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단톡방에서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성난 까마귀들이 흰 빛을 보고 시기하고 미워할까 두렵다/청강에서 깨끗이 씻은 몸이 더럽혀질까 걱정이 되는구나/
위는 고려시대 충신 정몽주의 모친이 아들을 위하여 썼다는 글의 현대판이다. 독자 가운데 이 글귀를 처음 알게 되는 이는 드물 것이다. 초중고 시절부터 교과서를 읽어 익숙했던 명문이다.
공맹 사상으로부터 인생의 좋은 철학과 지혜를 남기는 고전 한시나 글 가운데 이게 특별히 나의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600여년 전의 세태가 지금과 같았고 그 대목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까마귀 싸우는 곳은 어떤 데일까? 높은 자리를 향한 이전투구(泥田鬪狗)장이 아니겠는가. 그런 난장판에서 과연 나라를 위하여 올바르게 일할 사람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한국인은 어느 기준으로 봐도 높은 공직에 대한 의식 또는 욕심이 대단히 강한 민족이다. 나는 고국에서 살던 때도 그랬지만, 호주라고 하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Egalitarian society)에 나와 반평생을 살면서 그걸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 직위의식이 진정한 애국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고 과거 풍부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권력과 그에 따르는 특혜와 이권, 거기에서 연유한 뿌리 깊은 관존민비 사상 때문이라면 정치는 까마귀 싸우는 곳이 되고 나라는 늘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직위에 대한 한국인의 지나치게 높은 의식과 관심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하나만 들어보겠다. 보통 때도 그렇지만, 선거나 인사 시즌이 오면 누가 나오니 안나오니 하는 추측 기사와 하마명(下馬評), 그에 따르는 자질구레한 가십거리가 주요 언론의 지면과 공간을 매일과 같이 메우는 현실이다.
과열 되었던 대선이 끝나자마자 누가 요직에 반짝 발탁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 기사, 그리고 이어 곧 다가오는 지방자치 선거, 예컨대 경기도와 그 외 도의 도지사, 대구시장, 부산 시장에 누가 출마 선언을 했느니 안했느니 누구와 누구가 대결하게 된다는 소식을 알리느라 언론은 바쁘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언론은 사회의 거울이다. 이런 기사가 넘친다는 사실은 분수에 넘는 감투를 탐내는 사람과 누가 감투를 쓰는가에 따라 팔자가 바뀔 사람 모두가 많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호주에도 연방의원, 6개 주와 두 테리토리, 주의원, 그리고 시와 카은슬 등 지방자치의 수장 선거가 있다. 그러나 감투 싸움이 우리처럼 치열하지 않다. 한 자리를 해야 남자로 치는 그런 사회풍토가 아니다. 그러니 누가 어디에서 나올까 서로 저울질을 하느니, 어디 출신이 누구의 후광을 업고 나오느니 등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는 대중의 관심 거리가 아니며 기사로 나오지 않는다.
*2022년 3월 31일, 시드니인문학교실 단톡방에서 김삼오 박사의 글

김삼오 박사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