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46)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 아모스서(8)
신랄한 아모스와 신랄한 스데반
공회(행 6:12, 15)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한 스데반의 모습은 이스라엘 왕이 단골로 찾아와 우상 숭배를 하던 벧엘에서 거리낌 없이 이스라엘을 쳐서 예언하던(암 6:13) 아모스의 모습과 너무 비슷하다. 이 두 사람의 설교의 공통된 특징은 ‘신랄함’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죄의 지적에 있어 신랄하다.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2:6-7) 요새 하는 말로 옮긴다면, “가난한 자의 골을 빼먹는 인간들아!”가 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2:7)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여”(4:4) 지금 표현으로 한다면, “애비와 자식이 같은 여자를 농락하고, 서울에 가서 죄를 짓고, 부산에 가서 죄를 짓고 이 교회 저 교회 떠돌며 밥 먹듯 죄를 짓는 이 더러운 인간들아!”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악의 결과를 말할 때도 아모스는 신랄하다.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5:5).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한다(6:9). “여로보암(왕)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날 것이라 한다(7:11). 이스라엘에 대하여, “네 아내는 성읍 가운데서 창녀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측량하여 나누어질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라 한다(7:17). “그 날에…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8:3)고 한다.
스데반은 어떤가. 스데반도 비슷하다. 산헤드린에 모인 사람들, 물론 이 가운데는 구레네 사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사람, 길리기아와 소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른바 자유민들, 행 6:9)의 회당에서 스데반을 송사한 어떤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성령 충만한 스데반의 말을 당하지 못하자 사람들을 매수하여 거짓말로 고소를 한다. 이들은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잡아 공회에 세운다. 스데반은 이들의 송사의 내용들을 하나 하나 격파한다. ‘나는 하나님과 모세를 모독한 일이 없다. 성전은 모세 때의 성막에서 시작하여 다윗 때에 건축된 하나님의 처소요 솔로몬이 지었으나 하나님은 결국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는 분이다. 나는 성전과 율법을 거스르지 않았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모세를 모독한 자들은 바로 너희들이다. 너희 조상이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대신 송아지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느냐. 너희 조상이 율법을 어기지 않았냐. 너희가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았냐. 메시야를 예언한 선지자를 죽이고 급기야는 오신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냐. 너희 조상들이 항상 성령을 거스렸고 너희도 성령을 거스른다. 내가 아니라 바로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취지의 말이 스데반의 설교다. 스데반의 설교의 마지막 부분을 평범한 말로 바꾸어본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수그릴 줄 모르는 뻣뻣한 모가지를 한 인간들아, 아직도 너희는 마음과 귀가 할례가 안 되었구나! 어쩌면 그렇게도 너희 조상들과 한치도 틀리지 않으냐! 한시도 성령을 거스르지 않는 때가 없구나! 하기는…너희들 조상들도 선지자를 그토록 핍박하지 않았느냐, 그 의로우신 메시야께서 오심을 예고한 선지자들을 죄다 잡아 죽이지 않았냐, 이제 이땅에 오신 그분을 너희는 팔아 넘겼구나, 이 살인자들! 천사를 보내어 주신 율법을 받았어도 하나도 지키지 않은 인간들아!”(행 7:51-53, 필자 의역)
주목할 만한 점(암 5:25-27; 행 7:42-43)
스데반의 설교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이 신랄한 아모스의 말씀을 그로부터 700년 후에 신랄한 스데반이 인용한다는 사실이다. 행 7:42-43은 칠십인역 아모스 5:25-27를 자유롭게 인용한다(“freely after the LXX” Meyer’s NT Commentary). 아모스의 히브리 본문은,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개역개정). 칠십인역을 직역하면, “오 이스라엘 집이여, 너희가 광야 40년 나에게 희생들과 제물들을 드렸느냐? 참으로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해 만든 형상들(images)인, 몰렉의 장막과 신(神) 레판(Raephan)을 졌다(took up). 그리하여 나는 다메섹 너머 멀리 너희를 옮겨갈 것이다. 그의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주께서 말씀하신다”(Brenton, LXX). 이것을 스데반은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이스라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개역개정)
아모스서 히브리본문의 ‘너희 왕 식굿’(개역개정)의 번역은 ‘너희 몰렉의 장막’이 옳을 것이다. 왕이 히브리어로 ‘멜렉’인데 히브리어 자음만으로 된 본문의 글자를 모음을 다르게 붙여 읽으면 ‘몰렉’으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다. 사 57:9의 ‘몰렉’과 같은 ‘몰렉’인데 이 몰렉은 ‘몰록’(행 7:43에는 ‘몰록’이라고 되어있음)이라고도 부르는, 암몬의 우상을 말한다. 암몬은 이 몰렉에게 아이를 태워서 바쳤다(후에 이스라엘이 본받음). ‘너희 형상들 키윤’에서 키윤은 이방신 (고유명사)인데 토성(Saturn; 土星)을 가리키기도 한다 (BDB). 그리하여 그 다음에 나오는 ‘너희 신들 별(코카브)’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히브리 본문의 ‘신들의 별 형상’을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은 ‘별 신(星神) 라이판(Phaiphan, 헬라어 음역)’으로 언급한다. 이 라이판을 다른 역본에서는 Remphan(AV), Rephan(RV), Romphan(혹은, Rompha) 등으로 음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토성을 말하며 이집트에서 신으로 숭배하였다(Strong 참조). 결론적으로, 스데반이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서 송아지 숭배를 했을 뿐 아니라 이후 광야 생활에서도 장막(tabernacle)에 안치한 몰렉 우상과 별(토성) 우상을 등에 지고(took up) 이동하면서 계속 우상 숭배를 하여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구원주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 단지를 땀을 뻘뻘 흘리며 짊어지고 광야길을 걸으면서까지 귀신에게 절을 하고 별에 절하면서 신비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선지자가 가는 길은 같다
이러한 스데반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고소 당하고, 돌에 맞아 죽는 것이었다. 스데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그(스데반)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행 7:54).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다(57절). 그러면, 아모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역시 고소 당하고, 도망 가라고 입 닥치라고 하는 것이었다. 벧엘의 어용 제사장, 거짓 목자 아마샤가 아모스를 역모로 몰아 고소했다.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암 7:12-13)고 하였다. 스데반 앞에서 이를 갈고 귀를 틀어 막는 사람들이나 아모스 앞에서 악담을 하며 시끄럽다고 하는 아마샤나 무엇이 다른가. 선지자가 가는 길은 같다. 핍박과 순교의 길이다. 고난의 길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선지자, 전도자가 가는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아모스에게 하나님은 비젼(환상) 중에 나타나시고 말씀을 주셨다. 스데반에게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자 예수님이 함께 해주심이 있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한다. 디모데야,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과 ‘고난’이라는 말을 눈여겨 보라. 복음 전도자에게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나타나는 것이다. 전도를 직접 해보면 알게 된다. 핍박도 오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내 심장에서 체험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난다.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다 이 길을 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진리를 전하도록 위임을 받은 종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는 핍박이 있고 순교가 있으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고 인자 예수님의 위로가 있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귀를 막을 것이다. 고소하고 고발할 것이다.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도 듣는 사람이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회개하는 사람이 있다. 말씀을 듣고 즉시 회심하는 사람도 있고 좀 시간이 지난 후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도 있다. 스데반이 돌에 맞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 사울 (바울)이었다. 그는 그 현장에서 있을 때는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다고 여겼으나 다메섹 길에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회심하였다.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는 나중에 은혜의 때가 찾아오기도 한다.
제2의 아모스, 제2의 스데반
복음 변증가인 James White 박사(Alpha & Omega Ministry)가 이슬람 종교지도자나 로만카톨릭 학자나 N. T. Wright와 토론하는 것을 보라. 그리고 여러분은 그 디베이트에서 무엇이 진리인가를 보고 무엇이 거짓인가를 보게 될 것이다. 그 토론을 보고 거짓에 있던 어떤 사람들이 진리로 돌아선다. 우리는 이웃에게 진리를 알려 주어야 한다.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는 소방차를 부르듯, 우선 급한대로 소화기로 끄든, 웃드리를 벗어 끄든, 바게스에 물을 길어 퍼부어 끄든 뭐든지 하듯 우리도 그 일을 해야 한다. 불에 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모스가 이 일을 했고, 스데반이 이 일을 했다. 이제는 누가 할 차례인가. 성령 충만의 은혜를 구하자. 스데반과 같이 성령 충만 받아 이제 제2의 스데반, 제2의 아모스가 되어 내가 나갈 차례다.
최영헌 교수(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yunghun.choi@ac.edu.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