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12)
지금은 절개를 구할 때: 호세아서<12>
이번 이스라엘에 갔을 때 (2015. 12) 북쪽의 ‘단’ (Tel Dan)에는 땅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알이 굵고 실한 도토리가 땅바닥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토리묵도 안먹나? 우리나라 묵같은 맛이 날는지는 모르나 도토리가 아까와 발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묵이 생각났다. 뒷산에서 주워오신 도토리로 쑨 묵에 쑥갓과 파마늘 양념을 얹어 주시면 쑥갓과 파마늘은 골라내고 묵만 맛있게 먹던 생각이 났다. 요새도 이스트우드 (Eastwood)의 어떤 식당에 가면 하얀 묵을 반찬으로 내오는데 그것은 도토리묵은 아닐 것이다. 반투명 하얀 색깔이니 잘은 모르나 녹두로 쑨 청포묵인 것 같다. 한번씩 맘 먹고 가족과 식사를 하러 가면 다른 이들이 순식간에 먹어버리기 때문에 젓가락이 가다가도 어색해져서 원치 않는 다른 반찬을 집어 먹는다. 예나 지금이나 묵은 귀하면서도 맛이 있으니 반찬 중 인기가 최고다.
이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이 나무들 중에 구약성경에 보이는 것은 히브리어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알론’ (창35:8; 호 4:13) 또는 ‘엘론’ (창 12:6;삿 9:37)으로 나오고 다른 하나는 ‘엘라’ (창 35:4) 또는 ‘알라’ (수 24:26)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영어 역본들 (NIV, RSV, ASV)은 알론과 엘라가 함께 나타나는 호세아 4:13의 경우 알론은 oak 로, 엘라는 terebinth로 번역한다 (개역개정은 각각 참나무와 상수리나무!). 그러나 신기한 것은, 창 35:4의 엘라도 이 역본들 (NIV, RSV, ASV)이 똑같이 oak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면 알론과 엘라가 같은 나무 (다같이 oak?)라는 것인가 우리에게 혼동을 준다. KB 히브리어 어휘사전도 이 단어들의 번역에 고심한 듯하다.
한편,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이 나무가 어떻게 번역되든지 간에, 어떤 때는 이 나무 아래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심으로 성도가 제단을 쌓는 장소로 소개되며, 또 어떤 때는 이 나무 아래가 배도자가 우상 숭배를 하는 음란의 장소로 지적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 12장 6절은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머물렀다가 결국 가나안 땅의 세겜에 당도하는 내용인데 거기 세겜의 모레에는 상수리나무 (엘론)가 있었고 여호와께서는 그곳에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다. 즉, 아브람 때 이 장소는 약속을 받은 장소, 거룩한 장소, 예배의 장소로 나타난다. 후에 야곱은 자기 딸이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을 겪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엘라) 아래에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파묻는다 (창 35:4). 즉, 야곱 때 이 장소는 자복의 장소, 회개의 장소로 나타난다. 후에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수 24:25)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놓고 언약을 갱신한다. 수 24:26은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알라) 아래에 세우고”라고 서술한다. 즉, 여호수아 때 이 장소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시라는 거룩한 말씀을 선포한 장소, 그분의 백성이 믿음의 결단을 내린 장소였다. 흥미로운 것은 아브람 때의 상수리나무는 정관사가 붙지 않으나, 그 뒤 야곱 때나 여호수아 때는 히브리어 정관사 ‘하’가 붙는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굳이 직역하자면 아브람 때는 그냥 ‘상수리나무’인데 야곱과 여호수아 때는 ‘그 상수리 나무 아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브람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그 상수리 나무 아래 야곱이 우상을 파묻고 회개했다는 것이요, 그 상수리 나무 아래 여호수아는 기념석을 세웠다는 얘기가 된다. 더군다나 여호수아서는 그 나무를 수식하는 말을 부가하는데 그것은 ‘베밐다쉬 야훼’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여호와의 성역에 있는 (in YHWH’s sanctuary) 그 상수리 나무”가 된다. 당시 사람들은 그곳을 거룩한 장소로 이미 알고, 그곳을 성역으로 지정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반대로, 이 나무 아래는 우상숭배의 터가 되기도 하였다. 팔레스타인 곳곳에 서식하는 이 나무 아래에는 산당이 있었고, 우상을 위한 제단이 있었고, 신전 창기들이 있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산들의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들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 (알론)와 버드나무 (리브네)와 상수리나무 (엘라) 아래서 하니 그것의 그늘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호 4:13)라고 서술한다. 이사야는 이와 비슷하게 말하되 심판의 메시지를 곁들인다.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 (아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사 1:29-30) 여기서 아일은 보통의 뜻인 ‘숫양’이 아니라 ‘상수리나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던 바로 이곳에서 죽음을 맞게 될 것을 예언한다. “그 죽임 당한 시체들이 그 우상들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 위에, 모든 산 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엘라)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 6:13)
내가 갔던 ‘단’ (Tel Dan)에는 지금도 상수리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땅에는 도토리들이 즐비하였다. 그 실한 도토리들을 만져보았었는데 나는 지금도 수시로 본다 (모발폰의 바탕화면). 그런데, 이 좋은 상수리 나무 그늘 (호 4:13)이 그 옛날은 음행의 장소였다. 여로보암 1세가 금송아지를 세운 장소였다. 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하나씩 세웠고 ‘산당들’을 지었으며 (왕상 13:31)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고, 일곱째 달이 아닌 여덟째 달 15일로 절기를 정하였다. ‘자기 마음대로’ (33절), 유다의 절기 곧 원래 것과 ‘비슷하게’ 절기를 만들었다 (32절). 초대교회가 타락하여 교황이 예복과 모자를 쓰고 세상의 왕으로 군림하며, 예배당으로 권위를 세우기 위해 성경의 교리를 마음대로 비슷하게 바꾸었듯이 (죄용서의 교리 곧 면죄부와 연옥 교리), 이제 종교개혁 이후의 한국교회의 어떤 목사들은 목회학 박사 (D.Min.) 가운을 입고 예배를 인도하며, 미석으로 꾸민 예배당으로 권위를 세우기 위해 다시 성경의 교리를 마음대로 비슷하게 바꾼다 (건축헌금과 현세구복교리 연결).
아브람처럼, 야곱처럼, 여호수아처럼, 여호와의 임재, 회개, 말씀과 믿음의 순종의 참나무 아래 모여 알뜰살뜰 도토리를 주워 맛있는 도토리묵을 쑤어 공동체와 함께 나누며 함께 즐기는 한국교회가 될 것인가, 상수리 나무 아래서 종교다원적 혼합주의와 자유주의의 음행에 젖어들다가 ‘쓰디쓴 묵’을 맛보며 불신자들만 못한 자들이 되어 ‘묵사발’이 날 것인가.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 (한국교회)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겔 16:33) “그들이 (한국교회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호 5:7)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한국교회는) 망하리라” (4:14)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6:3)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