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내가 시를 쓰는 건
조병화 (趙炳華, 1921 ~ 2003)
내가 시를 쓰는 건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나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하나를 쓰고 그만큼
둘을 쓰고 그만큼
셋을 쓰고 그만큼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에게 편질 쓰는 건
언젠가 돌아올 너와 나의 이별
그것을 위해서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너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아무렇게나 버리기엔 너무나 공허한 세상
소리없이 떠나기엔 너무나 쓸쓸한 우리
그냥 작별하기엔 너무나 깊은 인연
내가 시를 쓰는 건
하나 하나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잊기 위해서다
그와 같이
내가 네게 편질 쓰는 건
머지않아 다가올 너와 나의 마지막
그 이별
그걸 위하여
하나 하나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잊기 위해서다

조병화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등단한 뒤 창작시집 52권, 시선집 28권, 시론집 5권, 화집 5권, 수필집 37권, 번역서 2권, 시 이론서 3권 등 160여권의 책을 냈다.
그의 시는 인간의 숙명적 허무와 고독을 쉽고도 아름다운 시어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시 ‘난(蘭)’이 지난 2000년 일본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렸으며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외국어로 번역된 시집도 25권에 이른다.
화가로 활동하면서 20여 차례의 개인전과 초대전 등을 갖기도 했다.
문단에 기여한 공로로 아시아문학상(1957), 서울시 문화상(1981), 대한민국예술원상(1985), 3.1문화상(1990), 금관문화훈장(1996), 5.16민족상(1997) 등을 수상했다.
후배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1991년 편운문학상을 제정, 시인, 평론가에게 시상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