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성경통독 길라잡이
히브리서 개관: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존슨(L.T.Johnson)은 히브리서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기록되었고 가장 많이 논의 되었으며 신학적으로도 가장 심오한 성경중의 하나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독특하고 매력적인 동시에 충격적인 믿음의 실상과 언약에 대해서 환기시켜 준다”라고 적절히 지적했다. 이 히브리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하신 대제사장직과 예수님의 단번에 드린 대속의 희생에 대해 비길 바 없는 강조를 둠으로써 기독교 정경에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공헌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는 주로 바울과 요한의 글에서 신앙의 영양을 공급받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외면당하기가 일수였다. 그 한가지 이유는 히브리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련의 논리로 전개되어 있어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려 가야만 그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
히브리서는 분명하게 몇 가지 상황을 제시한다. 먼저 이 서신을 받는 성도들의 초기열정이 많이 식었다는 것이다. 개종자들이 믿음에서 성숙해지기를 합리적으로 기대할 만큼 충분히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5:11-14) 사회로부터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말미암아 몇몇 신자들은 이미 기독교공동체에서 탈퇴하기 시작했다(10:25). 그들은 그들이 맡은 메시지에서 떠내려갈 위험성(2:1), 살아계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질 위험성(3:12), 약속 받은 안식을 받지 못할 위험성(4:1), 그리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타락할 위험성(6:6)과 함께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할 위험성(10:29)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새로운 이단에 맞닥뜨려있고 로마제국으로부터 상당한 관용을 받고 있는 유대교로 전향하거나 복귀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상황을 반영한다.
<수신자>
아마도 1차적 수신자들은 유대인출신의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히브리서가 구약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고 유대 제사의식에 관심이 있으며 랍비식 주석방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옛 연약이 폐기되었다는 증거는 이방그리스도인들보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중요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의 광범위함을 생각할 때 단지 유대인 그리스도인뿐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했다고 볼 수 있겠다. 수신자들은 교리적인 압박아래 있었을뿐아니라 박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개종시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내었고(10:32) 자신들의 소유권을 빼앗겼으며, 비록 아직 순교의 자리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핍박아래 있었다(12:3-13).
<기록연대>
히브리서의 성전의식에 관한 현재 시제적인 표현은 아직 예루살렘 성전이 건재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에는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의 파괴(70년)에 관한 암시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서가 70년 이전에 기록되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히브리서는 두 가지 핍박, 즉, 이전 핍박(10:32-34)과 임박한 핍박(1:2; 3:13; 10:25)이 언급되는데 먼저 것은 49년에 클라우디우스 칙령이 발표된 이후 유대인들이 일시적으로 로마에서 추방되며 재산이 몰수당하는 경험을 했음을 보여준다. 임박한 핍박은 64-68년 사이의 네로의 대박해일것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60년대초반쯤 기록되었을 것이다.
<저자>
히브리서는 익명의 서신이며 교부 오리게네스가 말하였듯이 그 저자는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아신다. 그러나 내적 증거에 의해서 우리는 저자가 디모데의 친구였고(13:23), 제2세대 그리스도인이며(2:3) 사도들이 세운 교회의 교사였고 헬라적 유대교에 정통한 디아스포라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이며 타고난 웅변가였음을 알 수 있다.
<기록목적과 이유>
히브리서는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박해에 직면해서 성숙(5:11-6:8)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 받았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그들은 계속되는 사회적 또는 신체적인 압박에 직면해 있었고 유대교로의 회귀가 핍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호소력 있는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었다. 히브리서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고백을 유지한 채 성숙을 향해 나아가도록 격려하기 위해 쓰여진 일련의 설교형태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설교처럼 시작하고 서신처럼 끝난다. 히브리서는 신약성경의 서신중에서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다음으로 긴데 13:22-25에 이르기 전에는 이 글이 서신인 것을 알 수 없다. 일련의 설교이기 때문이다.
<개요>
1. 서언(1:1-4)
2. 핵심논지: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주장함(1:5-12:29)
(1) 천사보다 우월하심(1:5-2:18)
① 주권적 측면에서(1:5-14)
② 첫번째 결과적 경고(2:1-4)
③ 고난의 측면에서(2:5-18)
(2) 모세보다 우월하심(3:1-4:13)
① 종 대(對) 아들(3:1-6)
② 두번째 결과적 경고(3:7-4:13)
(3) 다른 제사장들보다 우월하심(4:14-7:28)
① 근본적 권면(4:14-16)
② 아론과 멜기세덱의 비교(5:1-10)
③ 세번째 결과적 경고(5:11-6:12)
④ 레위와 멜기세덱과의 비교(6:13-7:28)
(4) 옛 계약보다 우월하심(8:1-10:39)
① 모세 계약의 무용성(8:1-10:18)
② 네번째 결과적 경고(10:19-39)
(5) 이전의 믿음의 위인들의 모범(11:1-12:29)
① 허다한 증인들(11:1-12:13)
② 다섯번째 결과적 경고(12:14-19)
3. 결론적 권면들(13:1-21)
4. 서신의 맺음말(13:22-25)
<주요 메세지>
히브리서는 로마정부로부터의 박해와 이웃으로부터의 비난과 무시가 표현화되는 상황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을 세워주셨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견고히 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갔던 인물들을 모방의 대상으로 제시함으로 그들이 믿음을 견지하도록 돕는 방식을 취한다. 그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가치에 순응하도록 압력을 받는 상황속에서 어떻게 그런 압력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참된 소망을 품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이 성경속에 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범을 보이셨다(12:1-3). 예수님께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는 것이 당시 히브리서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사람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주류 문화인 세상의 문화에 압도되어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가능성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히브리서 당시의 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주류문화라면 그 중에 하나가 유대교였다. 유대교는 당시 로마제국이 인정하고 후원하는 공식종교였다. 반면에 기독교는 탄압과 박해의 대상이었다. 주류사회가 수용하는 공식 종교인 유대교로 회귀하면 외견상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었고 박해도 피하고 공직에도 채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에 들어서서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고 하나님의 통치속에 이 땅에 하나님의 자애와 공의가 편만해짐을 사모하고 복음을 붙잡는 순간 그들은 주류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수치와 모멸과 부끄러움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더 깊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사회가 약속하고 제공하는 인정과 대우를 수용하지 않을 때 겪어야 하는 불이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래서 세상적인 부끄러움을 받아들이고 진리 안에서 삶을 세우고 헌신하기를 다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과 동일한 운명의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적인 안전망의 확보나 세속적 안위함을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인 십자가를 배척하고 포기한다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베푸시는 참된 영생의 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명백하게도 복음은 세상적 가치와 함께 가지 않는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제 세상의 가치관과 영합하고 세상의 지배문화에 동화되어 맛을 잃은 소금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진정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기를 결단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쉽게 결정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 길은 때론 손해도 보고 우리를 세상속에서 부끄럽게 하기도 하고 또한 가진 것을 포기할 경우가 많은 길이다. 이런 면에서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그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인해 지배문화로부터 배척 받고 세상의 편안함과 결별해야 하는 귀로에 서서 수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실로 심각하고도 실제적인 문제였다. 주류사회에 남아 세상에 동화되느냐? 아니면 주류사회로부터 부끄러움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느냐에 대한 심각한 양자택일의 상황이었다. 그때 히브리서저자는 그들에게 권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던 것처럼 신자들도 조롱과 재판, 신분과 재산의 상실, 지속되는 비난속에서 그들이 사회의 진정한 소망을 건네는 일군됨을 알고 추호의 흔들림도 없기를 권면한다.
그리고 그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주류사회의 지속적인 압력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믿음가운데 설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세상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일군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존귀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 시대를 돌아보자! 우리시대의 신자들은 과연 주류사회의 은밀한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물론 히브리서 당시처럼 표면적 박해를 통해 제자됨을 구도하는 길을 포기하고 주류사회의 가치관에 동화되도록 요청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면서 실제적 배도의 길을 가도록 부추기지 않는가? 낮아짐과 섬김과 신실한 봉사의 길을 가며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을 닮기보다 세상적 가치를 신앙생활에 치환해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리고 높아지려는 시대는 아닌가?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도전한다.
만약 우리가 이 시대속에서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열망하면서 살아가고 이 땅에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구원과 영생의 반열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힘 주심과 안내하심에 순복하고 이 땅의 가치에 마음을 빼앗기고 기웃거리지 않을 때 이 일들이 가능함을 인식하고 주님의 길에 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길이 주님이 가신 길이요. 믿음의 선조들이 치열하게 걸었던 눈물로 얼룩진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연재 목사(라이드예수마음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