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영 목사의 청소년 칼럼
계단과 지하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일련의 행동들에는 가치와 기준, 그리고 각 자의 삶의 환경과 배움을 통해 학습되어지고 습득된 관점들이 있다. 그래서 그 행동들을 보면 그 관점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우리들은 간혹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자꾸 몸이 그쪽으로 간다.”고… 하지만 몸은 우리들의 생각과 습관의 결정체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작은 몸짓하나에도 숨겨진 생각들이 이미 자리매김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근거이다. 그런 차원에서 인간의 선택은 너무도 많은 것들의 자료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울 왕. 그는 하나님의 선택하심 속에 기름부으심을 받고 귀한 도구로 사용되어졌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았던 그가 세속적인 관점으로의 삶을 선택하게 됨으로 인해 돌아올 수 없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아주 강력한 무기인 선택이라는 권한을 간직하고 있다. 그 선택으로 인해 사랑과 평화, 행복과 안위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때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들로 인해 엄청난 폐해를 당하기도 한다. 그런 결과물을 맞이하게 된 뒤안길에는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관점이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 앞에 놓여 있을 때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한 쪽엔 지하도가, 한 쪽엔 계단이 있다면 말입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을 가기보다는 편하고 쉬운 길로 가기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목적했던 것들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사람을 평가할 때, 계단과 지하도가 있는 곳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능성을 타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것이라도 쉽게 얻어지거나, 편하게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없는 법이다. 지금 당장에는 쉽고, 편하게 얻어진 것 같더라도 그 대가는 결국 치르게 되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는 말씀처럼 말이다.
그런데 때론 내게 주어진 선택의 권한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부모세대는 선택의 여지없이 가난과 굶주림, 고통 속에 허덕이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기에 자녀들에게만큼은 그 길을 걸어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아간다. 그래서 가능하면 어려운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자녀들이 해야 할 역할까지 감당해주곤 한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속적으로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그 다음세대는 부모가 걸어간 길을 더 힘겹게 걸어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장 눈에 보이는 안타까움에 곧 다가올 또 다른 고통을 간과하며 지나친 사랑인 방종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그 방종에는 어떤 약도 없는 듯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자동차와 같이 마구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먼저 부모세대들의 가치관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행동에 대한 결과물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오류 등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돌아보는 일이 선행되어지지 않고 이대로 지속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레세대인 자녀세대들의 진로는 불을 보듯이 뻔 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계단과 지하도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누구라도 어느 한 쪽을 선택하겠지만, 우리는 이 상황을 한 쪽으로만 정해야 하는 것처럼 이미 생각하며 접근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양 쪽을 선택한다는 가능성을 앞에 놓고 어느 쪽이 어떤 상황에서 더 유익한지, 그것이 개인이나, 사회라는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 더 유력하게 결정되어져야 더 유익한 것인지 접근해 보면서 좀 더 폭을 넓게 품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질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가 그런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한 모퉁이에서 작은 몸부림을 치는 부모세대들을 기대한다.
윤석영 목사(히스교회 시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