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 홍길복 목사의 ‘잡기장과 라틴어 인문학’ 중에서
내 인생의 성지는 어디인가? / Gratias maximas, mei soccii / ‘청소하는 성직자‘와 ‘설교하는 속직자‘ / Amor fati / 어떻게 상실된 진정성과 순수성을 찾을 수 있을지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0) _ 5월 18일

인천에 사는 제 후배는 자주 성지순례를 간다고 말합니다.
지난주에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 방면에 대해 공부하는 학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좀 더 듣고보니 그가 말하는 성지란, 예루살렘이나 로마나 산티아고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나 터키, 시리아나 이라크도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가 찾아가는 성지는 북녘땅 황해도가 고향이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누워계시는 묘소입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통일동산내 임진각 쪽에서 북녘을 바라보고 조성된 공원묘지입니다. 그곳이 그 후배가 자주 찾아가는 성지입니다.
성지란 무엇일까요?
어디가 거룩한 땅일까요?
저 세상에 계시는 분을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곳,
마음의 옷깃이 여미어지는 곳,
앞서가신 분의 음성이 들려지는 자리,
그래서 성스러워지는 곳,
내 흐트러진 생각과 삶을 가다듬게 해주고, 지치고 낙심한 마음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곳.
내 친구는 자주 성지순례를 다녀옵니다.
‘내 인생의 성지는 어디인가?’
자문하는 아침입니다.
라틴어 인문학 (7) _ 5월 19일
Excusa (단수, 한사람에게)
엑스쿠사
Excusate (복수, 여러 사람에게)
에그쿠사테
둘 다, “죄송합니다.”
영어의 excuse me에 해당됨.
Mihi ignosce (정중한 사과)
미히 이그노스케
“나에게 용서를, 관용을”
to me ignore.
Please pardon me.
“제가 잘못했습니다.”
Gratias tibi (단수, 복수없이)
그라티아스 티비
Grace to you.
“감사합니다.”
Gratias ago (약간 정중하게)
그라티아스 아고
Grace to give.
“감사드립니다.”
Gratias maximas
그라티아스 막시마스
Grace maximum.
Thank you very much.
“대단히 감사합니다.”
Gratias maximas, mei soccii.
Carpe diem!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1) _ 5월 20일
17세기 프랑스에 있는 ‘맨발의 카르멜 수도원’에서 80세가 되어 선종하기까지 평생 수도원 부엌에서 음식하고 설거지만 하다가 세상을 떠난 로렌스형제 (Brother Lawrence)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시지요?
수도사도 아니고 평신도 수사로 살면서 수도원내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 허드렛일만 하면서도 그 속에서 매순간 하느님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한번도 monk라고 불리질 못하고 그냥 brother로만 불렸던 그가 수도원에 들어온 지 얼마가 지난 후 그 지역의 주교가 카르멜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주교가 물었습니다.
‘수도원 원장님은 어디계십니까?’
수사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수도원엔 아직 원장님이 임명되지 않았는데요’
그러자 주교가 이리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벌써 오래전에 로렌스라는 수사를 원장으로 보냈는데 원장님이 없다니요?’
수도사들은 주교님을 이끌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늙은 수사 로렌스는 그 때도 식기를 닦고, 바닥을 쓸고 있었습니다.
인간 세상에 처음부터 거룩한 것이 어디 있고 속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그게 그것이지요!
오래전 다윗이나 솔로몬이라는 왕들이 한 곳을 거룩한 집, 곧 성전이라고 정하고 나니 다른 곳들은 상대적으로 추한 거처가 되었지요.
오래전에 몇몇 사람들이 한 지역을 지정하여 거룩한 땅, 성지라고 이름 붙이고 나니 여타의 지역은 속된 땅, 곧 세속이 되고 말았지요.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종교사업 종사자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을 스스로 추켜세워 성직이라고 하니 다른 직업들은 속직으로 매도 당했던 거지요.
성전도, 성지도, 성직도 모두 인간들이 만든 차별적 언어들입니다.
하느님은 아무도, 어디도, 무엇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 성지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족이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이곳이 곧 성전입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애기 키우는 일, 장사하고 직장 다니고 뜨게질 하는 것, 가드닝하고 홈 클리닝하고 운전하는 것, 이 모두가 거룩한 성역들입니다.
애기보는 할머니, 청소하는 아줌마, 가드닝하는 아저씨, 당신이야말로 진짜 성직자들 입니다. 로렌스 이야길 다시 생각하면서 ‘청소하는 성직자’와 ‘설교하는 속직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라틴어 인문학 (8) _ 5월 21일
Salvete mei soccii.
(살베테 메이 소키이)
5월 3째 목요일입니다. 전 같으면 금년도 전반기 마지막 인문학 모임을 하는 날이네요.
오늘의 라틴어.
Amor te. (아모르 테)
Ego amo te. (에고 아모 테)
“나는 사랑합니다 당신을.”
Amor가 기본형이고 Amore는 명사입니다.
영어의 love, 독일어의 liebe는 다른 형태이지만 이태리어의 Amore, 스페인어 Amor, 프랑스어 Amour는 모두 라틴어와 같거나 비슷합니다.
한국의 화장품 Amore와 그 회사 Amore pacific도 여기서 따온 것입니다.
Mater amo. (마테르 아모)
“엄마, 사랑해요.”
Amor momentum. (아모르 모멘툼)
“이 순간을 사랑하라.”
성경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라틴어로 Diligatis invicem (딜리가티스 인비켐),
Diligatis는 영어의 dignify, 존중하라.
invicem은 서로, 피차에, 차례로 라는 뜻입니다.
Amore mio는 라틴탑 가수 탈리아 (Thalia)가 부른 노래인데 이태리어로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라틴어도 똑같습니다.
amore, ‘사랑’, mio, ‘나의’, 영어로 my, 그러니 Amore mio는 my love, “내 사랑이여!”입니다.
amore와 연관되는 가장 유명한 문장은 Amor fati입니다.
‘아모르 파티’
fati는 흔히 ‘운명’이라고 번역하는데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원래 니체가 그의 책 ‘즐거운 지식’이나 ‘이 사람을 보라’에서 말한 fati란 ‘운명’이나 ‘팔자’같은 Fortune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Life, 인생 자체를 뜻한 것입니다.
‘운명을 사랑하라’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건강과 병듦, 희망과 절망, 심지어는 삶과 죽음까지 인간과 역사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 드리며 도전하라는 뜻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운명과 팔자에 맡기면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의 트로트가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를 다시 한번 들어보세요.
Amor fati.
Carpe diem.
홍길복의 세 번째 잡기장 (12) _ 5월 22일
바다에는 물이 넘실거리지만 그건 마실 수 있는 물은 아닙니다.
세상엔 사랑이 가득한 것 같지만 우린 여전히 외롭고 허전합니다.
하루에도 여러개씩 전달되는 사랑의 동영상들, 사랑의 노래들이 우릴 기쁘고 행복하게 해 주진 못합니다.
교회나 텔레비전에서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사랑합니다’라고 따라하게 합니다.
그러나 억지로, 연습해서하는 사랑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백화점 입구에는 90도로 몸을 굽혀 인사하는 친절이 있고, 어딜 가나 사람들은 상업적 미소를 짓습니다. 웃고 친절하고 사랑하는 것도 훈련받은 직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상업화된 사랑과 친절, 조작된 눈물과 동정을 반복하면서, 사랑, 친절, 섬김의 본질과 순수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의 비극 앞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눈물이나, 그후 다른 대통령의 감사글귀 역시 정치적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련된 목사들의 사랑설교도 잘 준비된 연출이고, 종교인들이 펼치는 자선행사도 믿음이 가지않고, 시민단체가 외치는 모금행사엔 의구심이 생겨납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이야….’
흘러간 가요만 거짓말이 아니고 참말 같은 슬픈 시대입니다.
어떻게 이 상실된 진정성과 잃어버린 순수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이 아침도 고민합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주강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3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