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택 목사 칼럼

한국사회의 집단적 정체성의 경험 : 영화 「왕사남」이 우리에게 주는 것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브박스 (Maurice Halbwachs, 1877–1945)는 인간의 기억이 개인의 내면에 고립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집단적 구성물이라고 보았다 (The Social Frameworks of Memory,1925). 그는 이를 “사회적 틀 (social framework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인간은 결국 집단 기억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혼자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지고, 국가의 역사에 대한 기억은 사회적 아픈 경험과 교육 통해 형성되며, 종교적 기억은 공동체의 예배와 전통 속에서 유지된다. 기억은 개인의 뇌 속에 저장된 고정된 정보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기억은 과거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시선에 따라 계속 다시 해석된다. 같은 역사적 사건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개인의 경험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결국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이야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영화 「왕사남」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선다.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 깊이 축적된 집단적 기억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다. 영화 속에 흐르는 정서는 분명하다. 억울함, 침묵 속의 고통과소외감, 가난한자도소유하고있는 인간애와 바램, 그리고 권력에 의해 억압된 존재의 경험이다.
그러나 이 감정들은 단종 한 사람의 비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 온 정서적 기억과 깊이 맞닿아 있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를 보며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서사 속에서 자신의 삶과 감정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집단 기억 속에 잠재되어 있던 감정을 현재로 불러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해석하도록 만드는 서사적 공간이 된다. 이 감정을 사회학자 모리스 알브박스 사회적 틀속에서의 느끼는 자기정체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는 장면에선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이유가 기억의 정체감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영화는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방식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역사를 왕과 권력의 이야기로 배워왔다. 누가 왕이 되었는가, 어떤 전쟁이 있었는가, 권력이 어떻게 이동했는가가 역사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왕사남」은 전혀 다른 질문을 제기한다.
왕은 누구와 함께 있었는가. 그의 곁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역사 이해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이다.
아시아 신학자 시몬 챈 (Simon Chan) 은 서구 중심의 역사 이해를 비판하며, ‘Grassroots Asian Theology (민중 기반 아시아 신학)’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전통적인 역사 서술이 권력자와 지배층의 시선에서 이루어져 왔다고 지적하며, 이를 넘어 아래로부터 위로 (From Below)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han에 따르면, 역사는 더 이상 “가진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경험 속에서 형성되는 이야기이다. 민중의 신앙, 일상의 실천, 공동체적 기억이야말로 아시아 역사와 신학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가 된다.
영화는 이러한 관계를 왕이나 지배층에 한정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과의 관계로 확장한다. 기록되지 않았던 삶과 작고 사소해 보였던 이야기들이 오히려 역사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해석을 담아낸다. 결국 이 영화는 역사를 단순한 해석의 산물이 아니라, 민중위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드러나는 살아 있는 이야기로 이해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래서 단종의 비극은 더 이상 한 왕의 몰락이 아니다. 그것은 그 곁에 있었던 사람들, 함께 울고 웃었던 민중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이루어진 살아 있는 대화이며 현실이 된다.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깊은 질문은 이것이다.
왕은 무엇으로 왕인가. 권력인가, 혈통인가, 아니면 민중과의관계인가? 영화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답한다. 왕은 민중의 관계 속에서 왕이 된다고. 민중과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는 자리에서 비로소 왕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단종은 오래 살아서가 아니라 짧지만 엄흥도를 중심으로한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왕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용감한 왕됨을 보여준것으로 충분한 왕의 역활을 다한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해석과 통찰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도 깊이 연결된다. 예수는 권력으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왕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십자가는 지배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참된 왕됨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는 낮선 유대인이 아니라 지금 나와하께하시는 나의 구주가 되신다. 예수는 십자가에에서 억울하게 처영되였지만 부활하시자로써 우리마음에 새롭게 경험되고 해석되고 살아남게된다.
이 영화를 볼때 우리는 낯선 감정을 경험한다.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가.
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 이야기가 「왕사남」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억울했던 순간을 알고 있고,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관계 속에서 위로받았던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그래서 「왕사남」은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집단적 정체성 (Identity)을 느끼는 공통적 정서를 드러내고,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이해하는 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역사를 새롭게 읽도록 우리를 이끈다.

이상택 목사
(아이오나 콜럼바대학 학장, 신학과 실천신학 교수)
