한다고 주장했다.
4. 구원사적 접근법
1) 오스카 쿨만
쿨만에게 있어서 구원사적 접근법은 “기독교가 무엇인가? 하는 옛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 바로 이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쿨만은 “역사 속의 구원”이라는 거작을 남겼다. 이 책의 내용 제1부에는 “서론”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2세기 영지주의, 20세기의 종말론, 구원사와 관련된 해석학이 개관되어 있고, 그 다음에 구원사의 정의가 내려져 있다. 제2부는 “구원사적 접근법의 창시”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내용과 해석, 성경 증언들의 신앙, 항시성과 부수성, 신약에서의 구원사적 인용들의 공고화 등이 다루어져 있다. 제3부는 역사와 신화, 구원사와 역사, “이미”와 “아직 아니”의 갈등 등에 역점을 두고 ‘현상학적인 특징들“을 거론하고 있다. 제4부는 그 책의 핵심부로서 구원사의 ”신약의 주요 유형들“, 즉 예수에게서의 구원사의 시작, 구원사의 중간시대, 요한의 복음과 구원사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5부는 ”조직신학의 내용과 교리의 역사 : 구원사와 성경 이후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개요를 통해서 당장 드러나는 것은 쿨만은 구원사가 신약 증언들의 본질적 틀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불트만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알려진 실존주의적 신약신학 방법에 도전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말론의 시간성을 제거하는 방식, 즉 신약 케리그마의 풍요성을 붕괴하여 지금 여기의 “현시적 종말론”으로 대조적으로, 쿨만의 대안은 “이미”와 “아직 아니”간의 구원사적인 긴장이 신약 이해의 열쇠라는 것이다. “예수의 선포를 포함한 신약신학 전체가 이런 긴장에 의해 한정된다. 오늘날 인간은 ”구원사의 중간시대,“ 즉 ”두 극점, 성경시대와 종말시대간의 중간 단계“에 살고 있다. 서술적 과제가 쿨만에게 있어서는 핵심적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신약의 구원사를 실존주의, 플라톤주의, 혹은 어떤 다른 체계에 의해 현재의 것으로 옮기는 것을 거부했다.
2) 조지 래드
래드의 거작은 “신약신학”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고 신약신학에 있어서 구원사적 접근법에 확실하게 속하는 책이다. 래드는 구원사를 “계시사의 흐름”으로 묘사하면서 쿨만의 개념을 따르지 않았다. 즉 초기의 해석들에 대한 “재해석” 혹은 초기 구원사 해석들의 “교정”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래드는 라이트의 언어를 사용하여 신약은 이러한 구원사의 흐름 속에 서 있다는 것과 “신약신학은⋯ 주로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 안에서 행하신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진술했다. 기독교 선포의 본질은 이와 같이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행위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래드는 그의 신약신학을 6대 부분으로 나누고 그 각부를 또한 장들로 세분하였다. 제1부는 “공관복음”을 다루는 것이다. 래드는 주제적인 횡단법을 사용하여 8개의 장은 예수가 선포한 천국의 측면들을 다루고 5개의 장은 기독론적인 개념들의 측면들을 다루었다. 이러한 제1부 전체의 앞에 다소 갑작스럽게 세례 요한에 대한 한 장을 배치했다. 제2부는 “제4복음서”를 다룬다. 이것은 비판적인 문제들에 대한 한 장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래드는 자신의 목표를 이렇게 진술했다 : “이것이 어느 정도로⋯ 공관복음과 유사성이나 차이성이 있는지를 발견하고자 한다. 제3부는 “초대교회”라는 제목 하에서 사도행전의 신학을 다룬 것이다. 제4부에 나타난 바울의 신학은 요한복음의 신학 다음으로 래드의 신약신학의 강점 중의 하나이다. 구원사는 통합적인 개념을 포함하므로, 래드는 데이비스와 함께 바울신학의 핵심을 “그리스도의 업적을 통한 도래하는 구속의 새 시대의 실현”이라고 보았다. 제5부는 “일반서신”이란 제목으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 요한 서신들의 신학을 요약하는 내용이다. 마지막 부분인 제6부 “계시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래드의 구원사적 접근법은 거듭 지적된 바와 같이 방법론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구원사에 통합되어 그것을 표현하는 성경의 독특한 개념들을 포괄적인 단어연구를 통해 다룬 것이다.
3) 레온하르트 고펠트
고펠트는 그의 신약신학에서 약 1900년 이후의 여러 가지 입장들을 개관하면서 자신은 폰 라드와 쿨만의 광범위한 구원사적 접근법을 따르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쿨만과는 대조적으로 신약은 “구원사를 보편사의 계획”으로 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약은 구원사를 “약속과 성취의 상호 관계”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고펠트는 신약신학의 “목표를 하나의 글, 혹은 그룹의 글들로부터 내용적으로 질서화되고 연결된 묘사, 예수의 사역이나 초대교회의 선포와 교훈의 이러한 묘사를 도출해 내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고펠트의 신약신학 각권은 하나의 주요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제1권은 “예수의 행위의 신학적인 의미”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이 부제가 지시하는 대로 그 내용에 전적으로 집중되어 있다. 제1장은 신약신학의 출발점 문제와 관련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이슈들을 토론한다. 제2장은 “하나님의 통치의 도래”로 시작된다. 예수 선포의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요구와 하나님 통치의 선물로서의 “회심”이라는 주제가 제3장과 제4장에서 다루어져 있다. 제5장은 “종말론적 갱신으로서의 예수의 구원활동”을 제목으로 예수활동의 일환인 기적들을 다룬다. 메시아의 자기 의식이 제6장의 주제이다. “예수의 자기 이해”는 예수가 자신에 대하여 적어도 “인자”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것을 논시한다. 예수활동의 목표가 제7장에서 “예수와 교회”로 거론되었다. 마지막 장은 “예수의 종말”에 관한 것으로서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포함하고 있다.
고펠트의 신약신학 제2권은 1976년에 출판되었고, “사도적 그리스도 증언의 다양성과 통일성”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초기교회”라는 제목의 제2부는 “교회로서의 예수의 제자도”와 “기독론의 시작들”에 대한 장들을 담고 있다. 제3부는 “바울과 헬라적 기독교” 제목으로 헬라적 기독교의 문제에 대한 서론과 바울신학의 전제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하는 것으로 토의를 시작한다. “바울 이후 저술들의 신학”이란 제목이 붙은 제4부는 구조적으로 미완성이다. 제1장은 베드로전서의 신학을 “베드로전서에 의거한 사회 안의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란 제목으로 다루고 계시록의 신학을 “요한의 계시에 의거한 말세의 후기독교적 사회 안의 기독교인들”이란 제목으로 다루었다. 제2장은 야고보의 신학, 즉 제국의 신학을 마태의 신학과 쌍으로 다루었는데, 마태의 신학은 “마태 속에서 예수 등장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다루었다. 제3장은 히브리서의 신학을 다룬 다음 구원사의 신학자 누가를 다루었다. 누가복음을 사도행전과 분리해서 다룬 것이 독특하다. 마지막 장은 요한신학에 대한 것이나 완전하게 개진되지는 않았다.
5. 결론적 논평
주제적 접근법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주요 주제들을 횡적으로 거론하는 횡단법과 손을 맞잡고 동행한다. 주제적 접근법의 특별한 주관성은 선별성의 문제이다. 하나의 주요 주제나 혹은 보다 많은 단순한 주제들에 따라 횡단법을 사용하는 신약신학자는 선별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은 동질성의 원리이다. 동질성의 원리는 모든 다른 주제들, 모티프들, 혹은 주요 주제에 동질적인 개념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여기에서 이 접근법의 독특한 제한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첫째, 선별의 원리가 어떤 객관적인 근거에 의해서 작용하는가? 둘째 동질성의 원리는 선택된 주요 주제 혹은 주제들과 관련해서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셋째, 만일 선별의 원리가 주요 주제와 무관한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주관적인 근거 외에 어떤 근거에 의해서 일부 부제들이 포함되고 다른 주제들은 제외되는가?
성경 재료들의 다양한 본질의 풍요성 때문에 그것이 다루는 재료들과 걸맞는 하나의 접근법이 요구된다.
신약신학의 주요한 방법론적 문제들 중의 하나의 신약신학에 있어서 예수의 위상 문제이다.
방법론의 문제는 신약신학이라는 것이 있는가, 혹은 신약과 그 세계의 역사적 연구가 1897년 브레데가 제의한 것처럼 “초기 기독교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신약신학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론적 문제 중의 하나는 역사적 재구성과 신학적 해석의 문제이다. 불트만의 비신화화 프로그램은 알맹이를 그 껍데기로부터 벗겨서 실존주의 철학의 도움을 받아 그 케리그마를 현대인을 위한 것으로 번역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불트만의 경우는 실존주의적 해석에 역점을 둔 것이다. 로빈슨은 금방 지적하기를 “물론 예수, 바울 혹은 요한이 비신화나 실존주의를 이해했을 리는 전혀 없다”고 했다. 불트만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 콘첼만도 최근의 경향과 자기 자신의 방향의 역점을 “역사적 재구성, 즉 신약의 사상 세계가 그 당시에 의해서 조건화된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제 3 장 신약신학의 중심과 통일성
1. 이슈
신약연구에 있어서 가장 뜨겁게 논쟁되고 있는 이슈들 중의 하나는 신약의 중심과 통일성 문제이다. 1950년대 이후로 독특하게 제기된 문제는 신약신학이 어느 정도로 동질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2. 신약의 중심을 향한 연구
1) 인간론
불트만과 그의 제자 브라운은 인간론이 신약의 중심이라고 보았다. 불트만은 신약을 비평적으로 재구성했는데, 그는 “현재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있다는 전제”에 이끌렸다. 따라서 신약신학이 제시할 과제는 불트만에게 있어서 “이러한 신앙의 자기 이해를 케리그마와의 관련 속에서 선명하게 하는 것”이다.
불트만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브라운은 스스로 여러번 신약의 통일성 문제를 다루었다. 브라운은 신약의 다양성을 전적인 상이성의 극단으로 몰고 간 학자로 보인다. 브라운이 본 신약의 “내면적 중심”은 신학적 인간론이다. 이러한 “내면적 중심”이 신약의 모든 책들 혹은 책들의 블록들을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은 브라운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브라운은 “정경 속의 정경”의 원리를 주장했다.
불트만은 자신의 의도가 브라운에 의해서 아주 일관성 있게 개진되었다고 주장했다. 신자의 자기 이해라는 항존요소를 가진 브라운의 중심 개념을 불트만이 명시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불트만이 이렇게 받아들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몇몇 후불트만 학자들은 반대의사를 표현했다.
케제만은 신학적 인간론이란 브라운의 “내면적 중심”이 “파산을 의미하는 일종의 신비주의”라고 하면서 거칠게 비판했다. 로제는 신약에 통합된 기독론이 결여되어 있다면 신약에는 통합된 인간론도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벨링은 브라운의 통일성 원리가 기독교적인 어떠한 요소도 결핍하고 있다고 하여 그것을 반대했다. 브라운의 신학적 인간론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기독교의 본질을 규정하려는 시도이다. “신앙의 자기 이해라는 항존요소”는 인간론이 아니라 “이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즉 기독론적 케리그마 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 케리그마를 그 자체의 고백 속에서 받아들이는 신앙이다”고 에벨링은 주장했다.
2) 구원사
금세기에 구원사를 가장 포괄적으로 다룬 학자는 쿨만이다. “구원사”가 쿨만의 사상에 있어서 성경, 구약과 신약 양자의 정경의 의존하는 기초이다. 그는 “정경 속의 정경”이라는 루터적 문제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쿨만은 정경인 성경 전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어떤 특정한 부분에 집중하여 전체를 판단하는 “정경 속의 정경”을 피하려고 했다.
쿨만이 성경의 “중심” 혹은 “본질”을 주장하자 이에 대한 반발이 여러 방면에서 일어났다. 에반스는 쿨만의 사상에 있어서 “구원사”의 결함은 “그것이 거룩한 사건 혹은 신적인 행동의 운하를 전제하고 그 운하가 세계 역사의 둑 안에서 흘러 그 결과로 그 운하가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과 함께 의심스러운 정의와 한계규정이 나타난다는 점이라는 느낌을 말했다. 쿨만의 구원사 개념에 대한 불트만의 초기의 반발은 ”그가 신약신학을 기독교 역사철학으로 바꾸었다는 것이었다. 쿨만은 구원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문제를 떠나서 구원사가 중요한 성경적 개념이라는 것을 논시했다.
3) 언약, 사랑, 그리고 기타 제안들
성경의 언약 개념이 최근 성경연구의 전면으로 부각되었다. 금세기의 구약신학의 거성 중의 한 사람이 언약 개념을 구약구조의 체계적 원리로 사용하였다. 아이크로트는 언약개념에 근거하여 구약을 조직적 횡단법으로 정리하는 것을 택했다.
4) 기독론
“기독론”의 표제 하에서 우리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들을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케의 제안은 “그리스도 – 사건 안에⋯ 신약의 본질적 통일성이 있다”고 했다.
그랜트도 신약이 “진정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유사한 견해를 밝혔다.
무어는 구원사가 신약의 기본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심으로부터 구원사의 선이 언약을 통해서 창조와 그 이전까지 거꾸로 흐르고, 교회와 재림과 그 이후까지의 그 사명을 통하여 앞으로 흐른다”고 강조했다.
래드는 쿨만만큼 구원사에 집중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쿨만에 반대하여 구원사적 혹은 종말론적 구조가 신약신학의 구조를 위한 종합을 제공한다는 것을 자신의 초기의 견해에 비추어 거절했다.
슈라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약의 중심이 있다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웁살라 대학교의 리젠펠트는 “상이한 신앙요소들 – 그 유일한 공통점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다는, 예수라 이름하는 한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든 언급한다는 것 – 이 그토록 놀랍도록 짧은 기간에 수집되고 통합되고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바일너는 역사적 예수가 어떻게 선포된 승귀의 그리스도가 되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 신약신학의 과제라고 제의했다.
신약의 통일성이 무스너에 의해서는 다르게 파악되었다. 무스너의 논제는 “복음의 중심은 신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적 구원시대가 밝아온다는 복음이다”라는 것이다.
일부 신약신학자들은 주요 종교 개혁자들의 강조점에 맞추어 “불경건한 자들의 칭의”라는 바울 사상을 신약의 중심으로 보았다.
케제만은 칭의 메시지를 바울신학의 중심으로 볼 뿐 아니라, “정경 속의 정경” 원리를 지지하면서 이것이 신약 전체의 중심이라고 제의했다.
케제만의 제자 슈라게도 케제만이 강조한 것을 강조했다. 슈라게에게 있어서 “불경건한 자들의 칭의(롬4:5)는 바울적 선포와 신학의 중심이며 핵심주제이다.”
불경건한 자들의 칭의라는 “신학적인 공식”이 신약, 아니 성경 전체의 중심이라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반박은 루즈가 제기했다. 그는 “신약의 중심은 십자가 신학”이라고 주장했다. 루즈는 신약의 중심에 대한 연구를 바울에게서 시작했지만 케제만과 그의 추종자들과는 다른 기독론적 측면에 도달하게 되었다.
3. 신약의 중심과 정경 속의 정경
신약의 중심에 관한 현재의 토론은 정경비평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신약의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어떠한 공식, 원리, 사상 등 – 그것에 근거하여 “정경 속의 정경”의 선별원리로써 정경비평을 하는 – 은 “주관적인 임의성”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주어진 전이해가 정경 속의 비판적 정경으로서 신약 속으로 투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용비판 혹은 정경비평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정경 속의 정경” 역할을 하는 하나의 중심에 관한 또 하나의 비판은 그것이 불가피한 축소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본 신약은 “그 완전성 속의 진리”이다. “정경 속의 정경”의 원리는 신약의 총체성을 정당하게 다룰 수 없다. 신약의 중심이 무엇이냐, 즉 “정경 속의 정경” 역할을 하고 정경비판의 실질적 원리로 작용할 중심이 무엇이냐를 토론하면서 학자들이 지적한 다양한 문제들은 극복하지 못할 것 같다. 신약 전체를 적절하게 살리려는 신약신학의 방법은 임의성, 주관성, 축소주의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제는 성경 바깥으로부터나 혹은 성경 안으로부터 하나의 중심을 선택해서 찾는 선택원리에 내재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 중심에 근거하여 성서 전체의 내용이나 그 부분들에 관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다.
제 5 장 신약신학을 향한 기본적인 제안들 : 하나의 복합적인 접근
신약신학에 있어서 현대의 방법론들과 접근법들에 기본적인 위기가 있다. 이미 취해진 길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우리는 보다 더 적절한 접근법을 고안해 내야 한다. 여기서부터 진행하는데 있어서 보다 생산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은 제안들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1. 성경신학은 신학적 – 역사적 학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구약신학 혹은 신약신학을 하는 성경신학자는 본문이 ‘의미했던’ 것을 발견하여 묘사하고 또한 그것이 오늘날 ‘의미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 이 양자가 자신의 과제라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성경신학자의 과제는 역사적 연구와 언어와 언어학적 연구 방법을 조심스럽게 사용하여 성경을 의미있게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의 증거가 의미했던 것을 “거기로 돌아가서” 이해하고 묘사하고, 성경의 증거가 신학자 자신의 특별한 역사적 상황 속에 처한 현대인에게 의미하는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신약신학을 위한 적절한 방법은 출발점으로부터 신학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이어야 한다. 역사적이면서도 신학적인 방법으로 작업하는 성경신학자는 인간 객관성의 상대성을 완전하게 인식한다. 따라서 성경신학자는 자기 신앙이 그가 서 있는 신앙의 전통과 공동체에 근거하여 성경 자료들을 현대화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성경신학자는 성경본문의 질문들을 그 자체의 방식대로 제기해야 한다. 성경신학자는 자신의 전통과 자기 신앙의 공동체가 그가 발견한 것에 의해서 도전과 안내와 활력과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성경신학자는 또한 순수하게 문헌학적인, 언어학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접근법이 역사적 본문의 완전하고 완벽한 의미를 밝히기에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언어학적, 그리고 문헌학적 연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주석적 도구들을 적용하면서도 성경 저자들의 말하는 기본적인 경험, 즉 신앙에 굴복하지 않는 한 결코 문제의 핵심에 이를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학적 – 역사적 해석이 역사 경험의 모든 심층들을 헤아리고 본문과 그 안에 표현된 실재의 완전한 의미를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앙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석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증거하는 진술들과 증언들을 파악하려고 할 때 – 시간과 사건의 주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행위들과 말씀들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날자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들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였음 – 그러한 진술들과 증거들을 이해하는 과정은 표현된 완전한 실재를 완전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성격상 역사적이면서도 동시에 신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2. 신약신학 작업을 하는 성경신학자는 그의 작업이 신약으로부터 취해진 재료들에 근거해야 한다. 신약신학은 신약의 여러 책들과 책들의 블록들의 신학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신약은 기원, 내용, 형태들, 의도들, 그리고 의미가 매우 다양한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본질 때문에 우리에게 일차적인 맥락, 즉 우리가 그것을 처음 만나는 형태에 비추어 들고 있는 재료를 살펴야만 한다. 즉 문헌 전체의 본질적인 부분의 언어적인 구조로 그것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신약신학은 주로 신약 각문서나 신약의 블록들을 요약새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 다양한 개념들, 주제들, 그리고 모티프들을 드러나게 하고 그것들의 상호 관계를 밝혀야 한다. 어떤 하나의 주제, 체계, 혹은 모티프도 그 안에 신약 관점들의 모든 다양성을 포함할 만큼 충분히 포괄적이지 못하므로, 어떤 특정 개념, 공식, 기본사상 등을 신약의 유일한 중심으로 삼아 그것에 의해 신약의 다양하고 다변적인 증거들을 체계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약의 중심이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의 중심이시라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3. 신약신학을 제시할 때는 예수의 메시지, 여러 가지 신약문서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그 메시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메시지를 각각의 복음서들로부터와 다른 신약문서들에 인용된 몇몇 어록들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것과 신약 문서들 속에 보존된 것은 기본적인 역사적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4. 신약신학은 여러 책들이나 책들의 그룹들의 신학을 알고자 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신약의 주요 주제들을 함께 모아서 제시하는 것이다. 신약신학은 주제들, 모티프들, 그리고 개념들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어야 하고 모든 다양성과 신약 자체에 의해서 가해지는 모든 제한들과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신약 증거들의 이러한 종적인 시각들은 복합적인 논의를 통해서만 제시될 수 있다. 신약 증거들의 풍요성은 신약의 본질과 걸맞는 복합적인 접근법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종적 주제들에 대한 복합적 토의와 함께 이러한 복합적 접근법은 성경신학자로 하여금 하나의 구조적 개념에 의해서 결정되는 인위적이고 강요된 획일적인 접근법 – 거기에 모든 신약의 증거들을 두들겨 맞추어야 하는 언약이나, 교제, 하나님의 왕국, 혹은 기타 어떤 것이든 간에 – 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5. 신약신학의 최종목표는 다양한 신학들과 종적 주제들, 개념들, 그리고 모티프들을 하나로 묶는 통일성을 논시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신약성경을 남겨 준 사람들의 경험 배후에 하나의 독특한 신적 실재가 있다면, 모든 다양하고 다변적인 신학적 성찰 배후에 신약 책들의 통일성이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러한 통일성을 가급적 많이 은닉상태에서 이끌어 내어 그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6. 성경신학자는 신약신학을 보다 큰 전체의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 “신약의 신학”이라는 이름은 신구약으로 구성된 성경의 보다 넓은 맥락을 암시한다. 이 방법은 신약 사상의 풍부한 다양성, 옛 것과 새 것뿐 아니라 유사성과 차이성을 충실하게 다루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방법은 문자적 의미와 신약이 소속되어 있는 보다 넓은 성경적 맥락에서 본문의 본래적인 역사적 증거를 조금도 왜곡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다양성과 다변성 안에서 통일성이 부각되게 하되 그 통일성을 획일성의 틀이 되지 않도록 한다.
– 서 평
하젤은 종교개혁시대로부터 계몽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약신학의 시작과 발전을 개관한 다음 신약신학의 방법론을 주제적 실존주의적, 역사적, 구원사적 방법론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는 이어서 신약신학의 통일성 문제를 다루면서 인간론, 구원사, 언약, 사랑, 기독론 등 신약신학의 핵심으로 제시된 학설들을 설명하고 신약신학의 핵심 문제가 정경 내의 정경 문제로 연결되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는 또한 신구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논의하면서 역사적 연결, 성경적 상호의존성, 어휘, 주제, 예표론, 약속과 성취, 구원사, 시각의 통일성 면의 연속성을 제시하였다.
하젤은 이와같이 다양한 방법론과 쟁점들을 소개한 다음 신약신학이 그 방법론과 접근법에 잇어서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한다.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로 그는 신약신학에 대한 다각도적 다형태적 접근법을 제의하고 있다. 다각도적 접근법은 신약성경의 다양한 책들을 바르게 다루려는 것이며 신약의 다양한 내용을 하나의 획일적인 견해나 제한된 성격의 복합적인 접근법으로써 설명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다각도적 접근법은 신약사상의 풍요한 다양성을 충실하게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최근의 신약신학은 학문적 매력이 감소되었다. 그것은 너무나 많은 신약신학자들이 신약신학의 본질, 기능, 방법 및 범위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표명하였기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 혼란과 긴장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젤은 신약신학 내에 일어나고 있는 근본 논쟁들을 심도있게 논의 하고 또 신약신학이 학문으로 형성된 지난 2세기 동안의 발전과정을 정리하여 앞으로 신약신학이 어떻게 발전의 방향을 잡아나갈 것인가를 진술하고 있다.
하젤은 오늘날의 신약신학계가 어떤 조망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그는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과 연결성을 인정하고 진지한 자세로 성경본문을 다루면서 신약신학의 역사적 신학적 방법론을 결론적으로 제시하고 방대한 신약신학의 관련 문헌들과 자료들을 정리해 줌으로써 후학들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